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27일, 일요일
구경가자!
서산 9경,
"오감만족" 여행을 다녀와서~
1편
오전 8시 37분.
'행담도휴게소'에서~
지난 2월,
고흥 '마복산' 산행 이후로~
세 분과
오랜만에 함께합니다.
ㅎㅎ
즐거운 아침식사!
이도령님:알밥우동정식,
소리걸님:소고기탄탄라멘,
별이님,대원군:
오뎅꼬치우동
세 분 모두!
세월을 꺼꾸로~
사시는 분들입니다.ㅎ
맛있어 보이는데~ㅎ
선배님!
나,
한 젓가락만요!
(이것은 '연막작전'입니다.ㅋㅋ)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며~ ㅋ
(양면작전 돌입!)
이도령님의 방어수단(한손만 사용)이
조금은 허술하네요.
ㅎㅎ
별이님,여유있게~
성공!
ㅎㅎ
어~,
뭔가 잘못 됐네!
ㅋㅋ
오전 9시 20분.
'서산'으로 출발합니다.
구경가자!
서산 9경
오전 9시58분.
제 1경
서산 '해미읍성' 도착!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성벽
크고 작게 쌓인 돌들은 저마다
해미읍성이 지나
온 역사를 머금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선조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역사의 현장,
이 곳은
서산 "해미읍성" 입니다.
*바다가 아름답다는 의미의 '해미'와
*'읍성'은
지방의 관청과 사람들이 사는 곳을
둘러 쌓은 성으로
'읍'이라는 말은
'성으로 둘러 쌓인 마을'을 의미합니다.
평시에는
행정중심지가 되고
비상시에는
방어기지가 됩니다.
해미라는 지명은
조선시대부터 사용 되었다.
1416년 태종이 서산 도비산에서
*강무:(조선시대 왕의 친림하에거행된
군사훈련을 겸한 수렵대회)를 하다가
해미에서 하루를 머물면서
주변지역을 둘러보게 됐는데,
당시 해안지방에 출몰하는
왜구를 효과적으로 방어하기에
적당한 장소라고 판단하여
덕산에 있던 충청병영을
이설하기위한 대상지로 정해
1417년(태종 17년)부터
1421년(세종 3년)까지
4년에 걸쳐
축성을 완료하게 된다.
그 후 해미에
충청지역 육군의 최고 지휘기관인
충청병영이 위치하며
병마절도사가 배치되어
육군을 총 지휘하였고
1652년 청주로
충청병영을 이전하며
충청병마절도사의
병영성으로서의 역할이 끝나게 된다.
이후 충청도 5진영중 하나인
호서좌영이 들어서게 되고
영장으로 무장을 파견해
'호서좌영장과 해미현감'을
겸직하게 되면서
'읍성'의 역할을 하게 된다.
해미읍성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읍성의 하나로서
가장 완전한 형태의 성곽을 자랑한다.
성 안쪽을 향해
4~5단 정도의 계단식 석축을 쌓고
그 위를 흙으로 덮어
경사지게 하여
성 내벽을 만들고
여기에 의지해서
다듬은 성돌로 수직되게
성 외벽을 쌓았다.
성 외벽의 성돌을 살펴보면
공주,청주,임천 등
각 고을명이 새겨져 있는데
이것은
고을별로 일정 구간의
성벽을 나누어 쌓으면서
그 구간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하여
부실공사를 막는
'공사 책임제'의 증거로 보인다.
진남문
읍성의 남쪽으로 통하는
'성의 정문'으로
500년 옛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성 안쪽에 보면
문루 아래를 가로지른
받침돌 중앙에
'황명홍치사년신해조'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황명홍치'는
명나라 효종의 연호인
'홍치'를 의미하는데
1491년(성종 22년)에
"진남문"이 중수 되었음을
추정 할 수 있다.
불랑기
서양에서 만들어져
중국으로 전해진 서양제 화기로
임진왜란때
명나라 원군이 가져와
전투에 사용하였다.
대장군포
포신은
철 주물(주철)로 제작되었으며,
포신에 두터운 마디를 두룬 것은
포의 강도 저하를 보완하기 위한
것으로 여겨진다.
[국조오례의]의
장군 화포와 유사하여
'대장군포'라고 불리지만,
그 기원이나 정확한 명칭은
확인되지 않았다.
별대완구
완구는
그 생김새가 음식그릇과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단석과 비진천뢰' 등을 장치한다.
주로
공성용 화포로
고려말부터 사용 되어졌으며,
별대완구는
조선후기에 개발되어진
것으로 보인다.
