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
손택수
새 구두를 신고 다니는 며칠은 그간 잊고 지낸 발가락과 뒤꿈치와
복사뼈의 존재를 새삼 알아차리게 된다
새 구두가 유독 표 나게 가리키는
새끼발가락, 통풍으로 애를 먹인 자리다
새끼발가락의 신호는 내겐 거의 공포스러운 내란과 같은 것,
새끼발가락으로부터 시작된 불화가
허리를 타고 올라올 때 내 몸은
갈등과 불화 그리고 견딤 끝의 타협에 이르는 관계의 드라마다
구두에게도 이 기억이 어떤 식으로든 전달되리라
묵묵히 뒤꿈치의 불만을 감수하는 동안
재발할지 모를 새끼발가락의 공포에 질려 있는 동안
표 나지 않게 걸음걸이를 조절하면서
어떤 식으로든 그 과정을 기록해두리라
이렇게 잊고 산 것들, 기대고 산 것들이 있겠구나
오른쪽과 왼쪽의 가죽 주름이 잡히는
모양새가 달라지는 걸 지켜보면서
반복된 발의 운동을 주름으로 옮겨오면서
찬찬히 잊히겠지 구두는
저를 내어주고 마침내 나를 받아들이겠지
그 과정이 각필처럼 내 몸에도 새겨지리라
멀쩡한 구두를 두고 새 구두 앞이다
구두는 그 누구보다 나를 잘 알고 있다
구두쇠로 통하는 내가 구두 앞에서만은 약한 이유라면 어떨지
----애지 겨울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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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1998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으로 『어떤 슬픔은 함께 할 수 없다』『나무의 수사학』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