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밤의 사진편지 제1008호 ( 09/4/11/토)
제 3구간 세째 날 이야기 (4.1)
4월 1일(수), 구름 한점 없는 맑은 날씨였습니다.
걷기 할 때 뭐니뭐니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날씨입니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강하게 불면 걷기는 엉망이 되고 맙니다.
다 그렇지만 걷기에서도 하늘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이 날은 영덕군 병곡면에서 영해면과 축산면을 거쳐
영덕읍 대판리까지 25km를 걷는 날입니다.
아침식사는 7시, '고래불 식육식당'에서 북어국과 꽁치조림, 오징어 내장 젓 등으로
맛있게 먹었습니다. 회원님들의 음식에 대한 불만이 거의 없는 게 다행이었습니다.
고래불 해수욕장 넓은 광장에서 맨손체조를 하고 오전 8시 정각에 출발했습니다.
고래불 해수욕장의 길다란 백사장 옆을 따라 고래불 대교까지 가는 길은
정말 아름다운 해안 길이었습니다.
우리가 고래불 대교를 건너자 갈림 길이 나왔고 '上臺山'을 오른쪽으로 감고 도는
길목에 검은 승용차 한대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국교원대학교 권재술 총장님이 김 비서를 내보내서
우리를 안내하려는 자동차였습니다.
김 비서는 저에게 다가와 지금 권 총장님이 생가 마을인 영해면 괴시리에서
우리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 마을 입구의 수백년 묵은 정자 나무 아래서
권재술 총장님은 등산복 차림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觀魚臺'라고도 불리는 이 마을은 권 총장님의 선조때부터 대대로 살아온
고색창연한 한옥 마을로서 우선 겉으로 보기만 해도 역사적인 이끼가
보이고 중후한 무게가 느껴지는 전통 가옥이 밀집된 동네였습니다.
'한밤의 사진편지' 독자이신 권 총장님은 제 3구간에서 우리가 마침 이 지역을
통과하는 것을 파악하시고 자신의 고향을 우리 일행에게 소개하고 함께 걷기도
하려고 바쁜 중에도 이렇게 시간을 내어 고향에 내려와 기다리신 것입니다.
권 총장님은 작년 제2구간 걷기에서 우리가 이곳을 통과할 것으로 예측하고
그때부터 저에게 고향을 통과할 떄는 꼭 함께 걷고 식사도 대접하겠다는
고마운 뜻을 전해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제 2구간에서 우리는
그곳까지 도달하지 못하였었습니다.
그러한 권 총장님의 따뜻한 배려와 사랑이 이날 드디어 실현된 것입니다.
과거 재직 중에 권 총장님께 잘 해드린 것이 아무 것도 없고
지금도, 앞으로도 그분께 조금도 쓸모라곤 없는 저에게 이처럼 과분한
사랑과 후의를 순수하게 베푸시는 권재술 선생님을 생각하니
머리가 저절로 숙어지고 고마운 마음 가득했습니다.
세상이 많이 각박해지고 사람냄새라곤 찾아볼 수 없다고 개탄하는 소리를
자주 듣고 있는 요즘 세상에서 아직도 인연과 의리를 중히 여기고
순수한 우정과 사랑을 실천하는 옛 선비와 같은 분이
드물게 남아 있다는 것을 가슴 속으로 느끼게 됩니다.
우리는 권 총장님의 안내를 받아 그분의 형님댁인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고택으로 갔습니다.
그 댁 마당과 대청 마루에 들어갔을 때 권씨 가문의 족장격인 권수은 어른을
비롯한 가문의 종손과 종부, 형수님 등 여러분과 영덕군 김용술 문화원장님 등이
기다리고 있다가 따뜻하게 환영해주어 크게 놀랐습니다.
권수은 족장님의 간단한 환영사와 마을 안내,
그리고 권 총장의 어린 시절의 일화 소개가 있었고
김용술 문화원장의 영덕군과 이 마을의 역사와 내력 설명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목이 마른 우리 일행을 위해 집에서 정성들여 담근 식혜와
감귤, 음료수 등을 푸짐하게 대접해 주셨습니다.
이 마을은 겉보기에도 심상치 않았던 것 처럼 역시 대단한 자부심과
빛나는 명예를 지닌 역사적인 고장이었습니다.
기미 독립운동 시에 천안 아우내 장터 다음으로
격렬한 만세운동을 펼쳤던 곳이며, 독립투사만도 160여명이 배출된
충절과 예절을 갖춘 애국 열사의 자랑스런 마을이었습니다.
그리고 고려말 성리학자로서 이지역을 '고래불'이라고 이름을 지은
목은(牧隱) 이색(李穡)선생의 탄생지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그곳의 분위기와 권씨 가문 여러분의 환대에 모두 감격했습니다.
옛부터 '영웅호걸은 자신의 고향에선 대접 받기 힘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권재술 총장님이 밖에서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 분인지를
세 가지로 요약해서 이 마을 문중 어른들께 소개하였습니다.
