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네가 경기도에서 갑자기 부산으로 이사를 했다고 하며 알려준 아파트가 `대우트럼프월드 센텀`이라고 했다. 생소한 데다 이름이 너무 긴 것 같아서 왜 이렇게 어렵게 지어야 하는지 궁금해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더니 『1999년 대우건설이 여의도에 분양한 `대우트럼프월드 1차` 모델하우스 개관식에 참석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란 설명과 함께 사진이 있었다. 꼭 이렇게까지 혼합된 이름이어야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할 수 있어 그런것이라면 우리의 의식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이해는 간다. 하지만 우리 동네에는 무궁화, 은하수, 수필 등 간단하면서도 아름다운 이름의 아파트에도 많은 사람이 살고 있다. 자기가 가진 가치를 자신이 모르거나 하찮게 취급하면서, 우리보다 조금 잘사는 것 같아 보이는 서방의 문화라고 무조건 따라 하고 모방하는 것은 후진성을 면치 못한 치졸한 행위가 아닐까 싶다. 일반 서민들의 일상생활을 헛갈리게 하는 사회상 중에 좌측통행은 오래도록 몸에 배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우측통행으로 바뀌었지만 지켜지지 않고 있다. 1921년 일제강점기 부산물인 제도적 불합리성 때문이라고 한다. 당시 우리나라는 농업 중심이었을 뿐만 아니라 도시의 도로 교통상에 좌ㆍ우측보행이 문제시되지 않았다. 지금도 불편하지 않기 때문에 건물마다 계단에 화살표로 걷는 방향을 표시해 두었지만 지키는 사람은 드물다. 도로명 주소도 마찬가지, 신주소 구주소에 민족의 명절인 설날도 구정과 설이란 단어 때문에 혼란스럽다.
왜 고쳐야 하는지, 국민의 생활에 얼마나 이익을 주며 행정의 효율화에 도움이 되는지를 주도면밀하게 연구하고 검토를 거친 다음에 제도화하여야 한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정권의 산물이 퇴적물로 쌓이면 불신의 골만 깊어지지 않을까.더 헛갈리는 것은 공공기관명의 영문 표기이다. center, MG, K-water, NH, 등으로 표기해서 외국인의 이해를 충족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우리말을 잃어버리게 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쉽게 stress라고 하면서 우리말로 뭐라고 하느냐고 물으면 대답이 궁하다. 더 웃기는 것은 물은 self라는 표기이다. 지금도 일제 강점기 운운하면서 그렇게 우리 생활에 젖어 있는 だい(선반)、さしみ(생선회)라는 말이 보편화 되어 있음을 본다. 전 세계의 문자 중에 한글이 세계 어느 문자보다 뛰어난 표현력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좋은 우리글을 두고 최고 권좌에 앉았던 사람이 한자 휘호로 자신을 두둔하던 때도 있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떤 인사는 지금도 그것을 닮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 개탄스럽기까지 하다. 이렇게 헛갈리는 삶을 살아서 그런지 이상한 일들이 참으로 많다. 예부터 혼례란 일생에서 제일 중한 의식이다.
그런데 어떻게 혼주가 주례를 대신에 하거나 아예 주례가 없이 하는 결혼식이 유행처럼 번져간다. 우리가 닮기를 원하는 선진국사람들은 자기들의 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결혼도 반드시 성직자가 주례를 섰다는 증명이 있어야 혼인이 성립된다. 우리의 경우 덕망 높은 인사 또는 스승을 주례로 초빙하는데 그것이 여의치 않아 식장에 대기 중인 전문주례에게 대가를 주고 세우는 경우도 있었다. 옳고 그름을 논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의식에는 절차와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유럽에서 만난 현지 가이드(한인 이민자)가 말하기를 `친구의 사위될 자가 친구에게 당신(you)이라고 해서 그 친구가 화가 났다`며 문화의 차이를 이야기해 주었다. 그 나라 언어 구사의 한계라고 생각하면 되겠지만 가이드의 친구는 한국문화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화가 난 것은 당연하다고 본다. 지금 젊은 세대는 남편을 오빠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반려동물에게 본인을 엄마라고도 칭하기도 한다.
이렇게 혈연 간의 호칭을 애완견에게 사용하는 것은 모르긴 해도 우리나라가 유일하지 않을까. 손자를 등하교시키면서 신호등이 있는 건널목에서 유심히 지켜보면 초등학교 1, 2학년생들은 아주 잘 지킨다. 그런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달라진다. 왜? 어른들이 신호를 무시하고 건너가니까 분명히 빨간 불에 건너면 안 된다고 배웠는데 건너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왠지 속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아닐까. 울산대공원의 급경사 지역에 촘촘하게 `자전거를 내려서 가라`는 위험표지가 있다. 아이들은 내려서 가려고 하는데 어른들은 쌩쌩 달린다. 이런 환경 속에서 중심 잡고 살기가 참으로 헛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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