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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에서 하는 알쓸신잡을 보기 시작했는데, 나영석은 사람들이 원하는 곳을 잘 긁어주는 능력, 트렌드를 잘 읽는 눈을 가졌다는걸 새삼 느낀다(이런 방송의 컨셉 자체는 이미 팟 캐스트등에서 나오고 있었다고는 한다). 물론 이 프로그램이 재밌을 수 있는 이유는 유희열, 유시민, 황교익, 김영하, 정재승이라는 절정의 구라꾼들에 있고, 이 급의 구라꾼 5명 모아놓으면 밥상을 차려놓고 발로 걷어차도 프로그램이 굴러갈 것이긴 하다만.
통영편에서 백석과 그의 시가 나와서 나도 참을 수 없어!
백석.
존잘남. 존잘님.
시대의 모던보이
더러운 외모 패권주의자의 만행
내가 저 머리 했으면 고흐의 보리밭이 아니라 한강 간이화장실 고정시키는 볼트와 너트 연결부위에 비집고 나온 잡초느낌이었겠지
저런 머리를 하고 사진까지 찍게 한걸보면 백석은 자기가 잘생긴 줄 알았다고 봐야한다...
내가 사투리에는 표준어가 잃어가고 있는 무언가가 있다고 말한적이 있는데, 백석의 시들도 그러한 '무언가'를 보여준다. 평안도 사투리를 중심으로 질박한 아름다움을 극한으로 보여주고 있다. 백석의 시에서 사투리란, 그가 추구했던 노스탤지어적인 세계관을 나타내기 위한 방법론으로 쓰였다고 볼 수 있다. 반면에 시의 구성이나 내용, 감성들은 매우 현대적이면서도 절제된 측면이 있어서 뭐랄까...조선백자같은 시들이다. 질박함과 모더니즘을 동시에 보여준다. 쉽게 말해 우리 석이 형님은 다 잘해. 슈발 존잘님이여.
본의아니게 월북작가로 찍혀서 계속 못 읽다가 냉전이 끝나고 해금이 되었는데, 수능에 나오기 시작한 시점이 2004년이라고 한다. 그 정도면 완전히 복권되었다고 봐도 무방할 듯.
오늘은 백석의 시 중에서 통영과 통영2를 읽어 볼 것이다. 알쓸신잡에도 나왔듯이 백석의 연애사와 관련된 내용인데, 뭔가 공감가는 감성들이 있다.
통영
녯날엔 통제사(統制使)가 있었다는 낡은 항구의 처녀들에겐 녯날이 가지 않은 천희(千姬)라는 이름이 많다
미역오리같이 말라서 굴껍지처럼 말없이 사랑하다 죽는다는
이 천희(千姬)의 하나를 나는 어늬 오랜 객주(客主)집의 생선가시가 있는 마루방에서 만났다
저문 유월(六月)의 바닷가에선 조개도 울을 저녁 소라방등이 불그레한 마당에 김냄새 나는 비가 나렸다
사투리들이 많아서 단어 설명들은 불가피하다. 대충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단어를 정확히 알면 그 시가 보여주는 분위기가 거의 영상을 보는 듯이 선명해지기 때문이다. 단어 설명은 '백석문학전집1'과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이라는 웹싸이트(중에서 http://www.seelotus.com/gojeon/hyeon-dae/si/si-new/100-seok.htm) 에서 내가 볼 때 더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해설을 취사했다.
통제사는 '그분' 이순신을 말한다. '녯날이 가지 않은'은 '예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는'이라는 뜻이라고. 모던보이 눈에는 천희라는 이름이 그렇게 느껴졌나보다. 천희라는 이름은 당시 유행했던 이름 중의 하나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한때 유행했지만, 지금은 많이 쓰지 않는 이름. 이 이름을 어떤 맥락에서 사용할지는 시인의 맘에 달렸다. 백석은 어떤 맥락에서 사용하였나? '미역오리같이 말라서 굴껍지처럼 말없이 사랑하다 죽는다'고 하였다. '미역오리'는 '미역줄기'를 뜻한다고 한다. '굴껍지'는 '굴껍질'의 방언이라고 한다. 미역이나 굴이나 한자리에 붙어서 그냥 계속 살아가다 죽는다. 통영항의 여성들은 뭔가 이 항구를 떠나지도 못하고, 수동적으로 살아가면서 말도 못하는 이미지이다. 그러나 그들도 마음속에 사랑하는 마음은 있을 것이다.
