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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파편작(耆婆扁鵲)
기파는 고대 인도의 명의(名醫)이고, 편작은 중국 전국시대의 명의로, 명의의 대명사이다
耆 : 늙을 기(老/4)
婆 : 할머니 파(女/8)
扁 : 작을 편(戶/5)
鵲 : 까치 작(鳥/8)
병을 잘 고쳐 이름난 명의(名醫)는 동서고금에 숱하다. 기원전 5세기께 고대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는 의도를 확립해 의사의 아버지로 불린다.
우리나라에선 지역마다 불치병을 고친 명의 전설이 내려오고, 조선 중기 어의(御醫)를 지낸 허준(許浚)은 동아시아 의학을 집대성했다는 동의보감(東醫寶鑑)을 남겨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선정됐다. 경상도 거창 출신의 조선 숙종 때 어의 유이태(劉爾泰)도 예방 치료에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
역사상 대표적 명의를 일컫는 성어로 함께 등장하는 기파(耆婆)와 편작(扁鵲)은 각각 인도와 중국 사람이다. 기파라고 하면 신라 때의 화랑(花郞)이었던 기파랑(耆婆郞)을 연상하겠지만 실제는 인도의 의성(醫聖)이다.
기원전 5세기 석가모니(釋迦牟尼)와 같은 시대의 사람으로 산스크리트어 Jīvaka를 음역하여 기파로 불리고 시파(時婆), 시박가(時縛迦), 시박가(尸縛迦)라고도 한다.
비천한 출신이었지만 태어날 때 바늘통과 약주머니를 가지고 있었다고 전한다. 왕자에 거두어져 양육됐고 서인도로 유학하여 7년간 공부했다. 기파는 석존의 풍질을 비롯한 제자들의 많은 병을 고쳐 장수(長壽)의 신으로 불리기도 했다.
명의의 대명사로 화타(華陀)와 함께 중국 고전마다 등장하는 편작은 춘추시대(春秋時代) 사람으로 이름은 진월인(秦越人)이다. 장상군(長桑君)에게 의학을 배웠는데 괵(虢)나라 태자의 죽어가는 병을 고쳐 이름을 드날리게 되었다고 한다. 기사회생(起死回生)이란 성어가 나온 연유다.
편작의 전설적인 활약상은 기원전 약 7세기부터 3세기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여 후세에 다른 명의들의 기록까지 흡수하여 집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사기(史記)의 편작 창공(倉公)열전에는 제아무리 명의라도 고칠 수 없는 여섯 가지가 있다고 했다.
첫째가 환자가 교만하고 자신의 병을 제가 안다고 하면 고칠 수 없다는 교자불론(驕恣不論)이다. 몸을 함부로 여기면서 재물만 중시하는 경신중재(輕身重財)가 두 번째다.
이어서 생활 섭생을 지키지 않고, 오장의 기운이 빠져 있고, 약 기운을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쇠약했거나 무당의 말만 믿으면 고칠 수 없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의술은 의료제도와 함께 세계적으로 앞선다고 한다. 지난 번 판문점을 넘어오는 북한 병사가 온몸에 총탄을 맞아 생긴 끔찍한 상처도 이국종 외상전문 박사의 치료로 낫게 하여 세계인의 칭송을 받았다. 나라에서도 제도적 뒷받침을 꾸준히 하여 의료만큼은 계속 앞서가야 하겠다.
치병(治病)과 치국(治國)
나라는 예(禮), 의(義), 염(廉), 치(恥)라는 네 개의 벼리(四維)가 받치고 있다. 그 중 한 줄기가 끊어지면 나라가 기울고, 두 줄기가 끊어지면 나라가 위태롭게 되며, 세 줄기가 끊어지면 나라가 엎어지고, 네 줄기가 다 끊어지면 나라가 망한다.
편작(扁鵲)은 전국 시대의 명의(名醫)다. 지금의 하북성 출신으로 원래 성씨는 진(秦), 이름은 월인(越人)이다. 그는 한의학의 전통적 진단 방법이 되는 '사진법(四診法)', 즉 망(望; 보다), 문(聞; 듣다), 문(問; 묻다), 절(切; 맥을 짚다)의 기초를 닦았다.
