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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분주한 봄이였다
정신없이 지나다보니 어느덧 봄이갔다
겨울도 그렇게 보내더니 역시 봄날도 삶의 가치를 논하기 어려운 바뿐 시간이였다
봄에는 직업이 주로 산에서 보내는 일 이라서 더욱 그렇다
봄내 거의 홀로 산행이 많았고 산 에서 거 하였다
이번 산행은 후배들의 요청에 따라서 몇명이 동행 하였다
별로 알려지지 않은 산 이며 일정한 등산로가 없는 심마니 길 이라서 길이 이어지다 끊어지다 하였다
산행記라 하면 산행하면 그냥 먹으며 잡다한 이야기를 주로 쓰는데 늘 이야기 가 뻔해서 나는 살아가는 이야기를 많이쓴다
세상을 살아오면서 겪고 느끼는 이야기다
이번에도 잡다한 이야기로 엮어 나가기로 한다,
빠르게 봄 에서 여름 으로 접어든다,
붉은색은
빠르고 강해보이고 공격적이지만
세상을 모두 정복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느리게 잠식 해 오는 녹색은 세상의 바탕색 으로 바꾼다,
그래서
끝내 다른색 보다 사계절 중의 주인이 되는것은
저 신록 처럼 부드러운것이다
화려한 것은 단명 하고,
수수한것이 오래 지탱 하는것 처럼!
어제였다
카카오톡 울림 신호와 함께 후배의 글과 사진이왔다
청첩장이였다
장소와 시간이 적힌 부분을 의식적 으로 손으로 가린체 찍어 보낸것이다
나는 의아해서 그의게 전화를 걸었다
잠시후 수화기 넘어로 후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답 하는 목소리가 바위돌 처럼 무겁게 들려왔다,
바쁘냐 뭐하냐 저녁먹었냐 안부 보다 먼저 나는 청첩정 이야기를 대뜸 물었다
임마 너 청첩장 사진 잘못 찍었어 이 짜슥아! 아마추어 같이 사진도 못 찍냐?
그런데
후배의 답이 예상밖의 소리였다
형님 일부러 그렇게 보냈습니다
그냥 형님 에게는 알려야할것 같고 알려 드리고 싶었습니다
내가 존경하는 형님이 마음 으로라도 축복을 받고 싶습니다
그냥 마음 으로 축하 만 해주세요
너무 멀어서 형님은 못 오실겁니다
워낙 바쁘신 분이고 저 또한 사정이 있어 제주도 조용한 해변 에서 양가 조촐하게 가족끼리 기념만 하려합니다
그 전후 사정은 예전에 형님께 말씀 드린 그대로입니다
나는 마무말 않고 듣고만 있었다
가끔 상대의 존재를 알리고 싶어 흠, 흠, 소리만낼뿐,
그냥 듣고만 있었다,
애가 많이 아파요
몇차례 수술을 했는데 참 힘드네요
사위될 녀석이 덥석 혼인신고를 했어요 우리에게 의논없이 저 혼자서 몰래....
그래서 어쩔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여러사람 초대 할만한 그런 여유와 현실이 안됩니다
친한분들 에게는 事후 양해의 말씀 드리려구요 단지 형님은 아셔야 할것 같아서요.....
나는
축의금 이라도 전하고 싶어서 그 후배의지인들 에게 백방 으로 전화를 해 봐도 모두 깜짝 놀랄뿐..
