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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인류가 오랫동안 품어온 의문이다. 아주 오래 전에는 물이나 불이라고 여겼다. 근대에 들어와 물질의 근본인 원소를 떠올렸는데 현대에는 원자란 개념을 떠올렸다. 그런데 원자도 그 안에 작고 무거우며 (+) 전기를 가진 원자핵과 전자가 전기력으로 묶여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
물리학과 종교는 상관 없는데도 '신의 입자'라 불린 힉스 보손(Higgs Boson)을 이론적으로 발견한 영국의 이론물리학자 피터 힉스 명예교수가 지난 8일(현지시간) 9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사실을 국내 언론도 10일 일제히 보도했다. 그런데 고인의 업적을 설명하기에는 지면의 제약 때문에 충분치 않았다. 해서 짐 배것의 책 '힉스, 신의 입자 속으로(Higgs: The invention and discovery of the God Particle, 박병철 옮김, 김영사)의 보도자료와 이강영 경상대학교 물리교육학과 교수의 친절한 가르침을 통해 쉽게 설명해보고자 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에 궁극적인 최소단위가 존재하며, 그로부터 만물이 만들어진다는 주장은 매우 논리적으로 생각되지만, 물질을 무한정 분해할 수 있다면 결국 무한히 작은 점까지 분해되고, 점은 크기가 없으므로 모든 만물은 ‘분해’라는 과정을 거쳐 무(無)로 사라지게 된다. 그렇다면 이 세상은 존재자체가 모호하고 정의할 수도 없는 것이 되고 만다.
현대물리학은 이 유령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했다. 알고 보니 질량은 물질의 최소단위에 내재되어있는 근본적 특성이 아니었다. 사실 질량이라는 것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모든 입자는 ‘질량이 없는 어떤 소립자’와 힘을 주고받고 있는데, 이 과정에 발생한 에너지가 ‘질량’이라는 결과로 나타난 것뿐이다. 이 가설이 처음 대두되었을 때 물리학계는 찬반 두 진영으로 양분돼 수십 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결론도 내리지 못했다.
과학자들은 확장된 우주 그리고 지구에 대한 인간의 끝없는 궁금증인 입자와 그들 사이의 힘을 '표준모형' 이론으로 설명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과학자들은 입자물리학의 성전인 표준모형조차 결국엔 심각한 결함을 갖고 탄생한 이론임을 인지하게 된다. 이 오류를 해결하는 방법은 오직 하나, 힉스입자를 직접 발견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피터 힉스와 벨기에 브뤼셀 대학의 프랑수아 프랑수아 앙글레르 등 물리학자들이 힉스가 존재한다는 가설을 제안한 지 40년이 넘도록 힉스입자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 후 2012년 7월 4일에 개최된 학회에서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CERN)의 물리학자들은 힉스입자에 ‘부합되는’ 입자가 발견되었음을 선언했고, 2013년 10월 4일 힉스입자의 발견을 공식적으로 선포했다. 표준모형을 뛰어넘어 새로운 물리학의 세계로 인류를 인도한 것이다.
1964년 미국 과학자 머리 겔만은 이미 알려진 입자들을 만들어내는 더 근본적인 기본입자를 제시, 이들 소립자에 쿼크란 이름을 붙였다. 그 뒤 실험을 통해 양성자와 같은 입자가 쿼크로 이루어졌음이 증명됐고, 지금 우리는 쿼크와 렙톤(전자와 비슷한 성질을 갖는 입자들)을 물질을 이루는 기본입자라고 생각하고 있다. 즉 쿼크와 렙톤이 상호작용을 해서 이 세상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겔만은 이 업적을 인정 받아 1969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물리학자들은 자연을 이루는 법칙의 근원에 네 가지 상호 작용이 작동한다고 본다. 우리가 언제나 느끼는 ‘중력’, 우리 눈에 보이는 대부분의 현상을 일으키는 원인인 ‘전자기력’, 그리고 원자핵을 이루는 ‘강한 핵력’과 입자를 바꿀 수 있는 독특한 ‘약한 핵력’이 그것이다.