이걸 표준어로 '미역줄기같이 말라서 굴껍질처럼 말없이 사랑하다 죽는다'고 바꾼다면 어떨까? '줄기같이'라는 말은 거칠게 발음된다. 여기서 당시에 흔한 수동적인 여성상을 나타내기에는 발음상 부적절 할 수 있다. 뭔가 가시가 있는 것 같잖아. 또 '굴껍질'이 아니라 '굴껍지'라고 하면 뭔가 발음이 덜 끝난, 말을 하려다 마는 느낌을 준다. '굴껍지'라는 방언의 선택은 '말없이 사랑하다 죽는다'는 이미지와 호응하는 것이다.
천희(千姬)라는 이름에서 아씨 희(姬)자는 또 어떠한가? 이 글자는 여성의 존칭이라고도 하는데, 고대 중국에서 쓰인 유래를 따져보면 상당히 남성의존적인 측면이 있다. 예를 들어서 고대 주나라의 공주가 제나라로 시집가면 그 공주는 '제희'라고 불리게 된다고 한다. 만일 남편이 문공(文公)이라면 그 부인은 문희(文姬)라고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희'라는 이름이 유행한 시절은 어쩌면 근대문물이 개방되었지만 사람들의 관념등이 아직 완전히 양성평등에 이르지 못한 현실을 반영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천희'라는 이름은 백석이 꽂혔던 그 여성의 본명이 아니라고 알려지고 있다. 그녀의 본명은 '박경련'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여기서 '천희'라는 이름은 시인이 선택, 창조한 시어라고 봐야한다. 이러한 분위기와 백석 자신이 느꼈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 선택한 어휘인 것이다.
낡은 항구에, 사람들은 흔해빠진 구닥다리 이름이나 중복해서 쓰고있고, 머물기로 한 여관방의 마루는 마감처리도 잘 안되어서 나무가시가 올라와있다. 시대의 힙스터였던 백석은 비오는 밤에 나가지도 못하고 여관 마루에서 밖을 바라보면서 어쩌면 '뭐 이리 후지냐'면서 궁시렁댔을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 순간 암스테르담에 사는 모 힙스터 꿈나무의 표현처럼 공기와 분위기가 바뀌었다! 어떤 한 여자를 만나면서. 백석은 그 여자가 어땠는지에 대해서 구구절절히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당시의 분위기와 상황을 아주 정밀하게 묘사한다. 유월이면 요새시즌이다. 해가 아주 길어서 해가 저물었을 정도면 채소 저녁8시 이후의 늦은밤. '조개도 울을'이라고 한다. 조개에게 울음 소리가 있는가? 굳이 비슷한 것을 찾는다면 조개가 껍질을 벌리는 것? 조개는 밀물때 먹이를 먹는다. 그런데 조개가 껍질 벌리는 소리를 낸다면 밀물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시기일 것이다. 그런데 그 소리는 아주 작을 것이다. 그런데 시인은 그 소리를 들을듯이 말하고 있다. 온몸의 감각이 최고조로 올라왔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밀물'은 흔히 어떤 감정의 고조, 상승, 벅참을 뜻한다.