집 으로 찾아가보려 해도 그들은 이미 제주도에 가있었다
지난 겨울 오대산 눈속 에서 비박하면서 심금을 울리던 그의 모습을 기억하면서
나는 발길 무거운 어길수 없는 선약된 산행을 떠났다
나는 비교적 사연이 많은 사랍들을 주로 접한다
내가 편하고 또 사람을 좋아하는 스타일 이라서 많이 찾아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별병이 우스게 소리로 교주로 불리으고 또 통한다
사람사귀기 좋아하고 술좋아하며 이야기 하기 좋아하는 성품 이라서 가꿈 나를 만나러 오는 사람들이 더러있다,
그리 멀지 않았던 얼마전에 두명의 사연을 가진 여인들과 각자 술을 마신적이있었다
작년 내가 아끼던 형을 잃고 힘들어하는 글을 보고 찾아주었다
내 형을 잃은 이야기는 여러카페나 sns 그리고 불러구를 통해 널리 알려젔었기 때문이다
먼저 ㅇㅇ 이라는 여인이 찾아왔다
창백하다기 보다 하얗다는 표현을 쓰고싶다
참 곱고 예쁘게 생긴 얼굴이였다
목소리도 나긋 하였고 얼굴에 악이라고는 찾을수 없는 천성이 착한 여자같았다,
그와 동행한 친구는 나와 친한 동생이였다 속된 표현 으로 교주와 신도 그렇게 우리는 불리었다
늘 슬픔에 잠겨있는 친구를 위로할 겸 해서 내게 데리고 온 모양이다
술이 한두잔씩 오가고 그녀는 창백한 얼굴에 조금씩 붉은 술기운이 돋고 이야기를 피하고 피하려 하여도
그 슬픈 이야기가 잇 물려 나오기 시작하였다
나는 이별의 상처를 간직 하고 있기에 그 슬픈 사연의 쉽게 동화된다
그리고 같이 슬퍼하며 때로는 소리없이 울기도한다,
나는 마음이 아픈 사람을 사랑한다
사랑은 사랑 하는 사람 끼리 하는 것이 아니라 아픈 사람끼리 하는것이라 그렇다
얼굴은 많이 슬픔에 야위었고 눈물은 촉촉 하기 보다 그렁그렁 하였다
언제나 울 준비가 되어있는 눈망울 이였다
술이 한잔씩 들어가고 그는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에 한줄금 눈물부터 떨어트렸다
오빠였습니다
같은 이천에 사는 .. 여러가지 사업도 하다가 재미를 못 보고 많은 마음 고생을 했습니다
공부도 나름 하고 운만 잘 맞았으면 점쟎은 신사처럼 고급 슈트를 입고 근엄한 표정을 지으실 분이였습니다
나는 대충 그망에 동의를 하듯 고개를 끄덕여 주었습니다
그녀는 곱고 이쁜 얼굴에 하얀 피부까지 갗추고 있었습니다
대충 그녀의 오빠의 용모가 그려지고 짐작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렵게 돈을 얻고 동생들이 도와서 근처 면소재지에 중국집을 개업했습니다,
장사는 제법 잘되었습니다,
오빠는 열심히 일하셨고 올케언니는 더 부지런 하셨습니다
일은 힘이들어도 조금씩 돈이 모이니까 오빠는 힘든줄 모르셨던것 같습니다
제때 공과금 내고 조카들 학원도 보낼수 있었고 오빠의 얼굴은 예전 처럼 조금씩 평화를 되 찾기 시작했고
수시로 웃는 아니 늘 웃는 얼굴로 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봄날 이였습니다
오빠의 전화였습니다
전화속의 오빠의 목소리는 참 으로 정겨웠습니다
"오늘 니 신랑이랑 애덜 델구 넘어와라 저녁이나 같이먹게"
애덜 간식 먹이기말구.....
그때 트럭행상의 녹음이 되어 톤이 일정한 스피커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 잠시 이야기가 멈추었고
과일장사의 차는 조금씩 멀어저가며 다시 조용한 적막이 흘렀다
저는 일찍 퇴근하고 남편과 아이들을 데리고 십여리쯤 떨어지 오빠의 집 으로 갔습니다
오빠는 환하게 웃는 얼굴로 우리를 맞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방장 아저씨와 함께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음식을 만드셨고 그러는 사이 사이 근처 오토바이로 배달도 다녀 오셨습니다
얼마후
탕수욕과 잡채 팔보채를 내 주셨습니다
"많이들먹어 이제 장사가 자리 잡혔으니까는 한달에 한두번은 와서 이렇게 먹고가게
늘 마음에 걸렸는데 오래전 부터 동생 변변하게 밥 한번 못사줬는데....
나는 늘 먹으니깐 같이는 못먹어도 괜찮네 배달 다녀야 하니까 편하게들 먹고 놀다가 가,.
늦은밤 우리는 그날 그렇게 먹고 돌아왔습니다
우리도 그리 넉넉지 않은 형편임을 알고 제 애들손에 만원짜리 두어장씩 쥐어 주셨습니다,
돌아오는 차안 에서 돌아보니 단 몇시간동안 이지만
참 많은 이야기도 하고 지난 이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설계도 펼처 보였습니다
남과 틀린게 혈육의 정 입니다
많이 망가지고 세월이 묻은 오빠의 얼굴을 바라보면 늘 가슴이 찢어지듯 아팠습니다
잘해야지 잘 해야겠다 내 혈육이고 내 오빠니까는....
