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략 )
모든 연출자가 잘 알고 있는 두 가지 비밀이 있다. 첫째, 악역 연기는 아무나 해도 잘한다. 그건 배역이 주는 힘이지 자기가 만들어낸 힘이 아니다. 그걸 착각하면 안 된다. 둘째, 오열 연기는 카메라 앞에서 호들갑을 떨기는 하지만 그 안에 별게 없다. 그냥 안쓰럽다는 느낌이 들 뿐이다. 오죽 보여줄 게 없으면 저럴까, 싶은 것이다.
시청자들이나 관객들이야 ‘돋을지’ 모르겠 지만 선수들이 볼 때는 제발 좀 멈춰주었으면 싶다. 그건 배우를 낭비할 때 연출자들이 쓰는 전형적인 수법일 뿐이다.
내가 유아인에게 관심이 생긴 것은 그의 전술 때문이다.
약간 장황하게 ‘어리버리’하던 시절부터 늘어놓겠다.
처음 본 영화는 <좋지 아니한가>였다. 미안하지만 여기서 유아인은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추리닝’ 차림에 며칠 안 감은 게 분명한 부수수한 머리로 ‘망가진’ 김혜수와 4차원처럼 등장한 박해일이 화면을 장악했고, 더 나쁜 건 유아인이 상대해야 했던 두 명의 여배우가 그때 힘이 넘쳐났다는 사실이다.
황보라는 막 기세를 올리는 중이었고, 거의 천재적인 즉흥연기 감각을 지닌 정유미는 가끔씩 등장해 매번 몇 곱절은 훌륭하게 상대한 다음 퇴장했다. 유아인은 그때 자기가 뭘 해야 하는지 몰랐던 것 같다. 게다가 유아인은 감독에게 사랑받지 못하면 거의 살아남지 못하는 배우다.
그걸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에서 거의 가련하게 보일 만큼 고스란히 보여준다. 가혹하게 성적을 매기자면 그의 매력은 네 명의 주인공 중에서 꼴찌다. 여전히 그는 그저 카메라 앞에서 어슬렁거린다는 인상밖에 주지 못했다.
내 생각이 틀리지 않다면, 갑자기 정신이 든 것은 텔레비전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을 찍을 때였을 것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갑자기 훌륭한 연기를 했다는 뜻이 아니다.
여기서도 그의 존재감은 어리둥절할 정도로 구석으로 밀리고 또 밀렸다. 박유천과 송중기가 기세를 올리는 동안 유아인은 그걸 구경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따금 그가 여기서 다른 연기를 하고 싶어 한다는 느낌을 주었다. 나는 이 배우 재미있다, 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완득이>에 김윤석과 함께 나온다는 기사를 읽었을 때 넌 망했다, 는 말을 무심코 하고 말았다.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김윤석은 양보가 없는 배우다. 그게 화면에 묻어날 정도로 욕심이 넘쳐난다. 게다가 그때는 지금처럼 나태하지도 않고 <추격자>와 <타짜>를 막 끝내고 주연을 향해서 마지막 고비를 넘고 있을 때였다.
그런 김윤석과 맞붙어보겠다고?
이건 바보거나 미쳤거나 둘 중 하나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영화를 보러 갔다. 물론 김윤석은 마치 링에 올라온 아마추어를 데리고 놀 듯이 마음대로 다루었다. 그는 더 훌륭해지고 있었다.
내가 놀란 것은 그런데도 이제까지와는 달리 매번 달려드는 유아인의 인파이팅이었다. 그는 패배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번 신이 시작되면 새로운 라운드가 시작되었다는 듯이 달려들었다. 대체 이제까지는 왜 이렇게 하지 않았는지 이해가 안 될 정도였다.
그런데 유아인에게 결정적으로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은 다음 영화를 선택했을 때다. 그는 가장 바보 같은 결정을 했다.
배우가 가장 바보 같을 때는 영화가 성공했을 때 그 배역을 한 번 더 하는 것이다. <깡철이>는 가장 나쁜 방식으로 같은 성공을 노리고 마치 자신을 ‘카피’하듯이 또 한 번 그걸 한다.
