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5:1-4 예수께서는 자신이 참 포도 나무이고 아버지는 농부라고 하시며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들은 아버지께서 통째로 잘라 집어올려 내버리시고 열매를 맺는 자기들은 쓸모없는 잔가지들만 잘라 아래로 떨어뜨려 깨끗하게 정리하신다며 제자들은 이미 깨끗해졌으니 예수님 안에 붙어 있어 열매를 맺으라고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죽는 것이 사탄에게 패해서 죽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셔서 하나님의 명령에 죽기까지 순종하시는 것이라며 세상 사람들도 나중에 그것을 알게 될 것이니 일어나서 예수님을 따라오라고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포도나무의 비유로 예수님과 제자들과 하나님의 관계를 말씀하시며 일어나서 예수님을 따라와야 하는 이유를 말씀하시는 내용이다.
예수께서 아버지의 명령대로 행하는 것처럼 제자들도 일어나서 예수님처럼 행해야 하는 이유를 이제 포도나무의 비유로 가르치신다. 포도나무는 건조한 이스라엘에서 가뭄에 견디며 열매를 맺어 사람들을 살리던 매우 중요한 나무였다. 구약에서 포도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하던 나무이다. 또 시편 80:14-15절에서는 메시야를 포도나무로 표현하기도 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이라는 포도나무가 주로 이스라엘이라는 땅에 사는 사람들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그러나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은 이제 땅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이제는 혈통의 이스라엘이 포도나무에 연결된 가지가 되는 것이 아니다. 누구든지 예수님과 완전한 연합을 이루면 열매를 맺는 포도나무가 된다는 것이다. 제자들은 포도나무가 상징하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예수님은 이에 대한 아무런 설명도 없이 갑자기 자신을 포도나무로 비유하신 것이다.
1절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참 포도나무” 라고 하신다. 과거에 있던 포도나무들은 가짜였고 예수님만이 진짜 포도나무라는 것이다. 가짜 포도나무들은 예수님 당시 율법을 가르치던 제사장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었다. 자신들에게 붙어있으며 율법을 배워야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저들은 가짜 포도나무였다. 자신들에게 붙게 해서 모두 땔감으로 삼은 것이다. 저들 가짜 포도나무들 자신들도 역시 불태워질 땔감이었다. 그러나 저들과는 달리 예수님은 진짜 생명을 살리는 포도나무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내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라고 하셨다. 예수님이 진짜 포도나무일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아버지인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돌보는 포도원 농부시라는 것이다.
포도원의 농부가 하는 일 중 아주 중요한 일은 가지치기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2절은 가지치기 하는 농부의 모습이 나온다. 먼저 예수께 붙어 있으면서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잘라 버리신다고 했다. 잘라 버리신다는 라는 말은 집어든다는 뜻이다. 이는 봄철에 열매가 작게 열린 뒤 열매가 하나도 없는 가지 전체를 조심스럽게 집어 올리며 자르는 모습이다. 잘못하면 열매가 열린 열매가 상할까하여 조심스럽게 잘라 집어내는 모습이다.
이와는 반대로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려고 깨끗하게 하신다고 했다. 새번역은 의미를 살리기 위해 손질한다고 번역했다. 깨끗하게 하거나 손질한다는 말은 앞에서 나온 열매 없는 가지를 잘라버린다는 말 앞에 아래로 라는 뜻을 가진 kata 라는 말을 붙여 만든 말이다. 배에서 짐을 내릴 때도 이 말을 쓴다. 이는 가지에 달린 마른 잎이나 잔가지들을 잘라서 아래로 떨어뜨리는 모습이다. 이는 작은 잔가지나 잎을 잘라내는 것이기에 따로 집어내지 않고 아래로 떨어지게 두는 모습이다. 주의해서 볼 것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나 열매를 맺는 가지나 동일하게 잘라내신다는 것이다. 하지만 차이는 통째로 긴 가지를 잘라 집어드는지 아니면 부분적으로 잔가지들만 잘라 아래로 떨어뜨리는지이다. 둘 다 동일하게 잘려나가는 아픔을 겪는다. 열매 맺지 못하는 가지는 완전히 전체가 잘려서 내던져지는 영원한 멸망의 아픔이다. 하지만 열매 맺는 가지는 결실을 맺기 위해 필요없는 부분들을 잘라내는 아픔을 겪는 것일 뿐이다.
3절에서 예수님은 너희는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 이라고 하셨다. 깨끗하게 되었다는 말은 2절에 나온 잘라서 아래로 떨어뜨린다는 뜻을 가진 손질하신다는 말과 같은 말에서 온 말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있던 쓸모없는 잔가지들을 말씀으로 잘라내셔서 깨끗하게 하신 것이다. 수많은 쓸모없는 곁가지들은 유대인들이 형식적으로 지키던 율법의 세부조항들이다 그러한 율법의 참 뜻인 서로 사랑하라는 것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제거해서 깨끗하게 해 주신 것이다.
물론 앞으로도 예수님의 말씀이 계속 그 안에 남아있어 계속 깨끗하게 하실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미 예수님의 말씀으로 제자들을 새롭게 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너희에게 말한 그 말로 말미암아 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이미 완전히 다 말씀하신 그 말씀은 모든 예수님의 가르침이지만 그 핵심은 13:14절에 나온 “서로 남의 발을 씻겨 주어야 한다” 라는 말씀에 있다. 서로 섬김으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제자들의 교만과 탐욕이라는 쓸데 없는 잔가지들을 잘라내 주신 것이다. 그래서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14:20절 말씀처럼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이 우리 안에 있으면 우리 안에 있는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남아있는 쓸모없는 잔가지들을 잘라내 주시는 것이다.
4절에서 예수님은 내 안에 머물러 있으라고 하셨다. 집의 그림일 때 머물러 있으라는 말은 한 집에 함께 살라는 뜻이지만 포도나무의 그림으로 말씀하시기에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연결되어 있으라는 것이다. 예수님께 연결되어 생명의 진액인 예수님의 말씀을 계속 받으라는 것이다. 그러면 나도 너희 안에 머물러 있겠다고 하셨다. 예수께서 떠나시면 예수님의 영인 성령께서 제자들 안에 계속 머물러 사신다는 것이다. 그 성령께서 생명의 진액인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생각나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목적은 예수님께 붙어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 같이 너희도 내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면 열매를 맺을 수 없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원어에서는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다는 말이나 예수님 안에 머물러 있다는 말이나 똑 같은 말이다. 예수님 안에 사는 것은 단순히 한집에서 산다는 뜻이 아니라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처럼 하나로 연결되어 산다는 뜻이다. 그렇게 연결되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붙어 있으라는 목적은 열매를 맺게 하려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미 구약의 가르침의 참 뜻이 무엇인지를 가르치셨다. 그것은 요약하면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보이지 않기에 눈에 보이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웃의 범위를 원수까지 확대하셨기에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것이 열매를 맺는 것이다. 그래서 발을 씻기는 종의 모습으로 다른 사람들 섬김으로 사랑하라고 하신 것이다. 14:31절에서 일어나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발을 씻겨주셨기에 이제 일어나서 우리도 다른 사람의 발을 씻기기 위해 일어나라는 것이다. 그것이 예수님께 붙어 있는 것이고 열매를 맺는 가지가 되는 비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