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관순 열사를 폄하하는 4종 교과서(두산동아...)

역사 교과서 8종 중 4종이 유관순 열사를 누락했다는데, 그 4종이 두산동아, 금성, 미래앤, 천재교육 이라고 나타났으며, 이 4종 교과서가 좌편향, 종복주의 시각으로 역사를 저술하고 있다...
이들 4개 출판사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조한경 / 전국역사교사모임회장 "중학교 교과서에선 유관순 열사가 서술돼 있고요, 고등학교 과정에서는 전체적인 맥락에서 수업하기 때문에…. 역사수업이 잘못되고 있다는 건 과도한 걱정이 아닌가 하는…."
▶김정인 / 춘천교대 교수 정상우 서울대 강사가 2009년 한국역사연구회가 발간한 "역사와 현실"이란 학술지에 낸 논문을 근거로 “유관순은 친일 경력이 있는 이화학당 교사 박인덕이 해방 후 발굴해 이화 출신의 영웅으로 만들었다는 역사학계의 연구 성과가 있어 기술하지 않은 것” 이라고 유관순 누락논란에 대한 이유를 밝혔다.
자. 생각을 해보자...
첫 번째로 중학교 교과서에 이미 언급 했으니 유관순 열사를 생략해도 된다는 이 허무맹랑한 괘변은, 이미 초등학교에서 역사를 배웠으니 중, 고등, 대학교에서 역사 과목을 생략한들 무슨 문제가 있겠느냐 와 다를게 무엇이 있겠는가...
이런 논리대로 하면 초등학교에서 국, 영, 수 등등 모든 과목을 배웠는데 모하러 중, 고등, 대학 과정이 필요한가 와 똑같다...
교육 과정이란 매 단계별 심화과정이다... 어린아이가 자라는 매 단계별의 지적 수준에 맞추어서 교육을 해야함이 당연하거니와, 중등, 고등, 대학 으로 가는 과정은 그 아래 단계보다 좀 더 심화된 학습과 전문성을 갖추는 것이 교육의 기본 과정이라는 것을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다...
조한경 / 전국역사교사모임회장 이 사람이 우리나라의 역사교사모임회장이라는게 참으로 통탄할 일이고, 그 밑에서 역사를 배우는 학생이 너무도 불행하다는 것과 이 사람이 역사를 가르치는 동안은 이 나라의 역사가, 미래가 없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일이다...
두 번째로
정상우 서울대 강사의 논문, 단 하나로 유관순 열사가 과장되게 영웅시 되었으며, 그렇게 영웅화 했던 사람이 친일파라는 이유로 유관순 열사를 생략했다는 춘천교대 교수 김정인이라는 사람의 논리도 참...
논문 어떤 것에 관하여 체계적으로 자기 의견이나 주장을 적은 글. 그 체계는 대개 서론, 본론, 결론의 세 단계이다.
그렇다 논문은 자기의견에 불과한 것이다... 모든 사람이나 필자인 나 역시도 논문을 발표할 수가 있다... 가령 이순신이라든지 세종대왕에 관해서든지...
그러나 논문은 논문에 불과하며 역사나 증거 자료가 아니라는 것이다. 즉 자기 의견을 주장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논문이 정설이 되고 역사가 되려면, 그 논문의 주장을 받쳐주는 비슷한 논제의 논문과 사료, 증거가 확실하여야 하고, 그 논문을 동조하는 역사학자들이 있어야 하는데...
김정인 이 사람은 유관순 열사를 비난하는 논문이 정상우 서울대 강사의 논문 단 한개에 불과하고, 역사학자들에게도 공감을 받지 않는데도, 춘천교대 김정인 교수는 위대한 발견이나 한 것처럼 달랑 하나뿐인 논문을 근거로 유관순 열사를 교과서에서 삭제 시킨다... 참으로 할말을 잃게 만든다
위와 같은 사례로 보아 이사람은 유관순 열사를 개인적으로 싫어하거나, 아니면 어떤 의도를 갖고 있지 않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즉 유관순 열사에 대한 그 많은 논문과 사료는 제쳐두고, 누구도 알지 못하는 논문 단 한개를 일부러 찾었을 뿐만 아니라, 그 논문 단 한개가 유관순 열사의 모든것을 다 설명한다는 듯이 자랑스럽게 주장하는 것을 보니...
이런 사람이 교수가 되었다는게 우리 교육계의 커다란 수치임을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세 번째로 유관순 열사는 "일개 보통 사람이다" 그리고 과도하게 "영웅시 되었다" 고들 하며, 이들 논리에 동조하는 사람들도 있다...
제대로 보자. 3.1 운동을 한 사람들 모두 다 보통 사람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 3.1 운동을 한 모든 사람들이 다 영웅이었다... 모두가 보통 사람들 이면서, 모두가 영웅들 이었다는 것이다... 그러한 영웅들이 있었기에 그나마 이 나라가...
그런데 아는체 하는 놈들과 남들이 얘기 하는 소리만 듣고 무식하게 유관순 열사가 보통사람이다 라고 폄하한다... 지지리도 못난놈들이다... 제대로 모르면 주둥아리를 닫고 있던지...
그리고 3.1 운동을 평가하고 저술할 때 그 많은 사람들을 초등교, 중등, 고등 교과서에 다 열거할까??? 수 만명의 사람들의 이름을 다 교과서에 넣어서 천페이지로 만들까???
효율성과 교육적인 전달성을 위해 수 많은 영웅들 중에서, 눈에 뛰게 일제에 저항한 단 한 사람을 부각시키는 것이... 역사적 교훈을 널리 알리는 방법이었음을 그 무뇌아들은 생각을 하지 못할까??? 그래서 못난놈들이다...
네 번째로 친일파가 부각시켰기에 열사가 아니다 라는 논리...
시각이 하나로 고정된 편협한 놈들이다... 생각이 그정도 밗에 안되나???
중국은 동북아 공정처럼 없는 역사도 만들어서 자국의 국민들을 교육시키는데... 이 덜떨어진 놈들은 자국의 위대한 역사도 내 팽개쳐 버린다... 그리고 깨어있는 의식이라든지, 진보라든지 하면서...

