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2023.05.10)
< 개근거지 > - 정영인-
초등학교 3학년 담임 때다. 아마 가을 초입일 것이다. 우리 반, 한 사내녀석이 와서 나에게 말했다. “선생님, 저 체험학습 갈 거예요.” “어디로 가는데?” “경상북도 울진으로 가요.” “거기 누가 있어?” “할아버·할머니 댁이요.” “무슨 체험하러 가니?” “할아버지 일손도 돕고 송이버섯 따러 가요.” 그 녀석은 울진으로 송이버섯을 따러 체험학습을 갔다. 체험학습을 갔다 와서 나에게 자그만 양말 케이스 상자를 내민다. “이게 뭐니?” “선생님, 제가 딴 송이버섯이에요. 굉장히 비싼 거예요.”
그 상자 안에는 2등급쯤 되 보이는 자연산 송이버섯이 예닐곱 개 담겨 있다. 송이버섯은 우산기둥처럼 치어 있었다. 나는 그동안 자연산 송이버섯을 한 번도 먹어 보지 못했다. 사실 어떻게 요리해서 먹는지도 몰랐다. 그저 송이버섯이 좋다는 건 말로만 들었다. 집에 와서 기름을 치고 들들 볶아 먹었다. 사실 별맛이 없었다. 자연산 송이의 그윽한 송이버섯의 향을 맛보지 못했다. 나중에 알아보니, 자연산 송이는 얇게 저며 살짝 익힌 다음에 소금에 찍어 먹는 것이란다. 알아야 면장도 한다는 말이 틀림없다. 올해는 유난히 많은 산불로 인해 자연산 송이버섯 생산이 급감이라 한다. 체험학습이라는 것이 생겨서 결석이 아니가 때문에 개근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생겼으니 말이다. 개근이란 학업생활을 성실하고 근면하게 하여 하도 빠지지 않고 출석해서 주는 대표적인 보상이다. 1년 개근도 그렇지만 6년 개근은 대단한 상이다. 초등학교의 대표적인 상은 우등상, 개근상이 있다. 우등상은 공부 잘하는 아이가 탔고, 개근상으 성실하게 결석 없이 학교를 다녔기에 주는 근면·성실상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학부모들은 개근상을 타게 하려고 무진장 애를 썼다. 아파도 조퇴는 시켜도 결석은 시키지 않으려고 하였다. 거기다가 졸업 때 받는 6년 개근상은 대단한 상이었다. 어머니와 아이의 근면 성실이 만든 합작품이었다. 어머니의 상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나는 하도 비리비리하여 6년 개근상은 물론 1년 개근상을 한 번도 받아보지 못했다. 물론 정근상도…. 오래된 이야기다.
그러던 개근이 요즘은 ‘개근거지’라는 말이 생겼다고 한다. 개근을 하면 ‘평일에 놀러 갈 형편이 안 된다.’라고 생각한단다. 더구나 도시에서는 해외여행 한번 갔다 오지 못하면 ‘개근거지’라도 놀림을 받는다는 것이다. 근면성실의 대표적인 개근이 이젠 개근거지로 그 의미가 바뀌고 있으니 말이다. 그 소리를 듣고 어느 학부형은 부랴부랴 비행기 티켓을 끊어 해외 가족여행을 갔다 왔다는 것이다. 하기야 이즘 고등학생 수학여행은 경주, 제주도 또는 해외로 가는 학교도 많다고 한다. 국내는 60~70만원, 해외는 100만원이 넘으니 학부모의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거기다가 용돈이나 다른 것을 준비해야 하니 국내도 100만원쯤 든다고 한다. 해외여행 붐은 보편화 되었다. 전에는 부의 과시 및 차별의식을 반영하였지만 지금은 마치 명품처럼 되거나 한두 번쯤은 해외여행을 해야 하는 통과의례처럼 되 가고 있다. 시골 할머니들도 해외여행 한두 번은 보통이다. 이즘 해외여행지에서 득시글득시글 한 여행객은 주로 한국인이라 한다. 특히 코로나로 인한 보복심리가 있어서 그런지 태국, 베트남, 일본 등에서는 한국 여행객이 물결처럼 몰려다닌다는 것이다. 거기에 개근거지가 되지 않기 위한 어느 가족도 있을 것이다.
아주 먼 옛날, 시골학교 6학년 담임 때 아이들을 데리고 수학여행을 갔다. 그 당시 시골학교 수학여행은 으레 서울 아니면 멀어야 부여 정도였다.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경주로 갔다. 경주 여관에서 하룻밤을 잔 그 이튿날 한 녀석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선생님, 자근이가 오줌이 안 나온다고 펄펄 뛰어요.” 오줌이 안 나오면 큰일이다. 부랴부랴 자근이가 잔 방에 가니 정말 키가 작은 자근이가 데굴데굴 구르고 있다. 바지를 내리고 고추를 살피니 어느 녀석이 무명실로 고추를 챙챙 감아 놓았다. 오줌이 나오지 못해 꽈리처럼 탱탱 부풀어 올랐다. 그러니 얼마나 아팠겠는가. 챙챙 감은 무명실을 푸니 오줌은 내 얼굴로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나는 그 다음부터 그 녀석의 별명을 ‘구○지’라고 불렀다. 그 녀석의 고추에 실을 감은 녀석은 같이 자던 같은 동네에 사는 샌님인 ‘소○하’였다.
세월은 변한다. 나는 워낙 비리비리해서 개근상커녕 정근상도 받지 못했다. 개근거지가 될래야 될 수가 없었다. 아마 지금처럼 체험학습이 있었으면 정근상 정도는 탈 수 있었을까. 다산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자식들에게 신신당부한 말은 ‘근(勤)’과 ‘검(儉)’이었다고 한다. 우리 사회가 부와 경쟁 속에서 차별성으로 자존감이 상처 받지 않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명품이 그 사람을 본질적으로 대표하지 않는다. 다산이 자식들에게 첫 번째로 가르친 것은 근검절약(勤儉節約)이었다. 개근거지(皆勤-), 옛날에는 개근거지가 되도록 키웠다.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어쨌거나 의대, 치대, 한의대만 가면 된다. 지금은 지방학원에도 학부모들의 성화에 초등학생 의대반이 생긴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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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알아야 免 障.
아마 국민의 4대 의무 중, 근로의 근로의 의무가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부지런해야 교육도, 병역도, 세금도 낼 수
있으니깐요.
오래된 책장을 넘겼습니다
형편이 어려워 수학여행을 못갔는데 요즘 열심히 성지로 다니고 있어요
근검절약
시대를 살아가는 자녀들은 알까요
놀이터에 옷을 두고 가서 불러서 주었더니 왈~ 제가 버렸는데요 하는 요즘 이네요.
기쁜날 되세요.
제가 아는 자매님 중에 전국의 성지 순례를 혼자서 다
다녀오신 분이 계십니다. 제주도 까지 .. ..
어려웠던 시절, 수학여행을 못 가는 우리들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교부금이 남아 돌아 대주기도 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