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알고리즘 덕에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명작 '쉰들러 리스트'(1994)를 다시 봤다. 요전에 소개했던 미스터리 스릴러 시리즈 '리플리 더 시즌'의 각본 겸 연출을 맡은 이가 '쉰들러 리스트' 각본을 쓴 스티븐 제일리언(자일리언)이었으며, 그 전에 소개했던 '잉글리시 페이션트'의 주인공 랄프 파인스가 이 영화에 다시 없는 악인 아몬 괴트 수용소장으로 등장하니 알고리즘이 자연스러웠다.
누구나 다 아는 얘기의 영화를 힘겹게 봤다. 극장에서라면 러닝타임 194분을 꼼짝 않고 지켜봤겠지만 스트리밍을 잠시 멈췄다가 다시 보는 등 네 차례정도로 나눠서 시청했다. 벚꽃 절정기라 밖에는 흐드러진 꽃들의 잔치가 펼쳐지는데 왜 이리 자청해 힘겨워하는지 스스로 묻기도 했다.
서너 차례 이상은 더 봤을 영화인데도 마치 처음 본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장면들이 적지 않았고, 그 역사적 맥락을 공부하기 위해 위키피디아나 나무위키를 검색해가며 봤다.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유대인 대량학살(홀로코스트) 80년이 흐른 마당에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변신한 유대인 국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비슷한 악행을 서슴지 않는 역사적 맥락을 살피려는 데 있었다. 아울러 유대인에게 온갖 악행을 저지른 나치와 독일인들의 집단적 광기를 이해하는 것이 이스라엘이 미국의 묵인 아래 저지른 횡포와 만행의 원인을 되짚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적어도 나는 그 관점에서 호주 작가 토머스 케닐리의 원작 '쉰들러의 방주'를 스크린에 옮긴 '쉰들러 리스트'를 꼼꼼히 입체적으로 보려 했다.
그런 점에서 많은 이들의 뇌리에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는 명장면, 붉은 코트를 입은 소녀의 얘기로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겠다. 이 소녀를 연기한 이는 1989년생 폴란드 여배우 올리비아 다브로프스카(35). 그녀는 스필버그 감독과 약속했다. 18세가 돼야 이 영화를 관람하겠다는 것이었는데, 그 약속을 어기고 11세 때 영화를 봤다는 후일담이 전해진다. 천진한 소녀가 참담한 죽음을 맞은 장면까지 찍었는데 이를 나중에 보고 끔찍하다고 느꼈지만 조금 더 나이가 들면서 자랑스러워했다.
다브로브스카는 도서관 사서 일을 하며 구조견과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해 왔다. 지난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와의 국경 근처에서 난민들을 돕는 자원봉사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상당한 화제가 됐다. 그녀는 더욱 많은 이들이 우크라이나를 돕는 일에 자원봉사하는 데 자신의 이름과 얼굴이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바랐다.
다브로브스카는 이 명장면에 등장하게 된 사연을 털어놓았다. 당시 70만명의 크라쿠프 시민 가운데 절반 이상이 이 영화의 엑스트라로 출연할 정도로 많은 연기자가 필요했던 덕분이라고 했다. 또 오디션 끝에 선발된 자신은 스필버그에게 이유를 묻지 않았지만 부끄러워하지 않고 겁내지 않았던 덕분이었던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스필버그의 부모 역시 우크라이나 유대인이었다. 2018년 재개봉 당시 스필버그는 집단적 증오가 조직화되고 산업화되면 학살이 일어난다면서, 지금이 (개봉 당시보다) 더욱 위험한 시대라고 발언했다. 견강부회인지 모르겠으나 그 뒤 세계의 모습은 어느 정도 들어맞았다. 코로나19 팬데믹에 우크라이나 전쟁, 가자지구 참상까지 그야말로 인류는 허우적대고 있다.
