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우주(小宇宙)
광활한 우주는 언제나 질서와 법칙 속에서 움직인다. 밤과 낮이 어김없이 교차하고, 해는 떠오르고 저문다. 밤하늘의 별들은 은하수를 이루며 정해진 궤도를 따라 흐른다. 이처럼 거대한 대우주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자신의 질서를 지켜 나간다. 그렇다면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세계는 어떠할까. 어쩌면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이 우주의 축소판인 작은 우주, 곧 소우주인지도 모른다.
소우주인 인간은 저마다 다른 세상을 품고 살아간다. 생각도 다르고, 취향도 다르며, 마음의 깊이 또한 제각각이다. 몸속의 수많은 기관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질서를 이루고, 정신과 육체는 하나의 생명체를 움직인다. 마치 대우주의 천체들이 질서 있게 운행하듯, 우리 역시 각자의 삶을 살아가며 저마다의 궤적을 만들어 간다.
대우주의 질서가 흔들리면 거대한 재앙이 찾아온다. 홍수가 나고, 지진이 일어나며, 산사태와 같은 자연재해가 발생한다. 인간 또한 마찬가지다. 몸과 마음의 질서가 무너지면 질병이 찾아오고 삶의 균형도 흔들린다. 사회 역시 서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때 평화가 유지된다. 질서는 단지 자연의 법칙이 아니라 인간이 함께 살아가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인 셈이다.
오늘 아침, 정원의 한쪽에 있는 작은 연못을 들여다보았다. 며칠 전만 해도 대여섯 마리의 물고기만 보였는데 오늘은 열 마리 남짓이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흰색과 검은색, 노란색과 붉은색의 작은 물고기들이 무리를 지어 다니기도 하고, 홀로 유영하기도 했다. 문득 저 작은 연못도 물고기들에게는 하나의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다와 강이 그들에게 대우주라면, 이 작은 연못은 또 하나의 소우주일 것이다.
우주는 다차원의 세계라고 한다. 차원이 다른 존재는 자신보다 높은 차원의 세계를 온전히 볼 수 없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살아가지만, 모든 차원을 인식할 수는 없다. 그래서 시공간을 초월한 세계를 직접 볼 수 없는지도 모른다. 반대로 더 높은 차원의 존재가 있다면 우리의 삶을 모두 바라볼 수도 있을 것이다. 땅을 기어가는 벌레는 하늘을 나는 새의 시야를 알 수 없지만, 새는 벌레의 움직임을 내려다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일지 모른다.
『왓칭』의 저자 김상운은 '나' 안에는 또 다른 '나'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우주의 한 원소인 '나'가 육체 속에서 영(靈)으로 살아가다가 죽음과 함께 다시 우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플라톤의 이데아와도 닮아 있다. 우주에는 본래의 '나'가 존재하고, 현실의 나는 그 원형을 닮아가는 그림자와 같은 존재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나는 누구일까. 거울이 없다면 우리는 자신의 얼굴조차 직접 볼 수 없다. 거울에 비친 모습을 나라고 믿지만, 그것이 과연 나의 전부일까. 육체 너머의 나, 마음속 깊은 곳의 나, 그리고 우주와 이어져 있는 또 다른 나를 찾아가는 일이야말로 삶이 우리에게 주어진 이유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나는 내 안에 존재하는 작은 우주를 바라본다. 세상의 질서가 자연을 지탱하듯, 내 마음의 질서가 삶을 지탱하고 있는지 조용히 성찰해 본다. 소우주인 내가 바로 설 때, 비로소 대우주의 질서와도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