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계리 은행나무
김동정
노란색이 이렇게 강렬하고 오묘한 줄 예전엔 몰랐다. 반계리 은행나무를 보기 전에는. 지난봄, 집 앞산에 핀 진분홍 철쭉을 보고 내 몸에 분홍 물이 든 것 같다고 아내한테 말한 적이 있는데 이 가을, 이번엔 진노랑 은행잎이 또 한 번 나를 달뜨게 한다. 내 몸에 노랑 물이 스며든 것 같아 황홀한 기분을 감출 수 없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예쁜 단풍잎으로 변신했구나!
노랑에 노랑을 덧칠하면 저런 모습일까?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용문사 은행나무와 가지가 땅에 닿아 뿌리를 내린 영국사 은행나무도 보고, 줄기가 다섯 갈래로 갈라져 아름다운 수형樹形을 이룬 장수동 은행나무도 봤지만, 반계리 은행나무는 한마디로 경이롭다. 흥분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다. 꿈인 듯 몽롱하다. 어떻게 하면 저런 색깔이 나올 수 있을까? 나무 한 그루의 위대함에 머리를 숙인다. 진하게 물든 색도 색이지만 뱀이 똬리를 튼 것 같은 밑동 하며 사방으로 뻗은 가지가 가히 천연기념물답다.
가랑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은행나무를 보러 온 사람들이 탄성을 터트린다.
“와아 대단하다.”
“어머 저게 은행나무야, 너무 예쁘다.”
“아빠 나 저 나무랑 사진 찍고 싶어.”
“온 보람이 있네. 대단하구먼.”
반계리 은행나무는 나이가 대략 800년쯤 되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그 긴긴 세월을 살아남았다는 게 놀랍다.
은행나무를 둔 반계리는 원주 외곽의 작은 마을이다. 뒤로는 우산을 펼친 모양의 산이, 앞으로는 드넓은 문막 평야와 섬강이 휘돌아가는 마을이다. 오며 가며 눈길을 주던 곳인데 가까이 와보니 풍치가 예사롭지 않다.
마을 사람들은 은행잎이 물들기 시작하는 10월 중순부터 이래저래 바쁜 나날을 보낸다. 수확 철이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데다 은행나무를 보기 위해 여기저기서 몰려드는 방문객들을 안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마을 길에 자동차들이 빼곡하다. 마을 사람들에게 이 은행나무는 자긍이면서 목숨이고 동무이자 위안이다.
사람들이 우산을 받치고 줄을 지어 올라간다. 나도 그 틈에 끼어 터벅터벅 발길을 옮긴다. 마을 길에 서 있는 감나무에 빨간 홍시가 먹음직스럽게 달려있다. 밤나무와 대추나무, 배롱나무도 보이고 밭에 나와 배추를 다듬는 아낙네의 손길이 분주하다. 그 모습이 참으로 소박하고 정겹다.
마을 뒤편의 야산에도 가을이 진하게 물들었다. 핏빛 사이사이로 잘 익은 감빛이 보이는가 하면, 오렌지와 귤을 닮은 빛깔도 섞여 있고, 붉은 사과 빛 새로 새빨간 저녁노을 같은 빛깔도 이 산 저 산에 그리다 만 그림처럼 드문드문 퍼져 있다. 한 폭의 명화名畵요 동화童話다.
마을 앞으로 흘러가는 섬강 줄기가 아스라하다. 횡성 태기산에서 달려온 섬강은 이곳 반계리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저 부론의 흥원창에서 남한강과 합쳐져 충주 쪽으로 내닫는다. 시간 날 적마다 와본 섬강이지만 다시 보니 감개가 무량하다. 온갖 사연을 싣고 도란도란 흘러가는 그 긴 물줄기는 원주의 역사이고 대한민국의 역사이다.
반계리. 뭔가 깊은 사연이 있음 직하다. 마을의 역사를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태조 왕건의 자취가 남아 있는 건등산과 관련이 있단다. 마을에서 동쪽으로 눈길을 주면 산 하나가 뾰족하게 솟아 있다. 이 산이 건등산이다. 치악산이 원주 동쪽을 지키고 있다면 건등산은 서쪽을 지키고 있다.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마는 원주 사람들의 혼맥이 닿아있는 영험한 산이다. 건등산建登山이란 이름은 태조 왕건이 견훤을 치기 위해 오른 산이라는 의미로, 왕건의 건建자를 따서 지었다고 한다.
반계리는 원래 반저리라 불렀다. 그 유래를 살펴보니, 왕건의 승리를 기념해 만든 건승비建勝碑를 서울로 옮겨가던 중 이 마을 앞에서 실수로 떨어뜨리고 말았는데 반으로 부러진 비碑의 뜻을 고상하게 여겨 반저리라 했다는 것이다. 현재의 반계리는 반저리가 변형되어 생긴 이름이다. 골무내기, 남도, 밤상골, 사자골, 안정골, 연화동, 옥수골, 웃모퉁이, 쪽섬, 작배기 같은 부락 이름에서 보듯 무언가 비밀이 숨어 있는 마을임이 분명해 뵌다.
단풍 하면 감나무와 벚나무 잎을 최고로 쳤던 내게 저 은행나무는 어떤 아름다움과 격을 지녔는가. 그래, 저건 선과 명암을 입체감 있게 표현한 그림 한 점이다. 그리움에 몸 달아하는 나를 천상의 세계로 안내해주는 가을의 환희다.
