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배낭
일주일 전 입동이 지났다. 주말엔 새벽 열차를 타고 힌림정역으로 나갔다. 미명의 새벽에 들녘을 지나 낙동강 술뫼생태공원을 걸었다. 안개가 짙게 끼어 사위를 분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지척에는 무성한 물억새가 피어 가을의 정취를 느끼게 해주었다. 강둑 자전거 길을 따라 유등까지 걸었다. 유등은 강변 배수장을 사이 두고 김해와 창원의 행정 구역을 경계 짓는 마을이었다.
유등에서 마을버스 2번을 타고 시내로 복귀했다. 그 마을버스는 대산면 일대 자연부락 구석구석을 돌았다. 들판 가운데 야트막한 산기슭에 위치한 우암초등학교 앞으로도 지났다. 이후 주남저수지를 거쳐 용강고개를 넘었다. 아침나절이라 시간 여유가 있어 집으로 바로 가지 않고 북면 지인 농장을 찾아갔다. 지인은 블루베리 묘목을 심은 농장을 돌보다가 새참으로 곡차를 들었다.
나도 농막에 올라 잔을 채워 대작했다. 지인은 내가 농장에 들리면 즐겨 먹는 것이 유정란 날계란임을 알고 두 개 꺼내왔다. 새참 후 지인은 블루베리 밭에서 못다 한 일을 하고 나는 밭둑을 내려가 머위 순을 뜯었다. 자연에서 채집한 친환경 찬거리였다. 머위 순을 따 놓고 쪽파를 두어 줌 뽑았다. 그 쪽파는 초가을 들머리 내가 시장에서 종자를 사다가 이랑을 지어 심어둔 것이었다.
쪽파 잔뿌리에 흙이 묻은 부분을 잘라내고 겉껍질을 까 가렸다. 이어 상추와 겨자채 잎을 몇 줌 따 모았다. 지인의 밭을 방문하는 이들이 먼저 채집해 밑동부터 잎이 깨끗해져 갔다. 얼갈이용으로 심어둔 배추를 두 포기 잘랐다. 아직 속이 덜 찼기에 데쳐 된장국에 넣으면 좋을 듯했다. 새참 후 수집한 푸성귀들을 배낭에 챙겨 담았다. 한동안 우리 집 식탁에 오를 가을 채소들이었다.
이어 난 살림공간으로 가 라면을 끓였다. 계란과 쪽파를 몇 가닥 썰어 넣었다. 지인 농장을 방문할 때면 가끔 내가 취사당번을 맡는 경우가 있다. 끓인 라면을 농막으로 가져나가 지인과 같이 들었다. 아까 남겨둔 곡차를 마저 비우면서 점심을 잘 때웠다. 점심 지인은 농막에서 짧은 낮잠을 청했다. 나는 닭장 곁의 단감나무로 가서 감을 땄다. 일부 단감은 서리를 맞고 홍시가 되었다.
지인이 농막에서 휴식을 취할 때 난 농장을 빠져나왔다. 갈전마을 입구에서 정한 시각에 도착한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서 친구에게 전화를 넣었더니 내일 집안 시제 제수를 준비하느라 틈을 낼 없다고 했다. 나는 배낭 속에 푸성귀를 둘로 나누어 담아 놓아 집 앞에서 친구한테 건넬 요량이었는데 차질이 생겼다. 대신 내가 사는 이웃 아파트 지인에게 넘겨주었다.
이튿날 일요일은 진해 용원을 거쳐 가덕도로 갔다. 근래 그곳에서 은퇴 후 전원생활 터를 정한 작은형님을 찾아뵈었다. 형수는 용원 어시장에서 사 간 문어를 삶아 내어 난 곡차를 들었다. 작은형님은 일적불음이라 혼자 비웠다. 거실에서 잠시 환담을 나누고는 형님 내외와 같이 산행을 나섰다. 연대봉으로 가는 길목 사슴 목장과 어음포 산불감시초소를 지나 누릉능으로 내려갔다.
누릉능에서 해안선 따라 걸어 기도원을 지나 동선 새바지에 닿았다. 동선 새바지는 눌차도와 이이전 천연 방조제였다. 형님 댁은 눌차만이 바라보이는 해안선에 남향으로 자리한 그림 같은 집이었다. 텃밭에서 무와 배추를 몇 포기 뽑아 배낭에 담았다. 작은형님은 가덕도 가을 특산물인 고구마를 한 박스 챙겨주었다. 형수는 삶을 고구마를 잘라 말린 빼때기를 한 봉지 안겨주었다.
주말 이틀을 하루는 열차로, 하루는 좌석버스로 길을 떠났다. 목적한 곳이 달라도 동선을 멀리 잡아 걷고는 귀로엔 배낭이 묵직했다. 북면 농장에선 청정지역에서 자란 가을 푸성귀를 담아와 이웃과 나누었다. 가덕도행에선 형님이 캐둔 지역 특산물인 고구마와 삶아 말린 빼때기를 챙겨왔다. 이 정도면 한동안 우리 집 식탁 찬거리는 염려 없다. 고구마는 겨울까지 간식이 될 테고. 16.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