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 스님의 주련] 26. 부산 묘관음사 마노전(瑪瑙殿)
중생은 부처님 세계에 있어도 모른다
천동굉지 선사 어록에 실린 게송
모든 수행자 공부에 투철해야해
바로 앎은 지식과 지혜의 밑거름
부산 묘관음사 마노전(瑪瑙殿) / 글씨 운여 김광업(雲如 金廣業 1906~1976).
玉馬飮乾明月泉 泥牛耕破琉璃地
옥마음건명월천 니우경파유리지
皮毛戴角異中來 天上人間能幾幾
피모대각이중래 천상인간능기기
옥마는 밝은 달 아래 샘물을 모두 마시고/ 진흙 소가 유리의 땅을 갈아 부수네./ 수북한 털에 뿔을 이고 괴이한 모습으로 오는 것을/ 천상과 인간세계에 과연 몇몇이나 알아볼까?
송대 천동굉지(天童宏智 1091~1157) 선사 어록인 ‘굉지선사광록’ 권 제5 소참법문에 나오며 ‘선문염송’ 제14권에도 천동각(天童覺) 선사 법문으로 실린 내용이다. 원문과 글자가 다른 것이 있어 이어지는 해설을 통해 살펴보겠다. 이 주련과 같은 글씨는 서울 청룡사 심검당에도 걸려있으며 짐작하건대 묘관음사 주련을 모각한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운여 김광업 선생은 평남 평양 출신이며 안과 의사이자 서예가다. 기독교 신자지만 불교에도 깊은 관심을 보여 여러 스님과 격의 없이 지냈다.
‘선문염송’ 제14권 사자(師子)편에 보면 원주 앙산혜적(仰山慧寂) 지통(智通) 선사가 눈으로 만든 사자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 빛깔보다 더 뛰어난 것이 있는가?”
이에 대중이 답을 못하자 운문(雲門)이 말했다.
“그때 밀어서 쓰러뜨렸어야 했느니라.”
설두현(雪竇顯)이 말하길 “운문은 쓰러트릴 줄만 알고 일으켜 세우진 못했다”고 했다. 여기에 대해 천동각 선사가 소참법문 때 ‘일으켜 세우지 못했다’는 대목에 대해 갈무리하는 게송이다.
옥마는 정위를 말함이고 명월천은 편위를 말한다. 정위와 편위를 알고자 한다면 동산양개(洞山良价 807~869) 선사가 학인을 가르치기 위해 제창한 오위를 알아야 한다. 여기서 게송을 정위와 편위에 나눠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어 선어의 개념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옥마는 옥으로 만든 말이니 아주 귀중한 말이다. 이는 마음을 말하는 것이다. 명월도 역시 밝은 달이기에 마음을 말한다. 천은 샘이다. 샘물은 무진장하게 솟는 것을 근원으로 함이며 이어서 건은 일반적으로 하늘을 말하나 여기선 건조하다는 표현으로 쓰였다. 종합해보면 마음은 무진장하나 이 마음마저도 일어나지 아니하면 그것이 참 마음이 되는 것이다.
‘옥마’가 밝은 마음이라면 니우는 소가 진흙이 덕지덕지 묻은 모양이다. 번뇌와 망상이 숱하게 일어나 털어지지 아니한 것을 비유해 표현한 것이다. 유리지는 유리의 땅을 말함이니 곧 극락정토다. ‘굉지선사광록’에는 파리지라 했으나 뜻은 같다. 경파는 갈아 부순다는 표현이다. 중생은 부처님 세계에 있으면서도 있는 줄 모르고 또 다른 유토피아를 꿈꾼다. 어리숙하면 부처님 앞에서 보살을 염송하게 된다.
더 이해하자면 눈사람을 쓰러트림은 ‘살’이며 다시 일으켜 세움은 ‘활’이다. 무릇 선사는 살활자재해야 납자를 제도할 수 있다. 이로써 살펴보면 첫 구절은 ‘활’이고 두 번째 구절은 ‘살’이다. 동산오위에 비교하면 니우는 편위이고 유리지는 정위를 말함이다.
피모(皮毛)는 피부에 털이 난 것이다. ‘선문염송’과 ‘굉지선사광록’에는 피모(披毛)라고 되어있다. 피모(披毛)는 털로 만든 옷을 걸쳐 입는다는 뜻이다. 대각은 뿔 달린 모습이며, 이중래는 괴이한 모습으로 다가온다는 표현이다. 이 구절의 흐름은 살활자재할 줄 모르면 축생의 모습을 받는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모든 수행자는 맡은 바 공부에 투철해야 한다.
기기는 몇몇 또는 얼마쯤이라는 뜻이다. 과연 이런 도리를 아는 자가 몇이나 될까? 그러므로 분발해 수행하라는 경책이다. 모든 것을 바로 알면 지식도 되고 지혜의 밑거름이 된다. 그러나 틀리게 알면 헛길로 빠져 고생한다. 옛말에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지만 부처를 찾는 여행은 옆길로 빠지면 엉뚱한 방향으로 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