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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데릭 피셔가 삽질을 했을 때 '피셔가 왜 중용받는지 모르겠다'란 의견도 나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트라이앵글 오펜스에서 PG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점, 피셔 왜 레이커스의 PG들의 기량과 경험이 심하게 딸린다는 점을 제쳐두고라도 피셔의 클러치 능력과 공격력, 그리고 리더쉽을 생각해보면 피셔가 정상급 PG는 아니더라도 레이커스 백코트를 담당하는데 그리 부족한 선수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외에 팀의 슈퍼스타 코비가 피셔를 향해 전폭적인 신뢰와 우정을 보내고 있다는 점도 한 몫 하죠.
아래의 글은 서부 컨퍼런스 결승이 끝나고 뉴욕 타임즈에 올라온 글입니다. 피셔와 코비의 관계와 그들 사이에 있는 신뢰, 우정, 존중 등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A Sidekick Adds Luster to a Star
원문:
http://www.nytimes.com/2010/05/30/sports/basketball/30lakers.html?scp=1&sq=sidekick&st=cse
코비 브라이언트와 데릭 피셔는 목요일 저녁에 도합 52점, 13어시스트를 합작하며 팀을 5차전 승리로 이끌었다.
피셔에 의하면 그들의 경기 후 모임(meeting)은 이제 막 시작이었다.
“같이 온갖 일을 겪고 나면, 편안함이 느껴지는거죠. 경기 전후에, 버스에서, 혹은 문자를 주고받으면서 등,” 레이커스가 서부 컨퍼런스 결승 4차전을 선즈에게 내준 뒤 피셔가 한 말이다. “우리는 이 팀(레이커스)가 우승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항상 생각하고 있죠.”
토요일 저녁 서부결승 6차전을 승리로 이끈 그들은 이제 그들은 셀틱스로부터 4승을 따내야 한다. 브라이언트와 피셔는 그들의 5번째 타이틀을 함께 노리게 될 것이다.
현재 서로 공존을 고려하고 있는 거물급 FA들에 집착하고 있는 이 리그에서(역주:2010년 FA대란을 가리킴) 브라이언트와 피셔와 같은 프로농구 동반자관계는-대단히 인정받으며 가끔 논쟁을 일으키는 슈퍼스타와 그의 특별한 직장 친구, 브라이언트가 애정을 담아 Fish라고 부르는- 매우 드물었다.
(피셔가 로스 엔젤레스를 떠난 3년으로 제외하고) 그들이 함께 한 11번째 시즌에 피셔는 그만의 권한으로 팀 내 권위자가 되었다. 그는 브라이언트가 전적으로 귀를 기울이는 유일한 동료이자 확고부동하게 (uncontested)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존재이다.
“우리는 삶의 다양한 면면을 함께 경험했어요. 그는 항상 솔직하고 직설적인 친구이자 (standup guy) 형제에 가까운 친구였죠.” 브라이언트는 말한다.
8월에 36살을 맞게되는 피셔는 브라이언트보다 형이지만 (4년 14일 차이로) 그 역시 브라리언트가 고등학교에서 프로로 직행했던 1996년에 레이커스에 합류했다.
“여름에 롱비치에서 열렸던 대회에서 (우정이) 시작됐어요,” 브라이언트 曰, “우리는 여름동안 서로를 상대로 경쟁하고 연습했죠. 시즌이 진행되는 동안 우리는 많이 뛰지 못했기 때문에 종종 일찍 연습하러 가서 1대1을 했죠.
아칸소 출신의 짜리몽땅한 (stumpy) 6-1의 가드 피셔는 1990년대의 특출난 프로직행 고졸선수 중 한명인 브라리언트를 상대로 결코 굽히지 않았다. 그들은 코트 위에서 맹렬히 맞섰으며 서로에게 위안을 얻었으며, 결국 오랫동안 함께하는 콤비, 레이커스의 Lone Ranger와 Tonto가 되었다. (역주 : 20세기 초중반 라디오, TV, 만화를 통해 선보인 캐릭터, 미 개척시대의 개척자와 아메리카 원주민 콤비, 여기선 ‘찰떡궁합’을 상징하는 의미로 쓰임)
“코비는 팀 내 누구보다도 (피셔를) 믿습니다. 뻔히 보이죠,” 선즈의 운영을 맡고 있는 스티브 커의 말이다. 커는 위압적인 인물과 함께 백코트를 책임지는 것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90년대 중반 시카고에서, 커는 불스의 스팟업 점프슈터로서 존 팩슨을 대체하였다. 팩슨과 함께 한 8년 간 마이클 조던은 그를 너무나 인정한 나머지, 1991년에 팩슨이 방출위기에 처했을 때 팀 수뇌부에 개인적으로 어필하기조차 했다.