이론물리학자가 보기에 우주의 근본적인 작동 및 존재 원리는 대칭성이다. 네 가지 근본적인 힘 중에서 중력을 제외한 나머지 세 힘은 게이지 대칭성이라는 방법을 통해 정확히 설명된다. 게이지 대칭성을 이용해 전자기 이론이 올바른 양자역학 이론으로 정립됐고, 그 뒤 게이지 이론으로 다른 힘들까지 설명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우리가 주변을 둘러보면 곧 느낄 수 있듯, 자연의 대칭성은 늘 정확하게 남아 있는 것이 아니고, 많은 경우 현실에서는 대칭이 깨져 있다. 그 결과 우리는 더욱 풍부한 자연현상을 보게 된다. 대칭성이 깨지는 방식 중에서 자발적 대칭성 깨짐(spontaneous symmetry breaking)이라는 과정은 특히 중요하다. 더 낮은 에너지 상태를 택하면서 대칭성이 깨질 때 우리는 대칭성이 자발적으로 깨졌다고 한다.
1961년 제프리 골드스톤은 대칭성이 자발적으로 깨질 경우 반드시 질량이 없고 스핀이 0인 입자가 하나 나타나야 함을 증명했다. 이를 ‘골드스톤의 정리’라고 하며, 이때 나타나는 질량이 없는 입자를 ‘골드스톤 보손’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질량이 없는 입자는 빛을 제외하고는 실험에서 발견된 적이 없었으므로, 사람들은 자발적 대칭성 깨짐이 입자물리학에서 일어나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1964년 힉스와 앙글레르와 로베르 브라우, 그리고 미국의 구랄니크, 하겐, 키블이 거의 동시에 제각기 게이지 대칭성이 자발적으로 깨지는 과정에 대한 논문을 내놓았다. 이들은 스핀이 0인 스칼라 장이 가지는 가장 낮은 에너지 상태가 게이지 대칭성이 깨진 상태라면, 이론적으로는 게이지 대칭성이 성립하면서도 게이지 대칭성이 깨진 것처럼 보여, 게이지 입자도 질량을 갖는다고 설명했다. 특히 힉스의 논문에는 게이지 이론에서는 질량이 없는 골드스톤 보손이 아니라 질량을 가진 스칼라 입자가 나타난다는 것이 제시됐다. 바로 힉스 입자의 개념이 태어난 것이다. 자연의 가장 기본적 성질의 대칭성이 깨지는 이유는 다른 보손 입자와의 상호작용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모든 입자에 질량을 부여한 뒤 사라지는 새로운 입자를 예측했다.
그러나 이들이 2012년 발견된 힉스 입자를 예측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모두 자발적 대칭성 깨짐으로 강한 핵력을 설명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 아이디어를 약한 상호작용의 이론에 적용한 사람은 미국의 스티븐 와인버그와 파키스탄의 압둘 살람 등이었다. 와인버그는 게이지 대칭성이 깨지면서 약한 핵력을 전달하는 입자인 W와 Z 보손이 질량을 갖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W와 Z 보손의 질량 때문에 약한 핵력이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만 작용하는 것과 전자기 상호작용에 비해서 아주 작은 것이 모두 설명된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입자물리학 표준모형의 구조이며, 여기서 나타나는 전기적으로 중성인 스칼라 입자가 바로 2012년에 물리학자들이 찾아낸 힉스 입자다.
게이지 대칭성이 자발적 대칭성 깨짐을 통하여 게이지 입자의 질량을 만드는 과정을 ‘힉스 메커니즘(Higgs mechanism)’이라고 하고, 이때 나타나는 스칼라 입자를 ‘힉스 보손’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여러 사람이 공헌한 이론에 어떻게 한 사람, 힉스의 이름이 붙게 됐을까? 1972년 미국 페르미연구소에서 열린 컨퍼런스에서 당시 페르미연구소 이론물리학 부장이며 대표 발표자였던 이휘소(1935~1977) 박사가 약한 상호작용의 여러 이론을 언급하면서 처음으로 ‘힉스 메손(Higgs meson)’이라는 말을 쓰면서부터였다고 힉스는 돌아봤다.
