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음(知音)은 종자기(種子期)와 백아(伯牙)에서 비롯되었다 (백아가 거문고로써 곡조를 타니 종자기가 다 알아들었다. 그래서 知己之友가 된 것이다. 그 뒤에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자신을 알아줄 사람이 없다 해서 다시는 거문고를 타지 않았다). 우번(虞翻)은 ‘지기(知己)를 한번 얻어보고 죽었으면.’ 하였고, 사마자장(司馬子長.사마천)은 ‘누구를 위해 할 것이며, 누구로 하여금 듣게 할까?’ 하였으니, 모두가 천고(千古)에 단장(斷腸)할 일이다.
서첨(舒瞻)의 자는 운정(雲亭)이며 요양인(遼陽人)인데, 건륭 4년(1739)에 진사(進士)가 되었다. 그의 시에,
인간이 얻기 어려운 것은 지기이고 / 人生難得惟知己
천하에 제일 슬픔은 이별이네 / 天下傷心是別離
하였고, 장문숙(蔣文肅.장정석)이 고문녕(顧文寧.고문연)의 《해속집(海粟集)》제사(題辭)에,
낭묘의 노래를 지은 것이 아니라 / 不作廊廟歌
다만 소인의 사장(詞章)이라네 / 云是騷人詞
간담에 있는 말을 모두 말하여 / 寫出肝膽語
지기가 알아주길 원하는구나 / 願得知己知
지기가 알아주지 않는다면 / 不得知己知
사람들의 비웃음도 달게 받으리 / 甘受他人嗤
하였다. 임가기(林佳璣)의 자는 형자(衡者)이다. 그의 시에,
난리를 겪은 뒤로 지기는 없고 / 干戈亂後無知己
타다 남은 필묵만 고산에 있네 / 筆墨焚餘有故山
한 것이 있고, 법약진(法若眞)의 자는 황석(黃石)인데, 그의 시에,
옛날에 지기가 있음을 의논하면서 / 論古存知己
심중을 말하였다 반평생을 그르쳤네 / 談心誤半生
하였는데, 대체로 지음과 지기는 차이가 있다. 지기(知己)는 지심(知心)과 같은 것이지만, 지음(知音)은 문사(文詞)와 기예(技藝)를 서로 알아줄 뿐이다. 그러나 예전 사람들은 지음과 지기를 혼동하여 말한다. 내가,
뚜렷한 안목으로 천고를 고찰하면 / 丁寧有眼堪千古
진중한 지음은 몇 사람뿐이지 / 珍重知音只數人
한 시를 쓴 적이 있는데, 용촌(龍村) 임 처사(林處士)가 그것을 보고 웃으면서 ‘지음이 몇 사람이나 된다면 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하므로 내가, 지음과 지기는 분수가 있는 것이라고 하였더니 용촌은 고개를 끄덕이었다.
註: 백아는 거문고를 잘 연주했고 종자기는 백아의 연주를 잘 감상했다.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더 이상 세상에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知音)이 없다고 믿고서 거문고 줄을 끊고 종신토록 연주하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열자(列子)》에 나오는데, 백아가 거문고를 부수고 줄을 끊은 데서 ‘백아절현(伯牙絶絃)’이 유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