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도매시장이든 인터넷이든 다 중국산 약재를 국내산이라고 속여 팔아요. 그러니 괜히 바가지 쓰지 말고 차라리 중국산이라고 써 놓은 거 사세요.”
한약재에 바코드를 붙여 생산에서 유통까지 투명하게 관리하는 ‘한약재 이력추적제’가 입법 예고된 지 3일이 지났다. 인터넷 공간에는 이 제도의 성공 가능성을 낮게 평가하는 누리꾼들의 의견이 훨씬 많다. ‘좋은 한약재를 어떻게 고르느냐’는 질문에 긍정적인 대답을 올린 경우가 드물었다. ‘역시 한약재는 믿을 것이 못 된다’는 뿌리 깊은 불신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대한한의사협회는 일찍부터 이 제도의 필요성을 주장해 왔다. 김현수 한의협 회장은 몇 차례의 기자간담회에서 “불량 수입 농산물이 국산 한약재로 돌변하는 데 따른 피해는 한의원과 일반 국민 모두에게 크다”며 “하루빨리 법안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서울 경동시장을 둘러보면서 소비자들의 불안한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전국 한약방에 한약재를 공급하는 도매상 약재창고에는 ‘수입산’ 꼬리표가 붙은 한약재 찾기가 더 어려웠다. 비닐 포대기에 들어 있는 한약재와 포장된 상품 대부분에는 ‘국내산’이라는 표시가 붙어 있었다. 지난해 국내에 수입된 한약재는 2만3000여 t에 이른다. 그러나 어찌된 게 보이는 것은 모두 국내산이었다.
이력추적제가 정착되려면 한의사, 유통 상인 모두의 협조가 필요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소매상은 이력추적제에 대해 알려고 하지도 않고, 귀찮아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어떤 한의사는 약재 값이 올라 부담이 된다며 제도 도입 자체를 반대했다.
설령 이 제도가 입법화되더라도 실효성은 떨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현재 한약재 546개 품목 가운데 188개가 농산물(식품용)로도, 의약품용 한약재로도 수입이 가능하다. 불량 한약재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식품용으로 수입된 한약재가 의약품용으로 둔갑하는 경우다. 그러나 보건복지가족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청은 “한약재 이력추적제는 의약품용 한약재에만 적용된다”고 말한다. 식품용의 의약품 둔갑을 저지할 수 있는 방법은 아직 없는 셈이다.
안전한 한약재를 얻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온 길보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더 많이 남았다. 수입 농산물의 통관 절차를 더욱 엄격하게 할 필요가 있다. 한의사와 약재 판매상들도 당장의 작은 이익을 좇다 국민의 신뢰를 잃는 잘못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 ‘한약재는 좋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