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춘천 중도(백악산 아사달 유적)의 탄소연대 BC 8~9세기에 철기 사용과 적석 목관묘 확인됨
[소제목] 춘천 중도동 유적 방사성탄소연대(AMS) 데이터의 분석과 고대 분묘·철기 기술 전파론
1. 서론: 기존 형식학적 연대관의 모순과 AMS 절대연대의 학술적 의의
춘천 중도동 유적 종합고찰(김권중, 2020: 76~81)을 비롯한
기존 다수의 주류 연구에서는 중도 유형 유구들의 연대를 비정할 때, 과학적 방사성탄소연대 측정치(BP/cal BC)보다
유물의 형태적 유사성에 의존하는 형식학(Typology)을 우선시하는 경향을 보여왔습니다.
그러나
본고에서 분석한 중도 유적의 각 구역별(A·B·C·D·F·G) 발굴조사 보고서 부록의 AMS 절대연대 일람표를 전수 분석한 결과,
기원전 20세기~기원전 12세기(전반기 약 1/2) 및
기원전 12세기~기원전 5세기(후반기 약 1/2)의 정밀한 누적 확률 분포가 확인됩니다.
특히 C구역 등에서 확인되는
기원전 5700년~2700년 사이의 초고연대 데이터는 유적의 자생적 전통을 방증함에도 불구하고
학계에 의해 '이상치(Outlier)'로 배제·침묵되는 방법론적 모순을 노출하고 있습니다.
2. 본론: 구역별 AMS 절대연대 검증 및 기술사적 재해석
① C2구역 및 C구역: 초기 철기 기술의 자생성과 적석목관 구조의 실체
(1) 사료 및 보고서 출처:
《춘천 중도동 유적 발굴조사 보고서 Ⅱ-13 (C2구역)》, Ⅵ. 부록·405~407 / Ⅱ-3 (C구역), Ⅵ. 부록·168~180
(2) 핵심 절대연대 데이터:
C2-1-2호 석곽 하부 (시료 KN-0000): 3,110 ± 40 BP (cal BC 14세기)
1호 분묘 주변 판축 기초 (시료 KN-0000): 2,510 ± 45 BP (cal BC 8~6세기)
C2구역 분묘 11호 (철제 이식 출토): 832-807 cal BC
C2구역 분묘 16호 (철정 6점 출토) 및 인접 8호 유구: 818-800 cal BC
(2) 학술적 재해석: 위만조선(BC 3~2세기)에 이르러서야 한반도에 철기가 전래되었다는 통설과 달리,
중도 C2구역 분묘 11호 및 16호의 층위학적 연대는
기원전 9~8세기에 이미 고도의 강철 제련 기술(철정 및 철제 귀걸이 생산)이
중도 지역에서 독점적으로 시작되고 있었음을 확인됩니다.
특히 관(棺)을 고정하는 하이테크인 철정(철제 관못) 6점의 출토와
기원전 14세기부터 이어지는 판축 기초 연대는,
기원전 12세기 문을 연 춘천 중도 '백악산 아사달'이
적석목관(나무방을 짜고 돌을 채우는 공법) 묘제가 완성 시켰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물증입니다.
② A구역: 지표유물(비파형동검·철제도검)의 공존과 남하 교통로의 기원
(1) 사료 및 보고서 출처:
《춘천 중도동 유적 발굴조사 보고서 Ⅱ-1 (A1구역 및 A구역)》, Ⅵ. 부록·312~315, 332~334, 340~350
(2) 핵심 절대연대 데이터:
A1구역 거대 고인돌 및 대열유구 하부: 3,050 BP (cal BC 14세기), 2,980 BP (cal BC 11세기)
A2구역 분묘군 및 기저층: cal BC 1400 ~ 1000년(2점), cal BC 800 ~ 540년(11점)
A4·A5구역 및 후기 층위: cal AD 70 ~ 340년(8점), cal AD 60 ~ 260년(9점)
(3) 학술적 재해석: A1구역 29호 지석묘에서 비파형동검이 출토되고,
A구역 전체(부록·415)에서 철도자, 철겸 등 철제유물과 비파형동검, 동경편(청동거울 조각)이
동일 층위에서 교차 출토되는 양상은 청동기 후기와 초기 철기가 단절 없이 융합되었음을 뜻합니다.
