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보름달
漢陽正月何陰沈(한양정월하음침)-서울의 정월 보름달 왜저리 흐릴까
煩心失眠如面貌(번심실면여면모)-근심으로 잠 못 이룬 얼굴같구나
天空微塵蓋遮陽(천공미진개차양)-하늘은 미세먼지로 차양을 첬으니
烏鵲没橋無銀河(오작몰교무은하)-까마귀 다리 놓은 은하수도 없구나
歲變月歌無少年(세변월가무소년)-세월변해 보름달 노래하는 어린이 없고
向月作文詩人無(향월작문시인무)-달을 보고 시를 쓰는 시인도 없으니
无人照看心如老(무인조간심여노)-보아줄 사람 없으면 마음도 늙어서
化粧理髮無關心(화장리발무관심)-화장도 머리 손질도 무관심하게 되니
我想回去十五下(아상회거십오하)-돌아가고파 정월보름달 아래서
月家焚燒歡呼時(월가분소환호시)-달집 태우고 환호하던 그 시절로
농월(弄月)
세월변해 정월 보름달 노래하는 어린이 없고 !
오늘은 2월 26일(음력 1월 15일) 정월(正月)대보름이다.
정월(正月)은 한해의 첫째 달을 의미한다.
이름도 정월(正月) 단월(端月), 맹양(孟陽), 맹추(孟陬)~~~~~등 30여 가지가 있다.
그런데 정월(正月)은 12간지(干支)로는 인월(寅月)로 세번째 달이다.
※12간지(干支)-자(子).축(丑).인(寅).묘(卯).진(辰).사(巳).오(午).미(未).신(申).
유(酉).술(戌).해(亥)
정월(正月)은 새해의 첫째달을 의미하는 것인데
왜 세 번째 달인 인월(寅月)을 정월(正月)이라 할까?
원래 1년 열두 달은
밤이 가장 깊은 “자시(子時)11시 30분부터 0시 30분까지)”에서 하루가 시작하듯이,
밤이 가장 긴 동짓달 즉 “자월(子月)”이 한 해의 시작이었다.
그러니까 옛날 1년은
음력 11월을 시작으로 다음해 10월로 1년을 쳤다.
이를 바꾼 것은 “사기(史記)”를 쓴 사마천(司馬遷)이라고 중국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당시 사마천은 우주의 업무인 천체(天體)를 기록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
그는 새해를 한창 추운 동지(冬至)달이 아닌 따뜻한 봄으로 바꾸고 싶었다.
천문(天文) 법칙(法則)으로는 추운 동짓달이 맞겠지만,
즉 12간지(干支) 중 세 번째인
“인월(寅月)”은 잠자던 생명이 깨어나 초목은 새 움이 트고 땅속에 잠자던 동물은
땅밖으로 튀어 나오는 추위가 풀리는 셋째 달에 새해를 맞는 것이
인간을 위한 것이라 보았다.
이렇게 기원전 104년에 발표된 새 달력에서 이듬해 “인월(寅月)”이 1월로 바뀌고,
세 번째 달의 15일이 정월대보름이 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필자 어릴때만해도 정월대보름에는 해가 질 무렵에 동네앞 들판에 불에 잘 타는
나무와 솔잎나무 대나무를 움막처럼 달집을 만들어 달이 뜨면 달집을 태웠다.
달집이 타면 대나무가 불에 타면서 뻥뻥 마치 총소리 같이 났다.
아이들은 달과 불타는 달집을 가운데 두고 주위를 빙빙 돌면서 환호를 질렀다.
어른들은 막걸리 잔을 돌렸다.
여자들은 저고리 동전을 뜯어서 불길에 던졌다.
지난해의 액운을 전부 불에 태운다는 뜻이다.
그리고 며칠 전부터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만든 줄 싸움 “줄”이 있다.
필자 동네는 “성내(城內)”동과 성외(城外)동인 “남문외리(南門外里)동이 있었다.
줄은 용(龍)을 상징한다.
성안(城內)는 수놈 줄이고, 성 밖 즉 남문외리(南門外里)동은 암놈 줄이었다.
달집을 태운 뒤에는 줄 싸움을 하기 위해 온 동네가 성안과 성 밖으로 나뉘어 모인다.
