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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자기만의 부끄러움이 있을 거다.
자신만이 아는 비밀스런 치부 말이다.
솔직히 말해 내가 어릴 적부터 스스로에게 불만스럽게 생각하는 치부 중의 하나는 '눈물'이다.
명색이 남자로서 눈물을 너무도 쉽게 흘리는 '나약한' 성향이 있는데 가끔은 안구건조증에 도움이 될 거라는 자위도 해 보지만, 아무리 남 몰래 흘리는 눈물이라고는 해도 눈자위가 마르고 나면 부끄러움으로 남곤 한다.
한때 주말 테레비 프로에 군대 위문공연이 있었다.
그 중에서 고향 부모가 병사 몰래 갑자기 무대에 나타나는 코너가 있었고, 배경음악으로 '엄마가 보고플 땐 ~'하는 노래가 깔렸다.
이 대목에 이르면 난 여지 없이 화장실로 가야 했고, 이런 나를 아내는 놀리곤 했다.
가끔 차를 운전하고 가다가도 라디오에서 애달픈 사연이라도 나올라치면 차를 길가에 세우고 눈물을 처리하곤 했던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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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에 둘이서 소주 각1병 정도 했으니 그다지 무리도 아니고 평소보다 늦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었는데도, 이런저런 레파토리의 꿈에 뒤척이다가 일어나 화장실 가고 물 한 모금 먹었는데 머리는 무거운데 정신은 말똥말똥하니 다시 잠들기가 어렵게 느껴진다.
새벽 4시.
책이나 읽을까 하고 잡은 게 이청준의 소설집이다.
몇 편의 중단편 모음.
무엇을 읽었고 무엇을 안 읽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중간에 있는 '개백정'이라는 단편을 하나 읽고 사무실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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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한테서 문제 메시지가 왔다.
'오늘이 이*례 씨 생일이에요'
3년 전 돌아가신 36년 띠동갑 어머니.
하나님은 '내가 빛이요 진리요 소금이다(어순이 맞나?)'라고 설파하셨다던데 난 적어도 어머니를 그렇게 생각해 왔다.
내가 살아가며 적어도 부패하지 않는다면 그건 어머니가 소금의 역할을 한 것이리라 여긴다.
살아서 효도 방법은 다 안다.
물질의 봉양이야 최소한의 것이고, 처음이고 끝은 자식이 '온전'한 것이리라.
돌아가신 다음에 효도의 길이 있다면 무엇일까?
봉양의 방법을 대신할 게 없을까 생각해 봤는데, 그건 망자에 대한 추념 즉 돌이켜 생각해보는 것이 아닐까 한다.
특히나 부모님의 희생을 기억하는 건 남은 자식으로서 최소한의 책무일 거다.
이청준의 1977년작 단편 '눈길'.
처음 접한 건 아주 오래 전 TV문학관인가 하는 단막극을 통해서인 것으로 기억한다.
다음에 언젠가 소설을 읽긴 했는데 주요 이미지만(팔린 옛 집을 빌려 고향에 온 학생 아들을 재워 밥 먹이고 새벽에 멀고 먼 눈길을 걸어 버스 타는 데까지 배웅하고 눈길에 남은 두 발자욱에 눈물을 떨구며 집도 없는 마을로 되돌아가는 어머니) 남아 있고 자세한 줄거리는 생각나지 않았다.
이 글을 쓰기 전까지 정독을 했다.
짧은 단편이라 읽기는 가벼우나 감정 처리가 만만치가 않다.
나만 그런가?
아무튼 돌아가신 모친 생일날이라 그런가?
흐르는 눈물을 수없이 훔쳐내야 했다.
감정이입?
아마 그럴 것이다.
부모의 정, 특히 母情은 그렇다.
옛 적 못 먹고 못 입고 못 살 때 자식에 대한 모정은 생활을 이겨내야 하는 모짊과 태생적 연약함의 혼합물이었다.
소설의 자세한 내용은 소개하지 않겠다.
친구들에게 가능하다면 일독을 권하고 싶다.
시골 출신에다 충분히 이해가능한 상황이란 공통분모 때문에 나만 그렇게 반응하는지는 모르겠다.
故 이청준은 우리나라 문학사에서 아주 높이 평가받는 작가이다.
영화화된 작품도 아주 많다고 한다.
물론 난 서편제만 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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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도 多情일까?
모르겠다.
우연히 잠 못 이루는 신새벽,
돌아가신 어머니 생일 날, 아들과 어머니 간의 정신적 화해와 끝없는 모정을 신새벽 '눈길'에 눈물과 함께 뿌리던 작품속의 광경이 오롯이 머리 속에 그려진다.
- 블루
첫댓글 그래 불루가 인정이 많구나.
情정, 처음이고 마지막?
눈시울 뜨겁구나.다들 엄마! 어머니!!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먹먹한 이유는 뭘까??
'엄마'는 최루탄.
결혼후 어머니를 우리집에서 한번도 못 주무시고 시골로 가셨었는데 그게 돌아가셨을때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라 신혼때부터 손아래 처남과 함께살다보니 그랬었지. 옛날엔 딸린식구가 다들 그러했었는데~
제네 집에서 하룻밤도 안 주무셨다고?
사정이 그랬겠지.
같은 천가인데 불루는 글을잘쓰고
불루는 나보다 더 잘달리고
더 멋지게 살고
자네는 사진도 잘 찍고,
술도 잘 먹고 ㅋㅋㅋ
나두 울엄니 돌아가신지 27개월째다.. 울엄니 ㅠ ㅠ
이제 나이까지 들어서 맘이 약해지는건지 여려지는건지 ... 넘에 일이 아닌거 같다
어머니에 대한 자네의 사랑은 泉石膏亡+月 같다.
야가 사람 감성 젖게 만드네 .
ㅋ~ 울엄니도 개띠 띠동갑에 같은 O형,
그래서 그런가 만나면 엄청 으르렁~
어릴적 대들다가 맞기도 많이 맞았고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