이건 둘 중의 하나이다.
그의 배역을 결정하는 멘토의 판단이 어리석거나 유아인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정에 약하다는 뜻이다. 아니면 내가 모르는 깊은 계산이 있을 수도 있다. 그건 아무래도 좋다. 유아인은 자신이 가까스로 얻은 패를 거의 버리듯이 다시 잃었다.
거의 필사적인 선택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승부수는 다시 한 번 드라마로 돌아간 <밀회>였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김희애와 맞붙는다고 했을 때 이건 위험한 정도가 수위를 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김희애는 꼬리가 아홉 달린 배우다. 일단 드라마가 시작되면 이상한 기운으로 순식간에 주도권을 잡은 다음 그걸 마지막 순간까지 용의주도하게 놓치지 않고 끌고 간다. 게다가 약간 가련하게 생긴 외모가 어 떤 장면에서도 그녀를 안쓰럽게 지켜보게 유도한다.
나는 김희애가 상대 배우의 연기 페이스를 완전히 망쳐놓은 다음 자기 뜻대로 끌고 가는 것을 수없이 보았다. 그런데 드라마가 시작 되었을 때 이상한 기운을 감지했다.
여기서 유아인은 인파이팅을 포기하고 아웃복싱을 하는 방법을 어디선가 익혀왔다. 그는 김희애의 연기를 먼저 완전히 인정한 다음 마치 그녀의 품에 안기듯이 그 안에서 자신의 장점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어떤 장점? 처음으로 눈가를 움직이면서 상대방을 바라보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때 유아인은 자신의 얼굴 대신 표정이 사람을 움직인다는 사실을 누군가에게 코치를 받은 것처럼 이전에 없던 제스처를 쓰기 시작했다. 여기서 유아인은 종종 시선을 던지기 전에 몸을 정지시켰다. 김희애는 여전히 그걸 유연하게 잘 받아넘겼다. 하지만 그녀는 한 가지를 계산에서 빠뜨렸다. 이제는 나이를 먹었다는 사실이다. 시청자들은 잔인하게도 김희애를 그저 거울처럼 여겼다. 그녀의 ‘미러링’은 고스란히 유아인에게 그 공을 넘겼다. 이 위험한 스파링은 유아인을 완전히 다른 단계로 끌어올렸다.
한데 이상하게 영화로 돌아오면 유아인은 자기를 소비하는 데 몰두한다.
자기를 증명하고 싶어서 어쩔 줄 모르는 철부지가 되어버리는 것만 같다고 할까.
한 여름에 먼저 본 영화는 <베테랑>이었다. 이번에 유아인이 ‘맞짱’을 떠야 할 상대는 무시무시한 괴력의 소유자인 황정민이다. 하지만 황정민은 자신이 연기를 ‘해야 할’ 영화와 ‘하는 척해야 할’ 영화를 잘 구별하는 영리한 배우다.
<베테랑>은 연기를 요구 하지 않는 영화다. 이야기는 단순하고 유승완은 심각하게 독점자본과 국가 (공)권력 사이의 대결을 다룰 생각이 추호도 없다. 좀 더 단순하게 말하겠다. 이 영화는 유승완의 (그가 존경해마지 않는 성룡의) <폴리스 스토리>(에 바치는 오마주)이다.
그런데 여기서 유아인은 악역으로 무언가 보여주겠다는 듯이 눈에 힘을 주고 고개를 비틀어가면서 안간힘을 쓰기 시작한다. 그러자 잘해보고 싶어 하는 그의 욕심이 고스란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게 나쁜 건 아니지만 유치해 보이는 건 사실이다.
좀 더 나쁜 것은 추석에 본 <사도>였다. 분명한 것은 여기서 송강호를 만난다는 사실에 완전히 흥분했음이 틀림 없을 것만 같은 ‘오버 액션’이 연속으로 이어진다. 사태는 심각하고 결과는 참혹할 따름이다.