첫째, 권 총장님은 자신의 전공인 물리학 분야의 전문지식이 탁월하고
높은 학문적 수준을 갖춘 훌륭한 과학자라는 점,
둘쨰, 학문만 높은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고상한 품격과 따뜻한 배려를 지니고
겸손하고 순수한 인성을 갖춘 훌륭한 인격자로서 인연과 신의를 중시하는 선비라는 점,
세째, 과학자이면서도 감성이 풍부하고 문장력이 뛰어난 수필가이며
국립대학교 총장으로서 그 지위가 매우 높은 분이라는 점만 시간관계로
간단히 소개하였더니 모두 박수로 공감해주었습니다.
우리는 갈 길이 바빴기 떄문에 이곳 여러분의 따뜻하고 정성스런 환대와
배웅 속에 아쉬운 작별을 고하고 유서 깊은 '관어대' 마을을 떠나야 했습니다.
권수은 어른은 제 손을 꼭 잡고 나중에 별도로 시간을 내어 개인적으로
이곳 관어대에 꼭 한번 와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정말 다시 한번 더 오고 싶은 마음이 나는 특색있고 우리의 냄새가
짙게 배인 조선의 옛 마을로서 이곳을 방문할 수 있었던 것은
이번 걷기 과정에서 최대의 성과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초대해준 권 총장님이 정말 고마웠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쉽게 체험할 수 없는 귀중한
역사 문화 체험을 할 수 있었고 소박하고 구수한 사람냄새를 오랜만에
흠뻑 맡을 수 있었던 잊을 수 없는 마을이었습니다.
권 총장님은 걷기에 알맞은 차림으로 우리의 점심식사 장소인
축산항으로 선두에서 안내하였습니다.
우리는 오전 10시경, 이 마을을 빠져나와 축산항을 향해 마음 편하게 걸었습니다.
왼편에 바다를 두고 차량통행도 별로 없는 해안도로를 지름길로 걸어서
미리 예약해둔 축산항의 유명한 물횟집인'등대 횟집'을 찾아 갔습니다.
등대 식당에 거의 가까이 왔을 무렵 휴대전화가 울렸습니다.
" 김용만입니다. 지금 이규석 교장이랑 영덕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전화로 김 교장님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갑자기 눈물이 핑돌고
목으로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여기가 어디라고 새벽에 서울을 떠나 이곳까지 찾아온 그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을 누를길이 없었습니다.
김 교장님은 우리가 장거리를 걸을 때 마다 꼭 하루는 시간을 비워 우리를
찾아 와서 격려하고 위문하며 함께 지내다가 돌아가곤 해왔습니다.
아무나 따라 할 수 있는 쉽고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진한 우정과 결단력과 실행력이 필요하고
투철한 헌신과 봉사 정신이 없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어러운 일입니다.
우리가 등대횟집에 정오 무렵 예정대로 도착했을 때 김교장과 이교장도
그 식당으로 용케도 잘 찾아 왔습니다.
두 분이 이층의 회식 자리에 갑자기 모습을 나타냈을 때 깜짝 놀랜
회원들의 환성과 우뢰같은 박수 갈채가 터져나왔습니다.
이 집은 2대에 걸친 물회집으로 동해안에서 이름난 명가였는데 이날
내놓은 참가자미 물회 또한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권 총장님은 발렌타인 21위스키를 가져오셔서 찬 맥주와 칵테일해서
한 잔씩 돌리고 건배를 제의하셨습니다.
권총장님은 원래 술을 전혀 들지 않는 완벽한 비주당이신데
과거 제가 위스키 칵테일을 강권해서 그 맛을 뒤늦게 알게 된 분입니다.
제가 아니었으면 그 환상적인 위스키 칵테일 맛도 모르고
지나갈뻔한 분이기 때문에 제가 권총장님께 잘 해드린 것이
있다면 그것이 유일한 것입니다.
바로 이때 경북교육연구원 김상수 원장이 도착했습니다.
그도 한밤의 사진편지 독자로서 근무지인 안동에서 약 2시간을 달려
이곳까지 찾아오신 것입니다.
이날은 반가운 위문단이 한꺼번에 모두 몰린 잊을 수 없는 날이었습니다.
김 원장님은 교육과정을 전공한 경북교육계의 인재로서 따뜻한 리더십을
지닌 이 고장의 뛰어난 교육 지도자입니다.
작년 제2구간 골인 지점으로 자축 파티에 쓸 위스키와 와인을 택배로
보내주기도 했던 김 원장님은 올해도 위스키와 와인을 한 상자나 들고
오셨으며 기념 타올도 전 회원에게 선물하는 자상함을 보여주셨습니다.
전회원이 고마운 분들의 따뜻한 위문 속에 물회를 맛있게먹고 있을 때
이번에는 그 비싼 영덕게가 1인당 한마리씩 나왔습니다.
이날 점심과 영덕게와 술은 모두 권재술 총장님이 베풀어 주셨습니다.
권 총장님의 베푸심에 무어라고 감사를 드려도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권 총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점심을 마치고 내려오자 김용만 고문님은 우리에게
서울에서 싣고 온 사과 한상자와 감귤 두상자,
그리고 포도와 딸기를 씻어 간식세트로 만든 과일 봉지를 한 개씩
나누어 주고, 현금 10만원을 협찬하셨고
이규석 님은 현금 20만원을 협찬하셨습니다.
