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동네의 부인들이 주중에 한번씩 서로를 위한 기도 집회를 갖고 있었습니다. 모이면 서로 흉금을 털어 놓고 교제를 하곤 하였습니다. 시댁으로 인해 겪는 어려움들, 가정 문제, 경제적인 어려움, 자녀들의 교육 문제 등등, 때로는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하고 서로 위로합니다. 물론 이 집회를 시작할 때, 서로 마음 열고 교제할 수 있도록 기도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끝날 때도 기도로 마칩니다. 어느날 마찬가지로 이야기를 나누고 마치는 기도를 하려는 순간 무엇을 기도해야 할 지 막막해졌습니다. 이제껏 나눈 어려움들을 주께 해결해 주십사 기도해야겠지만, 모두들 나누고 말하여 기분을 푸는 데에 중점을 두었을 뿐이었습니다. 기도하고 해결될 것은 아예 기대도 않고 있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기도 집회의 근본 목적부터 틀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당신은 어떻게 기도합니까? 기도로 스트레스를 푸는 일은 아닙니까? 독백으로 끝나지는 않습니까? 진정 무엇인가 응답받길 기대하며 기도합니까?
당신은 당신의 기도를 통해 일어날 일들을 기대하고 있는가? 그저 푸념을 늘어 놓는 창구는 아닌가?
롬 4: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롬 4: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1. '주님의시선' 카페와 카페지기가 섬기는 '마산시민교회'가 더 풍성해 질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합니다.
무엇을 기도하십니까? 빌 1:9-11.
우리의 믿음 생활에서 무엇보다 가장 귀중한 삶은 기도생활일 것입니다. 이 기도야 말로 우리의 신앙생활의 생명이요 힘이며 신앙생활을 잘하느냐 못하느냐의 척도일 것입니다. 만약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기도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기도하느냐 하는 기도의 내용 또한 대단히 중요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 사람의 기도의 내용을 보면 지금 그 사람의 신앙상태, 삶의 어려움, 문제, 신앙의 성숙도, 그 사람의 소원,생활목표 그리고 삶의 가치가 무엇인가를 알아보게 됩니다. 성경에는 단순한 기도의 모습만 말할 뿐 아니라, 그 기도의 내용을 말할 때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시편은 바로 기도의 내용을 노래한 것이며, 예수님의 기도문, 바울의 기도문도 여러개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도 가끔 우리의 기도문을 만들어 봄이 중요합니다. 나의 기도의 내용을 점검하면서 나의 현재의 상태를 채크함이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의 기도문은 달라고 하는 요구로만 채워져있고, 어떤 사람의 기도는 질문으로 차있고, 또 어떤 기도는 불평으로 차있을 때도 있습니다. 하여튼 우리의 기도의 내용을 살피면서 나의 기도가 나의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는 그런 기도가 아닌지를 점검하면서 기도의 성숙도를 가져와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빌립보 교인을 위하여 행하는 자신의 기도의 내용을 밝힙니다. 어떤 사람은 그럴 것입니다. 그 기도의 내용을 공개까지 할 필요가 있는가? 그런데 중보기도의 내용을 기도해 주는 상대방에게 들려주거나 알려 줄 필요가 가끔은 있습니다. 상대방이 나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을 들으면 가끔 가슴이 뭉클 할 때가 있습니다. 전에 어머니의 기도를 들을 때 이불을 뒤집어 쓰고 울어 본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를 잊지 못하고 항상 그 기도대로 살려고 노력을 했었습니다. 가끔은 남편에게 기도문을 써서 보여주세요, 자녀에게도 같이 앉아서 기도하면서 그 기도내용을 들려주세요 자꾸 반복해서 기도를 들려주는 것이 잔소리하고 소리지른 것 보다 훨씬 큰 효과가 나타날 것입니다. 바로 그런 측면에서 바울은 기도의 내용을 공개하면서 너희도 그렇게 기도하면서 신앙의 성숙을 가져오도록 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분의 기도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1.사랑이 풍성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9절) 원문대로 말하면 사랑이 성장하기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우리의 신앙의 성장은 어떻게 보면 사랑의 성장과 함께 옵니다. 신앙이 자라면서 사랑이 자라고 반대로 사랑이 깊어지면 신앙이 깊어지는 것이지요.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은 사랑과는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그 사랑을 우리가 입고 구원을 받았으며 그 사랑 지금도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우리가 사랑을 외면하고 사랑없는 모습이라면 곤란 한 것이지요. 우리가 사랑 자체이신 하나님의 자녀라면 우리도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랑이 신앙의 성숙과 함께 더욱 더 깊어지며 자라가야 합니다. 예전에는 미워지던 사람이 이제는 불쌍해 지고, 예전에는 보기도 싫던 사람이 이제는 가까이 할 수있어지고, 시기나 질투보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포용되는 성숙한 사람이 됩니다. 그런데 이 사랑의 기도는 ‘저 사람이 나를 사랑하게 해 주세요’하는 기도가 아니라, ‘내가 저 사람을 사랑하게 해 주세요’하는 기도를 의미합니다. 프란시스의 기도문 처럼 ‘이해 받기 보다는 이해하고, 용서 받기 보다는 용서하고, 사랑 받기 보다는 사랑하느’ 그런 사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사랑의 성장, 더욱 더 풍성한 사랑을 위하여 행하는 기도입니다. 