멀찍이 서서 사진 한 장 남겨둔다. 보고 또 봐도 멋있다. 초록으로 싱그럽던 이파리가 노랗게 물이 드는 건 자연의 섭리이다. 지구를 이룬 모든 목숨 들은 때가 되면 스스로 갈무리를 한다. 짙푸르던 이파리가 노랗게 색이 드는 건 간단한 일이 아니다. 한 잎의 단풍이 되기까지 겪었을 고난의 시간. 비바람과 가뭄과 천둥과 서리, 우박 같은 온갖 자연재해를 이겨내야 비로소 단풍잎이 되는 것이다. 사람으로 치면 어린아이가 성장통을 겪은 뒤 어른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은 초봄의 연두색이지만 늦가을의 노란색도 나름 심금을 울린다. 이렇게 샛노랗게 물든 은행잎을 보니 알 수 없는 흥분이 몰려온다. 세상살이에 지쳐 어두워진 마음이 긍정으로 바뀌고 희망과 생의 의욕이 샘솟는다.
탄생과 시작의 색이 연두라면 노랑은 결실과 풍요와 마무리의 색이 아닌가 한다. 빨강과 초록이 혼합돼 노랑이 된다. 산하에 노란색이 많이 보이면 가을이 깊었다는 뜻이다. 서리가 내리고 저 깊은 산골에는 살얼음이 보이기 시작한다.
나는 언제부턴가 단풍잎을 유심히 관찰하는 버릇이 생겼다. 빨강은 빨강대로 주황은 주황대로 노랑은 노랑대로 감빛은 감빛대로 석륫빛은 석륫빛대로 색마다 고유의 이미지(의미)가 있다는 걸 알았다. 모양과 색깔에 대한 나만의 감상법이다.
황금빛 부채 모양의 은행잎이 나풀나풀 떨어지는 모습을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그럴 수 없이 스산해진다. 드높은 하늘과 알록달록한 산과 노란 은행잎이 빚어내는 가을 풍경이 나를 우수에 젖게 한다. 해마다 가을이 오면 은행나무 예쁜 단풍잎을 책갈피에 꽂아두고 소녀처럼 들떠있곤 했다.
단풍잎에 노랑이 빠지면 참 쓸쓸하고 외롭고 허전할 것 같다. 노랑은 우리 주위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색이 아닌가. 갓 깨어난 병아리와 잉꼬부부로 알려진 앵무새도 노란색이다. 저 산천에 피어나는 개나리, 산수유, 복수초, 해바라기, 튤립, 수선화, 인동초, 들국화도 노란색이며 참외, 양배추, 모과, 바나나, 옥수수, 호박도 익으면 노랗게 된다.
얘기가 잠시 빗나갔지만, 반계리 은행나무는 색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을 무너뜨리고 있다. 노랑이 주는 풍성하면서 신비하고 강하면서 부드러운 이미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윤기 자르르 흐르는 비단결 같은 잎을 오래도록 바라본다. 비바람에 화르르~흩날리며 떨어지는 은행잎들. 문득 마음이 다소곳해진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여운이 오래 남을 것 같다. 저건 짧은 가을이 가면서 주는 선물이다. 나무 밑에 수북이 떨어진 은행잎을 밟아본다. 사박사박~. 가슴 밑바닥에서 느껴지는 감흥과 전율. 오랜만에 맛보는 기쁨이자 즐거움이다. 도심 가로수 밑에 은행잎이 떨어지면 귀찮다고 싹싹 쓸어내기 바쁠 텐데 여기선 하나의 작품이 된다. 그것도 추억에 남을 소중한 작품! 아름다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운치, 낭만, 감성, 사색, 분위기 어쩌고저쩌고 얘기해봐야 소귀에 경 읽기다. 표현이 좀 과했다면 용서를 빈다.
단풍은 떨어져 낙엽이 되고 낙엽은 뿌리로 돌아간다. 아무리 아름다운 단풍일지라도 사철 내내 보게 되면 지루해지게 마련이다. 11월이면 대부분의 단풍은 자취를 감춘다. 단풍잎이 떨어지지 않고 매달려 있다는 건 자연이 망가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탄생과 소멸을 반복한다. 짧은 시간 동안 온 힘을 다해 불꽃을 태우다가 어느 날 홀연히 세상과 이별한다. 해도 노을도 구름도 안개도 달도 별도 때가 되면 조용히 사라진다. 끝없는 순환으로 지구별을 아름답게 가꿔준다. 사람도 언젠가는 다 떠나게 돼 있다.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모른다. 부활復活과 적멸寂滅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게 인생이다.
넓게 퍼진 밑동을 보니 대단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자세히 보니 다섯 그루의 나무가 한 몸처럼 돌돌 감겨 올라가면서 사방으로 가지를 뻗었다. 낭창낭창 휘늘어진 가지를 보호하기 위해 군데군데 지지대를 받쳐 놓았다.
커다란 나무만큼이나 나무에 얽힌 얘기도 솔깃하다. 구전에 의하면 이 나무는 성주 이씨의 선조가 심었다고 한다. 길을 가던 한 승려가 물을 마시기 위해 꽂아놓은 지팡이가 자란 것이라는 말도 있다. 여태껏 살아남은 이유가 줄기 안에 흰 뱀이 살고 있어서란 얘기도 흥미롭다. 은행나무를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일컫는 이유를 알만하다.
누가 심었든 전설이 어떻든 그게 뭐가 중요한가. 새잎이 돋아나고, 때맞춰 그늘을 만들어주고, 열매를 맺고, 노랗게 물이 들고, 빈 가지로 겨울을 나는 것만으로도 환희이고 감동인 것을.
어느 순간 가랑비가 멎고 구름 사이로 맑은 햇살이 드러났다. 하늘을 가득 덮었던 구름 띠가 빠르게 동쪽으로 밀려가고 있다. 햇살에 빛나는 은행잎이 눈이 부시다. 아, 가을은 또 이렇게 소리 없이 가고 마는가. 반계리 은행나무여, 영원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