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9일(토) 이사야 44:1-8 찬송 543장
1.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이스라엘아 이제 들으라
2. 너를 만들고 너를 모태에서부터 지어 낸 너를 도와 줄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여수룬아 두려워하지 말라
3.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
4. 그들이 풀 가운데에서 솟아나기를 시냇가의 버들 같이 할 것이라
5. 한 사람은 이르기를 나는 여호와께 속하였다 할 것이며 또 한 사람은 야곱의 이름으로
자기를 부를 것이며 또 다른 사람은 자기가 여호와께 속하였음을 그의 손으로 기록하고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존귀히 여김을 받으리라
6.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7. 내가 영원한 백성을 세운 이후로 나처럼 외치며 알리며 나에게 설명할 자가 누구냐
있거든 될 일과 장차 올 일을 그들에게 알릴지어다
8.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겁내지 말라 내가 예로부터 너희에게 듣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알리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나의 증인이라 나 외에 신이 있겠느냐 과연 반석은 없나니
다른 신이 있음을 내가 알지 못하노라 (개역 개정)
- 선민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 보호의 약속 -
오늘 말씀은 내용상 43:1-13과 매우 유사하다.
선민에 대한 하나님의 위로(1, 2절), 보호의 약속(3절),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증인됨을 선언하는 내용(8절)이 바로 그것이다.
다만 43:1-13에서는 위험에서 보호하신다는
소극적인 측면에서의 하나님 사랑을 강조한 반면,
본문에서는 갈증을 해소할 생수와 복을 내리시겠다는
적극적인 측면에서의 하나님 사랑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다음의 두가지 사실에 주목할 수 있다.
첫째, 하나님께서 거듭 이스라엘이 당신의 택한 자이며
여호와께 속한 자임을 강조하고 있다(1, 5절).
이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철저한 선민 의식 하에서
이방인들과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며,
또 그 모범된 삶으로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복음을 전파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선민됨이 마치 자신들이 잘나서 된 것인양 이방인들을 배타적으로 대하고
오만을 떨 때 선민 의식은 결코 바람직한 것이 못되나
이처럼 이방인들의 가증한 우상 숭배 행위와는 구별되는
하나님 앞에서의 거룩한 삶을 살게 하는 데 있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하나님에 의해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백성,
곧 성도 임을 명심하고 불신자들과 구별된
선하고 경건한 삶을 살도록 더욱 힘써야 한다.(롬12:1-2)
둘째, 여호와만이 참 신이시며 구원의 반석이심을 강조하고 있다.(8절)
이것은 우리가 가진 여호와 신앙의 핵심임과 동시에
우리들로 하여금 여호와의 백성으로서,
선민으로서 거룩한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삶의 원동력이 된다.
즉 이방인들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참된 구원자는
하나님 여호와뿐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기에
어리석게도 각종 우상 숭배에 빠졌으나(롬1:21, 23)
이 진리를 알고 있는 우리들은 여호와 신앙을
더욱 확고히 하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고전7:1)
3-4절)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풀 가운데에서 솟아나기를 시냇가의 버들 같이 할 것이라」
이 말씀은 일차적으로는 이스라엘의 회복과 번성
곧 이스라엘의 재창조에 대한 예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목마른 자’, ‘마른 땅’은 나라를 잃고 이방의 포로가 되어
아무런 소망도 가질 수 없었던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실로 이스라엘은 뜨거운 사막을 가다가 물이 없어서
갈증으로 인하여 탈진한 사람과 같았으며,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서 완전히 말라 굳은 땅과 같이 되었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
그것은 그들이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단절되어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모태에서 지으신 분이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존재 근원이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생명이었고 존재 기반이었으며 능력의 원천이셨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의지할 때에만
생명력 있는 삶을 살 수 있고, 번영할 수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어떻게 하였는가?
그들은 자신들의 존재 근원이며 능력이었던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다.
즉 그들은 생수의 근원되시는 여호와를 버리고
오히려 터진 웅덩이를 파는 어리석음을 범하였다.(렘2:13)
그 결과 그들은 목마른 자와 마른 땅과 같이 되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그런데 본문에서 하나님은 바로 그러한 그들에게 물을 주고 시내가 흐르게 하며,
당신의 영과 복을 그 후손들에게 주실 것이라고 말씀한다.
여기서 ‘물’, ‘시내’, ‘나의 영’, ‘나의 복’이란
이스라엘을 회복하게 하실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한다.
그런데 특별히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라는
말씀은 일차적으로는 이스라엘의 회복과 번성을 예언한 것이나
궁극적으로는 성령을 통한 하나님의 재창조 사역, 교회의 탄생과 교회 가운데
임재하신 성령의 능력을 통한 생명의 역사가 충족히 예언될 것임을 나타낸다.
실로 성령이 오시기까지 그 존재 근원인 하나님을 떠난 인류는
목마른 자와 마른 땅과 같았다.
사람들의 영혼은 타는 갈증으로 곤비하여 죽은 것과 같았고,
아무런 소망도 가질 수 없었다.
그런데 성령이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들의 심령에 부어짐으로 말미암아
인간들은 다시금 생명력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갈증으로 탈진하여 죽어가는 사람도 물을 마시면 다시 소생의 힘을 얻으며,
마른 땅에도 물을 풍성하게 공급하여 주면 다시 생명들을 낼 수 있게 되듯
죄로 인하여 죽었었던 사람들의 영혼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이 부어짐으로 말미암아 다시금 살아나 생명력을 가지게 되었다.
이는 결국 성령께서 우리 모두의 생명의 원천이며 성장과 성숙,
열매 맺는 삶을 가능하게 하는 원천이심을 말해준다.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 즉 우리들은 성령을 의지해서만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
성령을 의지하지 않는 교회,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행치 않는 성도,
성령의 역사가 없는 교회나 성도는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이미 생명을 잃은 것이다.
그들이 하는 일은 결국 죄에 따라 죽음에 이르고 말 사람의 일이지
생명을 살리고 풍성케 하는 하나님의 일은 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당신의 거룩한 영을 부어주셔서
구원의 삶, 생명의 삶을 살도록 이끌고 계신다.
그저 구원받고 그치는 것이 아닌 고갈된 생명을 흡족게 하며 풍성케 하는
역사를 이루어가도록 하시고자 성령님을 부어주신다.
그래서 성령에 잇대어 성령의 충만함을 덧입어 살아가야 한다.
성령의 풍성한 능력으로 축복되고 은혜로운 삶을 항상 영위해야 한다.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롬8: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