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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OKtMZvukAM4
* 함께 감상해 주세요오
처음 봤을 때처럼
07. All For You
“나 헤어질래.”
나연이의 첫마디는 그거였다.
이제야 정신을 차린 나연이는 땅을 치며 하소연했다.
“이게 웬 개 쪽이야…. 미친! 나 어떡해.”
……그러게.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그렇게 고백할 줄 알았으면 진작에 막았을 텐데.
이 사태를 어쩌면 좋지?
시큰거리는 뒷목을 부여잡았다.
자식새끼가 저지른 사고를 수습하는 부모의 마음이란 이런 걸까.
“애가 약간 사차원이라서 그렇지, 영 이상한 애는….”
“그 꼴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맞지! 암만 생각해도 이상한 애 맞아. 그치, 그치.”
불똥이 튈까 봐 염려가 되었던 나는 재빨리 대답을 수정했다.
그리고 상황을 뒤로 감기 해보았다.
지이잉. 불과 몇 시간 전의 처참한 광경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조심스럽게~ 얘기할래요~ 용기 내 볼래요~’
흉물스러운 모양새로 또각또각 다가오던 그.
그와 대조되던 로맨틱한 음악.
푸른색 조명에서도 훤히 드러날 정도로 울그락 불그락해진 나연이의 얼굴.
세 박자의 부조화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나 오늘부터 나연일~ 사랑해~ 도 될까요~’
미친 거 아니야? 개사까지 할 건 뭐야.
왜 쓸데없는 데에 센스를 낭비하는 걸까…….
진심으로 나연이가 걱정되었다.
‘처음인걸요~ 분명한 느낌~ 놓치고~ 싶지 않죠~’
멜로디가 클라이막스에 치닫자, 재민이는 한쪽 무릎을 꿇었다.
‘사랑이 오려나 봐요~ 나연에게는~ 좋은 것~ 만 줄게요~’
덧붙여 화려한 꽃다발을 건넸다.
진정한 비극은 여기서부터 시작이었다.
‘나연아. 널 처음 봤을 때, 너한테서 빛이 났어.’
‘꺄아아악!!!!’
‘내가 너에 비해 많이 부족하고 어리지만……. 이런 나라도 괜찮으면, 나랑 사귀어 줄래?’
‘어떡해!!!!’
빌어먹을 고백 멘트까지 얹어버렸으므로.
이거 고백 맞아? 콩트가 아니라?
입이 바짝바짝 말라왔다.
진귀한 풍경에 아이들은 환성을 질러댔다.
‘사겨라!! 사겨라!!!’
‘받아줘!! 받아줘!!!’
도저히 허락하지 않고는 못 배길 판이었다.
이게 바로 고백으로 혼내주기인가.
나연이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나연이의 눈가는 촉촉히 젖어 있었다.
재민이는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듯했다.
나연이가 감동을 받아서 우는 거라고 확신하는 것 같았다.
‘……알았어.’
나연이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꽃다발을 받았다.
재민이는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되어 뛰어다녔다.
그렇게 눈물의 고백 사건은 처참히 막을 내렸다.
어질어질한 회상을 거두고 나니, 숙소에 도착했다.
우리는 대 자로 뻗었다.
급작스레 감정 소모를 많이 한 까닭에서인지, 기진맥진했다.
나는 맥없이 휴대폰을 열었다.
희성이에게 문자 한 통이 도착해 있었다.
[김나라~~ 어디야? - 희성이♥]
자판을 꾹꾹 눌렀다.
[나 지금 나연이랑 있어!]
[오~~ 임나연 감동 받았대? 좋대? - 희성이♥]
[ㅎㅎ…]
여기 눈치 없는 사람 또 한 명 추가요.
없던 편두통이 도지는 기분이었다.
아무리 끼리끼리라고 해도, 이런 건 안 닮았으면 좋겠는데.
[아 맞다! 누나들이 날 가만 냅두질 않아. - 희성이♥]
이건 또 무슨 소리지?
난데없는 전개에 얼굴이 깡통 캔처럼 찌그러졌다.
[누나들? 왜? 또 번호 물어봐?]
[아 진짜. 다른 동네에서도 먹히나봐, 내 얼굴이. - 희성이♥]
[이게 너무 익숙한 상황이라는 게 더 와닿아. - 희성이♥]
나는 한숨을 게워냈다.
피곤해서일까? 썩 유쾌한 소식이 아니었다.
솔직히 희성이의 인기는 익히 알고 있었다.
나도 희성이를 좋아하던 사람들 중 하나였으니까.
그래도 이런 것까지 감내하긴 싫었는데.
[축하해~]
[진짜 세상은 불공평하다ㅠㅠ 난 못하는 게 뭘까?- 희성이♥]
[응~]
[뭐야; 김나라 삐졌어???? - 희성이♥]
[아니~]
[아잉~ - 희성이♥]
확 하트 이모티콘을 없애 버릴까.