그렇게
돌아오는 차 안 에서 수없이 주문 처럼 반복하며 중얼댔습니다
그 다음날이 였습니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시간 이였습니다
제 직장과 직책이 이 대형마트 캐샤 이기 때문에 근무중에 전화를 받기 힘드므로
전화진동이 울려 나는 안 받으려다가 오빠의 전화번호라서 직원들 눈치보며 살며시 밖으로 나가 받았습니다,
새언니의 다급하고 절규하는 목소리가 전화통이 터질듯이 뚤고나왔다
오빠가 애덜 아빠가.........
정신없이 달려온 병원에 오빠는 이미 흰천 으로 덮혀 있었습니다
새언니는 통곡하고 나는 오빠의 얼굴에 눈물을 방울방을 떨어트리며 절규했습니다
나는 오빠를 끌어안고 그리고 뺌을 쓰다둠으며 서정하듯 울부짖었습니다,
오빠! 이러지마 오빠 이러지마 이러는게 아냐...
나도 울고 그들도 울었습니다
눈물이 정말 빗물 처럼 흘렇습니다
코발트빛 전구 아래 눈물이 아이러니 하게도 수정 처럼 반사되었습니다
슬픈 눈물인데도 참 투명하여 아름다웠습니다,
얼마쯤 울고나서 그는 말을 이어갔습니다
우리 오빠는 이렇게 갔습니다
그리고 몇달 저는 직장도 그만 두고 몸저 누웠습니다
몸무개가 5킬로나 빠지고 얼굴은 이리 창백해젔습니다'
전설님
정녕 별이 되셨을까요
오빠도 못다한 사연도 밤 하늘에 별이 되었을까요,,,,
화사한 봄에 가슴아푼 이야기 하나 더 하겠습니다
얼마전 알게된 사람의 이야기 입니다
요즘도 많이 울고 슬퍼 하는분입니다
그분도 오빠 이야기입니다.
산길을 내려오며 나눈 이야기입니다
누군가 에게 이야기 하고 싶었답니다
울고싶은 사람 앞에서 그리고 그 곁에서 울고 싶다 하였습니다
가파른 산 비탈을 다 내려오고 사색하기 좋은 한가로운 산길 이였습니다
그는 편안 모습 으로 말을 시작했습니다
오빠는 부산에 살았습니다
통영이 고향이고 저는 오래전에 서울로 이사를 했습니다
너무 먼 거리라서 자주 만날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친정 엄마가 고향에 살고 계셔서 두어달에 한번씩은 만나고 소식도 자주 나누웠습니다
오빠는 심장이 안좋았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도 그러셨습니다
오빠는 부두 에서 커다란 트럭을 가진 운송사업을 하셨습니다
큰돈은 못벌어도 열심히 사셨습니다
오빠는 늘 힘들어 하셨습니다
그것은 오빠의 아내 때문이였습니다
성격 차이로 늘 싸우셨습니다
오빠의 아내는 늘 오빠가 불만 이였습니다
좋은날 보다 싸운날이 많았고 웃는 날 보다 서러 찡그리는 날이더 많았습니다
그렇게 타성 처럼 긴 세월을 살았습니다 두사람은 ,,,,
내가 잠시 핸드폰 문자를 획인하는 사이에 그녀가 나보다 서너발 앞서갔다
짧은 머리를 한 그녀의 목덜미가 유난히 희고 길어보였다
썬크림을 많이 발라서인지 피부는 번들거리며 반짝거렸다,
그녀는 부산출신 이였다
강한 사투리임 에도 말투는 귀엽고 정겨웠다
성격은 까칠할 정도로 맿고 끊는게 정확했고 사리도
밝은편 이였다,
그녀는 곁눈질로 내가 곁에 따라붙었음을 확인한후에 말을 다시 이어갔다,
어느날 부터 오빠는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돌아가기 한달전 엄마가 오빠를 찾으셨습니다
늘 걱정을 하는 엄마를 오빠는 안심시켜 드렸습니다
그리고 터미널 가지 모셔다 드리고 손에 돈 20만원을 쥐어 드리며 오빠는 이렇게 말하셨다 합니다
어머니 어쩌면 한동안 못드릴것 같아요 요즘 몸두 안좋구 벌이도 통 안되서 .....
오빠는 어쩌면 죽음을 직감 하고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지금도 나의 엄마는 그 목소리를 기억하고 그 순간을 잊지않고 통곡하십니다
그리고
늘 싸우던 오빠의 아내 에게 6천만원이 들은 통장을 건내 주셨습니다
비상금 으로 모았던 돈인데 간직하고 급할대 쓰라고...