그때에도 정말 장관이었다.
모두들 진지했다.
초저녁부터 11시까지 양쪽 줄을 메고 서로 세과시(勢誇示)를 하며 으렁대었다.
그리고 12시경에 “줄 싸움”이 시작된다.
줄 싸움은 암줄과 수줄이 서로 결합을 하면서 시작된다.
암줄은 머리구멍이 크고 수줄은 머리 구멍이 작다.
마치 남자 여자의 성기(性器)를 닮았다.
이때 줄 결합을 “성교결합(性交結合)”으로 간주하였다.
성교(性交)가 잘되라고 막걸리를 줄 결합 부위에 드리부었다.
막걸리를 정액(精液)으로 상징했다.
경찰에서도 나와 질서 정리를 도와주었다.
양쪽은 온 힘을 다하여 “영차 영차”를 천지가 진동하리만치 외쳤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줄에 매달렸다
줄 길이는 아마 3~40m는 되었으리라
꽹과리를 치고 “치기나칭칭노네”로 동네가 떠내려갈 정도였다.
줄 싸움에 이긴 쪽 줄의 꼬리부분을 젊은 부인들은 조금씩 잘라갔다.
그 줄을 집 시렁에 올려놓기도 하고 삶아서 물을 먹고 저녁에 부부 잠자리를
같이 하면 아들을 낳는다고 했다.
아련한 추억 정말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달은 풍요의 상징이고 불은 모든 부정과 사악을 살라버리는 정화(淨化)의 상징이다.
불꽃이 기울어지는 방향에 따라 풍년과 흉년을 점치기도 했다.
필자 고향에서는 “남문외리(南門外里)” 줄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고 했다.
그 시절에는 밤 12시가 되면 사이렌이 불고 “통행금지”가 있었다.
보름밤에는 밤새도록 통행이 허용되었다.
정월대보름에 대하여
“설은 나가서 쇠어도 보름은 집에서 쇠어야 한다”는 속담이 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객지에 나간 사람이 설에 부득이 집에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보름에는 꼭 돌아와야 한다는 뜻의 속담이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세상살이 그렇게 마음대로 안될 때가 많지 않은가.
중국 당(唐)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도 그런 사정이었는지
정월 대보름날 고향으로 가지 못하고 객지(客地)인 항주(杭州)에서 고향의 달을 보고
아래와 같은 시(詩)를 노래하였다.
정월대보름
歲熟人心樂(세숙인심낙)-풍년이라 사람들 마음 모두 즐거워
朝遊復夜遊(조유복야유)-아침에 놀기 시작하여 밤까지 또 노네
春風來海上(춘풍내해상)-바다 위로 봄바람 불어오고
明月在江頭(명월재강두)-강물 위에 밝은 달이 떠 있네
燈火家家市(등화가가시)-집집마다 거리마다 등불 밝히고
笙歌處處樓(생가처처누)-누대(樓臺)마다 피리소리 노랫소리 들려오네
無妨思帝里(무방사제리)-장안(長安) 생각나는 것은 어찌 할 수 없지만
不合厭杭州(부합염항주)-항주(杭州) 고을을 싫다고도 할 수 없으니
백거이(白居易)
시경(詩經) 소아(小雅) “정월(正月)”편에서도 아래의 시가 있다.
정월(正月)
正月繁霜(정월번상)-정월(4월)에 된서리라
我心憂傷(아심우상)-내 마음 시름되고 속상한데
民之訛言(민지와언)-국민의 거짓 소문이
亦孔之將(역공지장)-또한 심하고 커지려 한다
念我獨兮(념아독혜)-나의 외톨이신세 생각하니
憂心京京(우심경경)-시름으로 가득하고
哀我小心(애아소심)-소심한 내 마음 애달파
癙憂以痒(서우이양)-시름으로 병이 되었구나
※시경(詩經) 소아(小雅) “정월(正月)”은
지금으로부터 약 2800년 전, 중국 주(周)나라의 제12대 유왕(幽王)이 어리석어
나라가 망해 가는데도 권력노름에 정신을 쏟는 것을 보고
나라를 걱정하는 사람이 “정월(正月)”이라는 시(詩)를 노래한 것이다.
지금의 한국 정치는 이 시(詩)와 관계가 없는가?
농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