허구와 현실
평양, 한 병원에서 근무하던 의사 한성훈과 간호원 김경애는 결혼하여 신혼 생활을 하던 중 해방을 맞이했지만 남과 북의 분단은 한겨레가 극복해야 할 또 다른 비극의 서막이었다. 한성훈이 서울로 먼저 내려가 기반을 닦고 곧 합치기로 했는데 삼팔선 통행이 점점 어려워지면서 김경애는 평양에 머물게 되고 딸 정숙을 낳아 혼자 기르고 있었는데 육이오가 터진 것이다.
서울에 진주한 북한군을 치료하던 한성훈은 국군 장교인 신일철을 집에 숨겨 주고 치료한다. 이를 알게 된 북한군 체포조가 들이닥쳤지만 마침 밖에 있던 신일철은 이웃에 사는 여급(박혜란, 한성훈의 두 번째 부인)의 도움으로 도망하다가 현장에서 체포 작전 책임자인 북한군 장교와 마주치는데 바로 동생 신기철(후에 한국군 헌병대 문관으로 근무하며 대간첩 작전 참여함)이었다.
의사 한성훈이 국군 장교 신일철을 숨긴 죄로 총살형을 당할 위기에 처했을 때 신일철이 동생에게 자기 목숨을 구한 한성훈을 살려달라고 부탁한다. 신기철은 한성훈의 신분을 확인하고 부하들에게 직접 처단하겠다고 말하고 숲 속에 들어가 허공에 총을 쏘고는 풀어 주며 시내로 내려가면 개명하라는 말에 한동민으로 이름을 바꾸고 지내다가 전쟁이 끝난 후 병원을 개업한다.
한동민은 피난하던 모녀가 해주에서 폭격으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박혜란과 결혼하여 두 아이를 둔다(미애愛와 경敬남- 첫 부인 김경애를 남몰래 그리워하며 지은 이름).
한편 소문과 달리 폭격에서 살아남은 김경애는 평양에서 같은 병원 사환으로 일하던 강만득에게서 남편이 총살형을 당했다는 걸 알게 되고 그에게서 돈을 빌려 서울 명륜동에서 다방을 운영하며 대학생이 된 한정숙을 뒷바라지한다..
한정숙이 교수 추천으로 한동민이 원장인 병원에 가정교사로 입주하여 초등학생인 미애와 경남을 가르치게 되는데 박혜란의 호의로 입원실 하나를 비워 모녀가 거주하게 되니 작가는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2026년, 내가 읽고 있는 소설, '밤에 핀 해바라기’는 1950년 발발한 육이오로 인해 3년 동안 한국인이 겪었던 비극을 다루고 있는데, 전쟁은 지구 이곳저곳 장소를 바꾸어 가며 끊이지 않고 있다. 4년여 이어지는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은 언제 끝날 것인가. 또 이스라엘, 미국과 이란의 전쟁은 휴전과 전쟁을 반복하고 있다. 뉴스를 볼 때마다 육이오를 연상하게 되며 한반도에서 전쟁이 재발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마음이 불안하다. 사실 우크라이나와 마찬가지로 남북한도 전쟁 중이지만 휴전 상태가 오래 지속되고 있을 뿐이니 태평성대와는 다르지 않은가. 휴전선 남과 북에서 준비한 시간이 많은 만큼 전쟁이 재발하면 그 폭발음을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삼천리금수강산은 핵으로 오염되고 한겨레는 자멸할지도 모른다.
학촌 이범선이 지은 장편소설 ‘밤에 핀 해바라기’를 읽다가 책을 식탁 위에 엎어 두고 창문을 열어 보니 현실이 나를 부른다. 오늘도 숲 이야기를 들을 겸 약수터에 가야겠다. 무질서한 온갖 잡념에서 보내는 시간에서 벗어나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질서, 허구는 나를 초대하지만 그곳에 오래 머무는 일, 줄지어 기다리는 작은 활자에 집중하다 보면 눈이 피곤하다.
공동 현관을 나서니 무더위는 어디 갔는지 시원하다. 어제는 중국을 강타한 태풍 ‘바비’의 영향으로 한반도에 강풍이 불고 비가 왔는데 오늘은 바람만 분다. 카트를 끌고 숲길에 들어서 언덕길을 오르면서 생각한다. 오늘 산책이 무언가의 첫걸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자작곡 ‘꿈’을 웅얼거리며 가볍게 걸어간다.
꿈은 곧 이루어지지 않아도 좋아요
고이 깊이 간직하면 마음이 넉넉하지요
다시 오지 않는 오늘 기쁨으로 맞이하고
그리움 깎아 만든 길 내일 향해 걸어요
그리움 깎아 만든 길 우리 함께 걸어요
나무 전체가 바람에 흔들거리는데 가지마다 중심점이 다른 원을 그리며 독립을 추구하는지 움직이는 방향이 일정하지가 않다. 바람이 잎 사이로 스치는 소리, 잎과 잎이 비비는 소리가 숲에 가득한데 어디서 까치 소리가 들린다. 일고여덟 번 연이어 운다. 서너 번 우는 것이 보통인데 여러 번 길게 반복한다는 건 무언가 강조할 뜻이 있다는 것이 아닐까? 다른 새들의 소리는 바람 소리에 묻혀 희미하게 들린다.