오빠의 아내는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합니다
날을 세웠던 두사람의 관계는 조금씩 부드러워젔지만 이미 그때는 화해와 사랑을 하기엔 너무 늦었습니다
그리고 몇일후 오빠는 돌아가셔습니다
死因은 심장마비, 내 아버지 처럼 오빠도 작별의 인사 조차 안 나누고 그렇게 떠나셨습니다
천추의 限을 남긴체...
보고싶습니다 미치도록 그리고 그 모습이 사무칩니다
늘 우는것이 타성 처럼 길을 가다가 음악을 듣다가 하루 에도 천번이 더 생각나서 울고 또 웁니다
왜그랬을까
나는 왜 그렇게 보내야만 했을까
내 남편 내 아이들 에게 흔히 쓰던 그 사랑 이라는 말을 나는 오빠 에게는 왜 그리 인색했을까
너무 늦어버린 후회
갈래갈래 찢어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밤새 울어도 눈물은 끝이없이 내리고
후회의 정점 조차 나타나지 않고..
미웠던 모습 서러웠던 모습 서운했던 모습 하나만 있어도 쉽게 잊을수 있고 그 아픔이 적으나마 희석될텐데..
이야기는 산길 에서 산밑 주막 까지 이어지고,
그녀의 눈물은 휴지를 몇장 테이불 밑 무룹옆 으로 정리하듯 질서있게 쌓이고
한차례 땀 으로 덥혔던 볼위로 흐르는 눈물이 더 아품을 전해오는데...그저 나는 곁에서 울어주는것 외엔 할말도
전할 표정도 없었다
가끔 빈 소줏잔에 술만 채워줄뿐...
그녀는 가끔 입술을 지그시 물었다
그리고 상념 가득한 머리를 떨쿠고 술잔의 비치는자기의 얼굴을 외가리가 물위에 비치는 저를 바라보듯이 내려 바라보앗다
때 마추어서 여러방울의 눈물이 술잔에 떨어젔다,
아! 이 여인을 사랑해줘야겠다
아푼 사람 끼리 우리는 사랑을 나누어야겠다
사랑은 사랑 하는 사람 끼리 나누는 것이 아니라 아픈 사람 끼리 나누는 것이니까.
사연없는 새 없고
상처 없는 꽃도 없고
눈물 없이 성장한 성자 없고
그저 상처가 없다면
한순간 반짝이다가 사라진 아침 이슬과
태어나지마자 죽은 독수리뿐,
그대의 상처도 나의 상처도 그냥 나누고 위로하며 살아야겠다,
우리는
이렇게 아푼 상처를 가숨의박고 사연을 등에 지고 살아간다,
탄생의 소리는 요란하지만 이별은 조용히 진행된다
올들어 나의 친구들은 3명이나 이 세상을 떠났다
늘 가까이 지냈고 늘 다정헸던 친구들이다
우리가게 근처에 그의 직장이 있었다
근처 큰 건물 경비원이였다
그의 경비실앞에 제법 잘하는 보신탕집이 하나있었다
나와 점심시간이 틀려 같이 밥시간 마추기가 참 힘들었다
가끔 어렵게 시간을 마춰서 반주를 곁들이 밥을 먹어왔다
그는 체력이좋아 술을 먹어도 말술이였다
그런 그가 어느날 죽었다는 문자 멧세지한통에 나는 깜짝놀라 내눈을 의심하지 않을수 없었다
죽음은 허망한 것이다
죽음은 늘 가까이 있는데 내게는 먼 이야기같이 느낀다
이별은 어느날 갑자기 닥처온다
작별의 짧은 인사조차 허용하지않은체....
죽음이란 아득한 미래며 추상적인게 아니라 결국 형이하학적 개념인것이다
그러므로 앙앙불락 하며 살 필요가없다
그래서
늘 내일이 이별일것 같이 생각 하며 아끼고 사랑하여야한다,
100 이라는 숫자는
결코 많은 숫자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작은 숫자도 아니다
사람과 사람의 인연
우리 사는동안 또 내 남은 생에 100번 더 만날수 있는 인연은 몇명 이나 더 있을까?