워낙 의술이 고명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황제(黃帝) 시대의 전설적 명의인 '편작'에 비유하여 그 이름을 그대로 따서 불렀다.
사마천은 '사기' 편작창공열전(扁鵲倉公列傳)을 지어 그 의술을 칭찬하며, '세상에 맥(脈)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은 편작 덕택이다'고 하였다.
아울러 그에 관한 여러 가지 일화를 실었다. 다만 아쉽게도 한의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필자에게 어려운 감이 있었는데 '전국책(戰國策)'에 실린 이야기는 비교적 이해하기 쉬웠다.
편작이 진(秦)나라 무왕을 알현했는데 무왕이 병의 상태를 보여주자 그가 치료해 주겠다고 나섰다.
편작이 치료 준비를 위하여 자리를 비운 사이, 왕의 측근들이 말했다. '임금님의 병환은 귀의 앞쪽과 눈의 아래에 있어 치료한다고 해서 반드시 낫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귀가 안 들리고, 눈이 안보일 수가 있습니다.'
편작을 다시 만나자 무왕은 이런 정황을 말하며 치료를 꺼리는 기색을 보였다. 편작이 화를 내며 석침을 던져 버리고 말했다. '임금님은 의술을 아는 사람과 상의하고 나서 의술을 모르는 사람의 말을 들어 치료를 망쳐버렸습니다. 만일 진나라의 정치를 이렇게 한다면 일거에 나라를 망칠 것입니다.'
편작은 세상에 알려진 명의이다. 병을 치유하려면 당연히 마음을 비우고 그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 그러나 진나라 무왕은 편작의 말을 듣고 나서 다시 측근의 말을 듣자 우왕좌왕 하는 태도를 보였다.
나라를 다스리는 일도 병을 다스리는 이치와 마찬가지다. 정말 답을 찾을 생각이면 전문가와 상담하고 그 말을 따라야 한다. 편작은 병을 치료하지 못한 것도 화가 났지만 임금에게 정신 자세를 고치라고 충고한 것이다.
'편작창공열전'을 보면 의술이 아무리 고명해도 고칠 수 없는 불치병으로 6가지를 열거하였다.
첫번째는, 교만방자 하여 도리를 따지지 않는 것이다(驕恣不論於理).
두번째는, 몸을 혹사시키고 재물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輕身重財).
세번째는, 먹고 입는 것을 적절하게 조절하지 못하는 것이다(衣食不能適).
네번째는, 음과 양을 문란하게 하여 오장의 기운을 흩뜨리는 것이다(陰陽幷藏氣不定).
다섯번째는, 몸이 극도로 쇠약해져 약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形羸不能服藥).
여섯번째는, 무당의 말을 믿고 의원을 믿지 않는 것이다(信巫不信醫).
이 여섯 가지 불치병 중 하나라도 있다면 병을 치료하기가 어렵다. 6가지 불치병 가운데 첫 번째와 마지막이 의미심장하다. 섭생(攝生)과 관련 없어 보이기에 더욱 그렇다.
당시에 진나라 무왕과 같은 불치병 환자가 많았던 모양이다. 불치병 이야기와 '전국책' 일화를 겹쳐보면, 편작은 병을 치료받고자 하는 자의 태도를 강조하는 동시에 치국도 치병과 같은 이치라고 말한 셈이다.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명재상이었던 관중(管仲)은 부국강병을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삼아 수공업과 국내외 교역 활성화에 진력했다. 요새말로 하면 경제 최우선 정책을 내건 사람이었다.
그래서 어떤 이는 관중을 중국 최초의 중상(重商)주의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후세에 그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관자(管子)라고 부르고 그의 언행이 담긴 책도 '관자'라고 했다.
당시 여타의 권력자와 비교해 볼 때 관중의 정책은 분명 탁월했지만, 지금 와서 보면 지극히 상식적인 것도 사실이다.
