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Ⅲ-62]잎과 꽃은 만날 수 없는가?
열흘 만에 고향집에 돌아오니, 마당에 놀라운 일이 두 건 펼쳐졌다. 다무락(담) 앵두나무 곁에 10여개(그루?)의 꽃대가 불쑥 솟아나 꽃을 피운 것이다. 아무 흔적도 없었던 곳에, 부지불식간에 50cm도 넘은 꽃대가 솟아나 이렇게 예쁜 연분홍꽃을 피울 줄을, 세상 천지에 그 누가 짐작이나 하겠는가? 새삼 ‘이것이 바로 천지만물의 조화속이로구나’ 싶었다. 봄에 새파란 잎이 피어났다가 이윽고 며칠이 안돼 사라졌던 것이 기억났다. 물론 지난해에도 그랬겠으나 크게 의식하지 않았는데, 올해는 왜 한번도 안보던 것처럼 느낌이 다른 건가? 그런데, 올해는 마당에 꾸며놓은 어설픈 꽃밭에도 똑같은 꽃이 줄기를 내밀며 수줍게 꽃을 피워놓은 게 아닌가. 꽃을 심거나 옮겨놓은 적이 없었는데, 어떻게 피어났을까? 아하, 이것이 잎과 꽃이 피어나는 시기가 달라 서로 그리워하면서도 만나지 못한다는 상사화(相思花)로구나. 화엽불상견(花葉不相見).
이 상사화는 그럼 고창 선운사 뒤곁에서 봤던 ‘꽃무릇’이라는 붉은 꽃과 어떻게 다르고 같은 점은 무엇인가? 제미나이에게 물었더니, 일목요연하게 표로 알려준다. 둘 다 잎과 꽃이 절대 만나지 못하는 수선화과 식물이지만, 상사화는 토종으로 이른 봄에 잎이 나 7~8월에 연분홍색으로, 중국과 일본의 외래종인 꽃무릇은 늦가을에 잎이 나 겨울을 넘기고 9~10월 추석 무렵에 선홍빛(붉은 색)으로 꽃을 피운다. 그러니, 여름에 연분홍빛으로 피면 상사화, 가을에 붉은색으로 화려하게 피면 꽃무릇이다. 흔히 가을에 '상사화 축제'라고 열리는데, 실제로는 꽃무릇 군락지라는 것. 꽃무릇은 '돌 틈에서 자라나는 마늘(蒜) 모양의 알뿌리'여서 석산(石蒜)이라 하며, 절 주변이나 무덤가에 많아 피안화(彼岸花)로도 불린단다. 짙은 붉은색이 화려하면서도 어쩐지 좀 슬픈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같다. 아하, 그렇구나. 이미지를 검색해보니 앞으론 절대로 헷갈리지 않을 것같다. 그동안 니가 맞네, 내가 맞네, 하는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이젠 그럴 일이 없겠다. 무엇이라도 확실히 배워 알게 되면 ‘자기 것’이지 남을 줄 일은 없다.
꽃무릇의 무릇은 ‘무리지어 무더기’로 피어난다는 뜻에서 유래됐겠으나, 상사화는 이름부터가 애절한 느낌이 든다. 우리가 알고 있고, 보고 있는 대부분의 꽃들은 잎과 꽃이 함께 피면서 그 자태를 자랑하지 않던가. 그런데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한다? 생각해 보라. 만나고 싶은데, 그리고 어쨌든 꼭 만나야 하는데 천지이치로(?) 만나지 못한다는 것은 슬픈 일이고 비극이지 않은가. 이름조차 상사병(相思病)에서 유래된 것이 확실하다. 상사병은 짝사랑과 같은가? 다른가? 같기도 하고 다른 것같기도 하다. ‘서로 상(相)’자이니 서로 좋아(사랑)하나 로미엣과 줄리엣처럼 양가의 반대로 못만나는 경우도 있을 터이나, 선덕여왕을 사랑한 지귀나 황진이를 좋아하다 제 풀에 죽은 이름없는 총각처럼 그저 혼자만 애태우는 짝사랑도 상사병일 터.
민족적으로 확대하자면, 남북한의 힘없는 백성들도 그렇다. 단군의 후손으로 5천년을 함께 살아왔고 고작 80년을 떨어져 살았을 뿐인데, 인위적으로 갈린 피붙이들이 만나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도대체 정치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를 생각하면 한심할 뿐이데. 백성들의 눈물과 고통을 닦아주고 덜어주지는 못할망정, 그놈의 권력이 무엇이관대, 이리도 정치는 갈수록 후져만 가는가, 생각하면 나는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분통이 터질 뿐이다.
하찮은(?) 식물의 꽃을 바라보면서도 나는 머리가 어지럽다. 살면서 '만날 사람은 반드시 만나게 돼 있다'는 말을 곧잘 하지만, 자꾸만 아닌 것같다. 마음은 굴뚝같아도 영영 만나지 못할 것만 같다. 막힌 게 '뚫어뻥'처럼 뻥 뚫리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남북한이 하루 빨리 합쳤으면 좋겠다. 만났으면 좋겠다. ‘한마음’으로 만나 같이 살자 다짐을 하고, 곧바로 실천을 하면, 우리는 유식한 말로 ‘시너지 효과’로 8천만이 넘는 인구로, K-대한민국을 넘어 K-한반도가 되어, 지구촌에 평화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며 ‘일등국가’가 될 것이 분명한데, 통일(統一)이 무슨 턱없는 소리냐는 젊은이들이 많다하는데 슬프고 가슴이 아프다. 꽃을 바라보는데 이런 잡념(雜念)은 또 무슨 헛소리인가?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