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 욥기 전절
<각인되어야 할 구절>
1)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1:21)
2) 인생이 어찌 하나님보다 의롭겠느냐, 사람이 어찌 그 창조하신 이보다 성결하겠느냐 (4:17)
3)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8:7)
4)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23:10)
<본문 설교>
오늘도 행복한 주일 아침입니다. 오늘도 여전히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까지도 우리를 지키실 하나님이시기에, 이 시간 우리의 예배를 기뻐 받으시는줄 믿습니다. 우리 이시간,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아멘, 아멘!
오늘 하나님이 주신 본문은 욥기입니다. 욥기는 히브리어 원전의 제목 '이요브'와 구약 성경의 헬라어 번역서인 70인역(LXX)의 제목 '이오브'는 본서의 주인공인 욥의 이름을 반영했다고 합니다. 욥기의 저자로는 욥, 솔로몬, 예레미야, 헤만등이 제기되고 있으나 누구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다만 본서가 잠언, 전도서와 같은 지혜 문헌인 점에 비추어 볼때, 솔로몬이 가장 유력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욥기에 대한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고난 당하는 신앙인들에게는 욥기가 삶에 대한 여러가지 고뇌에 찬 질문들을 가장 아름다운 시예적 표현으로 심도 있게 파헤쳐 그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제시해 줌으로써 큰 위로와 희망을 안겨 주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되지만, 비평학자들에게는 욥이라는 전설적 인물의 이야기를 후대의 편집자들이 편집해 놓은 설화로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욥기에 나타나는 의인의 고난과 하나님의 주권, 그리고 고난으로부터의 회복이라는 점을 자세히 고찰하여 욥기서를 통해, 하나님에 대한 보다 명확한 이해와 함께 심한 시련과 시험을 당하는 성도가 지녀야 하는 믿음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진리들을 깨달을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먼저 우리는 욥기의 줄거리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만날 때마다 이러한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왜 나에게 이런 고통스러운 일이 생겼을까? 이 문제를 좀더 철학적이고 신학적으로 표현하자면 이렇습니다.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선하시고, 절대적인 능력을 가지고 이 세상을 다스리고 계신다면, 어떻게 이 세상에 나쁜 일(악, 고난)이 일어날 수 있는가?'라는 것입니다. 욥기는 이런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악과 고통의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입니다.
따라서 욥기는 의로운 욥이 고난을 당하는 실제적인 예를 가지고 이 물음에 대해 답하고 있습니다. 서론(1~2장)에서는 의인 욥의 고난이 시작되고, 결론(42:7~17)에서 욥의 고난이 해결됩니다. 본론(3:1~42:6)에서는 왜 의인 욥이 고난을 받아야 하는가에 대해, 욥과 욥의 친구들 그리고 욥과 하나님의 대화가 진행되어집니다.
여기서 본론을 조금 더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4~31장까지는 욥과 욥의 세 친구 엘리바스, 빌닷, 소발 사이에 벌어지는 3회전 논쟁입니다. 1차 논쟁은 엘리바스(4~5장)와 욥(6~7장), 빌닷(8장)과 욥(9~10장), 그리고 소발(11장)과 욥(12~14장)의 논쟁입니다. 그리고 2차 논쟁으로는 엘리바스(15장)와 욥(16~17장), 빌닷(18장)과 욥(19장). 소발(20장)과 욥(21장)의 논쟁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3차 논쟁인 엘리바스(22장)와 욥(23~24장), 빌닷(25장)과 욥(26:1~27:12), 소발(27:13~23절)과 욥(29~31장)의 논쟁을 통해서도, 욥이 왜 고난을 받는가에 대한 문제가 해결되어지지 않고 있음을 볼수 있습니다.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나이 어린 엘리후가 세번에 걸쳐 발언을 합니다. 그렇지만, 이 역시 바른 답은 아니었습니다(32~37장). 그러자 이번에는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폭풍 가운데 나타나셔서, 하나님의 정의에 대한 욥의 절박한 질문과 요구에 직접 답하시기보다는, 세상의 창조, 유지와 관련된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하나님의 지혜등에 대해 욥에게 질문하십니다. '네가 창조주의 세계를 아느냐?'고 말입니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의 질문에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합니다(38~42장). 그러자 하나님을 믿는 욥은 하나님을 만난후 이 고통의 문제를 해결 받습니다. 욥은 자신의 고통에 대한 상세한 이유를 설명 받는 대신에,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에 대한 확신을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그가 이제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42:5). 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욥은 고난 중에 하나님을 만난것입니다.