화포
조선시대 주력화기로
많은 전투에서 사용 되었다.
화포 발사 과정
(약선 구멍에 약선을 넣는다 -
화약과 탄환을 막대기로 다진 후
격목을 넣는다 -
흙을 넣어 다진 후
탄환을 장전한다 -
약선에 불을 붙여 발사한다)
천자총통
천자문의
'천.지.현.황'의 글자를
딴 화포 중 가장 규모가
큰 조선시대의 화학무기로
태종 때부터 제작,사용하였다.
대장군전을 장착하여
임진왜란 때
적함이나 적의 진지를 부수는데
큰 전과를 거둔
위력적인 무기이다.
신기전기화차
조선시대 문종 1년(1451)
처음 제작 되었으며
신기전 100발을 장착한 후
이를 동시 내지는
연속적으로 발사 할 수 있는
일종의 다연장 로켓으로
여러전투에서
큰 전과를 거두었다.
제작 당시의 설계도가
남아있는 것 중에서
가장오래된 병기이다.
검차
수레의 전면에 설치된
방패에 검을 꽂아 만든 무기로
고려시대부터 사용되었다.
검차는 평지에서
4명의 병력이 운영하였으며,
수레 맨 앞에는
날카로운 칼날을 꽂아 공격하였고,
검차 전면에는
짐승의 얼굴을 한 모양의
방패를 세 겹으로 설치하여
적의 공격을 막도록 하였으며,
외면에는
귀면문을 그려 넣어
적의 말을 놀라게 하였다.
투석기
공성전에서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하여
돌과 같이
무거운 물체를 사용하여
성벽을 무너뜨리고
적군을 살상하며,
화공을 위해
불이 붙은 물체를
멀리 보낼 때 사용하였다.
운제
성을 공격할때
사용하던 공성무기로
높은 사다리가
'구름에 닿을 만큼 높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좌우에 6개의 바퀴를 달아
굴리게 되어 있고,
성벽을 타고 오를 수 있는
사다리가 설치되어 있다.
신라시대부터 만들어져
조선시대까지
공성무기로 사용하였다.
회화나무
일명 호야나무라고 불리며
충청남도 지정기념물 제172호로
수령 300년 이상
추정되는 나무이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천주교 신자들을
이 나무에 매달아
고문했다고 전해진다.
옥사
1935년에 간행된
[해미순교자약사]를
토대로 복원했으며
1790년부터 100년간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을
국사범으로 규정하여
이 곳에서 투옥하였다.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도
이 곳에서
옥고를 치르고
순교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곤장 때리기!
ㅎㅎ
1,000,022...
'백만 스물 둘'이요!
ㅋㅋ
'민속가옥'앞에서~
옥사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조선시대
부농,서리(말단관리),
상인의 집을 재현하였다.
재기차기 놀이!
소리걸님!
꽝,
ㅋㅋ
어~~~
두분은
'하나'도 못 맞추네요.
ㅎㅎ
별이님도
꽝,
ㅋㅋ
이도령님,
대단해요!
7개 성공합니다.
ㅎㅎ
'잠양루'에서~
(동문)
성벽 걷기!
제 6경,
'가야산'을 담아봅니다.
'청허정'을 배경으로~
청허정
1491년(성종22년),
충청병마절도사로 부임한
조숙기가 지은 '청허정'은
'맑고 욕심없이 다스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곳에서 병사들은
휴식을 취하거나
활을 쏘며 무예를 익혔고,
문객들은
시를 짓고 글을 남겼다.
청허정은
해미읍성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이 곳에올라서면
천수만을 한눈에 볼 수 있으며,
과거 시회를 하거나
문인들이 시를 읊었던 곳이다.
현재 청허정은
과거 관련기록을 근거로
2011년에 개축하였다.
동헌
조선시대 지방관서에서
정무를 보던 중심건물이다.
관찰사.수령들의 정청으로서
지방의 일반행정 업무와
재판등이 여기서 행해졌다.
동헌은
병마절도사를 비롯한
현감겸영장의 집무실로서
관할지역의 일반 행정업무와
재판 등이 행해지던 건물이다.
해미 현감겸영장은
인근 12개군,
현의 병무행정과 토포사를
겸한 지위였다.
해미읍성 내아
관리와 가족들이
생활하던 관사 건물로
동헌이
고을의 공무를
수행하는 곳인데 반해
내아는 살림집이다.
