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Ⅲ-61]무명의 시인이 읊은 ‘오수개’
8월 13일 오후 6시, 오수의 제 우거에서, 아직은 아무 것도 그려지지 않은 <임실․오수 이야기 연구소> 개소식이 있었습니다. 임실 오수 등에 사는 모모한 지인 30여명과 함께 아담한 플래카드를 내걸고, 말하자면 조촐한 개소 기념식을 가진 것이지요. 내심 연구소의 공동소장으로 내정한 친구에게 ‘한 말씀’하라 했더니, 손가방에서 꺼낸 것이 이 연구소 출범의 가장 큰 모티브가 된 ‘오수개 의견설화’를 주제로 한 창작시였습니다. ‘시인’이 직접 낭송까지 하는데, 황감했습니다. 저를 비롯해 참석한 모든 분들이 놀라고 감격했을 것입니다. 원본을 보내달라 하니, 1편을 더 얹어 메일로 보내왔습니다. “얼쑤”. 만천하(제 소통의 반경이 200명도 채 넘지 않지만)에 자랑스럽게 공개하는 까닭입니다. 역시 "시는 진정성이 없으면 생산되지 않는다"는 제 지론이 맞았습니다. 본인은 시에 대해 써본 적도 없는 ‘문외한’이라며 겸손해 하지만, 이게 시가 아니면 대체 무엇이겠습니까? 끄적거리는 낙서이겠습니까? 맞춤법에는 어긋나지만, 요즘 젊은 친구들의 표기로 “쵝오” "짱"이었습니다. 제 친구(명문 고교 동창)입니다. 하하.
심호흡을 하고, 1천 년 전 오로지 주인을 살리겠다는 의로운 오수개의, 절체절명 심정으로 감정이입을 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일삼아 조선시대 문인들이 쓴 오수개 설화에 대한 한시와 현대 시인(정양, 이기반 등)들의 의견시(義犬詩)도 여러 편 찾아봤는데, 친구의 두 편 창작시는 특별히 남달랐습니다. 계속 정진하여 연작시를 쓰면 어떨까요? 눈으로만 감상하시는 것은 시인작가에 대한 ‘모독’일 듯 싶습니다. 조금 흥이 나시면 소리내어 낭송해 보시지요. 먼저 1편만 선보이는 것을 혜량하시압. 시 제목 <원동산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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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짐승의 무덤에 꽂은 메마른 지팡이가
죽을 힘을 다해 푸른 잎을 피우고
기어이 아름드리 거목으로 버티고 서는 것에는,
원동산 그 큰 빗돌이
천년 풍우에 글자를 다 떨구고서도
차마 눕지 못하고 저렇게 서 있는 것에는
무슨 연유가 있다.
무덤 곁 느티나무가 수 만 장 푸른 잎에
아로새기는 사연은
전날의 사람들이 돌에 새겨
오늘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단지 한 마리 짐승의 죽음이 아니다.
귀 있는 자는 들을지라
그 짐승이 제 몸을 살라 외치는 소리.
이로움을 보거든 의로운지 먼저 생각하라.
목숨보다 중한 것이 의리이고 신념이다.
은혜를 받았거든 목숨을 다하여 보답하라.
원동산 느티나무가 제 몸의 한 잎 한 잎에
푸르게 써 내려가는 소리가 그것이다.
우리 고을 백성들이
비바람이 떨군 의견비 글자를 한 자 한 자 주워
제 가슴에 다시 담아
스스로 비석이 되려는 뜻이 이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살고
그렇게 자식과 손자들을 가르칠 때라야
비로소 여기가 오수이다.
아, 오는구나
죽음의 허무를 건너
이글거리는 눈동자에 불꽃을 담고
저기 개 한 마리
메마른 우리 가슴으로 뛰어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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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아시겠지만, 오수 원동산공원에는 1천년 된 의견비가 엄존하고 있습니다. 친구의 시를 감상하다가 두 대목에 귀가 꽂혔습니다. ‘귀 있는 자는 들을지라’ ‘이로움을 보거든 의로운지 먼저 생각하라’가 그것입니다. 먼저, 앞 대목은 소생이 30여년 전 어느 신문사 편집기자였을 때, 정지용의 <향수>를 가수 이동원과 함께 부른 테너 박인수 님의 인터뷰 기사 제목을 ‘뻬다시로’(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귀 있는 자, 내 노래 들으라”라고 뽑았습니다. '귀 없는 자'가 어찌 그 노래를 들을 수 있겠습니까? 도도(滔滔)하고 도저(到底)한 헤드라인이어서 화제가 되기도 했지요.
또 한 대목은 안중근 의사의 유묵 글씨 <견리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 見危授命)이었습니다. '이로움(이익)을 보면 의(의리)를 먼저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바친다'는 뜻이지요. 안 의사님은 당신이 쓴 글처럼 그렇게 짧은 삶을 나라에 바쳤습니다. 1천년 전 살신구주(殺身救主)의 원조 오수개도 자신의 안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주인을 살려야 한다는 일념뿐이었겠지요. 위 구절은 <논어> 헌문편에 이어지는 구절이 <久要에 不忘平生之言이면 亦可以爲成人矣니라>(구요불망평생지언 역가이위성인의)입니다. ‘오래된 약속을 잊지 않고 평소의 말을 저버리지 않는다면, 이 또한 성인이라고 할 수 있다’는 뜻이지요. 여기에서 聖人(saint,sage)이 아닌 成人을 영어로 단순히 adult라고 번역하면 안될 듯합니다. AI에게 물어보니, ‘a fully realized person’(인격적으로 완성된 사람)을 추천하더군요. 오늘도 친구의 창작시를 통해 ‘한 수’ 배웠습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학생(學生)입니다. 두 번째 창작시가 궁금하지요? 오늘도 좋은 하루.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