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거차점"(鶯歌車站)
"잉거(鶯歌)역은 "대북차점"(台北車站)에서 전철로 대략 30여분 정도 걸린다.
여기서 천천히 도자기 마을로 걸어간다.
가는 길에 "문화재"라고 수리하는 집이 보인다.
"汪洋居"(왕양거)라고 집위에 써 있는데 "왕양"이란 사람의 집인지 아니면 숙박업소인지는 모르겠다.
한참 내려가 큰 사거리에 오니 오른쪽으로 "鶯歌城"이라고 써 있는 굴다리가 보인다.
당연히 그쪽으로 가는 줄 알고 가는데 우리 "정 대장"님이 반대편으로 가면서 부른다.
이런 간판이 있는 집앞에서 이쪽으로 오란다.
"宜蘭土包仔"(이란투빠오즈)라고 만두가게다.
여러가지 만두뿐만 아니라 이집에서 만든 음료수도 파나보다.
우리 "정 대장"님 이곳이 아주 유명한 집이라며 특별히 맛보라고 한 개씩 사 준다.
고기만두인데 고기를 갈아서 만든 것인지 마치 우리나라 만두속 같은데 즙이 흥건하다.
맛은 내 입에는 그리 당기지는 않는데 아마도 아침을 너무 많이 먹어서 인듯하다.
나중에 이 글을 쓰면서 안 사실인데 길 건너에도 똑같은 집이 있단다.
부부가 같이 하다가 이혼을 하여 부인이 건너편으로 가서 같은 가게를 냈단다.
앵무새가 노래한다는 뜻의 잉거(鶯歌)마을.
잉거(鶯歌)지역 어느 산에 앵무새 모양의 큰 바위가 있었는데, 그 바위 이름이 "잉거석"(鶯歌石)이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 지방 이름이 "잉거"(鶯歌)가 되었다고 한다.
도자기 마을로 올라가는 길.
아직 아침 일찍이라 문을 연 상점이 몇 안되는데 나는 도자기보다 저 위에 걸린 식물들에 더 관심이 간다.
고온다습한 지역이라 저렇게 쉽게 자란다.
도자기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데다가 사진찍지 말라는 경고문까지 있다.
이건 뭘까?
물펌프는 우리의 옛날 것보다 훨씬 더 과학적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우물위에 앉아 있는 여인은?
이 우물이 100년이나 된 우물이라고 한다.
아직 식용으로 가능한지 몰라도 뚜껑의 상태로 봐서는 식수는 아닐듯하다.
어찌됐던 이 철녀(鐵女)는 아주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다.
가압기(加壓器)라고 하는데 아마도 도자기를 만드는 흙을 반죽하여 눌러 뽑아내는 기계인듯하다.
일본식 정원같아 들어가 봤다.
물주는 아이가 있고,,
그 앞에는 참새 두마리가 앉아 있다.
모두 도자기같다.
옆에는 멋진 연못도 있다.
흥미로운 것은 돌밑에 큰 물고기가 숨어 있는데 모양이 철갑상어 인듯하다.
나는 흥미가 없어 그냥 허전한 길을 두바퀴나 돌았다.
대만은 신호대기선 앞에 오토바이가 먼저 정지한다.
문을 열지 않은 상가는 쓸쓸하기만 하다.
돌다보니 조금 전에는 보지 못한 "요"(窯)도 있다.
입구로 오니 이런 동네 조감도(鳥瞰圖)도 있다.
"잉거"(鶯歌)역에서 도자기마을까지 상세하게 그렸지만 자세히 봐도 낮선 동네다.
두리번 거리던 중 내가 좋아하는 흥미거리를 찾았다.
호접란이 길가 나무에 붙어서 살고 있다.
물론 사람이 인위적으로 붙인 것이지만 뿌리가 싱싱하게 자라고 꽃대까지 올라왔다.
싱싱한 뿌리를 보니 이런 환경이 마냥 부럽기만하다.
잡았다! 요눔!!
내가 카메라를 들이대자 '뭐지?' 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영명 : Black bulbul.
학명 : Hypsipetes Leucocephalus
일반 : 대만직박구리. 대만 특유아종(特有亞種)
대만에만 있는 특별한 새란다.
같은 "직박구리" 종류지만 남쪽으로 내려 올수록 몸 색갈이 화려해 진다.
필리핀이나 더 남쪽으로 가면 아주 화려한 색을 가지고 있단다.
우리나라 중부지방의 "직박구리".
제주도에서 본 "바다직박구리"
이 제주 "바다직박구리"는 대만까지 날아간다고 한다.
들어 올 때는 못 봤는데 동네 입구에 종이 하나 달려 있다.
이제 "잉거"(鶯歌) 도자기 마을을 떠난다.
다시 시내로 들어와 "중정 기념당"(中正 紀念堂)근방에서 점심을 먹기로 한다.
"복주어환"(福州魚丸)이란 집이다.
벽에 메뉴판이 있는데 우리가 먹을 것은 4號餐(90元)인듯했다.
특이한 국수는 나중에 국물이 나온다.
국수가 덜 익은듯 썰컹한게 내 입에는 맞지 않는다.
어환(魚丸)은 아마도 저 만두인듯한데 그것도 맛이,,,,,,,
그래도 대충 먹어본다.