힉스 메커니즘은 또한 물질을 이루는 쿼크와 렙톤의 질량도 정해준다. 결국 표준모형의 모든 입자는 힉스 메커니즘을 통해서 질량을 갖게 되고 우리가 보는 형태로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 셈이다. 그리고 그 결과로 힉스 보손이라는 미지의 입자가 하나 나타나게 된다.
그의 이론이 결실을 맺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1971년 네덜란드의 토프트가 일반적인 게이지 이론이 자발적으로 대칭성이 깨지더라도 양자역학적으로 성립한다는 것을 증명하면서 와인버그의 이론은 날개를 달게 됐다. 곧이어 1973년 CERN에서 전기적으로 중성인 약한 상호작용이 발견되면서 SU(2) 대칭성이 확인됐고, 1974년 네 번째 쿼크가 발견돼 전자뿐 아니라 쿼크까지 모든 기본입자가 와인버그의 이론으로 모두 통합됐다. 진정한 거의 모든 것의 이론이 탄생한 것이다. 이를 우리는 입자물리학의 표준모형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와인버그, 글래쇼, 살람은 표준모형의 이론을 만든 공로로 1979년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으로 수상했다.
오늘날까지 표준모형의 여러 이론적 구조는 거대 가속기 실험을 비롯한 수많은 실험을 통해 세부까지 아주 정확히 검증됐다. 특히 약한 핵력을 전달하는 입자인 W와 Z 보손이 1983년 CERN의 양성자-반양성자 충돌장치에서 발견되면서, 약한 핵력의 가장 핵심적인 구조가 힉스 메커니즘을 제외하면 모두 확인됐다. 사실 W와 Z 보손이 질량을 가지고, 다른 쿼크와 렙톤도 모두 질량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힉스 메커니즘의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그 밖의 다른 방법으로는 이들 입자가 질량을 가지는 것을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2012년 7월 마침내 힉스 입자의 존재가 확인됐다.
표준모형은 기본입자를 17개로 본다. 물질과 중간자 구성하는 쿼크 6개, 상호작용하지 않는 경입자 6개, 힘을 매개하는 게이지 입자 4개, 질량 부여하는 메커니즘 힉스 입자 등이다.
표준모형은 20세기 인류가 성취한 양자론, 특수 상대론, 양자 장이론, 양자전기역학(QED) , 게이지 이론, 자발적 대칭성 깨짐과 같은 물리학의 주요 성과가 집약된 인간의 이성 활동에 있어서의 금자탑이다. 이 하나의 방정식은 빅뱅 직후와 같은 아주 특별한 경우와 중력 현상을 제외하면, 우리 우주의 거의 모든 물리현상을 설명하는 기본 이론이다.
LHC에서 힉스 입자가 발견된 것은 좁게 말하면 힉스 메커니즘이 게이지 대칭성과 같은 자연의 근본적인 구조에서도 작용하는 원리임을 확인한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이제야 표준모형의 모든 부분을 검증하고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해서 표준모형이 적용되는 범위까지는 올바른 자연의 법칙을 알고 있다고 말해도 좋다. 여기서 올바른 이론이란 엄청나게 복잡한 진짜 이론을 이상화시킨 이론이 아니라, 진짜 옳고 아주 구체적인 부분에까지 옳은 이론이다. 사실, 힉스 메커니즘이라는 원리가 표준모형이 예측한 대로 정확하게 재현된다는 사실은 전율을 일으킬 만큼 놀라운 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우주에 대해 모르는 것이 아는 것보다 훨씬 많다.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암흑물질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우주 에너지의 70%에 이르는 부분에 대해서도 전혀 모른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기본입자가 전부인지, 우주가 시작될 때는 다른 입자가 더 있었는지도 알 수 없고, 중력이 다른 힘들과 왜 그렇게 다른지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우주와 물질에 대한 탐구를 그치지 않을 것이며, 그 과정에 표준모형은 가장 중요한 이정표 역할을 할 것이다. 힉스 입자의 발견은 이제부터 우리가 새로운 탐구를 해나가는 출발점이 정확히 어디인지를 가르쳐 준다.