예컨대 세상의 어떤 지도자도 약한 군대, 가난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공언하는 사람은 이제껏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제력이 우선이라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다.
이렇게 보면 관중과 작금 정치인들의 생각이 그다지 다른 것은 아니다. 다만 한 지점에서 한국의 집권층과 관중의 잣대는 크게 달라 보인다.
'관자'의 첫 대목인 목민(牧民)편에 이런 말이 있다. '나라는 예(禮), 의(義), 염(廉), 치(恥)라는 네 개의 벼리(四維)가 받치고 있다.
예(禮)란 사람마다 절도(節度)를 지키는 것이며, 의(義)는 준칙을 따르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것이며, 염(廉)이란 방정(方正)해서 자기 잘못을 감싸거나 숨기지 않는 것이며, 치(恥)는 부끄러움을 알고 악행에 동참하지 않는 것이다.
그중 한 줄기가 끊어지면 나라가 기울고, 두 줄기가 끊어지면 나라가 위태롭게 되며, 세 줄기가 끊어지면 나라가 엎어지고, 네 줄기가 다 끊어지면 나라가 망한다.'
우리의 '벼리'는 지금 어떤 상태인지 궁금하다. 아니 그보다 현 정권이 네 개의 벼리를 잣대로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정권이 네 개의 벼리 역할을 해준다면 국민은 기꺼이 나라 일에 나설 것이다. 괴질의 기세가 점점 사나워지고 있다. 편작과 관중의 고사를 들춰보니 더욱 심란해진다.
▶️ 耆(늙을 기, 이룰 지)는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늙을 로(老=耂; 노인, 늙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旨(지)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耆(기, 지)는 ①늙다 ②즐기다, 좋아하다 ③미워하다, 증오하다 ④사납다, 억세다 ⑤늙은이 ⑥어른 ⑦스승 ⑧등골뼈 그리고 ⓐ이루다, 다다르다(지)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늙은이 옹(翁), 늙을 로(老)이다. 용례로는 노인을 기수(耆叟), 기애(耆艾), 육십 세 이상의 노인을 기로(耆老), 늙은이와 어린이를 기몽(耆蒙), 예순 살이 넘은 나이를 기년(耆年), 늙은이를 이르는 말을 기구(耆耉), 예순 살이 넘은 늙은 백성을 기민(耆民), 매우 늙은 사람이나 나이 많은 친구를 기구(耆舊), 나이 많고 덕이 높은 사람을 기덕(耆德), 늙어서 덕망과 경험이 많은 사람을 기숙(耆宿), 늙은이나 노인을 숙기(宿耆), 일흔 살이 넘은 대신을 기구대신(耆舊大臣) 등에 쓰인다.
▶️ 婆(할머니 파, 음역자 바)는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계집 녀(女; 여자)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波(파)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婆(파, 바)는 ①할머니 ②늙은 여자(女子) ③춤추는 모양 ④사물(事物)의 형용(形容) 그리고 ⓐ음역자(音譯字)(바)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춤추는 소매가 가볍게 나부끼는 모양을 파사(婆娑), 늙은 여자를 파온(婆媼), 혼인을 중매하는 할멈을 매파(媒婆), 늙은 여자나 할머니를 노파(老婆), 늙은 여자를 고파(姑婆), 계집을 낭파(娘婆), 여승이나 비구니를 이파(尼婆), 가게의 노파를 점파(店婆), 신부의 단장을 해 주는 여자를 장파(粧婆), 조산원 또는 어떤 일의 실현을 위하여 잘 주선해서 이루어지도록 하는 존재의 비유를 산파(産婆), 술을 파는 늙은 여자를 주파(酒婆), 촌에 사는 노파를 촌파(村婆), 점쟁이 노파를 이르는 말을 점파(占婆), 뫼나 사람의 무덤을 탑파(塔婆), 끓는 물을 넣어서 몸을 덥게 하는 함석이나 자기로 만든 그릇을 탕파(湯婆), 남의 일에 대하여 지나치게 염려하는 마음을 노파심(老婆心), 안에서 주인이나 부녀들의 심부름을 하는 노파를 상직파(上直婆), 산파의 구실 또는 그러한 구실을 하는 사람을 산파역(産婆役), 승려의 거칠고 건방진 행동을 바라문행(婆羅門行), 남의 일을 지나치게 걱정하고 염려하는 일을 노파심절(老婆心切) 등에 쓰인다.
