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부엌
사하시 게이죠
지진, 천둥, 화재, 아버지.
이 네 가지는
일본 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자연재해야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으니 그렇다 쳐도,
여기에 아버지가 들어간 것이 묘합니다.
그만큼 일본의 전통적인 아버지는
가족들과 정을 나누는 구성원이기보다는
권위로서 군림하고 명령하고 복종을 강요하는
구시대의 상징이었다는 뜻이겠지요.
이런 아버지는
늙어서도 그 권위를 벗지 못합니다.
하지만
가족들과 살갑게 어울리지 못해도 문제 될 게 없으니,
평생 소리 없이 그 간극을 메워가며
내조를 해온 아내가 있는 덕분입니다.
그렇지만
아내가 홀연히 세상을 먼저 떠나면
이제 일은 벌어집니다.
자식들과 두런두런 대화를 나눈 적도 거의 없고,
제 손으로 밥상을 차려본 적이 없는 늙은 아버지는
이제 자식들이
존경과 두려움으로 우러러봐야 할 존재에서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합니다.
전형적인 일본 아버지인 주인공은
딸 넷에 아들 하나를 두었지만,
여든이 넘어서 아내와 사별합니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안 아내는
늙은 남편에게 살림을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죽을 쑤는 법, 된장국 만드는 법,
계란과 감자 찌는 법
그리고 세탁기와 청소기를 사용하는 법까지.
권위로 아내를 억누르기만 했는데
늙고 병든 아내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라하는 모습은
차라리 측은하기까지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늙은 아내는 자식들에게
이런 말을 하며 안타까운 마음을 풀어놓습니다.
“아버지보다 내가 하루라도 더,
그게 안 되면
10분이라도 더 살아있고 싶어.
아버지 혼자 남으시면
불쌍하고, 미안한 기분이야,
아버지를 먼저 잘 보내 드리고 나서 죽고 싶어….”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라고 하지요.
늙은 아내는 82번째 생일을 맞게 될,
귀 어두운 남편을 남겨두고 홀연히 눈을 감습니다.
이제 남편은 홀아비가 되어
자식들에게 덩그러니 남겨졌습니다.
그렇지만 누구 하나 선뜻
아버지와 함께 살겠다고 나서지 않았습니다.
자식들은 서로 형편을 잘 알기에 눈치를 보며
그저 누군가 적극적으로 나서주기를 바랍니다.
자존심이 강한 아버지는
굳게 결심하고 이렇게 선언합니다.
“지난 엿새 동안 난 생각했어.
잘될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우선 1년 동안 이 집에서 혼자 살아볼게.
내가 만일 쓰러지면
너희들한테 신세 질게.
그때는 잘 부탁한다.”
그리하여
자식 가운데 독신인 셋째 딸의 도움 아래
아버지의 홀로서기가 시작됩니다.
딸은
아버지가 아침에 일어나시면 해야 할 일과,
저녁 잠들기 직전에 반드시 해야 할 집안일들을
꼼꼼하게 번호를 매겨가며 정리해서
집안 곳곳에 붙여둡니다.
아버지는 힘껏 그리고 요령껏
딸이 매겨놓은 번호대로 열심히 따라갑니다.
하지만 딸은 마음이 놓이지 않습니다.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살면서
더구나 귀도 어두운 늙은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나 하는 염려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고민 끝에 아버지에게
일기를 쓰시도록 권하였고,
자신과 편지를 주고받자는 제안을 합니다.
뜻밖에 아버지는
흔쾌히 딸의 제안을 수락했고,
딸은 매일 아버지를 돌봐드리지 못해도
아버지의 일기를 읽으면서
세밀하게 아버지를 관찰합니다.
그리고 딸과의 대화는 편지로 이어집니다.
마주 보며 주고받기 멋쩍은 이야기도
편안하게 나눌 수 있는 기발한 장치가 마련된 셈입니다.
아버지는 나름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딸이 순서를 매긴 대로 일어나서
제일 먼저해야 할 일을 빠짐없이 챙겼고,
쓰레기 버리는 날, 분리수거하는 날까지
아버지의 손으로 혼자서 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완벽한 주부처럼 집안일을 해 낼 수는 없는 법,
아버지는 이내
순서를 건너뛰기도 하고 생략하기도 합니다.