통통하게 채워진 특수문자가 꽤나 거슬려 보였다.
[질투하는 거 봐ㅋㅋㅋㅋㅋㅋ- 희성이♥]
[이야~~ 질투쟁이가 따로 없어. - 희성이♥]
[ㅡㅡ짜증나.]
나는 심드렁하게 답장했다.
잔뜩 골이 난 마음은 쉬이 가라앉을 줄 몰랐다.
[왜 이러실까ㅎㅎ 아 이따 애들 진실 게임 한대! 우리 방으로 꼬몬꼬몬~~ - 희성이♥]
눈치도 없고, 재수없어.
희성이의 메시지를 잘근잘근 씹어먹곤 나연이 쪽으로 몸을 뉘였다.
나연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고민 꾸러미를 늘어놓았다.
“나라야. 나 언제 헤어지자고 하지?”
“하…….”
으이구! 이 화상들. 여기도, 저기도, 다 너희들이 문제지!
***
분위기는 점점 무르익었다.
아이들은 몹시 고조된 상태였다.
모두가 수련회의 화양연화, 진실게임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내가 돌리면 되는 거 맞지?”
“엉. 빨리 돌려.”
“자~ 다음 사람은……!”
반투명한 초록색 병이 빙글빙글 팽이 돌듯이 바닥에서 묘기를 부렸다.
오밀조밀 둘러앉은 우리는 병의 위치에 집중하고 숨을 죽였다.
“정지환?”
다수의 시선이 일제히 지환이에게로 꽂혔다.
지환이는 쭈뼛쭈뼛하게 말문을 열었다.
“어…. 뭐. 나? 난 뭐 없는디. 나한테 뭐 궁금한 거 있는감?”
“…….”
모두가 힐끔힐끔 눈치만 봤다.
하지만 침묵만 잇따르자, 지환이가 다소 민망해하며 병을 쥐었다.
“없으면 다시….”
“저기, 소현이가 할 말 있대!”
“야, 내가 언제!”
그런데 은솔이가 냅다 지환이의 손을 막아섰다.
소현이는 은솔이를 가볍게 쏘아보고는 꾸물거렸다.
“어, 소현이. 뭐 할 말 있어?”
“……아니. 별로 중요한 말은 아니고.”
“오~~~”
“넌, 나 어떻게 생각해?”
후덥지근한 온도는 식을 줄을 몰랐다.
전혀 몰랐는데, 소현이가 지환이에게 호감이 있었구나.
누군가를 좋아하는 눈빛은 저런 걸까?
소현이의 빛나는 눈이 정말 예뻐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 나는…….”
지환이는 천천히 뜸을 들였다.
내가 다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모두가 애독자의 심정으로 지환이의 말이 떨어지길 기다렸다.
“좀, 예쁘다고 생각해.”
“미친!!!!”
“대박!”
“이렇게 또 커플 탄생인가요~”
“사랑인가요~”
하여간에 분위기 메이커 아니랄까 봐.
희성이는 바이브레이션까지 넣으며 흥얼거렸다.
지환이는 부끄러운지 큼큼 헛기침을 내뱉었다.
“대답했으니까 돌린다. 다음 차례 X됐어~”
지환이는 이를 바득바득 갈며 병을 돌렸다.
“옴마야, 김희성이네? 넌 뒤졌어요~”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일까.
앞날도 모르고 깐족거리던 희성이가 당첨되고 말았다.
희성이는 기지개를 쭉 피고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아~ 난 임자 있는데.”
“저 새X 저러는 거 꼴 보기 싫어 죽겠누.”
특유의 고질병인 왕자병은 해결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모두에게서 그를 향한 혐오의 오오라가 느껴졌다.
“뭐~ 그래서 뭔데. 뭐가 궁금해.”
“나! 내가 함. 컨트리를 위해서.”
재민이가 나에게 찡긋해 보였다.
하여튼 시키지도 않은 짓은 혼자 다 하지.
나는 무어라 핀잔을 주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우리 여보는 뭐가 그렇게 궁금하실까~”
“난 궁금한 거 없는데?”
“없기는~ 엉아가 다 해결해 줄게.”
“뭔데 그래서~”
“넌 김나라가 왜 좋아~?”
어? 이 질문은…. 얼마 전에 듣지 못했던 거 아닌가? 내심 궁금했는데.
“아 시시하긴~ 그게 궁금해?”
“맞아. 그거 궁금하긴 했어.”
너도나도 알고 싶었던 눈치였는지 댓글을 달고 나섰다.
재민이는 여유롭게 질문을 계속했다.
“대답이나 하시지~ 왜 좋냐?”
“딱 보면 몰라? X나 예쁜데. 매력 있잖아~”
“우우~”
인간 딸기가 있다면 그건 나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나는 아이들의 음흉한 눈빛에 몸 둘 바를 몰랐다. 우리 안의 원숭이가 된 것 같았다.