2년 뒤, 팩슨은 선즈를 상대로 삼점포를 꽂아 넣어 조던의 첫 3연패를 도움으로서 그 빚을 갚았다. 조던은 그 날, 팩슨을 가리켜 “완벽한 프로”라고 했다.
커가 1993년에 불스에 합류했을 때, 조던은 야구를 하면서 안식 기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1995년 플레이오프 직전에 팀에 복귀했는데 당시 시카고는 2라운드에서 탈락했다. 커에 따르면 조던은 다음해 가을에 열린 트레이닝 캠프에서 “신들린(possessed) 인물”이었는데, 그는 동료들을 말로서 후려갈겼으며 동료들의 가슴에 팔꿈치를 거침없을 날렸다.
하루는 기분이 상한 커가 되받아쳤고, 조던은 즉시 그에게 주먹을 날렸다. “별로 영리한 짓은 아니었죠,” 커가 말했다. “그래도 결국엔 제가 조던에게 맞선 것 때문에 그가 절 존중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는 말에 그치지 않았다. 유타를 상대로 한 1997년 결승전, 6차전 막판 동점 상황에서 조던은 커에게 더블팀을 끌어온 뒤 패스를 해줄테니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다. 커는 결승점을 성공시켰고, 경기 뒤 조던의 말에 따르면 “그의 날개를 얻었다.”
하지만 이하 선수들을 모두 지도했던 잭슨에 따르면, 커가 “마이클이 어떤 상황에서건 내게 패스해주는” 시점에 도달했었다고 해도 커나 팩슨 중 누구도 피셔가 코비와 공유하고 있는 관게엔 미치지 못했다.
“(피셔-코비 관계는) 마이클과 팩슨 간의 관계와 흡사한 점이 많습니다만, 피셔와 코비는 온갖 일을 같이 겪었기 때문에 그들의 관계는 훨씬 더 깊고 애정이 있습니다.“
일례로 조던은 코비가 샤킬 오닐한테 그랬던 것처럼, 프랜차이즈 플레이어로서의 위치를 공유해야 했거나 스타 조력자(complementary star)가 되어야 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브라리언트가 그의 역할에 대해 불편해했던 것은 유명한데, 그는 커리어 초창기에 자신이 주장이 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잭슨에게 말하기도 했다. “자네 뒤를 따라갈 준비가 된 선수는 아무도 없네,” 잭슨은 이렇게 답했다.
실제로 대부분의 동료들은 브라리언트가 거만하고 비사교적이며(aloof), 현실감각이 없다고 생각했다. 피셔는 그가 그저 어리고 오해를 사고 있다고 믿었다.
브라이언트가 처음엔 자신을 멘토로 보았냐는 질문에 한참 웃고 나서 피셔는 이렇게 말했다. “이것 보세요, 코비는 항상 ‘모두가 내 앞길을 가로막고 있어, 난 내 목표가 있다고. 내 편이거나 아니거나 둘 중에 하나야. (you're either with me or not)’ 란 태도였어요. 처음부터 그는 그의 커리어가 어떤 방식으로 가길 원하는지, 자신이 무엇을 성취하길 원하는지, 이를 얻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비전이 있었어요. 난 초기에 그것을 알아차렸고, 그렇기 때문에 녀석을 사랑하는 겁니다.”
“반대로, 우리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높은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 내가 했던 것들(노력)에 대해 그가 존중하게 되는 것도 있지요.
잭슨에 따르면 브라이언트가 피셔를 인정하는 마음은 2000-01 시즌에 급격히 늘었다고 한다. 당시 피셔는 62경기에 결장했으나 플레이오프에서 복귀해 평균 13.4 점을 득점하면서 삼점 성공률 51%를 기록했다.
“그 이후 그(브라이언트)는 피셔에게 계속 공을 주고 있지요,” 잭슨은 이렇게 말하며 트라이앵글 오펜스의 준-포인트가드(quasi point guard, 역주 : 진짜 PG는 아니고 PG역할을 나눠서 한다는 점을 말하는 듯)인 피셔가 공이 다른 곳으로 배부되어야 한다고 판단할 때 (브라이언트의 볼 요구에) 응답하지 않는 담력을 갖고 있다고 언급했다.