그럼 욥기의 주된 기록 목적은 무엇입니까?
욥기의 주된 기록 목적은 '의인의 삶에 고난이 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욥기는 지리할 정도로 욥과 욥의 세 친구와의 논쟁을 상세히 실었고, 그것을 통해 인생과 세상의 최종적 결정자요,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증거하여 근원적인 해답을 제시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욥기의 표면적인 기록 목적은 '고난 받는 의인의 삶'이었지만, 그 내면적이며 궁극적인 목적은 '모든 것 위에 초월해 계신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였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제 이러한 욥기의 기록 목적을 좀더 세분하여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욥기는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가장 강하게 증거하되 모든 것을 능가하고 지배하는 그의 주권과 그가 우리에게 행하시는 것과 관계없이 언제나 경배와 존경을 받으셔야 할 분이심을 증거하였다는 것입니다. 둘째, 욥기는 의인에게 임하는 고난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설명해 주되, 의인의 영혼을 순결하게 하며, 믿음을 연단하는 수단으로서의 고난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세째, 욥기는 인내하는 욥의 모습을 통해 고통당하는 성도가 취해야 할 올바른 자세와 믿음을 보여 줍니다. 넷째, 욥기는 욥과 욥의 세 친구와의 논쟁을 통해, 천편일률적이고 획일적인 '권선징악 사상'의 허점과 모순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 욥기를 통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욥기를 보면, 자기 백성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 신실한 개인에게 외견상 부당한 고난이 거듭해서 일어납니다. 욥기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그들을 고소하는 원수(사탄)가 있다는 점을 상기 시킵니다. 그리고 신실한 자는 욥의 친구들의 무지를 통해, 자기들이 보는 장면은 포괄적인 상황의 매우 작은 한 부분에 불과하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는 것이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성도들은 인생의 난관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능력을 구비하게 되어, 신실한 자는 자비와 겸손의 정신을 갖고 서로 돕고 격려할 수 있게 되어지기 때문입니다(롬12:5). 따라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 이 고난이 제거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욥에게 자신의 "대속자"에 대한 소망의 견고한 기초를 제공했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입니다(욥19:25~27).
그렇습니다. 결국 욥은, 하나님은 인간이 인식 가능한 질서 위에 계신 하나님이심을 알게 됩니다. 실제로 욥은 자연 세계에서 조차 원인, 결과의 관계가 욥이 인식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것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상 하나님께서 던진 질문은 답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욥으로 하여금 세상의 위대함을 다시 생각하고, 이를 만드신 하나님의 위대함을 깨닫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욥의 문제의 해결책은 하나님처럼 되는데 있는 것이 아니며, 창조주의 돌보심 앞에 피조물로서 신뢰하고 그 분에게 전적으로 맡기는 것임을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결 론
이제 결론을 맺도록 하겠습니다. 욥기는 잠언의 지혜와 상충되지 않습니다. 그건 욥기는 잠언을 넘어서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의 의미, 즉, 하나님의 위대함에 대한 의미를 깨닫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무한하신 지혜와 돌보심으로 그의 백성을 돌보시는 분에 대한 존경의 두려움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욥기에서는 우리가 지혜를 추구하면,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이라는 교만에서 우리를 건져주시기 위해, 하나님은 우리를 때로 왜소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욥과 함께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되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고백하게 될것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28)라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어려워하는 욥기의 실체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처럼 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지혜를 추구하기를 원하지도 않으십니다. 오직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것은 하나님의 돌보심 앞에서 피조물로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에게 전적으로 우리 자신을 맡기는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왜소하게 하시면서까지 말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의 구원자가 되어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함께 기도드리시겠습니다.
<참고 문헌>
"손에 잡히는 구약개론" IVP
"성경개관 구약편" 부흥과개혁사
"ESV스터디바이블" 부흥과개혁사
"위드바이블" 바이블넷
"옥스퍼드 원어 성경대전" 제자원 바이블네트
"구약개론"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