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애 환경부 장관(사진 가운데)
정부의 '수소차 의무 운행 기간'에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의무적으로 규정한 운행 기간에도 언제든지 중고차로 파는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수소차 넥쏘를 구매하면 정부와 지자체를 포함해 총 3350만원의 보조금이 지급된다(2021년, 서울시 기준). 수소차 저변 확대를 위해 소비자에게 차값의 절반 수준을 통크게 지원하는 것이다. 물론, 단순히 지원만 하는 것은 아니다. 24개월이라는 의무 운행 기간을 설정해 구매 후 마음대로 처리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모터그래프 취재 결과 이 의무 운행 기간에 강제성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의무'라는 표현을 넣은 것은 수천만원의 지원금이 허투로 쓰이지 않도록 수소차 구매자에게 일종의 책임을 부여한 것인데, 이 기간 동안에도 얼마든지 되파는 것이 가능하다. 정부의 의도와 달리 대부분의 지자체에서 일부 제한만 둔 채 중고 거래를 허용하는 탓이다. 보조금을 반납해야 하는 경우는 '고의 폐차' 뿐이다.
서울시 '2021년도 수소전기자동차 민간 보급사업 연장공고'
서울시는 '부득이한 사유'가 있다면 서울시내 주민등록상 주소를 둔 개인 및 법인에게 중고차 판매를 승인 후 허용한다. 언뜻 봐서는 적당한 규제를 포함한 합리적인 제한 같다. 그러나 여기에 나온 부득이한 사유는 사실상 형식적인 문구에 불과했다. 서울시 관계자에 따르면 단순 변심부터 충전의 불편함, 개인적인 이유까지도 이 부득이한 사유로 인정된다.
경기도 일부 지자체는 지역 제한마저도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수원시를 비롯해 화성시와 광주시 등은 '해당 차량을 매도하는 경우 매수자에게 잔여 의무 운행 기간이 승계된다'라고만 명시했을 뿐, 판매하는 부득이한 사유나 타 지역 판매 등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업계 한 관계자는 "2년 안에 사고가 나지 않는 한 폐차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인데, 지금의 규제는 겨우 고의 폐차만 막고 있다"면서 "보조금 공급이 제한된 상황에서 중고 거래가 자유롭다면 실소유자에게 혜택이 덜 돌아갈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금처럼 반도체 수급 부족으로 중고차 가격이 널뛰기하는 상황에서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 보조금을 받고 차량을 저렴하게 구매한 다음 웃돈을 얹어서 되파는 방식으로 부당이득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중고차 시장에서 주행거리 1~2만km 수준의 차량은 신차가격과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는 형편이다.
이를 막기 위해 강원도 삼척시는 '차량 구매 당시 자부담금보다 높은 가격으로 차량 판매 시 부당이득 발생에 따른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단서 조항을 붙였다. 그러나 수소차가 주로 판매되는 서울, 부산, 울산 등의 수소차 보급사업 공고문에는 이와 관련된 내용이 명시되지 않았다.
업계 한 관계자는 "중고 거래를 자유롭게 풀어줄 거면, 의무 운행 기간을 두는게 아니라 보조금 중복 수령만 막으면 될 일"이라며 "3000만원 넘는 보조금에 비해 부여되는 '의무'가 너무 약하다"고 꼬집었다.
반면 환경부는 현재의 규정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일반 국민들이 2년이 지나서 중고차로 처분할 때 보조금을 환수할 수는 없다"라며 "중고차로 판매되더라도 그 차는 계속 국내에 돌아다니는 것이기 때문에 보조금 지급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내년 수소차 관련 사업에 투입되는 정부 예산은 8928억원으로 올해(4416억원)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난다. 정부가 '수소경제 활성화'를 외치며 각종 지원을 쏟아붓고 있는 만큼, 2023년에는 1조원을 훌쩍 넘는 예산이 투입될 전망이다.
국민 전체에게 걷은 소중한 세금이 수소차를 구매하는 특정 소수에게 돌아가는 상황이다. 수소 시대를 준비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지원과 투자라면 최대한 수소차를 필요로 하는 실구매자에게 돌아가는게 마땅하다. 그러나 이처럼 정부와 지자체가 일관성 없이 중고차 거래를 허용한다면 그 효과는 희석될 수밖에 없다. 투입된 예산 규모에 맞는, 실효성 있는 규제를 통해, 한정된 보조금을, 가장 필요한 곳에 쓸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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