특히 바울은 그 사랑을 위하여 기도할 때 무조건적으로 무엇이든지 누구든지 마구 사 랑하는 그런 사랑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지식과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먼저, 지식이라는 것은 독특합니다. 사용된 원문은 <에피그노시스>입니다. 원래 지식이라하면 <그노시스>인데 여기의 에피가 들어가므로 ‘충만한 지식’을 말하는 것으로 특수한 의미의 ‘하나님에 대한 지식,신앙적인 지식,성경적인 지식’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하면 ‘사랑을 하되’ 세상적인 그런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의 사랑을 말합니다. 주 안에서, 말씀안에서,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을 함께 사랑하고, 성경이 사랑하라고 하는 것을 사랑하는 것이지. 단순한 감정적이고 육체의 정욕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의에서 떠난 사랑, 술집에서 만난 사랑, 유행가가사같은 그런 사랑이 아닙니다. 기도하면서 만난 사랑, 기도하면서 서로 깊어지는 사랑, 성경공부하면서 완전해 지는 사랑, 신령한 지식과 함께 커가는 사랑입니다. 또한 ‘총명’이라는 말은 ‘지각’을 말합니다. 즉,통찰력입니다. 영적인 통찰력과 영적인 지각이 있어야 사랑은 더욱 더 깊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욱더 사랑할 수있는 사람이 되기위하여 기도하십시다. 그 사랑이 지식과 영적인 통찰력과 지각으로 성장하여 원망과 미움의 포로가 아니라 사랑의 향기를 발하는 성숙한 신자가 되도록 하십시다. 2.분별력을 달라고 기도합니다.(10절) 이 분별력은 ‘시험한다’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지극히 선한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요즈음은 도대체 무엇이 선인지 악인지를 구별하기 힘든 세상입니다. 가짜가 많습니다.모방품이 많습니다. 교회도 사이비와 이단이 난무합니다. 기성교회의 간판을 걸고 비성경적인 신앙생활을 하며 포교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혼미하고, 혼탁한 세상에서 우리가 분명한 분별력을 잃는다면 우리의 소중한 인생은 다 망쳐 버릴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정말로 분별력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그 분별력은 지식과 총명이 있는 사랑의 깊은 성숙으로 잘갈 때 얻을 수가 있더고 합니다. 내 마음에 미워하는 마음이 들어오면 분별력을 잃게 됩니다. 진정한 사랑으로 사랑하지 못하고 욕심과 욕정이 마음에 가득차면 분별력을 잃게 됩니다. 우리는 사랑이 점점 더 풍성해 져서 지극히 선한 것의 분별력을 가지고 옳바른 축복의 삶을 살아가야 되겠습니다. 3.깨끗한 삶을 위하여 기도합니다.(10절)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죽는 날까지 거짓속에 살지않고 죄를 지므로서 오점을 남기는 그런 삶이 아니라, 죽는 날 까지 진실하게 죄 짓지 아니하고 깨끗하게 살다가 하나님께로 갈 수있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여기의 ‘진실’이라는 말은 ‘햇빛에 시험해 보아 깨끗한 것을 말합니다’ 이 말은 도자기 만드는 데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도자기를 구울 때 보면 잘 구워지지 않고 조금씩 갈라지는데가 있는데 그러면 거기에다가 사라짝 밑칠을 합니다. 그렇게 하면 왠만한 금간 것은 감쪽같이 가려집니다. 그러나 햇빛에 비추어 보면 금간 것이 환히 보인다고 합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진실’이라는 말은 바로 밑칠하지 아니한 그릇. 즉, 자연 그대로의 솔직하고 깨끗한 모습 그대로를 말하는 것입니다. 과장 없는 삶, 허풍떨지 않고 진실하게 보이는삶,남의 눈을 속이면서 사는 삶이 아닙니다. 그리고 죄의 오점을 남기는 사람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죄를 지면 회개하고 용서받으면 되는데 하면서 죄짓는 것에 대해서 무감각 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예를 들어 봅시다. 아이가 잘못을 할 때 마다 그 어머니는 못을 하나씩 벽에다가 박았습니다. 그리고 잘못을 회개하면 그 못을 하나씩 뽑았습니다. 오랫동안 그렇게 하다가 그 어머니는 어느날 그 아이를 불러놓고 말하기를 ‘너의 모든 잘못은 회개 했으므로 이 못이 없음같이 하나도 없다 그러나 못은 빠졌지만 그 못자리는 패여진 대로 그대로 있다 그 자국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야’ 바로 이와같이 우리의 죄는 용서받았지만 그 죄의 자국은 남아 있습니다. 그 죄로인한상처는 남아 있습니다. 죄를 질때 예수님의 가슴과 사랑하는 사람의 가슴에 박혔던 상처 자국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기에 허물이 남지 않도록 우리는 스스로를 지키며 죽는 날까지 이 기도를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4.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기를 기도합니다. ‘의’는 신자가 살아야 할 삶입니다. ‘열매’는 행동입니다. 다시 말하면 말씀대로 사는 삶, 아는대로, 배운대로, 깨달은 대로, 살아가는 그런 삶을 살기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의의 열매를 우리의 삶에 주렁 주렁 맺어서 하나님께 드리는 생활, 행동하는 신자, 말 뿐이 아니라 행동하는 신자의 삶을 살기를 기도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의 최종 목표인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는 성도가 되기를 간구하여야 합니다. -우리의 생활은 좀더 기도의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는 기도가 좀더 성숙되고 능력있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의 이 바울의 기도가 우리가 행하는 기도의 좋은 제목이 되어 우리의 신앙적 삶이 더욱 성숙되는 은혜스런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멘. |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