기원전 14~11세기의 선행 데이터와 기원후 원삼국~삼국시대(AD 1~500년, 23점) 데이터의 집약은,
기원전 3세기 초 대홍수로 춘전 중도가 함몰된 직후
이 지표유물(동검·도검) 기술을 쥔 세력이 한반도 중남부로 대이동을 감행하며
[춘천 ➡️ 한강 ➡️ 이천 ➡️ 홍천 ➡️ 대전 ➡️ 경주/익산]으로 이어지는
기술 전파 루트를 개통했음을 물증으로 뒷받침합니다.
③ 순환도로부지 및 B·H·G구역: 기후 격변(대홍수)과 세력 분화의 지표
(1) 사료 및 보고서 출처:
《발굴조사 보고서 부록》 Ⅵ. 부록·40~61 (B·H구역) / 507~511 (G2구역) / 516~533 (순환도로부지)
(2) 핵심 절대연대 데이터:
순환도로부지 수치 밀도: cal BC 550/500년 이전 데이터 31개 확정 / 550/500년 이후 데이터 6개로 급감.
H구역: cal BC 800 ~ 500년 (12개), cal BC 500 ~ 400년 (7개) 집중.
G2구역: cal BC 170 ~ 1년(1개), cal AD 1 ~ 250년 (7개) 급증.
(3) 학술적 재해석: 순환도로부지에서 기원전 6~5세기 이전 데이터가 31개로 압도적이다
그 후대 연대가 6개로 급락하는 현상은 유적의 중심 기능이 특정 시점에 마비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고고학적 토층 탐색에서 확인되는 'Ⅲ층 대홍수 퇴적층'의 연대와 완벽히 맞물리며,
기원전 3세기 초 발생한 초대형 대홍수로 중도 본진(백악산 아사달)이 함목되자
대대적인 민족 이동이 촉발되었음을 증명합니다.
이후 G2구역 및 B3·B4구역에서 기원후(AD 100~400년) 데이터가 새롭게 집중되는 양상은,
남하한 기술 지배층이 정착하여 원삼국~삼국시대 국가 형성의 동력으로 작용했음을 보여줍니다.
④ D3구역 및 F구역: 인골 데이터와 천장 묘제 역학의 3분 구조
(1) 사료 및 보고서 출처:
《발굴조사 보고서 부록》 Ⅵ. 부록·157 (D3구역) / 457~461 (F구역)
(2) 핵심 절대연대 데이터:
D3구역 5호 고인돌 피장자 인골: 751-682 cal BC (23.5%), 592-408 cal BC (61.5%)
F구역 기저층: cal BC 2600 ~ 2300년 (3개), cal BC 2300 ~ 2000년 (4개)
(3) 학술적 재해석: D3구역 5호 고인돌 인골이 가리키는
기원전 8~5세기는 단군조선 백악산 아사달의 최고 전성기 지배층 생존 연대입니다.
이들이 수천 년간(F구역 등 신석기~초기청동기 기원) 다져온 적석석관·적석목관의 결합 공법은
대홍수 이후 한반도 중남부의 지리적 환경 및 재지 전통과 만나며
천장 구조의 명확한 기하학적 4대 분화를 이룩해 냅니다.
3. 결론: 천장 마감 공법의 기하학적 분류와 신라 황남대총으로의 종착
본고에서 방사성탄소연대(AMS) 절대연대와 출토 유물(철정·동검)의 선후 관계를 추적한 결과,
춘천 중도 백악산 아사달의 원초적 하이테크는 대홍수 이후 남하하여
고대 아시아 분묘의 천장 구조를 역학적으로 사분(四分)했음이 객관적으로 도출됩니다.
