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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추석에는 늘 바빠서 함께 움직일 수 없는 아이들 아빠를 냅두고..
아이들이랑 여행을 가기로 했습니다.
엄마는 추석에 상에 올릴 음식도 해야 하고.. 여행 준비도 해야 하니 바쁘다~ 라는 핑계가 잘 먹혀서
음식준비부터 아이들도 많이 도와줬습니다.
22일, 추석 당일날에 상을 차리고 온 가족이 함께 하나님과 영계에 가 계시는 조상님들께 인사를 올리고
아침식사를 마치자 아이들 아빠는 바로 출근..
저는 도시락으로(점심, 저녁)전이랑 과일을 싸고, 주먹밥과 유부초밥을 만들어서
9시 쯤에 설레는 맘으로 차에 올라탔습니다.
예전에 여행을 갔을 때는 도로지도를 몇번씩이나 확인을 하고.. 그래도 불안해서
지난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고 또 물면서 갔었는데요,
올해는 새로 마련한 네비게이션, '미스김(우리 집에서는 이렇게 부릅니다.)'이 있으니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운전할 수가 있었어요.
모처럼 가는 여행이니 날씨가 좋아지기를 바랐지만 출발할 때부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계속 비가 내리는 가운데 우리는 대관령 삼양목장에 도착했습니다.
목장 꼭대기에는 풍력발전을 위한 풍차들이 있고
경치가 아주 근사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많이 기대하고 갔었거든요.
그런데 전망대에서 셔틀버스를 내리자 마자
"이게 뭐야~???
짙은 안개로 주위는 온통 하얗고.. 아무것도 안 보이는 겁니다.
목장도 울타리만 희미하게 보이고 울타리 너머에 뭐가 있는지는 전혀 안 보이는 상황..
버스를 타고 올라온 사람들은 짙은 안개에 기겁을 하고
"볼 게 없어~ 그냥 내려가자.." 하고 다시 버스를 타는 사람이 많았어요.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지..? 모처럼 왔는데 아무것도 안 보이네..
그냥 이 버스 타고 내려갈까..?? " 라고 물었더니
평소네는 움직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집에 있을 때는 대부분의 시간을
바위 위에 올라 일광욕을 하는 바다코끼리 같은 자세로 지내는 큰 아이가..
"모처럼 왔으니까 목장길을 걸어보죠~" 라고 하는 겁니다.
좀 놀랍기도 하고.. 약해지려는 내 마음에 힘을 주는 것 같아 고맙기도 해서
"그래~ 이런 것도 경험이다야.. 걸어보자" 라고 말하고 우리는 안개 속을 걷기 시작했어요.
안개가 얼마나 짙은지.. 사람이 5미터만 떨어져도 전혀 안 보입니다.
2미터 정도 앞에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이죠??
간신히 보이는 울타리를 따라서 우린 걸어갔습니다.
하얀 안개 속에서 울타리만 보이니 마치 꿈 속의 길, 저승으로 가는 길 같더라고요.
참 묘~한 기분이었습니다.
조금 가니까 어딘가에서 윙.. 윙.. 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뭔 소리지..??"
무심코 위를 보니까 회색의 그림자가 빠른 속도로 휭 지나가고 안개 속에 사라졌습니다.
"잉.. 뭐였지..?"
눈에 힘을 주고 주시하고 있는데 또 다시 윙.. 하는 소리와 함께
길쭉하게 생긴 희미한 그림자가 허공에서 떨어져오고.. 땅에 닿기 전에
다시 휭.. 올라가서는 안개 속에 흡수되어 버렸어요.
좀 더 가까이 가니까 희미하게 기둥이 보이더라고요.
그제서야 그게 뭔지 알았습니다.
이게 그 유명한 풍차였어요.
안개가 너무나 짙어서 풍차 바로 앞에 서 있는데도 이렇게 기둥이 희미하게 보이고..
풍차 날개는 아래에 내려왔을 때만 잠깐만 보이는 겁니다.
마치 안개 속에서 곤봉을 휘두르는 무서운 거인과 대면하고 있는 것 같은.. 왠지 우스스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목로를 따라 점점 내려가니까 안개도 조금씩 얕아지고.. 이렇게 아기자기한 가을의 선물, 볼 거리들이 많았습니다.
삼양목장은 넓은 목장에서 자유롭게 노는 소떼가 자랑거리일텐데.. 구제역 예방을 위해 현재 방목을 안하고 있다네요.
그래서 우리가 만난 것은 양떼였습니다.
동물을 아주 좋아하는 우리 둘째는 풀을 뜯어서는 갖다 주고.. 또 뜯어서는 먹이고..
하도 많이 뜯어오니까 주변 어른들이 "나도 좀 줘봐.." 하면서 얘가 뜯어온 풀을 얻어서는
양들에게 주곤 했습니다.
