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세계1위’ 삼성도 반도체 감산
[삼성전자 어닝쇼크]
1분기 영업익 6000억, 96% 감소… 반도체 한파에 14년만에 최저실적
“의미있는 수준까지 메모리 감산” 삼성전자 주가 4.3%↑ 6만5000원
7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의 모습. 삼성전자는 이날 1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약 96% 하락했다고 밝혔다. 2009년 이후 14년 만의 ‘실적 충격’을 기록했다. 뉴스1
반도체 한파의 직격탄을 맞은 삼성전자가 메모리 반도체 감산을 공식화했다. 반도체 사업 적자의 영향으로 올해 1분기(1∼3월)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5.8% 감소하자 ‘인위적 감산은 없다’는 기존 입장을 바꿨다.
삼성전자는 1분기 연결 기준 매출 63조 원, 영업이익 6000억 원의 잠정 실적을 거뒀다고 7일 공시했다. 직전 분기인 지난해 4분기(10∼12월)보다 매출 10.6%, 영업이익 86.1%가 감소했고, 지난해 1분기보다는 매출 19.0%, 영업이익 95.8%가 줄었다. 이번 실적은 최근 증권가에서 예상했던 영업이익 전망치(1조 원)를 밑돈다. 영업이익이 5900억 원에 그쳤던 2009년 1분기 이후 14년 만의 최저 실적이다.
삼성전자는 이날 사업 부문별 실적을 공개하진 않았지만 업계에선 반도체사업(DS) 부문에서 3조∼4조 원대 적자를 기록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보기술(IT) 수요가 회복되지 않아 메모리 반도체 가격 하락세가 계속된 탓이다. 삼성전자는 IT 수요가 여전히 늘어나지 않고 있고, 반도체 고객사들이 재무 건전화를 위해 반도체 재고 확보량을 줄이면서 부품 부문 위주로 실적이 악화됐다고 설명했다. 시스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실적도 경기 부진 및 비수기 영향으로 전 분기 대비 하락했다.
삼성전자는 이날 반도체 감산을 공식화했다. 삼성전자는 “난도가 높은 다음 단계의 공정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예상되는 생산물량 감소에 대비해 물량을 확보해 왔다”며 “공급 물량이 확보된 제품을 중심으로 의미 있는 수준까지 메모리 생산량을 하향 조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부터 감산을 시작한 SK하이닉스, 마이크론, 키옥시아 등에 이어 메모리 반도체 점유율 1위 삼성전자까지 감산에 동참하는 것이다. 다만 삼성전자는 “단기 생산 계획은 하향 조정했으나 중장기적으로 견조한 수요가 전망된다”며 “필수 클린룸 확보를 위한 인프라 투자는 지속하고, 기술 리더십 강화를 위한 연구개발(R&D) 투자 비중도 확대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삼성전자의 감산 공식화 소식이 전해지자 삼성전자의 주가는 전일 대비 4.33% 오른 6만500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메모리 수급 상황이 개선돼 가격 하락세가 진정될 수 있다는 기대감에 SK하이닉스 주가도 6.32% 오른 8만910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삼성전자는 이달 말 사업부문별 실적을 포함한 확정 실적을 발표할 예정이다.
삼성전자, 1분기 영업익 96% 급감… 감산으로 반등 노린다
분기마다 수조원대 재고 쌓여… 14년만의 최악 성적표에 전략 수정
경쟁사들은 작년부터 감산 돌입
TSMC 영업이익은 10조원 예상
“반도체 한파가 예상보다 더 추웠다.”
반도체 업계는 올해 1분기(1∼3월)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대해 이같이 평가했다. 7일 삼성전자가 14년 만에 최악의 성적표를 받고, 기존 전략을 선회해 메모리 반도체 감산을 택한 배경에는 이처럼 우려보다 더 나빴던 반도체 시장이 있다.
● 예상보다 추운 반도체 한파에 삼성도 감산 동참
지난해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 지정학적 요소가 더해지며 PC, 모바일, 서버 등의 정보기술(IT) 분야 반도체 수요가 전반적으로 주는 반도체 혹한기가 시작됐다. 메모리 반도체 가격 하락 전망이 이어졌다. IT 기업들은 반도체 주문을 줄이고 쌓여 있는 재고를 소진하며 가격이 더 떨어지길 기다리는 판단을 했다.
이렇게 수요가 하락하면 반도체 기업들은 공급을 줄이는 방법을 택한다. 웨이퍼 투입량을 줄이거나 라인 가동을 멈춰 인위적 감산을 하는 것이다. SK하이닉스, 마이크론, 키옥시아 등 메모리 반도체 제조사들은 지난해 3분기(7∼9월) 감산을 시작했다.
메모리 점유율 1위 삼성전자는 공정 전환에 따른 기술적 감산 외에 ‘인위적 감산은 없다’는 입장을 지켜왔다. 2, 3위 업체들과 격차를 벌려 점유율을 늘린 뒤 침체 이후 찾아올 상승 국면에 올라타겠다는 전략이다. 삼성전자는 2000년대 들어 몇 차례 발생한 반도체 가격 하강 국면에서 한 번도 인위적인 감산을 실시한 적이 없다.
하지만 적자와 재고가 계속 쌓이자 삼성전자도 결국 감산 대열에 합류했다. 반도체사업(DS) 부문 재고자산은 2021년 4분기(10∼12월) 16조4600억 원에서 지난해 4분기 29조600억 원으로 늘었다. 분기마다 수조 원대 재고가 쌓인 셈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감산을 선언하면 메모리 가격 하락 속도가 더뎌질 것이다. 경쟁사들이 추가 감산할 여지도 있다”며 “이제 메모리 재고를 늘릴지 결정할 숙제가 수요처인 IT 기업들에 넘어간 셈”이라고 말했다. IT 기업들은 가격 상승 국면에 접어들면 재고를 충분히 확보하기 위해 주문량을 경쟁적으로 늘릴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반도체 업계에서는 2분기까지는 가격 하락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삼성전자는 현재 DDR4에서 DDR5, LPDDR5 등 난도가 높은 선단공정으로 전환 시 생산량이 감소하는데 그 시점에 찾아올 상승 국면에 대응하기 위한 물량 확보를 모두 마쳤기 때문에 감산에 동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 최악의 시나리오는 면해
삼성전자가 ‘실적 충격’을 기록했지만 최악의 시나리오로 거론된 ‘분기 적자’는 면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최근 증권가는 삼성전자 실적전망을 하향 조정해왔는데, 일부 증권사는 1분기 680억 원의 적자를 볼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했다.
NH투자증권은 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에서 4조2900억 원의 영업손실을 냈지만 모바일·네트워크 사업이 3조2800억 원의 영업이익을 거뒀고 TV·가전 사업은 1000억 원, 디스플레이 1조2200억 원, 자동차부품·오디오 자회사 하만은 2700억 원의 영업이익을 거둔 것으로 분석했다. 증권가에서는 TV 판매가 선전했지만 생활가전은 부진했을 것으로 전망한다.
한편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위 대만 TSMC는 올 1분기에도 지난해 1분기(약 9조6800억 원)와 비슷한 74억3900만 달러(약 9조8120억 원)의 영업이익을 올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제품을 만들어 파는 메모리 사업과 달리 사전 주문을 받은 뒤 생산하기 때문에 반도체 하강 국면의 영향을 덜 받았다는 분석이다.
홍석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