변할꺼 같지 않았던 인연도 말한마디 실수로 다섯번도 길다고 등을 돌리고
영원 할것 같았던 친구가 자고나면 한명씩 하늘 나라로 떠나가고
인연은,
하늘의 구름같이 빈들의 바람처럼
계곡의 흐르는물 처럼 떠나고 다시오고
사람들의 만남은
백번을 못채우고 기억 속으로
시공의 흩어지고 사라지고,
광활한 우주의 변하지 없는것이 없고 사라지지 않는것이 없다
이세상에 사라지지 않는것이 존재 한다면,
대신 내가 사라지니까는....,
이 詩는 그 친구보다 몇달후 죽은 친구 영전에 바친 詩이다,
친구야 잘가라
이땅에 태워나 모진인생을
살다 가는구나
거친손
마른몸
바튼기침
그리고 탄식대신
잔잔한 웃음을 안주로
들이키던 소줏잔
오랫동안 기억하마,
너는 내게 인사도 없이 떠나지만
나는 너 에게
정중히 인사로 보내마
같은 동네서 태어나서
평생 함께해서 고마웠다
잘거라!
친구 민수야,
예전에 어린딸 두명을 버린체 내 친구의 아내는 바람이 나서 도망갔다
애들이 초등학교 다닐때이다
그 두딸은 이제 모두 시집을 보냈고 작년 제 아버지의 환갑날 아버지의 친구들을 모두 초대하여
조촐한 잔치를 차려주었다
그 딸들은 제 애비의 餘命 얼마 남지 않앗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것 같다
그는 용접공이였다
인천에 한 조선소 에서 일했고 아내가 도망간 후 고행에 내려와 작은 공업사를 차렸고
열심히 일했지만 근근히 먹고살았었다
그가 죽고나서 사망진단서 의 사인은 폐질환이라 써저 있었다
일종의 직업병이였다
용접 하면서 독한 가스를 많이 마셨기 때문이다
같은 일을 했음 에도 어떤 사람들은 귀족 노조를 등의 엎고 죽어 수억원을 받고 또는 열사칭호를 받고 죽는데
내 친구는 동창들이 십시일반 모은 수백만원 으로 화장 하여 재가 되어 산하의 뿌려젔다
위에 말했던 그들 처럼
내 주위 에는 환희보다 몽한적 상상 의 누리는 사람보다 아푼자가 더 많다 사연을 가지고
굳어버린 소금인형 같은 사람이 더 많다
물이 흐르기 편한 곳 으로 모이듯이 사연과 애환이 가득한 정이 늘 나에게로 모인다,
많이 본 사람이 많은 장면을 기억에 담을수 있고 많이 들은 사람이 많이 이해를 해주며
많이 이해하는 사람이 베풀수 있는 것이다,
그녀들은 가금 우리 가게를 찾아준다
그리고 자신의 오빠를 대하듯 예의를 다 하고 늘 따스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다한다,
좋은 인연이다
우리는 아품을 가젔지만 아름다운 인연 으로 이 봄에 만났다,
좋은 인연이다
봄은 이별만 가저다준것이 아니다
내 위로 형이네명이 있었다
그 네명중에 세명은 봄에 태어났다
그리고 두명은 6 25 전쟁때 굶어죽고 얼어죽으셨다
한분은 작년에 사고로 가셨고 지금 남아계신 형님도 돌아가신 형님과 같은 3울1일 생일 이시다
그리고 내 아내의 생일도 3월이다
봄은 내게 고귀한 만남을 가져다준 계절이다
내 아내와 나는 6살 차이이다
그러므로 내 아내는 그가 태워나고 내가 이 세상에 없었던 적이 한번도 없었다
단지 내가 6년 먼저 태어나 내 아내를 기다렸을뿐....
