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첨부된 자료(M/S Word, 총 21 페이지)의 주요내용 압축 > Ⅰ. 임진왜란(1592.4)과 함께 온 기독교 1. 침략군 제1진사령관 고니시는 십자가깃발 나부끼며 부산상륙 2. 예수회 일본대교구 신부들이 히데요시 조선침략의 군사고문역 3. 일본·중국 : 예수회신부에게 전쟁자문을 구한 점 동일 4. 세스뻬데스(Gregorio de Cespedes) : 종군신부로 조선에 파송. 5. 전쟁참화 : 노예매매, 인육, 코베기 등
Ⅱ. 동인도회사 시장조사원, 개신교 최초 선교사 1. 조선땅밟은 최초 개신교목사 귀츨라프 : 한손에는 성경, 다른 한손에 아편 2. 이권앞의 역사왜곡 → 귀츨라프 정박지(장산곶)≠기념비(충남 원산도) (∵국회의원 선거활동) → 한국교회의 교파이기주의 : 조선방문 선교사[귀츨라프(1832년), 토마스(1866년), 알렌(1884년), 언더우드·아펜젤러(1885년)] but 개신교 백주년 산정기준[장로교(알렌·언더우드), 감리교(아펜젤러)] 3. 귀츨라프 : 국제적 투기사들의 탐욕을 부채질
Ⅲ. 황사영백서 (반민족적 흉서냐, 호교의 절규냐) 1. 황사영백서 : 종교자유위해 조선을 중국의 속국·부마국으로, 수백척 군함과 5·6만명 장병으로 조선을 위협하도록 요청 2. 당시 유럽에선 교황권위 실추 → 황사영은 우물안 개구리 3. 황사영백서의 외국함대요청 : 당시 조선천주교인의 공유된 희망 4. ‘황사영은 역적이다’ 때늦은 천주교의 반성
Ⅳ. 총칼찬 토마스 목사 그는 순교자인가 1. 순교자로 둔갑한 범법자 : 토마스목사(총과 환도), 제너럴셔먼호(무장선박) 2. 조선 2차 방문의 행적 : 조선관리 인질, 군민 12명 살상, 약탈 3. 총·칼로 무장, 군민살상·약탈한 무리의 하나인데도 최초순교자?
Ⅴ. 외세와 한통속인 천주교 1. 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의 묘 도굴에 앞장선 천주교 (조선천주교인이 도굴을 먼저 제의하고 길안내) 2. 프랑스함대를 끌어들인 천주교 (1) 선교사는 식민지개척의 도구(제국주의 공작원) → 천주교·개신교 동일 (2) 프랑스함대의 조선침략에 길안내를 했던 김대건신부 (3) 프랑스정책에 이용당한 조선인 천주교 신도들: [자국정부권위 < 교황권위],
Ⅵ. 야누스적 선악의 두 얼굴, 미국제국주의 1. 일본의 한국지배를 승인한 미국 (1) 미국선교사의 선교방식 : 교육·의료사업부터 시작(차후 복음전파) → 선교사들의 종교적 정치행위 [정치·종교분리→현실·역사의식 마비→일본침략 수용] 인지능력 상실 → 미국의 대한정책 : 자국힘·국제상황속에서 택한 전술(○), 제국주의 탈피(×) (2) 한국조정의 미국선교사에 대한 기대 → 친미정책 표방 but 결과는 미국배신행위(카쓰라-태프트밀약), 선교사들은 친일·부일의 촉매제 (3) 한국지식층의 기대 : 기독교 = (부국강병과 개화의 유일한 수단) (4) 선교사 이권개입 (선교사? or 이권브로커?) → 제국주의 속성 표출 (5) 미국의 배신행위 → 한미수호조약 제1조(1882년, 부당하게 업신당하면 반드시 서로돕는다) : 고종의 친미선교사정책, 숭미의식형성 진원지 → 카쓰라-태프트밀약(1905.7.29): 일본의 대한제국에 대한 독점지배권 묵인 → 포츠머스조약(1905.9월) : 미국 루즈벨트의 거중조정으로 ‘한국이 일본보호국’임을 서구열강 공식인정 → 을사보호조약(1905.10월)후 한국과의 외교관계 단절한 첫번째 국가 : 미국
Ⅶ. 양대인이 된 선교사들 1. 양대인을 불러온 사회현상 (1) 정부보다 힘센 기독교와 미국선교사 (2) 개신교가 서구문명의 힘의 상징 → 신도수 급증 (3) 선교사들 : 미국인 눈엔 ‘괴벽한 녀석들(쓸모없는 사람들), 한국에선 대인행세 (4) 기독교문화전파 : 구미 제국주의 모양 달리한 제국주의 침략 형태
Ⅷ. 양대인 선교사에게 유린된 인권과 주권 3. 항일의지 꺾어놓은 미국의 정교분리정책 (1) 주한미국선교사들의 비정치화 : 미국정부의 지시를 수행한 결과 (2) 미국의 정교(정치-종교)분리정책 : 미국·일본의 밀월관계 (3) 선교사들의 주장 : “하나님의 권세인 일본에 복종하라”
Ⅸ. 민족정신을 앗아간 1907년 대부흥회 1. 평양 대부흥회 : 민족혼 말살, [민족문제(×) → 개인의 죄(○)]로 국한 2. 길선주 : 어중간한 민족주의자 길선주, 그의 행동은 반민족적 3. 일제 말기 : 기독교인들이 친일의 선두주자 → 자세한 내용 : 별도게시한 ‘한국교회의 친일파전통(최덕성 저) 요약정리’ 참조바람. 4. 십자가지고 자기따르라는 예수의 선언은 분명히 정치적 희생을 각오 but 일제침략정책에 묵시적 지지, 조선민중의식 마비시킨 부흥운동 등은 예수의 가르침에 대한 배반
♣ 저자 : 이형래 ? 경향신문사 기자, 세계일보 사장 역임 ? 통일교 문선명목사와 김일성 면담주선 ? 현재 세계역사문화연구소 운영중
♣ 예수를 배반한 기독교 ? 펴낸날 : 2003.12.9 (펴낸곳 : 일월서각) ? 참고문헌 : 총 180여편의 도서와 논문을 참조
문학산책 2006/03/31 21:57 ykd0909|ykd0909