체코 출신의 비정한 사업가이며 나치 당원인 오스카 쉰들러(1908~1974)가 유대인 1200여명을 구하는 과정을 그린다. 그는 왜 그렇게 힘들게 모은 재산으로 유대인 생명을 구하는 데 열심이었을까? 영화는 그를 비정한 사업가, 다시 말해 철저히 이윤을 노려 행동하는 자본가, 사업가로 그린다. 여자를 엄청 밝히며, 자신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한 유대인 노인이 감사의 뜻을 밝힌다며 몸에 손을 갖다대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가 유대인들의 경력을 위조하면서까지 노동자로 받아들인 이유는 폴란드인보다 값싼 임금 때문이었다. 그 스스로 종전 후 유대인들을 착취한 전쟁범죄자임을 유대인 노동자들 앞에서 인정했다. 우리로 치면 일본 제국주의에 부역한 셈인데 그의 공과를 어떻게 재량할 것인가 하는 고민을 낳는다.
그는 유대인들에게 끔찍한 악행을 일삼는 나치 장교들과 어울려 술을 퍼마시고 여인들을 공급하며 와인과 코냑 등 선물을 갖다 바친다. 그들과 썰렁한 농담을 해대며 그들의 만행을 못 본 척한다. 하지만 무척 힘들어한다. 그가 여자의 몸에 탐닉하는 것도 그런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는 의도인 것처럼 영화는 그린다. 지겹고 엄혹했던 일제 부역자들의 고뇌와도 통하는 대목이 있어 보였다.
원작자 케닐리는 1980년 로스앤젤레스 베벌리힐스에서 가죽제품 사업을 하던 레오폴드 페퍼버그(영화에도 상당히 비중있게 그려지며 나중에 쉰들러 묘비를 찾아 돌을 올려놓는 장면에도 얼굴을 비친다)를 찾아와 쉰들러란 의인에 대한 얘기를 듣고 소설을 써 1982년 출간했다. 이듬해 스필버그는 먼저 판권을 구입한 마틴 스콜세지에게 판권을 사들였다가 한참 뒤 영화를 만들게 됐다. 스필버그는 직접 페퍼버그도 만나 10년 뒤에 영화를 만들겠다고 했는데 그 약속을 지켰다.
폴란드 촬영 당시 스필버그를 알아본 폴란드 노인이 현장에 다가와 스필버그를 죽일 듯이 노려 보며 폭언을 퍼부었다. "나는 히틀러 자식이 싫지만 유대인은 더 싫어. 왜냐하면 네놈들은 히틀러는 악마, 유대인은 불쌍한 버러지, 이따위로 떠벌리는 영화나 찍고 자빠졌잖아. 그렇게 너희는 언제나 자신들 유대인만 가엾다고 생각한다고! 당장 꺼져! 구역질 나는 놈들아!" 스필버그는 하얗게 질려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고 주연 배우 리암 니슨이 공박했지만 소용 없자 경호원들이 완력으로 노인을 끌어냈는데 다른 폴란드 노인도 스필버그를 향해 목매달아 죽으라는 제스처를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영화 막판에 쉰들러의 여성 노동자들이 아우슈비츠로 잘못 이송되는 장면에서 폴란드 꼬마아이가 목을 긋는 장면과 겹쳐 보인다.
1939년 유대인들을 게토에 가두는 과정을 그리며 동네 아이들이 몰려와 "유대인 꺼져"라고 소리 지르는 장면도 영화 초반에 나온다. 쉰들러가 떠난 뒤 땅바닥에 누워 잠을 자던 유대인들 앞에 소련군 장교가 나타난다. 그에게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묻자 "동쪽으로 가지 않을 거다. 당신들을 싫어한다. 서쪽으로 가는 것도 권하고 싶지 않다"고 답한다. 유럽의 유대인 혐오가 얼마나 뿌리깊은지, 나치 만행이 명백해진 시점에도 여전히 유대인 혐오가 만만찮음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작전이 어느 정도 스스로 증명해주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독일과 나치를 분리하듯 강경 시오니즘에 편승한 네타냐후 총리의 전쟁 내각과 유대인은 별개로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치 고위 장교들은 상당수 실존 인물이다. 요제프 멩겔레(아우슈비츠에 잘못 이송된 쉰들러의 여성 노동자들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는다)에다 루돌프 헤스(솔직히 누가 누구인지 잘 모르겠더라)도 등장한다. 율리안 셰르너는 슈츠슈타펠의 상급 대령으로 쉰들러
가 영화 초반 레스토랑에서 술로 접근하는 인물이다. 신사인 척 굴지만 유대인을 극도로 혐오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학살 증거를 인멸하려고 유대인들을 시켜 소각장에 썩어가는 시신들을 던져 넣으라며 반쯤 미쳐 날뛰며 권총을 쏴대는 나치친위대(SS) 하사가 나오는데 알베르트 후야르(Albert Hujar)란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그렸다. 후야르는 정신이 불안정한 사이코패스로, 학살 행위를 매우 즐겼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자제심을 잃고 아무에게나 총질을 하는 광적인 행동까지 보인 바 있다. 쉰들러가 열차에 수용된 유대인들에게 소방호스로 물을 뿌려주자고 하자 "어디 불 났어요"라고 묻고는 키득거린 그 인간이다.
