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일의 병중일지
김명원
2024년 3월 9일
1955년생 김광일은 온 몸이 저리며 자꾸 어지럽고 토한다고 하더니 집 근처 천안백제병원에서 뇌 CT 촬영 후 뇌암 3등급 판정을 받았다. 자정, 응급수술을 위해 신촌세브란스로 내지르는 사설 119구급차의 과호흡은 어둠의 근육들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잠에서 깨다만 가로등들이 일제히 격렬한 소음에 두 눈을 흡떴다.
2024년 3월 11일
‘수술중’이라는 무섭도록 차가운 단어는 시시로 드릴과 메스에 데일 때마다 뜨거워져 붉은 출혈을 쏟아내었고, 뇌를 쪼개 종양을 제거하는 10시간의 수술 후 긴 하품의 수술실 문이 드디어 열렸을 때, 다섯 명의 수술진들이 뇌척수액처럼 피곤에 허물어져 흐물대며 우리에게 이르렀을 때, 수술 경과는 지켜봐야만 안다고 간신히 말했을 때, 모두는 외계 행성에서 길을 잃듯 참혹했다.
2024년 4월 16일
오븐조리시간보다 저 정확하게 30회의 항암제 투약과 방사선 치료로 그녀는 바싹 달구어진 채 물기라고는 전혀 없이 말라갔다. 환기를 위해 병실 창문을 열었을 때 이미 봄으로 꽉 찬 꽃향기가 물밀 듯 들어섰고, 허공에는 잠적한 그녀의 의식들이 희미한 꽃그림자로 아직 살아있다는 흔적을 남겼다.
2024년 4월 22일
항암치료에도 불구하고 시신경과 청신경 그리고 폐와 간 모두에 벚꽃 피듯 보란 듯이 활짝 화들짝 일제히 암세포가 개화하고, 터질 듯 한 그루의 벚꽃나무를 품은 그녀는 보지도 듣지도 못한 채 콧줄로 음식을 받아 넘기고 기관지 삽관으로 숨만 쉬고 있었다. 아주 조금 남은 세상과 정맥 주사 수액 줄기로,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관으로, 침대라는 하얀 대지에 얕게 이어져 있었다.
2024년 7월 17일
꿰맨 상처처럼 한 땀 한 땀 힘겹게 여름 별자리 별들이 돋아나고, 자꾸만 틀리는 구구단의 오답으로 우왕좌왕하는 태풍이 불어왔다. 그녀의 삶은 인공호흡기가 내뿜는 공기방울로 재깍재깍 흘러가고 있었다. 오늘이 며칠인지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오늘이 무슨 계절 속에 있는 건지 오늘이 더 살아야 할 날인지 오늘이 죽음이 예정 된 결전의 시간이어야 하는지 모를 나날들이 항암병동에 대기 중인 낯선 환자들처럼 아득해졌다.
2024년 8월 12일
이미 삶이 아닌 죽음을 연장하고만 있는 연명치료를 중단하겠느냐고 의료진이 물었고, 거액의 수술치료비와 장기 중환자실 입원비 영수증을 든 가족들은 병동 창문밖으로 걸려있는 지나치게 반으로 뚝 잘린 벙어리 반달을 바라보며 침묵했다. 목 쉰 바람이 고개를 떨구고, 딸국질하는 구름이 한숨을 몰아왔다. 어둠을 지울 수 없는 그 밤이 비겁하고 남루해졌다.
2024년 8월 19일
그녀보다 더 지속가능한 삶이 보장된 경증 뇌암 환자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는 통보를 받고, 연명치료 중단 서명을 하고서는 오개월 여를 의식 없이 산화해가던 그녀의 얼굴에 씌워진 인공호흡기가 거짓 복면처럼 떼어졌다. 의사는 2024년 8월 19일 오전 9시 12분 김광일 사망, 이라고 또박 힘주어 말했다. 눈물의 내장이 터진 그 순간, 그녀 생의 얇은 표지가 찢겨져 나갔고, 그녀가 숨 쉬던 낡은 마지막 페이지마저 사라졌다.
* 김광일 데레사 (1955.9.20.-2024.8.19.) : 본인의 친언니로 사랑을 공부하고 실천하며 평생 가족과 이웃에 사랑을 흠뻑 베풀었던 사랑 자체의 삶을 살다 갔다. 성환천주교묘지에 안장 되었다.
----애지 겨울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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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명 원
충남 천안 출생.
이화여대 약학과 및 성균관대 대학원 국문학과 졸업. 문학박사.
1996년 《詩文學》으로 등단.
시집 『슬픔이 익어, 투명한 핏줄이 보일 때까지』, 『달빛 손가락』, 『사랑을 견디다』, 『오르골 정원』,
시인 대담집 『시인을 훔치다』 등 출간.
노천명문학상, 성균문학상, 시와시학상 젊은시인상, 한국시인정신작가상, 대전시인협회상, 호서문학상 등 수상.
현재 대전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