여기까지다. 고인이 몸담았던 에든버러대학은 성명을 통해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 대한 우리의 지식을 풍요롭게 만든 비전과 상상력을 가진 진정한 재능을 가진 과학자였다”고 돌아봤다. 영국 BBC도 “영국 과학의 거인을 잃었다”고 추모했다.
고인은 1929년 5월 29일 뉴캐슬에서 태어나 1947년 킹스 칼리지 런던 물리학과에 입학해 1950년 수석 졸업했다. 1954년 같은 학교에서 분자 진동 이론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1960년 에든버러대 수리물리학과 교수를 거쳐 1980년부터 이론물리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힉스는 1964년에 물리학 분야 국제 학술지 ‘피지컬 리뷰’에 다른 입자들에 질량을 부여하고 사라지는 입자의 존재를 이론적으로 예상하는 한 쪽 정도의 짧은 논문을 발표했다. 물론 그 전에 여러 과학 잡지의 문을 두드렸지만 이해가 충분치 않아 그의 논문을 선뜻 실어주는 곳이 없어 이듬해에야 공개할 수 있었다. 같은 해 벨기에 이론물리학자 프랑수아 앙글레르도 힉스입자의 존재를 예측하는 짧은 논문을 발표했다.힉스와 앙글레르는 2013년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1988년 노벨상 수상자이며 페르미연구소 소장을 지낸 미국 물리학자 레온 레더먼이 1983년 책 제목을 '신의 입자(God Particle)'라고 지었다. 사실 힉스입자의 존재에 대해서는 많은 과학자가 회의적이었다.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를 발견한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도 ‘쓰레기 같은 이론’이라고 비난했을 정도다. 레더먼은 처음에 책 제목을 ‘빌어먹을 입자’(Goddamn Particle)로 붙였지만 출판사측의 만류로 앞의 제목으로 출간됐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무신론자인 힉스도 그 책 제목을 마음에 들지 않아 했다.
2018년 타계한 영국의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는 2000년대 초반 “힉스입자는 절대 발견될 수 없을 것이라는 데 100달러를 걸겠다”라고 장담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CERN에서 힉스입자를 실험적으로 발견한 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힉스에게 당장 노벨물리학상을 줘야 한다”고 밝힌 일화도 유명하다.
그는 기본적으로 부끄러움이 많았다. 다른 학자에게 공을 돌리는 일도 많았다. 자신의 이론적 발견이 48년 만에 증명됐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때때로 옳은 것은 아주 좋은 일"이란 알듯 모를 듯한 말을 남겼다. 그리고 (제네바에 있는) "CERN에 오지 않으면 크게 후회할 것"이란 경고에도여행 계획을 접었다. 그는 "오래 기다렸지만 어쩌면 더 오래 걸렸을 수도 있다. 여전히 나는 그 언저리에 이르지 못했을 수 있다. 처음에 나는 살아 생전에 내 이론이 맞다는 것이 증명될지조차 알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핸드폰을 쓰지 않아 노벨상 수상 소식을 곧바로 듣지 못해 이웃이 거리를 산책하는 그에게 수상 소식을 알렸다. 켄 피치 옥스퍼드대 석좌교수는 과학자들이 온통 그에 대한 얘기로 떠들썩했던 학회를 마치고 돌아와 커피숍에 앉아 있는 고인을 보고 "당신 유명해졌더라!"고 말하자 그냥 겸연쩍은 미소만 짓더라고 전했다. 2021년 먼저 세상을 떠난 마이클 피셔 에든버러대 교수는 생전에 고인에 대해 "부끄러움 많은 사람이라고 얘기하고 싶지 않다"면서 "나는 그가 자신의 경력을 포장하기 위해 너무 삼갔다고 말할 수 있겠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