하늘 가린 무수한 이파리들이 나부끼니 잘게 조각난 하늘빛이 잎 사이에서 부서져 내린다. 스마트폰을 들고 숲을 찰칵 했지만 바람 소리 새소리는 영상에는 남지 않으니 아쉽다. 다만 바람을 온몸으로 대하니 현실감과 함께 나무의 기분을 알 듯하다. 내 마음속에서는 무엇이 팔랑거릴까. 내 마음속 어두움을 바람이 날려 버렸으면 좋겠다. 어쨌든 무수한 잎새를 스쳐 지나가는 바람결 입장에서 보면 나도 조금 큰 잎사귀인지도 모른다.
약수터 가는 숲길에 들어서면 고양이를 돌보는 이범선의 딸을 만나리라는 기대감을 늘 갖게 된다. 약속을 하고 만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막연한 기다림을 늘 갖게 되고 만나면 더욱 반갑다. 학촌鶴村이 지은 허구에서 나와, 소설 속에서 늘 묘사했던 실제 딸-지금은 할머니지만 맑고 가는 목소리는 아주 젊어 나이를 짐작할 수가 없다-을 만날지도 모르는…… 같은 직장에서 근무했고 같은 단지에서 살고 있으니 가끔 만나게 되는데 이것도 숲의 선물인가. 금년 봄, 만난 지가 꽤 오래되어 오랜만에 전화로 연락 후 그녀가 사는 101동 아래 벤치에서 만나 동인지 ‘다시 피는 봄’을 주었더니 선물로 39권 이범선 문학전집을 안겨 주어 잘 읽고 있으니 요즘은 시간을 초월하여 학촌의 문학 세계를 자주 접하는 편이다. 언제 그렇게 많은 장편 소설을 쓰셨는지 신문에 연재했던 소설이어서 통속적인 느낌은 있지만 문장 표현이 깔끔하다. 39권 중 10권째 읽고 있으니 다 읽으면 선생님이 흐뭇해 하시리라.
빈 카트를 끌고 야자수 매트를 깐 언덕길을 오른다. 편하게 앉아서 읽는 허구가 아니라 일단 내 체중을 느낀다. 그래서 물을 받아 오는 길은 힘이 조금 들지만… 돌아오는 길은 경사가 좀 급하지만 내리막길이 훨씬 길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운동이 되니 몸에는 좋을 것이 아닌가.
위쪽을 보니 멀리 낯익은 배낭-네덜란드 축구 선수 유니폼 색깔, 귤빛-을 진 사람이 나무 사이로 걸어가고 있었다. 반가움에 언덕을 다 올라가 약수터 쪽으로 가지 않고 오른쪽으로 꺾어지니 산속 바위 옆에 고양이와 함께 있는 학촌 선생 따님이 보였다.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단다. 항생제도 가끔 주는데 세 군데를 돌본단다.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약수터를 향하며 상상의 날개를 편다.
부근에 살던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사슴 사냥을 하다가 놓치고 몸은 지쳐 바위에 앉아 쉬면서 음악 같은 새소리를 듣고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어깨를 들썩이다가 춤을 추었을까. 한 사람이 시작하면 모두 일어나 원을 그리며 막춤을 추었을까. 또 어린이들은 움집 주변이나 유난히 바위가 많은 이곳에서 무엇을 하며 놀았을까.
첫댓글 살아있는 증인처럼 이범선의 문학이 지금이 우리네 사회에도 살아있네요. 이념으로 갈라진 대한민국의 앞날이 불안합니다.
그리움을 깎아 만든 길 우리함께 희망을 걸어가자는 선생님의 노랫말도 좋아요. 소중한 오늘입니다. 건강한 정신 유지하며 살아냅시다.
오늘 아침은 음악이 모짤트의 장송곡이 나오니 아침부터 무슨 장송곡이야? 하며
나 살아온 지난날을 밪추하며 지은 시
질풍노도의 삶 / 홍속렬
아
얼마나 힘에 벅찬 삶이었던가?
얼마나 죽음의 기로에 서서
생명 지키기에 변화 많은 삶이었던가
지나고 나면
아무렇지도 않을 거란 거
그러나 세월많이 흘렸어도
가슴엔 여전히
큰 상처가 남아
이제
팔순 넘은 나이에도
알게 모르게 찰나적으로
설음복받혀 오는 순간
나 살아온 세월
최하의 인간의삶
겨우 생명만 유지해온 삶
목숨만이라도
부지해온 걸 감사하네
검정고무신 벗어
양손에 들고 냅다
앞만 바라보고 달려온 길
이제
하늘나라 갈 날 머지않아
뒤돌아보는 이 시간
가슴에 멍든 자국
더욱 아픔으로 다가와
알게 모르게
늙은 빰에 눈물흐르고
아픈 가슴 젓시네
그런데 6.25전쟁 얘기에 그만 더 아파오는 가슴
서주님 전쟁은 안 터집니다
북한이 전쟁을 3일 이상을 지탱해 낼 수가 없어요
이번 중동전이 끝나면 트럼프가 북한 손 볼겁니다
Evergreen님 풋볼님, 방문 감사!
무료한 시간, 잡념이 가득한 시간, 걱정 근심 불안한 시간에서 벗어나 작가와 함께 허구라는 질서와 함께하는 시간, 독서는 즐겁고 좋은 시간입니다.
인생은 결국 어떻게 시간을 소비하느냐인데 문학은 양질의 시간을 선물합니다. 허구라는 간접 경험을 통해 우리 인생이 풍요롭게 되리라 믿습니다.
풋볼님 말씀대로 늘 안보에 구멍이 없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