【 춘천 중도 백악산 아사달 】 (BC 5000년경 적석석관 발원)
➡️ BC 12세기 철제 관못 · 정통 적석목관 발생 ➡️ [ BC 3세기 초 대홍수 함목 및 남하 ]
1) 【 사다리꼴 평천장 】
(1) 대상 유적: 하남 감일동 고분군(한강 부여)
(2) 대륙의 원류: 대륙 하북성 역현 장당경 방식의 '평천장 전축공법(벽돌방법)' 설계
(3) 공법적 특징: 아치가 불가능한 벽돌 고임 공법(말각조정)을 한반도 한강 유역의 돌로 전환(재질 변경)하여
내벽을 좁혀 쌓고(사다리꼴), 상부를 판석으로 마감한 구조입니다.
이들이 풍납토성 배후지를 장악하자 원래 한강 석촌동의 선행 적석목곽묘를 쓰던 중도 세력이 이천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2) 【 곡선형 아치형 (돔) 】
(1) 대상 유적: 영산강 유역 궁륭식 고분군
(2) 대륙의 원류: 대륙 하북성 졸본부여의 전한(西漢) 시기 완벽한 '이중 아치(이중 홍예) 전축공법' 설계
(3) 공법적 특징: 전한 시기부터 하북성 졸본부여에서 완성되었던 기하학적 이중 아치 도면을 그대로 계승하되,
영산강 유역의 자연석으로 '재질 변경'하여 구현해 낸 돌축 이중 아치(궁륭식) 구조입니다.
이 기술이 중도 지표유물인 세형동검·환두대도와 함께 대한해협을 건너 일본 규슈의 야요이 및 고분 문화의 시원이 되었습니다.
3) 【 수평형 덮개돌 】
(1) 대상 유적: 가야 대형 수혈식 석곽묘 구조
(2) 대륙의 원류: 대륙 사천성 야안시(민족회랑 권역)의 ‘거대 판석 덮개돌(개석) 공법’ 설계
(3) 공법적 특징: 복잡한 아치나 고임 없이 수직 벽체 위에 거대 판석을 통째로 얹어 상부 토압을 버티는 구조입니다.
대홍수 이후 사천성 야안시에서 이주한 김수로 세력이 한반도 영남의 구간(九干) 세력과 융합하여,
낙동강·남해안의 풍부한 석재를 가지고 똑같은 ‘가야식 거대 덮개돌 수혈식 석곽묘’의 대형 아키텍처를 완성한 것입니다.
4) 【 신라식 적석목관묘 / 적석목곽묘 】
(1) 대상 유적: 경주 황남대총(돌무지덧널무덤)
(2) 결합의 본질: 내부는 춘천 중도의 정통 적석목관 구조, 외부는 경주 석씨 세력의 대형 토광묘 형식의 결합입니다.
(3) 공법적 특징: 황남대총 이전 경주 석씨 신라의 주류 무덤은
돌을 쓰지 않고 흙 속에 나무방만 안치하던 순수 지하식 토광묘관묘(목관·목곽묘) 체제였습니다.
그러나 4~5세기에 춘천 중도(백악산 아사달) 세력이 경주 평야로 진입해 기존의 석씨 지배 세력을 대체·통합해 나갑니다.
이 과정에서 중도 세력은 외래 선진 기술에 대한 재지인들의 문화적·정치적 저항을 줄이기 위해 타협 전략을 택했습니다.
-. 무덤의 핵심 알맹이인 내부 매장 주체부는
춘천 중도(백악산 아사달) 고유의 '지상식 적석목관(목곽 및 철제 관못 결합)' 형태로 구성하고,
-. 무덤의 겉모습은
석씨 왕조가 수백 년간 지켜온 전통적인 '대형 토광 및 봉토(흙무덤)' 형식으로 마감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