내 아내와 나는 참 힘든 삶을 살았고 또 그렇게 살고있다
*얼마전 아내의 생일날 아내 에게 쓴 편지이다,
당신이
태어나기 6년전 부터 나는 세상에 먼저 태어나서 당신을 기다렸어,
그러므로
당신은 혼자인 적 이 없었지,
내가 늘 같은 세상에 있었고 긴세월 서로 그리워 하다가
어느날 숙명처럼 당신을 만났어,
혼자였다가,
둘이였다가
셋이였다가
넷이였다가,
그로부터 30년이 흐른 후 이제는
당신이 이뤄낸 우리 가족이 다섯이 되었지,
살아오면서 풍족 하지는 않았지만
불행 하지 않았고 부족하지 않았고
서러워 하지도 않았으며
분주 했지만 힘든줄 몰랐고,
빠르게 시간이 지났지만 아쉬음은 몰랐었지,
그렇게 많은 세월이 흘렀고
이제 당신의 태어난 봄날 당신의 생실을 축하하기 위해서,
당신을 사랑 하고 서로 를 사랑 하는
여기 우리가족 다섯이 모여
당신의 생일을 축하 하오,
우리 건강 합시다,
그날까지......♡
(이분은 내 아내가 아니라 우리 산악회 총무 임^^)
희망은 밧데리 수명 다 된 랜턴 같이 희미해 지고
희망 하나 보며 걸었던 길도 서서히 힘이 소진해간다
내 아내는 경상도 산속 마을 에서 태어났다
내 아내가 자전거를 못타느고 못배운 것은 그 마을이 산속 이여서 자전거 탈 만한 공간(터)이 없어서 이였기 때문이다
나도 경기도 산속 마을 에서 태어낫다
세상이 인심좋게 잘 돌아가려면
잘난 사람이못난 사람 부자가 가난한 사람과 만나 가정을 꾸리면 살아가기에 헐씬 쉽고 편할텐데,
우리는 가난한 사람 끼리 만났다
가보 처럼 걸어놓을 결혼사진 한장 평생 추억이 될 신혼여행의 기억 조차 없다,
이제 우리 에게 남아있는 힘이 있다면 서로가 의지할수 뿐이 없는 힘뿐이다
남들이 우리 부부 에게 취미가 무었이냐고 물으면 나는 일 이라고 말한다
일을 벗어나사는 살수 없는 형편이니까 그냥 취미로 즐기며산다,
약 20여년전에 황금찬 시인의 강의를 들은적이있다
아직 별세하셨다는 소식은 못들었으니까 지금 살아계시면 아마 100세 가까이 되셨을것으로 추측된다
가장 기억되는 말씀을 적어본다
꽃이있다,
아름다은 꽃이있다,
그러나
꽃은 절대 아름다음이란 없다,
꽃마다 장점을 가지고있어서
모든꽃을 제치고 이꽃이 제일 아름답다고 할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 에게는 특히 여자 에게는 절대 아름다음이 있다,
그 여자란 배우자 즉"자신의 아내를 칭하는 말이다,
아내는 비교의 대상이 아니다,
그저 아름다음의 결정체인것이다,
아내 에게 약점이있고 흠 이있다면 그것은 남편의 몫인것이다,,
역설적 으로
남편도 그렇다
남편을 나무라고 칭한다면 세상의 절대 나무는 없다
그저 자신의 남편이 절대 나무라 생각하면된다,
이야기를 바꾸어보자
이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즉 현실을 이야기해보자
우리는 가끔 포기와 용기를 말 할때가있다,
포기 한다는 것은 좌절과 무능의 뜻만은 아니다,
포기할 적당한 시기를 잘 맞춘다면은 차기의 반석과 같은 안정 적인 성공 으로 가는 탄탄한 대로가 다시 열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포기 한다는 것은 실패한 것도 또수치 스러운 일이 아닌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을 자신의 능력을 탓만은 아니다, 시기와 목적의 수단을 오판 하였기 때문이다,
너무 무리하게 그 목적을 고집 한다면
목적도 자신도 끝내 상실 하는 경우가 많다,
중장비 중에 크레인을 "예"로 들어보자,
크레인이 낭떠러지기 아래 떨어진 차를 들어 올릴때 자신의 무게보다 더 무거워서 못 들어 올릴때는 중량 과부하 감지기 가 경고음을 울려준다,
그 신호를 무시하고 감행 할 때는 그 크레인이 오이려 낭떠러지기 아래로 끌려 떨어진다,
그래서 무리다 싶으면 과감 하게 포기 하여야 한다,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본다
초원에 사는 톰슨가젤과 사자는 먹고 먹히는 상반된 운명들이다,
그들의 최고 속도는80.5키로
서로 속도가 똑같거나 비슷하다
사자는 가젤을 사냥할때 최고의 속도로 공격한다,
가젤도 최고의 속도 로 도망친다
사자는 최선을 다 해서 질주 하지만
그 커다란 덩치로는 오래 뛰지 못한다
계속 뛰다가는 심장이 터저 죽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니다 싶으면 사자는 빠른 결단을 내려 쫒기를 포기한다,
그렇다면 사자는 굶어죽을까?
