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어가는 가을 속에서 하늘은 끝간 데 없이 푸르고
한 점 뭉게구름은 눈부시게 하얗다.
아침의 산책길에는 밤송이가 벌어진 커다란 밤나무 몇 그루 있어
그 밑에는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알밤이 수북히 떨어져있다.
주머니는 이내 불룩해지니 이 또한 예전에 누리지 못 하던 호사다.
봄의 두릅과 마찬가지로 동네사람들은 밤나무가 있음을 알고도
누구 하나 찾으러 나서지 않으니,
겨우내 다람쥐들의 양식이 되고,
여기에 불청객이 끼어들어 아침마다 한 주먹씩 축낸다.
가을이 오는 들판엔 푸른 하늘을 닮은 쑥부쟁이가 한껏 피었다.
쑥부쟁이나 구절초는 산국이나 감국과 함께 두루뭉실하게 들국화라 불러
따로이 구별하지 않으나,
안도현 시인의 말 한 마디에 쑥부쟁이와 구절초는 확실하게 배운다.
그는 어느 시에서,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 하는 너하고
이 들길을 여태 걸어왔다니
나여, 나는 지금부터 너하고 절교다!
행여 누구에게라도 절교라는 말을 듣기는 싫어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분하나니,
쑥부쟁이는 구월에 피며 한 줄기에 연보랏빛꽃이 여러 개 피어 흐드러지고
구절초는 시월에 피는데 한 줄기에 하얀 꽃 하나가 핀다.
쑥부쟁이보다 꽃도 크고 향기는 더욱 짙다.
구절초가 피어야 가을은 익는다.
오래 전,
시골로 다니며 눈여겨 본 모습 중에서 잊혀지지 않는 눈물겨운 풍경은
어스름이 깔린 마을에서 개들이 컹컹 짖는 모습이다.
집집마다 군불때는 연기는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뛰놀던 아이들도 모두 잠자는데,
길잃은 길손 하나 기웃거리며 동네에 들어서면
한 마리 개가 짖기 시작하고,
멀리에서도 개들이 따라서 짖는다.
그리고는 어느 처마 밑의 불이 밝았다 꺼진다.
이 담엘랑 시골서 살게 되면 개는 두어 마리 키워야겠다...
정선에 집을 짓고 나서는 쉴 겸 하여 진도의 벗을 찾아가니
집집마다 개를 서너 마리씩 키운다.
때마침 강아지가 있어 두 집에서 각 한 마리씩 데려왔다.
누렁이와 백구로 암수 한 쌍이 되어 잘도 논다.
어려서는 집집마다 잔반을 먹이며 개들은 한 마리씩 키웠기에
그 때 생각만 하고 데려왔는데,
이제는 식구들이 없어 잔반일랑 나오지 않는다.
다행히 농협에서 사료를 팔기에 한 시름 놓는다.
장성하며 도시에서 개를 키울 수는 없어 잊고 지낸 동물과의 교류가 시작되어
매일매일 유심히 관찰한다.
아무리 동물이라 하여 묶어 놓는다는 것은 애처롭기에 풀어 키우니
넓은 마당에서 편안한 자유를 만끽하는데,
커가며 넓어진 행동반경은 이웃학교 운동장으로 진출한다.
체육시간이 되어 아이들이 나오면 딴에는 같이 놀자 하고 달려드는데
아이들은 기겁을 하매 학교에서는 묶어달라 한다.
할 수 없이 묶이는 신세가 되어 간혹 산책길에 동행하기도 하지만
힘들이 세어져 끌고 다니기도 벅차 이도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그리고 어쩌다 목줄이 풀리게 되면 잡히면 묶임을 아는지라
요리조리 잘도 빠져나간다.
이러구러 세월은 흘러 강아지들도 태어나고
동네사람들은 태어날 적마다 잘도 데려간다.
사람이 왔을 때, 그 것도 아는 사람이 올 때와
모르는 사람이 왔을 때 짖는 소리가 다르고,
밤중에 다니는 짐승이 왔을 때의 소리는 물론 다르다.
이제는 집 안에 앉았어도 녀석들이 짖는 소리만으로
누가 왔다는 것을 안다.
그리하여 텃밭은 고라니나 멧돼지로부터도 안전하기에
베개를 높이 한다.
간혹 하루나 이틀 집을 비울 적엔 이웃영감님에게 사료를 부탁하고 돌아오면
영감님은 말한다.
“녀석들을 보면 주인이 있는지 없는지 알거든...”
하루종일 시무룩하단다.
그리고 예로부터 하는 말이 있다.
개는 주인을 닮아간다고...
숫넘 누렁이는 아짐씨들이 오면
길길이 뛰며 좋아한다.
첫댓글 ㅎㅎ 나그네님이 아짐씨들 반기는걸 누렁이한테 들켰군요~ㅎㅎ
어렸을때 늘 강아지와 함께여서 지금도 똥강아지들 보면 너무 이뻐요~
진짜로 기르는 개 인상도 주인 닮는것 같아요~ㅎㅎ
시골출신인 저도 쑥부쟁이와 구절초 구별 못할듯 하네요
담에 보면 유심히 살펴봐야겠네요..
깊어가는 가을..정선은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그 녀석 앞에서는 내색하지 말았어야 했는데...ㅎ
지금 정선엔 쑥부쟁이가 만발했습니다.
나그네님 덕분에 무심히 봐오던 들꽃들을 오늘은 유심히 보고 왔네요^^
고향 가고 오는길에 만발한 쑥부쟁이와 구절초가 새삼스레 정답게 보였어요
가꾸지 않아도 그토록 어여쁘게 만발해서 도심에 찌든 눈과 마음을 호강시켜 주는것이
기특해서 내내 눈길을 주고 왔네요^^
어쩌면 이렇게 계절따라 예쁜 꽃들이 피어날까요? 살수록 감탄하게 되네요 ㅎ
가슴저리게 아름다운 가을에요~^^
이래서 글을 쓴 보람이 있습니다.ㅎ
어제 자전거로 여기저기 돌아보니 구절초도 피었더군요...
이 아짐씨 가거들랑
더 길길이 뛸랑가여?~~~ㅎㅎㅎㅎㅎ^^*
이제 그만 뛰라 했더니 그러겠다 합니다.ㅎ
난 아직도 쑥 이나 구절초 분간 못하는데 절교 감 이네요^^
그 걸 모른다구 절교라니 그 분도 너무 심했어요...ㅎ
오랜만에 소식 보니 반갑네요. 정선은 벌써 겨울 이 가까워 오는 거죠? 대광령에 서리내렸다는 소식이던데...
건강하시고 늘 행복하세요.
이 곳도 새벽엔 10도 이하로 내려가기에 난로에 불을 피웁니다.
ㅎㅎ 진돗개라..그리 잘 아나 봅니다..추석 잘 지내셨는지요? 상상속에 시골은 늘 그리움이지요.
네, 잘 지냈습니다.
쑥부쟁이, 구절초, 개 두어 마리 등 등~~
너무도 정겨운 단어들이네요
정선 나그네님의 글에서 고향 같이 정겹고 푸근함을 맛봅니다.
늘 좋은글 감사해요~
조석으로 차가워진 기온에 건강하시길요~~
님께서도 내내 건강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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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일은 풀어놓지 못 한다는 것...
벌써 난로로 피운다니 역시 강원도 오지중에 오지 정선은 공기도 다른데보다 차겁고 신선하고 좋은동네,정선나그네님 건강하세요,조금있으면 단풍애기 나오겠네요,감사합니다 정선나그네님,
네, 기다리세요. 단풍은 이제 물들려 합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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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