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14일 (금) 성 치릴로 수도자와 성 메토디오 주교 기념일 말씀 묵상 (창세 3,1-8) (이근상 신부)
1 뱀은 주 하느님께서 만드신 모든 들짐승 가운데에서 가장 간교하였다. 그 뱀이 여자에게 물었다. “하느님께서 ‘너희는 동산의 어떤 나무에서든지 열매를 따 먹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는데 정말이냐?” 2 여자가 뱀에게 대답하였다. “우리는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를 먹어도 된다. 3 그러나 동산 한가운데에 있는 나무 열매만은, ‘너희가 죽지 않으려거든 먹지도 만지지도 마라.’ 하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4 그러자 뱀이 여자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결코 죽지 않는다.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께서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6 여자가 쳐다보니 그 나무 열매는 먹음직하고 소담스러워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은 슬기롭게 해 줄 것처럼 탐스러웠다. 그래서 여자가 열매 하나를 따서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자, 그도 그것을 먹었다. 7 그러자 그 둘은 눈이 열려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두렁이를 만들어 입었다. 8 그들은 주 하느님께서 저녁 산들바람 속에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들었다. 사람과 그 아내는 주 하느님 앞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다.(창세3,1-8)
인간이 무슨 수로 참을 수 있으랴. 좋아보이는데 하지말라는 것을.
원체 많은 어른들의 성찰이 있지만 좋아하는 두 분의 가르침을 나눈다. 이 밤 곰곰이 품기 좋으니.
키에르케고르는 이 대목을 인간존재의 불안 Angest 이라고 잘 가르쳐주었다. 이건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삶이며, 마음이다. 불안이 없는 삶이란 바람이 없는 지구라고 나는 믿는다. 거기서 우린 선택한다. 아주 가까이에 있는 선택, 충동 팔할, 주저함 이할로 뒤섞인 선택. 이를 테면 확 저지르는 것. 키에르케고르는 불안을 일을 저지르며 없애는 것이 아니라 안고 사는 것이라 가르친다. 불안을 사는 길은 융이 아주 잘 알려준다고 나는 믿는다.
칼 융은 이 대목을 일러 뱀으로 등장하는 우리 무의식의 그림자를 잘 통합해야 한다고 했다. 예를 들어 하느님을 닮고픈 교만이란 그림자는 정말 하느님의 참 거룩한 모습들, 자비로움, 넉넉함, 베푸는 마음, 사랑, 따뜻함을 닮는 것으로 창조적으로 받아들일 때 자기Self가 더 온전해 진다고 가르친다. 그에 반해서 그림자를 두려워하며 도망칠 때, 변명과 왜곡으로 일은 일대로 저지르고 책임도 지지 않는 모습을 취한다고. 그 때 사람들, 하와와 아담처럼.
출처: https://www.facebook.com/share/p/18t9Rd2mX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