영화 종반, 괴트 소장이 일장 연설을 한다. "600년 전 위대하다고 칭송받던 (폴란드 국왕)카지미에슈가 혹사병으로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자 유럽을 떠돌던 유대인들을 크라쿠프에 불러 모아 빈손으로 온 이들이 엄청난 번영을 이뤘는데 오늘(1943년 3월 13일) 새 역사를 쓰자. 나중에 역사는 크라쿠프에 유대인은 없었다고 쓸 것이다." 그리고 이듬해 4월 유대인의 시신을 발굴해 소각한 장소가 나중에 후요바 언덕(Hujowa górka)로 이름지어졌다. 넷플릭스 자막에는 '추호와 고르카'로 옮겨졌다.
영화 마지막 혼자 쉰들러의 묘비에 묵념하는 이는 니슨이 맞는 것으로 보인다. 큰키에 큼직한 체구라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이제야 음악 얘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독일군이 유대인들이 은신한 건물에 다시 들어가 청진기로 천장 벽을 짚어보다가 발각된 이들을 모조리 죽이는 장면들에 독일군 장교가 아무 감정도 없는 듯한 표정으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장면이 교차 편집된다. 총소리와 피아노 연주를 함께 듣게 된다. 이 때 한 병사가 바흐 음악이냐고 묻자 다른 병사가 모차르트라고 답하는 장면이 나온다. 위대한 음악가를 낳은 독일이 이런 말도 안 되는 학살극을 벌이고 있고, 또 문명국가인 척하는 독일군 병사가 실상은 무지렁이임을 풍자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바흐의 영국 모음곡 2번 전주곡이 맞다.
J.S. Bach: English Suite No. 2 - Sokolov / 바흐: 영국모음곡 2번 - 소콜로프 (youtube.com)
일전에 앤서니 밍겔라 감독의 '잉글리시 페이션트'(1999)를 소개하며 독일군에 파괴된 수도원에서 쥘리엣 비노슈가 피아노를 발견해 연주하자 폭탄 제거를 하는 영국군 장교가 달려와 말리는 장면을 언급했다. 비노슈가 '바흐만 연주하면 된다'며 웃는데 왜 이런 대사가 나왔는지 궁금하다고 밝혔다. 밍겔라 감독이 일종의 오마주로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물론 증거는 없다.
이 영화의 음악은 존 윌리엄스가 맡았는데 아이작 펄만이 바이올린 연주를 들려주는 메인테마는 누구나 기억할 것이다. 작곡자 본인도 무척 마음에 들었는지 손도 조금 보고 다른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에 담긴 곡들을 합쳐 바이올린 연주곡을 만들었다.
결론이다. 영화 메시지는 마지막 탈무드에 나오는 한 구절, '한 사람을 구하는 것은 세계를 구하는 것'에 압축된다. 불교의 오랜 가르침 '세계일화'와도 통하는 것이 있다. 그 뒤 자막으로 '오늘날 폴란드에 살아남은 유대인은 4000명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쉰들러가 살린 유대인 후손은 6000명이 넘는다'가 나온다. 80년이 흐른 지금, 그들은 쉰들러의 뜻을 이어가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