그렇지않다
가젤 이라고 다 빠르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중 어느 가젤은 평균 속도에 떨어지는 놈이 꼭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자는 얼룩말이나 가젤을 사냥할때
무리중 에서 어리고 약한 놈을 골라서 선택한다
모두가 사냥에 성공할수 없고
전부가 실패만 하지않는것,
한번 실패 하였다면 좌절 하지 말고
권토중래 하듯 차기를 기약하면 된다,
안될것을 뻔히알면서 끝까지 고집한다면
스스로 재도약의 기회마저 상실 할수있다,
그러므로
얻을때는 얻고 버릴때는 가감하게 버려야한다,
명맥만 유지한체 약하고 작은 형편없는 불꽃은 끝내 비등점에 달하지 못한체 물만 증발 시켜버리듯,
끝내 물을 끓일수 없는 불꽃이라면
미련없이 꺼 버려야 할것이다,
산 에서 내려오는 물은 한번에 바다의 달하지 못한다,
빠르다 느리다 머물도 돌다 오래오래
흐르다보면 어느덧 바다에 도착 하는것,
그 물이 흐르지 못하여 한곳에 고여 썩지 아니하고 그렇게 바다에 도착 할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오를수 없는 곳은 피해서 아래로 아래로 낮은 곳 으로 순리대로 흘러 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 사 도 물 흐르듯 하여야 할 것이다,
힘들지만 그 힘든 세상 속 에서 살아가는 길이있다
남극의 혹독한 추위가 빙원의 오아시스가 되는 짐승들도잇다,
그 동물은 펭귄들이다 그 혹독한 추위가 어떤 천적들도 살수없는 그들만의 축복의 땅이된다,
자신의 환경을 탓하지말고 잘 적응하면 안전하고 행복한 삶의 터전이 된다는것이다,
쉽고 편한직업은 나만 편한 것이 아니고 남들 에게도 편하고쉽다
그러므로
천적 즉 경쟁자가 많다
요줌은 힘든일을 안 하려는 추세이다
나도 그래서 지금의 직업을 피했었다
내 직업은 가업(家業)이였다
얼마전 별세한 바로위의 형은 순리대로 직업을 이어갔었다
그러나
나는 쉽고 자유럽지 않은 직업 이라서 계속 피하다가
죽음까지 생각한 벼랑끝 에서 가업을 이어갔다 너무 늦은 나이에...
그러나 일은 참 힘들다 어렵고 늘 고단하다,
그러나 과거의 고통 으로 돌아가는 것의 비하면 파라다이스인것이다,
그저
욕심을 버리니깐 몸도 마음도 가족도 세상도 편한것이다,
나름 장사도 잘되고
또 나를 따르며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 이유와 비결을 묻는 사람들이 가끔있다
나는 이렇게 말해준다
늘 손해보는듯 하며 산다고
장사도 너무 이익의 집착 하지않고 믿지는 듯 하며 한다고,
당장은 믿지고 손해보는듯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득으로 희귀한다고..
식물은 꽃을 피우고 꿀을 만든다,
이 꿀은 벌과 나비가 따 가는데 마치 식물이 착취 당하는 것과 같다,
이 모습을 보면 꿀을 만들어 빼앗기는 꽃은 패자이며 꿀을 따가는 벌과 나비는 훨씬 강한자로 보인다,
그러나
꽃의 입장과 생명의 질서 에서 보면 그렇지않다,
꽃은 일부러 벌과 나비를 유인해서 꿀을 따가도록한다,
그래서
움직일수 없는 암 수의 꽃술의 수정이 이뤄지고 생명이 번식할수있다,
봄내 산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지냈다
힘들고 거친 노동 이였다
아쩌다 동행한 후배들은 혀를 내두루며 두번다시 따라오기를 거부하였다
능선을 하루에도 수(數)도없이오르내렸다
지치면 술 한잔하고 다시 반복하였다
그러나
고통은 성취로 승화시켜 일종의 희열을 느꼈다
그 희열을 느낄수 없다면 그짓을 안했을것이다
사람도 극한 상황이 닥치면 힘든게 없고 무서운것도 없 거칠게없다