이 좌익과 종북세력들이 하도 친일파가 영웅시 했다고 주장하니, 그들 논리에 맞게 반론을 제시하면,
유관순 열사가 뛰어나고 탄복할만한 항일 운동을 하였기에 친일파란 놈들 마저도, 그녀를 존경해서 영웅시 하였다 라고... 즉 위나라 조조가 적군인 촉나라 관우를 존경하듯이...
자 니들이 또 모라고 주장을 할건가???
공과는 공과인데, 산은 못보고 나무만 보는 이 편협한 놈들에게 무슨 욕을 해야 할까, 참 고민이다... 이런놈들이 교수를 하고 있다니... 교육이 붕괴되는 현실을 보니 통탄스럽다...
한 나라의 근간인 역사가 이렇게 변질되고... 왜 이렇게 됐을까???
권희영/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의 칼럼을 덪붙인다...
4종 교과서를 옹호하는 교수의 변명으로 “북한에선 당연히 유관순을 모르고” 이러한 발언은 좌편향 교과서 집필 기준을 알게 한다...
유관순이 누락된 4종 교과서의 특징은 좌편향 성격이 아주 강하다는 것이다. 이들 교과서에서는 친소반미(親蘇反美)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계급투쟁을 강조하기 위해 노동자·농민의 투쟁이 부각된다. 파출소 습격사건에 불과한 김일성의 활동을 보천보 전투로 부각해낸다. 그러면서도 반공의 상징 이승복은 완전히 교과서에서 누락시켰다. 아웅산 묘역 테러에 대해서도, 천안함 폭침에 대해서도 아무런 서술이 없다. 북한의 인권에 대해서도 침묵한다. 그러니까 결국 북한이 교과서 집필의 숨겨진 기준이 됐다는 것이다...

2014.09.02 20:52 smings(smi***) 자료출처
유관순 [柳寬順]
1902. 3. 15 충남 천안~ 1920 서울 / 독립운동가
柳宽顺(韩国语:유관순/류관순,1902年—1920年),韩国女性独立运动家,三一运动殉难者,被誉为韩国的圣女贞德。本贯高兴柳氏,出生于忠清南道天安,基督新教信徒。她原是梨花学堂(今梨花女子大学)的学生。1919年3月1日,柳宽顺在朝鲜京城(今韩国首尔)钟路的塔洞公园参与反对日本殖民统治的独立运动(三一运动)。之后她把独立运动的消息带返家乡,并主导当地的独立运动。后来柳宽顺被捕,并被日本殖民当局判处7年徒刑。其后更在西大门刑务所拘留所内因为严刑拷问及营养不良而死,享年18岁。
이화학당(梨花學堂) 재학 당시 3·1운동이 일어나자 아오내[竝川] 장터 시위를 주동하고 수감된 뒤에도 옥중 투쟁을 계속하다가 죽었다. 본관은 고흥(高興). 아버지는 중권(重權)이며, 어머니는 이씨(李氏)이다. 1916년 기독교감리교 공주교구의 미국인 여자선교사의 도움으로 이화학당 보통과 3학년에 입학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3월 5일 만세시위에 참가했다. 그뒤 총독부 임시휴교령에 의해 이화학당이 휴교당하자 3월 8일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때 고향에서는 이종성(李鍾成)이 주동이 되어 시위운동을 계획했으나 사전에 구금당해 실행하지 못했다. 아버지의 주선으로 3월 9일 밤 예배가 끝난 뒤 조인원(趙仁元)·이백하(李伯夏) 등 20여 명이 모인 자리에서 사촌언니와 함께 서울의 상황을 설명하여 즉석에서 4월 1일(음력 3월 1일) 아오내 장날을 기해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하고, 안성·목천·연기·청주·진천 등의 마을 유지와 유림계를 규합하기 위한 연락원으로 선출되어 20일 동안 수백 리를 왕복하며 시위운동에 참여할 것을 설득했다. 4월 1일 수천 명의 군중이 모인 가운데 조인원의 선도로 시위가 시작되자 시위대 선두에서 독립만세시위를 벌였다. 일제의 무력진압으로 시위 도중 아버지와 어머니가 피살당하고 자신은 주동자로 잡혀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언도받았다. 이에 불복, 항소했으나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자 재판장에게 자신의 투쟁이 정당함을 역설하고 의자를 집어던져 법정모욕죄까지 가산되어 징역 7년형을 언도받았다. 일제의 모진 고문으로 인해 몸이 상했으나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 중에도 독립만세를 고창하고 이 때문에 더욱 혹독한 형벌을 당해 건강이 더욱 악화되었다. 1920년 17세의 나이로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했다. 8·15해방 후 충청남도와 천안군의 협력으로 병천면에 유관순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 건립되었다. 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유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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