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열차로 떠나
나는 젊은 날부터 생활습관이 종달새형이다. 그것은 주말도 예외 없다. 해가 많이 짧아진 십일월 둘째 토요일 미명이었다. 새벽 두 시 반 무렵 현관 앞에 엘리베이터가 멈추면서 종이신문 떨어지는 소리가 툭 들렸다. 인터넷 뉴스를 검색하다 신문을 집어 와 펼쳐도 신선한 기삿거리는 보이질 않았다. 문득 새벽열차를 타고 싶었다. 이른 끼니를 해결하고 길을 나설 채비를 서둘렀다.
시내버스 첫차가 운행하지 않은 시간대였다. 나는 집에서부터 창원중앙역까지 걸었다. 가로등이 불을 밝힌 거리의 새벽공기는 제법 찼다. 창원대학 앞을 지나 역까지 걸어가는 데는 사십여 분 걸렸다. 나는 마산에서 동대구까지 운행하는 무궁화호 열차를 타러 가는 길이었다. 역에 이르니 안팎에는 불을 훤히 밝혀두었다. 마산에서 새벽 5시 40분 출발이니 창원중앙역은 금방 닿았다.
장기간 철도노조 파업으로 화물열차 상당수와 여객열차 일부가 결행 되었다. 마침 내가 타려는 마산발 동대구행 무궁화호 첫차는 정상 운행하였다. 평일엔 통근 열차였는데 결행 열차로 새벽 손님이 더러 있었다. 플랫폼으로 오르니 정한 시각에 도착한 열차를 탔다. 어둠 속에 긴 진례터널을 빠져나간 열차는 진례역을 거쳤다. 그다음 진영역을 지나도 날이 밝아오는 기미는 전혀 없었다.
진영역을 빠져나가면 좌 전방 봉하마을 뒷산 사자바위로 드러나는데 차창 밖은 어둠의 연속이었다. 우 전방 화포습지도 마찬가지였다. 승차권에 인식된 코드대로 난 한림정역에서 내렸다. 내리는 이는 나 혼자였고 한 젊은이가 탔다. 역사를 빠져나가도 날이 밝아오지 않아 역전 거리엔 가로등이 켜져 있었다. 나는 한림배수장 방향으로 걸었다. 방향으로 치면 남에서 북으로 걷는 편이었다.
모정고개 너머 삼랑진 방향으로는 어딘가 공사 현장으로 떠나는 덤프트럭이 간간이 지났다. 아직 날이 밝아오지 않은 인도에는 나 말고 오가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저만치 부평마을에선 첫새벽 분명 신고를 했을 텐데도 수탉은 다시금 ‘꼬끼오!, 꼬끼오!’ 홰를 쳐댔다. 어느 깊은 산중 덩치 큰 산짐승이 영역 표시로 나무둥치에다 터럭을 비거나 배설물을 남겨 냄새를 풍기는 것과 같았다.
한림배수장을 향해 걸으니 들판 가운데 시전마을을 지났다. 벼를 거둔 논에는 시설하우스가 들어서 있었다. 투명비닐엔 물방울이 맺혀 있어 무슨 작물을 가꾸는지 바깥에선 알 수가 없었다. 아까 한림정역에서 배수장까지 걸으니 한 시간 가량 걸렸다. 한림배수장은 낙동강 중하류 지역에서 가장 큰 규모였다. 비가 많이 와서 화포천 내수가 넘치면 강둑 바깥으로 퍼 넘기는 기능을 하였다.
배수장에서 강둑으로 올랐다. 예상대로 술뫼생태공원 일대는 아침안개가 자욱해 지척을 분간할 수 없었다. 강 건너는 밀양 오산이고 저만치 삼랑진 뒷기미 모롱이도 보일 텐데 어디가 어디인 줄 몰랐다. 나는 이제 강둑을 따라 서쪽으로 향했다. 강둑은 낮은 산언덕 마을로 이어졌다. 그곳은 우리말 예쁜 땅이름으로 ‘술뫼’였다. 숟가락을 ‘술’이라고도 한다. 숟가락을 엎어놓은 형상이었다.
술뫼는 시산(匙山)이다. 십시일반(十匙一飯) 할 때 그 ‘시’다. 그 강가 낮은 산언덕에 어떤 기회 알게 된 지인이 그림 같은 집을 지어 산다. 그쪽은 부산에서 직장 생활하다 은퇴 후 지금은 밀양에서 이모작 일터를 가진 분이다. 요즘은 주중에도 농막을 대체한 별장에서 밀양으로 오가는 것으로 안다. 나는 이른 아침인지라 지인한테 근처를 지난다는 연락을 못하고 자전거 길 따라 걸었다.
안개가 걷혀가는 술뫼생태공원에는 물억새가 피어 운치를 더했다. 지난여름 지천으로 피어났을 달맞이꽃은 꼬투리가 시든 채 앙상한 줄기만 남아 있었다. 너른 둔치 작은 시신동산 정자 위로 올라가 보았다. 아직 안개는 걷힐 기미가 없었다. 짐작으로 아득한 수산에서 흘러온 강물은 삼랑진으로 뉘엿뉘엿 흘러갔을 것이다. 강 건너 밀양 명례였다. 난 시신동산을 내려와 유등을 향해 걸었다. 16.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