보다 못한 딸은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하고,
아버지는
나름대로 변명하고 사과하지만
결국 버럭 화를 내고 맙니다.
워낙 깔끔하고 순종적인 아내와
무리 없이 살던 아버지는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한
딸의 잔소리에 기가 질리고 맙니다.
급기야 부녀간에 심한 다툼이 벌어집니다.
늙은 아버지는 딸의 잔소리가 너무 지독해
‘마귀할멈’이라며 소리쳤고,
독신의 딸은
‘왜 이런 일도 못 하시냐’
라며 격하게 싸우게 된 것입니다.
딸이 너무 심하게 아버지를 옥죄는 것일까요?
달라진 자신의 위상을
감지하지 못한 아버지의 일방적인 ‘태업’일까요?
하지만 늙은 아버지에 대한 염려로
맘을 졸이는 자식과는 달리
아버지는 자신의 처지를 순순히 인정합니다.
이제 자신은
혼자 살아나갈 수밖에 없음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지요.
아버지는 일상에서 즐거움을 찾기 시작하고,
이웃과 적극적으로 교제를 하고,
자신에게 찾아온 늙음이라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려고 애를 씁니다.
아버지의 홀로서기를 꼼꼼하게 기록한 책을
읽는 내내
내 시선을 붙잡은 단어는
‘외롭다’라는 아버지의 심경이었습니다.
아무리 혼자 살아보겠다고 결심을 하지만
아내가 세상을 떠난 지 1년 동안
그야말로 고군분투하는 삶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가장 큰 적은 바로 ‘외로움’이었습니다.
결국 아버지는
홀로 생활한지 1년 만에
자식들에게 이렇게 하소연합니다.
“혼자 사는 건 이제 그만하고 싶어.
외로워서 2년째부터는
너희들하고 의논해서
누군가에게 신세 지고 싶어. 생각해봐 줘.”
다섯이나 되는 자식들 중
누구 하나라도 이젠 나설 때가 된 듯합니다.
하지만 뜻 밖에 아무도 나서지 않습니다.
독신인 셋째 딸은 이제 아버지와
솔직하게 속내를 털어놓기로 합니다.
자신도 외롭다고,
일에 치이고 젊지만 고독하기 짝이 없다고
하지만 그 외로움은
누군가와 함께 산다고 해서 해소될 것은 아니라고,
결국 아버지의 홀로서기는 2년째로 접어듭니다.
늙은 아버지의 부탁에도
혼자 사실 수밖에 없다며
고개를 젓는 다섯 자식들의 태도가
그저 놀랍기만 합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자식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아버지의 태도입니다.
“나 혼자서 외로운 걸 참으면
자식들의 가정이 평온.
행복한 가족들 사이에 내가 방해되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제일 좋은 결론이다.
혼자서 재미있게 사는 방법을 스스로 궁리해서,
자신의 생활을 조정해가도록 노력해보자.”
한물 지난 감이 있기는 하지만,
한때 한국사회에서는
명예퇴직하여 가정에 안주해버린 남편을 가리켜
영택이(영감탱이)라고 부르거나,
그런 남편이 하루에 몇 끼를 찾아 먹느냐에 따라
일식(一食)씨,
이식(二食)군, 삼식(三食)이라고 부른다는
농담이 한창이었던 적이 있습니다.
평생 남편 수발드느라 얼마나 지쳤으면
그런 호칭을 붙일까 싶어서 안타깝기도 하지만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느라 청춘을 늙혀버린
한 존재에게 그건 좀 너무한다 싶습니다.
하지만 어쩌겠는지요.
세상의 무관심을 탓하는 시간조차
아까운 것이 노후의 삶인데요.
젊을 때와 똑같이 쾌락을 맛볼 힘이 없고,
비웃는 젊은이들은 향해
여봐란 듯이 활개 쳐 보일 몸도 이젠 아닌걸요.
“역시 냉정하고 쌀쌀맞은 일본 사람답다”
는 생각이 책 읽는 내내 사라지지 않았지만
늙음이라는 삶의 부분은
결국 그 당사자인
노인이 감내해야 할 몫이라는 사실을
이 책은 내게 일러주었습니다.
아, 그렇다면
우리들의 아버지시여,
이럴수록 힘없는 자신을 탓하며 움츠리지 말고
책 속의 아버지처럼
홀로서기를 연습하면서
늙은 자신과 친해지는 것이 어떠실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