물고기의 역류 처럼 등욤문의 고사 처럼 잉어는 급류를 타고 용문을 넘어 간다고,,
얼마전에 읽은 이어령박사님의 책중에서 역엔트로피의 이론 중에 나온말이이다
"인간은 절박한 상황 에서 생명은 역 "엔트로피"의 힘이 나온다,"
내가 그 역 엔트로치의 산물이며 증인 이 아닌가싶다,
나는
더 이상 물러설수 없었던 벼랑끝 에서 돌아왔고 그 절박함 에서 살아왔다,
돌아보기는 물론 생각조차 하기 싫은 지난날이였다
(지난번 산행때 남은술을 감춰놯었는데 오늘 출출해서 찾아내서 한모금 마셨다,)
도토리를 부지런히 물어다가 감춰놓은 다람쥐 때문에 산이 융성해지고 참나무가 많아졌듯이
부지런히 움직인 결과 가족이 편하였고
생활 에는 윤기도 흘렀다,
활동 하며 꿈을 밀고 가는 힘은 이성이 아니라 희망이며 두뇌가 아니라 심장이다
두뇌가 안따라준다며 강한 체력을 활용하여 부지런하면된다
못따라주는 두뇌를 원망 하지말고 건강한 체력을 자랑하고 믿고 일하면 되는것이다,
아무리 뜨거운 태양도 곡식을 한번에 자라게 하지 못하고 아무리 강한 바람도 연 을 높이 띄우지 못하는것 처럼
서두르지않고 조급해 하지말고 계절에 맞게 움직이면된다,
이것이 나름 터득한 삶의 지혜인 것이다
길이 이끄는대로 가지말고 길이없는 곳 에가서 흔적을남겨라
피아노의 건반은 우리에게 반음의 의미를 가르치고 모든 관계의 비빌은 반과반의 여백에 있는것이다
몇일전
내가 아끼던 후배한명이 지리산 으로 귀향을한다고 인사를 보내왓다
간다간다 하더니 드디어 간다
쌍계사 위 불일폭포 아래 시골집이라고 한다
스마트 폰 으로 집 사진을 찍어 보내왔다,
조구맣고 호화럽지않은 전형적이 시골집이였다
지리산 가서 뭐하며 먹고살것인지는 아직 모루겠고 일단 내려가보고 나중 생각하겠단다,
나를 늘 예"를 갖추워 잘 대해주던 후배인데 그의 송별식이 아버지 제사라서 참석을 못하였다,
참 서운하면서도 부럽다
그의 용기도 그가 살아갈 지리산 자락도.....
나는 그가 나를 수도없이 원망했으리라 짐작한다,
그는 늘 진취적인 카페 리더였고 늘 왕상한 활동을 했다
하지만 나는 거기의 부합 하지를 못하였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었다 그들은 거의 서울에 거주 하였고 나는 지방이였고
또 나는 시간과 여유가 없었으며 그들돠 보조를 같이 하기 에는 내 나이가 너무 많았다
가끔 배타적이 시선도 없지 안았음을 인정한다,
어쩔수 없이 미안했다
다시 그 상황이 된다해도 어쩔수 없이 또 그럴수뿐이 없음에도 그래도 미안할뿐이다,
편안한 시기에 그가 정착하면은 성의있는 선물 하나 가지고 방문할것이다
구구한 변명없이......
PS
한동안 글을 안쓰니까 긍금해 하신는분들도 많고 쪽지 안부묻는분들도 있어서
두서없이 써 봤습니다
첫댓글 좋은글 잘 읽고갑니다 오랜만에 오셨네요
전설님 안녕하세요
언제나 건강하신 진정한 산꾼입니다
너무 미안해 하지 마세요.....지리산 자락에서 행복하실 겁니다.....저도 마냥 부럽네요^^
인생의 경험이 묻어 나오는 글귀와 산행 사진 잘보고 갑니다.
부족한 산꾼이지만 언제 한번 함께 산행할 기회가 있지않을까 막연하지만 마냥 기다려 봅니다 ㅎㅎ
인생공부 이글에서 다시하게 됩니다 건강하시고 때때로 사진,글 기다리겠습니다
그저 감사하다는 표현 밖에 뭐라 할수없네요~ 감사합니다
ㅇ ㅏ....여서 뵈오니...완전 방가여 ㅋ
도이터 70리터....8년 쓰다가...
인자...애들과 슬슬 비박같이 다니려
그레고리 샤스타 77 질러씀돠
거의 새제품....17만원 흐흐흐
완전 득템 ㅋ
모양은 사진과 같으나....진한블루 색상임돠 ㅋ
어디 좋은데 가실때...저두 델꼬 가주셔요~
득뎀 축하해여 싸게 잘 사셨네...연락드릴께여 존데갈때 ^^
전설님...이뿌죠? 오지 중고장터서 득템 했습니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