이날은 다양한 문화 체험과 진미를 즐기며 반가운 분들을 만나 두터운
정을 받으며 사람 냄새를 진하게 맡은 최고의 날이었습니다.
점심을 들고난 후 권총장님과 김용만 고문님, 이규석 님 그리고 김상수 원장님 등과
아쉬운 작별을 한 후, 우리는 이날밤의 숙소인 영덕읍의
'파라다이스' 모텔을 향해 오후 1시에 축산항을 출발했습니다.
서울에서 새벽부터 꼬박 5시간 이상을 달려 점심시간에 맞춰 찾아 온 두 분이
또다시 5시간을 걸려 서울에 돌아갈 것을 생각하니 마음에 걸렸습니다.
감용만 고문님, 이규석 님 대단히 감사했습니다.
당신들은 대단한 열성과 사랑을 지닌 정말 특별한 분들이십니다.
우리는 계속 아름다운 해안 도로를 따라 여유있게 걸었습니다.
하얀 파도가 굉음을 내며 바위에 부서지는 모습을 내려다 보며
반별 사진도 찍으며 산책하듯이 걸었습니다.
멀리 풍력발전기의 커다란 프로펠러가 높게 돌아가고 있는 모습이
그림처럼 보였습니다.
그것이 보이면 이 날밤 숙소가 가깝다는 것을 사전답사를
통해 알고 있었기 떄문에 목적지가 지척에 있음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오후 4시 아직도 바다 위에 해가 높이 걸려 있는 밝은 대낮에
영덕읍 대판리에 위치한 숙소 '파라다이스'모텔에 도착했습니다.
이 모텔은 파도가 거세게 떄리는 바닷가 바위 위에 바로 서 있었고
2인1실 방이 충분히 확보되어 있는 꽤 규모가 큰 숙소였습니다.
거기다가 방도 뜨끈뜨근하여 지친 다리와 허리를 화끈하게 풀수 있어
회원님들의 대 환영을 받았습니다.
이런 숙소만 만날 수 있다면 아무 걱정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저녁식사는 대판리 마을의 복판에 위치한 가정집 같은 민박집에 부탁해서
장터국밥을 들었습니다. 쇠고기 국밥이었는데 전혀 느끼하지 않게 잘 끓였고
묵은 김장 김치가 일미였습니다.
우리가 식사한 방안에 '瑞氣雲集'이란 편액이 걸려 있었습니다.
오렌지색 유니폼을 입은 40여명이 자리를 잡으니 정말 상서로운 서기가
온 방안에 가득한 것 같았습니다.
세째날도 고마운 여러분의 보살핌과 도움 속에 무사히 잘 끝냈습니다.
밤새도록 파도가 바위를 치는 '쿵쿵 쏴쏴' 소리를 들으며 따끈한 온돌 바닥에
허리를 시원하게 지지며 편안하게 지냈습니다.
권재술, 김용만, 이규석, 김상수 님 네분께 차례로 전화를 걸어
무사히 도착했는지를 묻고 그들의 도움과 정성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이날 밤, 서울에서 열린 남북한 축구경기는 한국이 1:0으로 이겼습니다.
걷기도 축구도 다 잘 되었습니다.
축구의 승리는 우리 걷기를 위해서도 아주 잘 된 일이었습니다.
< '고래불 대교'에서 반별 기념 사진 >
1반 : 소정자, 장정자, 최영자, 윤삼가, 송군자, 김균순, 손귀연(반장), 박현자, 홍종남 님
2반 : 김영자, 정광자, 박정임, 윤정아, 윤정자, 양정옥(반장), 정인자, 이복주 님 (뒷산이 상대산임)
3반 : 김태종, 조동환, 신원영(반장), 윤종영, 심상석, 이흥주, 김성기, 김동식 님
4반 : 진풍길, 이영균(반장), 허필수, 김영신, 박찬도, 이달희, 이창조 님
5반 : 김재관, 주재남(반장), 함수곤, 정형진, 권영춘, 안희수, 남정현 님
<글 : 함수곤 사진: 이창조>
첫댓글 교장선생님!!! 건강한 모습 뵈니까 너무 반가웠습니다. 항상 열정적으로 사시는 모습이 많이 부럽습니다. 훌훌 세상사 털고 건강 지켜가시는 모습이 너무 좋네요. 저는 그냥 이곳에서 짧은 걷기를 하고 지냅니다. 아직도 무릎이 좀 완전치가 않아서요. 계속 치료는 하고 있으니까 빠른 날에 좋아질 것이라 생각 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성삼일' 전례 참석하느라 늦은 시간에 집에 온답니다. 낼이 부활절이네요. 예수님의 부활처럼 우리의 삶도 부활의 모습으로 거듭나도록 노력한답니다. 항상 건강하십시오. 닮고 싶구요. 주님의 부활을 기뻐하면서...... 장 수 봉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