이제 멀지 않은 곳이라 걸어서 "초대 총통"(初代 總統)인 "장제스"(蔣介石)을 만나러 간다.
"국립 중정 기념당"(國立 中正 紀念堂)
"국립 중정 기념당"(國立 中正 紀念堂)은 "대만"(臺灣) "초대 총통"(初代 總統)인 "장제스"(蔣介石)를 기념하기 위해 1980년에 지어진 건물이다.
1975년, 중화민국의 총통(總統)이었던 장제스(蔣介石)가 사망하자, "중화민국 행정원"(中華民國 行政院)이
국가적인 기념의 뜻을 나타내는 것을 목적으로, 1975년 6월에 기념당(紀念堂)의 건설을 결정하였다.
그 후 1976년 10월31일에 기공식(起工式)을 가지고 1980년 3월 31일에 완공(完工)되었다고 한다.
일반인에게 공개된 날짜는 1980년 4월5일 이란다.
먼저 입구로 들어가면 "국가희극원"(國家戱劇院, 국립극장)과 "국가음악청"(國家音樂廳)이 자리하고 있다.
앞의 건물이 "국가희극원"(國家戱劇院, 국립극장)이고 뒤에 보이는 건물이 "국가음악청"(國家音樂廳)이다.
"국가희극원"(國家戱劇院)
"국가음악청"(國家音樂廳)
"국가음악청"(國家音樂廳)
광장 입구에 있는 "자유광장문"(自由廣場門)
총면적 약 25만km2의 대지에 중국의 전통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웅장한 건물은 고대 중국의 왕릉과 비슷한 규모로 설계되었다고 한다.
정면에 있는 높이 76m의 거대한 대리석 건물인 "기념당"(紀念堂)은 남색의 지붕과 벽의 흰색을 주요 색조로 하고
천장은 하늘을 향해 둥근 형태를 띠며, 좌우로 있는 89개의 계단을 오르면 "기념당" 2층으로 갈 수있다.
계단의 숫자는 "장제스"(蔣介石)가 향년 89세로 타계한 데서 유래(由來)한 것이라고 한다.
가운데는 왕궁에 있는 "답도" 형태로 사람이 오를 수 없는 층을 만들어 놓았다.
1층 입구에 있는 "기념당" 소개 판.
1층 안으로 들어가면 좌측으로 "장개석 총통"(蔣介石 總統)의 유품들이 전시된 곳이고,
우측으로는 위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있다.
"손문"(孫文)이 "장개석"을 "육군 군관학교장"으로 임명하는 임명장.
"장개석 총통"(蔣介石 總統)의 승용차.
"장개석 총통"(蔣介石 總統)의 군복과 훈장들.
"장개석 총통"(蔣介石 總統)과 부인 "송미령"(宋美齡)
1953년에 한국에서 받은 "최고영예훈장"
2층에는 높이 6.3m, 무게 25톤의 총통(總統) 동상(銅像)이 중국 대륙을 향해 앉아 있고, 좌우에는 근위병이 서있다.
"해군 의장대"(海軍 儀仗隊)는 검정색 제복으로, "육군 의장대"(陸軍 儀仗隊)는 초록색 제복,
"공군 의장대"(空軍 儀仗隊)는 파란색 제복을 입고 나온다고 한다.
이곳의 근위병(近衛兵) 교대식(交代式)은 큰 볼거리중의 하나인데, 10시~17시 사이에 매시 정각마다 하고 있다고 한다.
교대식(交代式)은 10분정도 걸리는데 그 동안에는 눈조차 깜빡이지 않을 정도로 매우 근엄하고 절도있게 움직인다.
양쪽 근위병(近衛兵) 뒤에는 관리자인듯 한 사람이 서 있는데 근위병(近衛兵)의 복장을 수정해 주기도 하고,
근위병(近衛兵) 뒤에 있는 에어콘 송풍기(送風機)의 바람도 조절해 주는 듯하다.
2층 밖으로 나오면 넓은 광장의 풍경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광장이 한가로울 때는 서로 의미있는 사진을 찍으려고 한다.
대만(臺灣) 내에서는 독재자(獨裁者)인 장제스(蔣介石)를 현창(顯彰)하는 "중정기념당"(中正 紀念堂)에 대해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국립 국부 기념관", "국립 고궁 박물원", "용산사", "타이베이 101빌딩"과 함께 "台北市"의 중요 관광 코스로 꼽히고 있고,
해마다 "중정기념당"(中正 紀念堂)을 방문하는 관광객과 이를 통해 거두어 들이는 많은 이익을 무시할 수는 없다.
이런 점들 때문에 오히려 "중정기념당"(中正 紀念堂)을 없애려는 정부의 조치에 대해 반대하는 시민들도 많다고 한다.
그래도 "2.28 항거 기념일"에는 이곳도 하루 휴관을 한다고 한다.
"기념당"(紀念堂) 지붕위의 잡상(雜像)
건물이 콘크리트로 만든것에 지붕 이음이 짧아 건물이 많이 훼손되고 있다.
"국가희극원"(國家戱劇院)의 지붕이 한결 잘 만든듯하다.
이건 건물의 빗물 배수구일까?
배수구를 아래에 저리 많이 설치하지는 않을 텐데,,,
아무리 봐도 장식으로 한듯하다.
이제 "손문"(孫文)의 "기념당"(紀念堂)인 "국부 기념당"(國父 紀念堂)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