꼬리에 꼬리를 문 재민이의 질문은 증폭되어만 갔다.
“어딜 빠져나가려고~ 무슨 매력~?”
“꺼져. 질문 이제 끝났어. 내가 돌린다?”
“와 X나 실망이다. 김나라가 여기 있는데. 아 이거 안 될 놈이네~”
“닥쳐~”
“김나라, 너도 궁금하잖어. 기여, 아니여.”
아까의 짜증이 덜 가라앉은 나는 샐쭉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뭐. 궁금하기는 해.”
“그래? 그렇다면 대답해 줘야지~~”
이윽고 터무니없는 답변이 화살처럼 돌아왔다.
“골 때려서.”
이건 또…… 무슨 소리야?
***
요란했던 수련회는 짧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과히 아쉽게만 느껴졌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미식거리는 속을 부여잡았다.
“많이 아파?”
“으으.”
왜 이러지. 잠을 못 자서 그런가.
목구멍에서 신맛이 느껴졌다. 덩달아 머리도 어질어질했다.
나는 한참동안이나 끙끙거렸다.
아, 토할 것 같은데.
희성이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구석구석 살폈다.
“아 여보야, 속상하게 왜 아프고 그래.”
“나 토할 것 같아.”
“헐, 미친. 쌤!!!!”
필히 멀미약을 챙겼어야 했는데.
허둥지둥 준비하느라 깜박 잊은 것이 문제였다.
희성이는 눈썹이 휘날릴 기세로 다급하게 선생님을 호출했다.
“나라 많이 안 좋니?”
“네…. 토할 것 같아요.”
“휴게소까지 얼마 안 남았는데. 못 참겠어?”
“네에…….”
선생님은 쪼글쪼글한 검정 봉투를 건네주셨다.
“나라는 여기에다가 토하고, 네가 등 좀 두들겨줘.”
“넵. 걱정 붙들어 매십쇼.”
한시가 급하게 봉투를 펼쳤다.
희성이는 조심조심 등을 다독거려주었다.
“아프지 마.”
“…응.”
“지금 나올 것 같아?”
“조금만 있으면?”
시한폭탄 같은 발언에 희성이가 눈썹을 파르르 떨었다.
아니, 속이 안 좋은 건 난데. 왜 지레 겁을 먹고 난리야.
희성이는 주위를 환기시키려는 듯이 대화를 시도했다.
“그럼 나랑 딴 얘기해.”
“어떤 거?”
“넌 보물 1호가 뭐야?”
지금은 아무 말도 안 하고 싶은데. 지금 이런 질문을 할 때인가.
과히 어리둥절해졌다. 하지만 무시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꾸역꾸역 대답했다.
“몰라.”
“인생에 희망이 없구만?”
“그게 뭔 상관이야.”
“내 보물 1호가 뭐게?”
“……나?”
“와~”
“뭐.”
“어떻게 알았어? 똑똑해~”
진짜 얘는. 아프지만 않았으면 벌써 때렸을 텐데.
나는 주먹을 내두를 수 없는 아쉬움을 뒤로 했다.
그리고 되도록 심호흡을 하는 것에만 전념했다.
“죽을래?”
“아니요.”
“진짜 나야?”
“응.”
“엄마는? 아빠는?”
“네가 더 좋아.”
“불효자야?”
“대신 애처가잖아.”
말이나 못 하면. 이 와중에 폴짝 웃음이 튀어나왔다.
나는 마지막으로 구토를 참았다. 슬슬 한계였다.
“그럼 2호가 뭔데?”
“몰라. 친구들?”
“내가 더 좋아? 친구들보다?”
“응.”
“우웩!”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 대화를 끝으로 거대한 굉음과 함께 정체불명의 액체가 쏟아져 나왔다.
나는 한참동안이나 봉투와의 고된 씨름을 해야만 했다.
희성이는 절규하듯 소리쳤다.
“아 여보~~ 여자로서의 매력 좀, 제발.”
$[-.-]
소제목 이름이 노래 제목인 걸 눈치 채신 분들이 있을까요?
모쪼록 환절기 조심하세요 :-)
* 이 소설은 럽실소 <문제아> 라는 글을 많이 변형하여 쓴 글임을 알려드립니다.
- 창작 공간 : 아무튼 최종 (https://cafe.daum.net/2022.02.27)
첫댓글 ㅋㅋㅋㅋㅋ 😂 재밌어요 담편이 기다려지네요
sweet1 님!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드려요 :-D 이모티콘에서 ㅋㅋㅋㅋㅋㅋ웃음이 보여지네오 다음 편 조만간 들고 오겠습니다!
젊음이 넘치는 활기있는 글이네요 아주 즐겁게 보고있습니다^^~~
t산머루 님 :-) 즐겁게 읽어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덕분에 힘이 나요! 더 재미있는 글 들고 올게요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