나는 단 한 장면에서도 사도세자의 슬픔을 보지 못했다. 그저 슬픈 대사와 상황만이 나열되었고 그걸 외어 읊느라 바빠서 지금 송강호가 잠겨가는 목소리로 영화를 구하기 위해 애를 쓰는 순간들을 모두 놓쳐버렸다. 안타깝게도 유아인은 여기서 단 한순간도 송강호를 견뎌내지 못한다. 그는 매번 경험이 넘쳐날 뿐만 아니라 엄청나게 계산이 빠른 너구리의 연기 앞에서 거의 재롱만 부리다가 뒤주에 갇혀 죽는다.
이제 <육룡이 나르샤>를 이야기할 차례이다.
이 드라마는 좀 다른 질문을 요구한다. 하지만 아뿔싸! 나에겐 지면이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이 말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유아인은 괴상한 방법으로 자신의 연기 세계를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그는 감히 자기가 상대할 수 없는 연기의 대가들과 벌인 실전 경험을 통해 매번 부서지면서 그걸 배우고 있었다. 아직은 단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지만 매번 거기서 배움을 훔쳐내고 있다는 게 느껴질 정도로 힘이 세지고 있는 중이다.
여기까지는 훌륭하다. 하지만 이상하게 어떤 나르시시즘이 그걸 매번 망쳐놓는다. 말하자면 그는 아직 자기를 통제하는 기술을 익히지 못했다.
( 후략)
출처 : GQ 정성일 영화평론가 칼럼
첫댓글 차라리 한대 때려주시오...
근데 악역연기가 그렇게 쉽나? 첨 앎
연기못한다는 말을 이렇게 구구절절 다정하게 말할 수 있다니..
완전 공감ㅋㅋㅋ유아인 연기 오바스러워서 못보겠어
뼈때린닼ㅋㅋㅋㅋ
아파요...
ㅇㄱㄹㅇ 베테랑은 여혐영화 안 봐서 모르겠고 사도 봤는데 단 한 순간도 사도세자로 안 보이고 유아인으로만 보임 그와중에 송강호는 ㄹㅇ 영조
그러니 동주 같은 영화를 못 찍지 ㅋㅋ
육룡이 나르샤 잘보다가 유아인 우는연기를 무음으로 보는데 진짜 연기 드럽게 못하는구나 확 깨달음
유아인 연기할때 이러잖아
고호오얀노오오옴....(부들부들달달)
아 ㅁㅊㅋㅋㅋㅋㅋㅋㅋㅋㅋ똑같아 개웃기닼ㅋㅋㅋㅋㅋㅋㄴㅋㅋㅋㅋㅋㅋ
ㅅㅂ 영상지원댓글인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내 뼈가 다̆̈ 아파
ㄹㄹ구구절절 옳은말 연기가 작위적임
그 역할을 연기하고있는 자신을 연기하는것같다고해여하나..? 이게뭔소리여 야튼 너무 자기자신에 취해있는듯
@Christopher M. Hemsworth 헐 나도 하지원 연기 존싫임.. 너무 연기같아서ㅜㅜ 여시 댓글 다받는다진짜
그런데 여기서 유아인은 악역으로 무언가 보여주겠다는 듯이 눈에 힘을 주고 고개를 비틀어가면서 안간힘을 쓰기 시작한다. 그러자 잘해보고 싶어 하는 그의 욕심이 고스란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게 나쁜 건 아니지만 유치해 보이는 건 사실이다.
이부분 내명치가 아프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시발ㅋㅋㅋㅋ존나웃김ㅋㅋㅋ
증말 뼈 ㅋㅋㅋ아프겠다 ㅋㅋㅋ
근데 유아인 연기들 다시보니 아랫입술이랑 턱으로 연기하는거같애...
근데 송강호는 연기를 진짜 왜 그렇게 잘할까...??
