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손주의 / 채재순
저기 깨지기 쉬운 사람이 간다
명예가 무너진
재산이 파손되고
건강이 부서진,
'파손주의'라고 써진 등짝을 보라
잔소리에 깨지고
뼈있는 말에 파손되고
속임 말에 넘어간,
가슴에 '취급주의'가 새겨진
사람을 보라
슬픔에 갇힌,
질그릇 하나가 간다
- 채재순 시집 <바람의 독서>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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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아의 숫자는 해가 갈수록 줄어들고 65세 이상 노령층은
점점 늘어나면서 우리나라도 급작스럽게 고령화 사회로
들어서고 있다. 노인층만의 문제가 아니다. 50도 안되어
혹은 갓 넘기며 직장을 잃은 사람들이 점점 늘어난다.
한때는 젊음을 불사르며 일에 매진했던 사람들, 가장으로서
아내와 자식들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던 그들이지 않은가.
사회로부터 외면당하고 급기야는 아내의 잔소리에 떠밀려
거리를 배회하기도 한다. 근래 신문 사회면에는 이들의
사연 혹은 사회적 문제가 빈번하게 거론된다. 직장을 잃은
중년과 노령층 - 심각한 사회문제가 아닐 수 없다.
채재순의 시 <파손주의>는 바로 이런 사람들을 소개하고
있다. 비단 직장을 잃은 사람만이 아니다. 명예가 무너졌거나
재산 혹은 건강을 잃은 사람들, 아내의 ‘잔소리에 깨지고’,
주변의 ‘뼈있는 말에’ 자존심이 무너지고 때로는 사기꾼의
‘속임 말에 넘어간’ 사람들이 그들이다. 꼭 노령층이나
직장을 잃은 중년만이 아니라, 이런 사람들은 그야말로
‘깨지기 쉬운 사람’들이다. 그래서 시인은 ‘‘파손주의’라고
써진 등짝을 보라’고 한다. 어디 그뿐인가. ‘가슴에 ‘취급주의’가
새겨진 / 사람을 보라’고 하고 이어 그들을 일컬어 ‘슬픔에
갇힌, / 질그릇 하나가 간다’고 독자들에게 주의를 준다.
깨지기 쉬운 ‘질그릇’ 같은 사람이니 ‘파손주의’이고
‘취급주의’가 아니겠는가. 하긴 꼭 그런 사람만이 아니라
인간은 깨지기 쉬운 유리그릇 같을 때가 많다.
평범한 사람도 그러할진대 명예, 재산, 건강을 잃고 아내의
잔소리에 기가 죽고, 혹은 정곡을 찌르는 질타에 자존심
상하고 믿었던 사람에게 속임을 당한 사람들은 어떠하겠는가.
그야말로 주변 사람들이 취급주의 혹은 파손주의 해야 할
사람들이 아닌가.
‘슬픔에 갇힌, / 질그릇 하나’ - 모든 인간은 다 질그릇이다.
깨지기 쉬우니 파손주의 취급주의 해야 할 대상이다.
그냥 질그릇도 아니고 그간 살아온 이력이 담긴, ‘슬픔에
갇힌’ 질그릇이다. 그런데 뒤집어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는
그런 질그릇이지만 깨지면 다시 붙이고 더 강해지려
노력하며 살지 않는가. 그것이 인생이 아니겠는가.
/ 이병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