어떤 할아버지 왈.."얘 양 키워도 되겠어~"
양에 대한 미련보다 다리의 아픔(비 때문에 질퍽거리는 길을 많이 걸어서)이 이겨서..
중간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목장을 내려온 우리는 강릉 경포해수욕장으로 향했습니다.
잉.. 뭐하러..??
바다를 보러~~
바다를 눈으로 보기만 하는 아이들입니까..
딸들은 바로 바지를 걷어올려서 파도와 놀기 시작하다가..
결국 바지 하나씩 다~ 적셨습니다.
(사진에서 아이들 바지 상태에 주묵..)
우리는 길가에 세운 차 안에서 가져간 도시락과 컵스프로 저녁을 먹고
강릉시내에 있는 찜질방에 들어가서 목욕을 하고 잤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5시에 다시 차에 올라타고 찾아간 곳은 정동진역이었습니다.
엥..뭐하러..??
해돋이 보러~~!!
날씨가 안 좋아서.. 떠오르는 해를 볼 수는 없었지만 점점 환해져 가는 바다의 모습은 감동적이었어요.
정동진역 앞에 있는 분식점에서 뜨거운 컵라면과 오뎅으로 간단한 아침을 먹고
(오뎅이 아니라 어묵이라고 하실 분 계시겠죠... 근데 분식점에 써져 있는 메뉴 이름이 '오뎅'입니다..ㅎㅎ)
역 근처에 있는 해돋이공원을 향했습니다.
높은 곳에 있는 공원이라 비탈길을 올라가야 하는데
우리 몸무개만 합산해도 350킬로. (누가 몇킬로인지는 일급기밀)
우리 마선생님(마티즈)이 힘을 못 쓰고 꾀 힘들어 하더라고요.
"마선생님~ 힘 내라~ 힘~!!"하고 외치면서 언덕길을 올라가는데
우리 둘째 왈..
"엄마~ 너무 혹사하면 마선생님이 미스 김이랑 달아날지도 몰라.."
엥.. 미스 김이 누구냐고요?? 다시 말씀드리면..미스 김은 우리 네비게이션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다 같이 웃으면서 겨우 공원에 도착..
높은 언덕 위에서 바라보는 하늘과 바다의 모습이 정말로 아름다웠습니다.
구름이 끊어진 부분에서 쏟아져 내리는 아침 햇살..
"천지창조" 라는 말이 갑자기 떠오르더라고요..
하늘 아버지가 우리와 함께 계심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미리 예약해 놓은 삼척해양레일바이크 승강장으로..
10시 40분 차를 예약했으니 늦으면 안 된다고 좀 여유롭게 축발했더니
정말 여유롭게.. 출발50분 전에 도착해 버렸습니다.
이럴 때 가족끼리 좋은 대화라고 하면 유익한 시간이 될 텐데
우리 애들은 왜 모아놓으면 서로를 헐뜯는 이야기만 잘하는지..
"그만해~ 서로 덕담만 하도록 해~" 하니깐.. 갑자기 조용해지네요.
서로 해줄 덕담이 없는가 봅니다.. 에궁.. ㅡㅡ;;;
그러다가 딸들은 셋셋세..를 시작하고..
아들은 혼자 핸드폰 갖고 놀기 시작하고..
잉.. 이 아줌마는 뭐하는 겨..????
하여튼 기다리던 보람이 있어 우린 무사히 4인승 레일바이크를 타고 출발~
바닷가를 쭈~욱 달리는 코스는 날씨만 좋았더라면 참 볼만 했겠는데
잔뜩 흐린 날씨에다가 가끔 빗방울이 떨어져서
바다가 상쾌하게 보이기보다는 으스스 추워 보이더라고요..
코스 중간에서 잠시 휴식..
그런데 휴식장소에 놓여 있는 조각품들이 이상하게 눈에 익은 거예요~
작가 이름을 보니 예전에 일본어를 함께 공부하신 분의 작품이었습니다.
뜻하지 않게 반가운 분의 이름과 작품을 보게 되어 기분이 좋았어요.
그리고 긴 터널에 들어가는데.. 처음에는 깊은 바다 속을 연상시키는 장식이 되어 있고
나중에는 레이저를 쏴서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
완전히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아서 긴 터널을 지나가는 시간이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아~ 배고파~!!"
셔틀버스를 타고 출발정거장에 돌아온 우리는 점심을 먹기로 했어요.
여행경비도 아낄 겸, 그리고 '사랑하는 자식일수록 고생을 시켜라(可愛い子には旅をさせよ。)'라는 일본속담처럼
고생의 맛도 알게 할 겸
우린 주차장에서 물을 끓이고 컵라면을 먹었어요.