글재밌네 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지면이없대
어떠한 나르시시즘이 그걸 매번 망쳐놓는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적-절
유아인은 좋겠다야~~~~ 일케 평가 해주는 사람도 있고~~~~~~~~~~
이상하게 어떤 나르시시즘이 그걸 매번 망쳐놓는다닠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예리하신 평론가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글 진짜 잘쓴다ㅠㅠㅠㅠ소름 더 찾아봐야지
ㅋㅋㅋㅋㅋㅋㅋㅋ나르시시즘ㅋㅋㅋㅋㅋ개웃기닼ㅋㅋㅋㅋㅋ 세상적절
오 진짜 공감돼.... 나 밀회에서 처음 유아인 연기 좋다고 느꼈거든. 밀회 인생드라마였는데 유아인 때문에 다시 보기 꺼려져 ㅅㅂ ㅠㅠ 사도랑 베테랑 분석 통찰력봨ㅋㅋㅋㅋㅋㅋ 뭔가 연기를 못하는 건 아닌데 과한 느낌 뭐지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는 건가 뭐지 했는데 바로 나르시시즘ㅋㅋㅋㅋㅋㅋ
Zzzzz존나잘퍀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감독에게 사랑받지못하면 안된다 카메라앞에서 어슬렁거린다 킬파 ㅅㅂㅋㅋㅋㅋㅋ
악역연기는 아무나 해도 잘한다?? 배역이주는힘이지 배우가 만들어낸 힘이아니다??진짜 그래 여시들?? 난 악역도 배우가 만들어내는거라고 생각했는데.. 왕겜의 서세이라든가.. 닼나의 히스레저라든가..
저기서 말하는 악역은 ‘나는 나빠’가 공공연하게 드러내면서 악쓰는 연기인듯 ㅋㅋㅋㅋ 악역에도 난이도가 있으니까. 여시가 예시로 든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한번 더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연기들이구(섬세하다 해야하나)
여시가 말한 예들도 확실히 캐릭터 자체가 주는 힘이 강한듯? 좋은 배우가 붙음으로 해서 시너지가 커진거고..
나 배우하는데 악역연기는 쉽다고들해. 소리지르는거 분노하는거 과한 행동들 같이 극단적인 연기는 쉬워..
히스레저 같은 경우는 진짜 극에 몰입해서 우울증까지 온 케이스고.. 유아인은....... 솔직히 감정 많이 들어간 연기는 쉬운데 거기서 더 깊게 들어가는게 히스레저같은 케이스고..유아인은 다름 ㅠ
아 존나 웃껴 중간에 ㅋㅋㅋ
ㅋㅋㅋ 김희애는 꼬리아홉달린 여우, 하지만 늙었고 김윤석 황정민 송강호는 양보가 없는, 영리한이라고??? 정말??
22 나도 보면서 이생각함
33나두 그 부분 좀 어이 ㅋㅋㅋㅋㅋㅋㅋ 꼬리 아홉 달린 이라는 표현 진짜 웃겨
55555 유아인 패다가 김희애 갑자기 왜 팸 그것도 여혐낭낭하게 기분 나쁜 글...
정성일 참 잘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와 너무 신기해 연기를 저렇게 보는구나....
ㅋㅋㅋㅋㅋㅋ존나적절 유아인은 연기하는 자신의 모습에 취해서 연기를 못하는거같아
나도 유아인이 연기한 영화 거의 기억 안나.. 임팩트도 없고 연기도 못 하고.. 사도 보는데 유아인 연기도 못 하고 감정이 잘 안드러나서 보기 힘들더라. 오죽하면 주인공이 유아인이 아닌 것 같다고 느껴 ㅋㅋㅋㅋㅋ그냥 몇번씩 나오는 서브같음. 사도에서 오열하고 연기하는데 진짜 안 와닿았어..
정성일이 쓴 거구나 ㅋㅋㅋㅋㅋ 공감가네
ㄹㅇ 대배우들이랑 거의 일대일로 수업받은거 아니냐고 여태 작품보면
그런데 여기서 유아인은 악역으로 무언가 보여주겠다는 듯이 눈에 힘을 주고 고개를 비틀어가면서 안간힘을 쓰기 시작한다. 그러자 잘해보고 싶어 하는 그의 욕심이 고스란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게 나쁜 건 아니지만 유치해 보이는 건 사실이다.
개웃긴다진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글 재밌네 ㅋㅋ 엄청나게 계산이 빠른 너구리의 연기 앞에서 거의 재롱만 부리다가 뒤주에 갇혀 죽는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