오강남 교수의 [예수는 없다]와 함께 김성수의 [함석헌 평전]에 이어 이번에 이형래님의 "예수를 배반한 기독교"를 읽게 되면서 차츰 참종교의 중요성을 알게 되는 계기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오강남 교수의 [예수는 없다]와도 쌍벽을 이룰만큼의 저서가 최근에 나왔다는 소식을 접하고 구입하게 된 이 책은 그러나 전 작의 종교학적인 접근과 다르게 민족과 역사학적으로 비판하므로 어떻게 보면 이번의 책이 훨씬 더 쉽고 설득력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오강남 교수는 종교학적으로 타 종교의 배타나 이단시에 대해서 어린아이의 학년 오르는 것처럼 비유하며 설득하는 것에 비해서 이형래님의 저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임진왜란의 뿌리를 시작으로 일제시대에 정점에 이르렀던 [배반의 기독교사]를 다루고 있기에 그 충격은 상당했기 때문이다.
책을 만나기 전에는 김대건 신부의 순교나 병인양요로 이어지던 서양 선교사들의 죽음 밖에는 알고 있던 지식이 전무하던 내게 이 책은 "기독교가 처음 한국에 전파되었을 때부터 얼마나 비애국적이고 이기적이었는지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을만큼의 강도높은 비판을 역사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 첫 단추이자 뿌리가 되는 시기가 한민족의 큰 시련기였던 임진왜란이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귀무덤과 코무덤처럼 잔악하기 그지없던 왜놈들이 나중에 받게 될 정신적인 상처를 고해성사를 통해 도와줬다는 조선 땅을 최초로 밟은 [세스뻬데스] 신부의 이야기는 곧 [한국판 십자군 전쟁]이었다는 저자의 비유가 맞아떨어지지 않을 수 없음에 공감하였다.
이것은 조선침략과 한일병합이 하나님의 섭리라며 민족 보다도 기독교전파에 더 열을 올렸던 [황사영]이나 [김대건신부]를 역사적으로 탄생하게 만들었다는 데 있을 것이다.(지금의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뻔뻔함과 이기주의를 제대로 알고는 있을까 모른다.)
지금의 교파 이기주의는 민족의 생사가 달린 외교적인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친일이니 친미 혹은 외면으로 현실에 안주하게 된 그 원인이 무엇인지 바로 찾을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 책에 담겨져 있었다.
그 중에 [제9장 민족정신을 앗아간 1907년 대부흥회]에 나오는 [길선주 목사]에 대한 부분은 오늘날의 현실참여에 이득여부로 선택하는 교회를 비판함에 상당부분 이해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나라가 빼앗긴 일제식민시대에서 [치외법권의 안전지대]가 된 교회에 몰려들지 않을 수 없는(그것은 종교의 선택이라기보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시대적인 배경이었다) 신도들이라는 역사적인 배경과 함께 길선주가 일본인까지 미워하지 말라는 회개와 같은 반 민족적인 작태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은 책의 285쪽에
"그런데 선교사들은 예수를 버렸다. 순수한 교회를 요구하며 권세에 복종을 강조한 선교사였다. 그들의 회유책은 항일이나 반일 같은 정치적 불법 행동에 참여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결과는 일제의 침략정책의 묵시적 지지였다. 예수의 가르침을 저버린 비급한 기회주의적 권력과의 야합이었다. 바로 이 점이 선교사들과 대부흥회의 주도적 역할을 한 길선주 목사가 역사적 심판을 받는 이유다."
라는 대목을 읽으며 종교는 옷처럼 선택할 수 있는 사안이나 민족은 몸처럼 어떻게 할 수 없는 정체성이자 뿌리임을 다시 한번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은 진리를 말한다는 종교의 참 목적이 교파의 확장에 있다기 보다 로마의 식민지 청년이었던 예수님의 참 마음을 조금이나마 닮는 성직자들이 별로 없기에 지금처럼 종교간의 전쟁에 수많은 사람들의 참혹한 죽음만이 지구상에서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예전에 나왔던 [부시맨]이란 영화에서도 코카콜라가 오지의 마을에 떨어지고나서 부시맨이라 불리던 아프리카 흑인 원주민이 겪는 해프닝이 너무나 제국주의적인 시각으로 담고 있었음을 뒤늦게 알고 많이 놀랐었다. 그 [콜라]가 보여주는 물질주의적 우월성과 함께 의료나 교육으로 순수한 것처럼 들어오는 선교사들의 미소뒤에 제국주의의 야만성이 감추어져 있음을 지난 18세기에서 20세기에 걸쳐 현대에도 진행중에 있는 것이다.
세계역사문화연구소에서 펴낸 [예수를 배반한 기독교]는 탈종교적이고 역사주의적으로 접근으로우리나라의 역사에 개입한 기독교에 대해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있어 적극적으로 추천하는 바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