주차장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서 컵라면을 먹는 모습이 약간 홈레스틱하기도 하고 초라해 보일듯 말듯.. 했지만
그래도 돌아가는 길에 아이들에게 무엇이 제일 재미있었냐고 물었더니..
"밖에서 컵라면 끓여먹었던 일"이라네요.. ㅎㅎ
컵라면 점심을 마치고 우리가 달려간 곳은 동해시에 있는 천곡천연동굴이었습니다.
다른 동굴처럼 외딴 곳에 있지 않고 시내 한복판에 입구가 있으니까 규모가 작은 동굴인줄 알았더니만..
작은 동굴일 거라 생각한 것은 아주 큰 오산이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삶을 영위하는 그 발 밑에..
이렇게 아주 크고 신기한 동굴이 있다는 일에 솔직히 놀랐습니다.
들어가는 사람은 꼭 헬멧을 써야 하는데.. 조금 들어가니까 그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천장이 아주 낮은 부분이 몇군데 있어서 사람들이 머리를 다칠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허리가 안 좋은 저는 허리를 구부려서 다녀야 해서 힘들었고
덩치 큰 아들은 아예 오리걸음으로 다녀야 했습니다.
"너, 오리걸음하느라 힘들었지..??" 라고 물으니까
"학교 체육시간에 떠들거나 하면 바로 오리걸음 시키니까 단련이 돼서 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라고 하네..
음.. 아들의 학교생활이 좀 걱정이 되기도 하는군요.
도대체 얼마나 선생님의 말을 알 들었길래 단련이 될 정도로..ㅎㅎ
동굴 구경을 마치고 나오니까 벌써 오후 3시.
이제 춘천을 향해 출발해야 할 시간이었습니다.
이 돌아오는 길이 정말 힘들었습니다.
왜냐.. 평소에 운동부족인 이 엄마가 평소에 안하는 걷기 운동, 자전거 페달밟기운동을
이 이틀동안에 아주 집중해서 한데다가
찜질방에서는 너무 더워서 잠을 제대로 못잤던 탓에
엄청난 줄음이 엄습해 오는 것이었어요.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을 하는데.. 나중에는 눈을 뜬 채 짧은 꿈을 꾸기도 했어요.
안되겠다.. 찜질방이라도 찾아가서 잠시 눈을 붙였다가 갈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경차에 덩치 큰 사람이 넷이나 탔으니 차 안에서 잠시 자는 거은 불가능.)
하지만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은 마음에 선택한 고육책이..
얼음을 가슴에 품는 것이었습니다.
아래 사진 보세요~ 제 가슴 속에 집어넣은 것이 하늘색 수건에 싼 얼음물통입니다.
심장이 차가워지는 느낌으로 정신이 잠시 돌아오더라고요.
그리고 휴계소마다 들러서 부채표 생생통.. 이었나..??
처음 마셔보는 드링크제 인데.. 이게 정말로 어쩔 수 없이 졸릴 때는 그 효과를 느끼기도 했습니다.
떠거운 가심으로(??) 얼음을 녹이며 휴계소마다 드링크를 사먹고..
그렇게 간신히 춘천에 돌아왔습니다.
여행하는 내내 날씨가 안 좋았는데
우리가 돌아오는 길에는 파란 하늘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오랜만에 보는 듯한 파란 하늘.. 반가우면서도 많이 아쉬웠어요.
돌아오는 길에서 해가 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날은 내가.. 하루가 태어나는 것(일출)을 지켜보고 또한 숨을 거두는 것(일몰)까지 지켜본 셈이라..
왠지 내가 이 하루라는 소중한 아기를 내 손으로 받아주고..
키우고.. 그리고 임종을 지켜본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오랜만에 아이들과 다녀온 여행..
체력이 바닥이 나고 힘들었지만
집에 돌아와서 안방에 눕자마자 바로 머리에 떠오른 생각은
"음.. 다음에는 어디로 가볼까..??" 였습니다... ㅎㅎ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첫댓글 가족여행 잘 다녀오셨습니다. 달땡이님 모습은 변함이 없으신 것 같고, 아이들 모습이 귀엽습니다.
네~ 전에 뵈었을 때보다 한 5근정도 몸이 무거워진 것 빼고는 변함이 없을 겁니다..ㅠㅠ 요전이 축지법을 잘 쓰시고.. 건강하게 산을 다니시죠..?? ^^&*
3형제가 많이 자랐네요. 이젠 아기돼지라고 할 수도 없겠어요. 연휴를 알차게 추억쌓기 하셨군요.
구름사이로 나와 바다에 쏟아지는 빛이 장관입니다.
아기돼지가 아니고 어른돼지..?? 에궁.. 몸덩이만은 출하해도 될 정도로 컸지만.. 하는 행동은 여전히 아기돼집니다..^^*차화로님도 뵙지가 오래 된 것 같은 기분입니다..잘 계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