▶️ 扁(작을 편)은 회의문자로 지게 호(戶; 지게문)部와 글자를 쓰는 죽간(竹簡)을 나타내는 冊(책)으로 이루어졌다. 문에 거는 대나무 패의 뜻이다. 그래서 扁(편)은 성(姓)의 하나로 ①작다 ②마음이 좁다 ③낮다 ④납작하다 ⑤현판(懸板), 편액(扁額) ⑥검(劍)의 이름 ⑦반신불수(半身不隨) ⑧두루, 널리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납작할 편(匾)이다. 용례로는 넓고 평평함을 편평(扁平), 조각배를 편주(扁舟), 작은 배를 편자(扁子), 귤의 한 가지를 편귤(扁橘), 산자糤子의 한 가지를 편산(扁糤), 박의 한 가지를 편포(扁蒲), 편평한 모양을 편형(扁形), 비단이나 널빤지 따위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써서 방 안이나 문 위에 거는 액자를 편액(扁額), 지구 기타의 행성 등과 같이 편평 타원체의 편평도를 나타내는 양을 편윤(扁率), 자라 모양으로 만든 병을 편제(扁提), 배가 불룩한 주전자를 편관(扁罐), 노송나무를 편백(扁柏), 포유 동물의 손톱이나 발톱의 한 형식을 편조(扁爪), 넓적뼈로 평평하고 넓은 뼈를 편평골(扁平骨), 발바닥의 가운데 부분이 안으로 오목하지 않고 밋밋한 발을 편평족(扁平足), 회전 타원체의 편평도를 나타내는 양을 편평률(扁平率), 한 조각배나 하나의 작은 배를 일편주(一扁舟), 유부와 편작의 술법 곧 이름난 의사의 훌륭한 치료를 유편지술(兪扁之術) 등에 쓰인다.
▶️ 鵲(까치 작)은 형성문자로 鹊(작)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새 조(鳥; 새)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昔(석, 작)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鵲(작)은 ①까치(까마귓과의 새) ②땅의 이름 ③산(山)의 이름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까치복으로 등에 얼룩얼룩한 반점이 있는 복어를 작돈(鵲魨), 연의 한 가지를 작령(鵲翎), 석양에 멀리 바라다 보이는 바다의 수평선에서 까치 떼가 날아 오르듯이 크게 이는 흰 물결을 작루(鵲漊), 까치옷으로 더그레를 달리 이르는 말을 작의(鵲衣), 까치콩을 작두(鵲豆), 까치의 지저귀는 소리로 곧 길조를 말함을 작보(鵲報), 까치의 우는 소리로 기쁨의 징조라 함을 작어(鵲語), 까치가 지저귀는 소리는 기쁜 소식을 전해 주는 조짐이라는 뜻을 작희(鵲喜), 까마귀와 까치를 오작(烏鵲), 털 빛이 온통 흰 까치를 백작(白鵲), 집의 남쪽에 있는 나무 위에 집을 지은 까치를 남작(南鵲), 차의 한 가지를 작설차(鵲舌茶), 까치가 나뭇가지에 앉는 형태를 보고 바람의 방향을 알아 내는 일을 작점풍(鵲占風), 까막까치가 남쪽을 향하여 난다는 말을 오작남(烏鵲南), 까마귀와 까치가 둥우리를 같이 쓴다는 뜻으로 서로 다른 무리가 함께 동거함을 이르는 말을 오작통소(烏鵲通巢), 비둘기는 스스로 자기의 집을 짓지 않고 까치집에서 사는 데서 나온 말로 아내가 남편의 집을 자기 집으로 삼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을 구거작소(鳩居鵲巢), 까치의 지혜라는 뜻으로 하찮은 지혜를 비유해 이르는 말을 조작지지(鳥鵲之智)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