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로 흑염소 / 최승자
문학동네로 올라가는 명륜동 도로변에 바오로 흑염소
사당 하나 숨은 듯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 사당 앞 거리에 바울이 되기 전의 사울,
검은 흑염소 한 마리의 울음이 낮게, 아주 낮게 깔려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더욱 드물다. 몇 날인가 계속 불타는
아궁이 위 항아리 속에 담겨진 채 불타다 불타다 물로
변해버리는, 비명을 지르다 지르다 침묵으로 변해버리는
그 물 - 침묵의 울음소리. 몇 날 며칠을 불에 태워져야
순하디순한 물, 흑염소탕으로 변하는 흑염소의 에고(ego).
그 아궁이 불을 보살피는 사람이 연금술사인가,
그 항아리 안에 든 흑염소, 혹은 흑염소의 혼, 혹은 바울이
되기 전의 사울 자신이 연금술사인가, 아니면 그 거리 지나면서,
낮게 깔린 자욱한 안개 같은 그 검은 울음소리의 그물에
매번 발목이 사로잡히는 내 자신이 연금술사인가.
저 20세기의 상점으로 변해버린 바오로 흑염소 사당.
저 몇천 년 전의, 저 이방의 상징이 아직도 살아
“내 영혼의 어두운 밤”을 증거한다.
상징이란 지독하게 살아낸, 살아 달이고 우려낸 삶의
이미지이다. 살아내지 않은 것은 상징이 될 수 없다.
- 최승자 시집 <연인들>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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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로 흑염소가 교회를 상징하는 것인지 아니면
글자 그대로 흑염소 건강원을 가리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교회와 흑염소 건강원이 어쩌면 시인의 눈에는 다 한 가지로
비쳤을 것도 같습니다. '불타다 불타다 물로 변해버리는,
비명을 지르다 지르다 침묵으로 변해버리는 그 물 -
침묵의 울음소리. 몇날 며칠을 불에 태워져야 순하디순한
물, 흑염소탕으로 변하는 흑염소의 에고(ego)' 속에서
시인은 몇천 년 전의 유대인 사울이 로마시민 바울이 되어
이방인에게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모습을 봅니다.
그리고 시인은 `저 20세기의 상점으로 변해버린
바오로 흑염소 사당 저 몇천 년 전의, 저 이방의 상징이
아직도 살아 “내 영혼의 어두운 밤”을 증거한다'고 고백합니다.
밤이면 거리마다 술집과 상점과 교회 십자가의 네온이
함께 빛나는데 내 영혼은 여전히 어두운 밤은 아닌지
두렵습니다.
/ 박제영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