해미읍성 내아는
발굴조사와 고증을 거쳐
2000년 11월,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호서좌영.
객사
객관이라고도 하며
지방을 여행하는
관리나 사신의 숙소로 사용,
조례에 참석하지 못하는
지방관리들은
왕을 상징하는 전패를
객사에 모시고
'초하루와 보름'에
왕궁을 향해 절을 올리는
망궐례를 올렸다.
오후 2시,
이 곳(객사) 앞에서
'뜬쇠 예술단'의
"마딧길" 공연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지성루.
(서문)
'진남문'을 배경으로~
'진남문'에서~
문루 아래를
가로지른 '받침돌 중앙'에~
붉은색 글자.
"황명홍치사년신해조"
(황명홍치는
명나라 효종의 연호인
홍치를 의미하는데,
1491년(성종 22년)에 진남문을 중수
되었음을 추정 할 수 있다)
오전 11시 3분.
제 3경
"간월암"으로 출발합니다.
간월암의 유래
간월암은
과거 피안도, 피안사로 불리며
밀물시
물위에 떠있는
연꽃 또는 배와 비슷하다 하여
연화대 또는
낙가산, 원통대라고 부르기도 했다.
고려말 무학대사가
이곳에서 수도하던 중
달을 보고
홀연히 도를 깨우쳤다하여
암자 이름을 간월암이라 하고,
섬 이름도 '간월도'라 하였다.
이후
조선의 억불정책으로
간월암이 폐사 되었던 것을
1941년 만공선사가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편
만공선사는 이 곳에서
조국해방을 위한
천일기도를 드리고
바로 그 후에
광복을 맞이하였다고 한다.
간월암은
밀물과 썰물 때
섬과 육지로 변화되는
보기 드문 자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특히 주변의 섬들과
어우러진 낙조와 함께
바다위로 달이 떠올랐을 때의
경관이 빼어나다.
오전 11시45분.
간월암 도착!
별이님의 멋진 솜씨!
ㅎㅎ
'간월암'에 들어서면~
옛 선사 달보고 깨우친 간월암에
잔잔한 염불소리 울리면
바닷새,파도마저 소리를 낮추고
지나던 나그네는
발걸음도 조심한다네
간월암에서는
입과 마음을 잠시 쉬고,
마음의 평안과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며
귀한 시간,귀한 걸음
헛되이 하지 마소서.
-대한불교조계종 간월암
간월암.
(관음전)
산신각.
거울속에 비친 모습!
ㅎㅎ
오후 12시 27분.
즐거운 점심시간!
'은혜네'에서~
굴파전.
직접 만든 소리걸님표
도토리묵.
맛있는 밑반찬들!
바다 보고,
맛 보고,
행복 느끼고~ ㅎ
01 | | 02 | | 03 |
어리굴젓 | | 삼합:파전,어리굴젓,새우 | | 도토리묵,어리굴젓,새우 |
01 | | 02 | | 03 | | 04 |
청국장 | | 영양굴밥 | | 밑반찬과 함께~ | | 영양굴비빔밥 완성! |
'배'까지~부르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네요.
한마디로
'금상첨화'입니다.
ㅎㅎ
오후 1시 12분.
뜬쇠 예술단의
"마딧길"공연 보러
다시,
"해미읍성"으로 갑니다.
오후 1시 58분.
해미읍성 도착!
오후 2시
'뜬쇠' 예술단의
마딧길 공연!
제작진
예술총감독 이권희
음악감독 서승연
무대감독 강지은
음향감독 김명식
음향스텝 손민선
사회 유석순
판굿
판굿은
참으로 농악의 백미이다.
발로는 땅을 놀고
손으로는 가락을 놀고,
머리는 상모를 돌리며 하늘을 논다.
판굿에서는
화려한 개이놀이가 펼쳐진다.
역동적이고
다양한 가락과 춤사위는
신명을 일으키고
태평소 손동주
마지막으로
관객과 하나되어
대동의 한마당을 이루어낸다.
마딧길(대북/모듬북)
전통적인 타악의 진지함과
실험적 퍼포먼스의 결합된
마딧길 작품은
관객들에게 흥미를 보여주며
프로페셔널 한 연주는
공연의 극적 완성도를 보여준다.
지금도
"대북의 울림"은
가슴 벅차 오릅니다.
두개의 대북소리!
'천하'가 울리고~ ㅎ
모듬북 연주!
카페 게시글
└─▶ 일반 사진방
구경가자 '서산 9경' 오감만족 여행을 다녀와서~(1)
대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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