브라이언트는 그들이 관계가 선을 넘었던 (역주:과격해졌던) 적은 루키 시즌의 워크-아웃에서 뿐이었다고 말한다. 물론 당시 승자는 브라이언트였다. “그가 한 두 차례 싸움을 이겼을지는 몰라도, 난 1대1 시합에선 진적이 없어요.”
그의 모든 재능에도 불구하고, 브라이언트는 피셔의 균형감이나 이해심을 갖고 있지는 못한다. 피셔는 브라이언트와 오닐 사이에 있었던 거리감을 메울 의사소통 능력을 갖고 있었으며, 2003년에 브라이언트가 콜로라도에서 성폭행 혐의를 받고 있을 때도 그에게 충실했다.
그러나 피셔는 1년 뒤 레이커스가 엉망이고 브라이언트가 팀에 남겠다는 언질을 주지 않자 골든 스테이트와 계약했다.
“우리는 그가 떠난 뒤에도 항상 대화를 나눴습니다,”브라이언트가 말했다. “항상 통화를 했죠. 특히 그의 딸아이문제로 말이죠. 사실 그가 유타로 경기를 치르러 가기 직전에도 통화했습니다.”
2007년 당시 11개월 먹은 피셔의 딸 Tatum은 희귀병의 일종인 안암(eye cancer)에 걸린 것으로 진단을 받았다. 딸이 뉴욕에서 응급수술을 받은 후, 피셔는 당시 워리어즈를 상대로 이미 진행되고 있던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뛰기 위해 재즈에 합류했다.
피셔는 연장전에서 결승슛을 성공시켰고 로스 엔젤레스에서 지켜보던 브라이언트는 “우린 그가 필요해”라고 생각했다.
레이커스는 피셔의 고각도 왼손 점퍼를 그리워했으며, 브라이언트는 그와 생각이 비롯한 동료, 가장 친한 친구의 합류를 요구했다. 피셔가 대도시에서 그의 딸을 치료할 수 있도록 유타가 그를 방출했을 때, 브라이언트는 이를 성사시키기 위해 강력히 (팀에) 로비를 했다.
2007년에 이뤄진 피셔의 레이커스 복귀는 우연히도 브라이언트의 명예 회복과 시기를 함께 했다.
그리고 지난 봄에 브라이언트가 그렇게 원했던, 오닐 없이 첫 번째 우승을 이뤄냈다. 이를 더욱 달콤하게 만든 것은 피셔의 팩슨/커스러운 순간이었다. 그는 올랜도에서 열린 4차전에서 삼점포 두 개를 성공시키며 4.6초를 남겨두고 동점을 만들어 경기를 연장으로 끌고 갔고, 레이커스는 경기에서 승리하며 3-1로 리드해갔다.
두 번의 슛 기회를 모두 만들어준 이는 다름아닌 브라이언트였는데 이는 극적이었지만 헐리우드식의 마무리는 아니었다. (올해) 개인 통산 7번째 NBA 파이널 무대를 치르고 난 뒤, 피셔는 자유계약 선수가 될 것이다. 하지만 브라이언트는 그가 잔류해서 둘이 함께 하는 미래를 그리고 있다.
"우리는 역사를 공유하고 있어요,“그는 말했다. ”흔들의자에 앉아서 얘기하고자 하는 그런 것들이죠. (역주: 늙어서까지 간직하고 얘기하는 그런 이야기들). 영원히 함께 하게 되는 이야기들이죠.“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근데 갑자기 왠지 이말이 떠오르네요.. 글레라이스가 42점을 넣었던날 맷가이거가 인터뷰에서 "라이스와 나는 오늘 44점을 퍼부었다"
이 말, 상큼한데요 ㅎㅎㅎ
ㅋㅋㅋㅋ 결국 자기는 2점넣고 묻어가는건가요 ㅋㅋ
은근히 웃기네요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은근 웃긴게 아니고 많이 웃기네요. 코비 81점에 묻어갔으면 우리는 83점을 퍼부었다 할 기세.ㅋ
스무쉬 파커가 '우린 93점을 합작했죠'라고 했다는 것으로 기억나네요 실제로 ㅋㅋ
궁극의 숟가락 얹기 기술이군요ㅎㅎㅎ
잘 읽었습니다.. 이정도의 유대감이 있다는 것은 들었는데 잘 알게되니 흥미롭네요
확실히 어릴때부터 코비는 "나와 같이 가던지 아니면 나의 적이 되던지" 둘중에 하나였죠. 뭐 요세는 좀 어른스러워져서 그런 생각은 없겠지만.
내일 부탁한다 .....두 선수 믿는다...
어부형 없이는 우승 못하는 코비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