통영2
구마산(舊馬山)의 선창에선 좋아하는 사람이 울며 나리는 배에 올라서 오는 물길이 반날
갓 나는 고당은 갓갓기도 하다
바람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짤한
전북에 해삼에 도미 가재미의 생선이 좋고
파래에 아개미에 호루기의 젓갈이 좋고
새벽녘의 거리엔 쾅쾅 북이 울고
밤새껏 바다에선 뿡뿡 배가 울고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
집집이 아이만한 피도 안 간 대구를 말리는 곳
황화장사 영감이 일본말을 잘도 하는 곳
처녀들은 모두 어장주(漁場主) 한테 시집을 가고 싶어한다는 곳
산 너머로 가는 길 돌각담에 갸웃하는 처녀는 금(錦)이라는 이같고
내가 들은 마산(馬山) 객주(客主)집의 어린 딸은 난(蘭)이라는 이 같고
난(蘭)이라는 이는 명정(明井)골에 산다는데
명정(明井)골은 산을 넘어 동백(冬栢)나무 푸르른 감로(甘露)같은 물이 솟는 명정(明井) 샘이 있는 마을인데
샘터엔 오구작작 물을 긷는 처녀며 새악시들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그이가 있을 것만 같고
내가 좋아하는 그이는 푸른 가지 붉게붉게 동백꽃 피는 철엔 타관 시집을 갈 것만 같은데
긴 토시 끼고 큰머리 얹고 오불고불 넘엣거리로 가는 여인은
평안도(平安道)서 오신 듯한데 동백(冬栢)꽃 피는 철이 그 언제요
녯 장수 모신 낡은 사당의 돌층계에 주저앉어서
나는 이 저녁 울 듯 울 듯 한산도(閑山島) 바다에 뱃사공이 되어가며
녕 낮은 집 담 낮은 집 마당만 높은 집에서 열나흘 달을 업고 손방아만 찧는 내 사람을 생각한다
'통영'은 비교적 절제된 감정을 보여줬는데 '통영2'쯤 되어선 감정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더 이상은 참을수가 없어! 사랑에 맛탱이가 간거지... (그래서 사실 이 시는 앞의 '통영'처럼 설명할 부분은 많지 않다). 그런데 백석 자기 생각에 좀 민망했는지 빙빙 돌려서 말하는 것이 귀...귀여워! 힙스터 최후의 자존심. 이 시는 신문에 실렸는데 사실상 자기가 꽂혔던 그 여성에 대한 공개저격이 되기에 그랬는지도.
처음에 구마산에서 반날이나 걸려서 이 물길을 헤쳐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왜 그렇게 먼 길을 백석은 왔나? '좋아하는 사람이 울며 나리는'이라고 하면서 은근슬쩍 힌트를 주지만 그 다음에는 말을 빙빙 돌리면서 6시 내고향 리포터 행세를 갑자기 한다.
통영은 어떤 곳이죠?
백석 왈 '갓(양반들이 쓰던 그 갓) 나는 고당(고장) 이죠!'
백석씨는 이 먼길을 갓 보러 오셨어요?
백석 왈 '아니오! 통영은 갓갓기도 하니까요(물건 종류가 많으니까요)'
어떤 물건들이 그렇게 많은데요? 백석은 이에 대해서 갖가지 해산물들을 늘어놓는다. '전북'은 전복의 방언이고 '호루기'는 호레기라고도 하는데, 일케 생김(http://www.kojedo.co.kr/?document_srl=106854). 알쓸신잡 통영편에도 나왔다. 다찌집에서 유시민과 황교익이 따봉 날리며 한입에 털어넣던 꼴뚜기 같이 생긴 바로 그것이다(꼴뚜기를 사투리로 호레기라 하기도 하는데, 엄밀히는 갑오징어 새끼를 호레기라고 한다고).
백석씨 먹으러 왔어요?
백석 왈 '아니죠! 북도 쾅쾅 배도 뿡뿡...여기는 자다가도 일어나 가고 싶은 곳이에요!'
이 먼 통영까지 온 이유를 뿌뿌거리며 장장 5개의 연에 걸쳐 설명하는 백석(남. 25)의 모습
이 시의 나중에 무너지는 모습 보여주는 것 생각하면 앞의 이러한 구구절절한 설명들은... 아 구차해!ㅠ
그 다음 연에서 열일하던 6시 내고향 리포터는 말린대구나 '황화장사(온갖 잡동사니 물건들을 가지고 방문판매하던 사람)'와 같은 통영의 문물 이야기를 하다가 처녀들이 모두 어장주에게 시집가고 싶어하는 곳이란 부분에 이르러서는...갑자기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중얼거리기 시작한다. '산 너머로 가는 길 돌각담에 갸웃하는 처녀는 금(錦)이라는 이 같고...내가 들은 마산(馬山) 객주(客主)집의 어린 딸은 난(蘭)이라는 이 같고...' 여기서 '들은'은 '들린'의 뜻이라고 한다. 아까 '통영'시와 연결되는 부분이다. 그런데 통영을 마산이라고도 불렀나? 이건 잘 모르겠다.
돌각담에 갸웃하면서 백석을 쳐다본 '금'이라는 아가씨는 아마 지나가다가 백석이 너무 존잘남이어서 못참고 뒤돌아봤나보다. 백석 생각에 '내가 슈발 이렇게 잘나가는데...난이 그 여자와 이뤄질 수가 없어...' 백석은 '난'이라는 여자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한다. 여기서도 역시 본명이 아니라 '난초'라고 부르고 있다. 역시 아까 '통영'에서 본명을 선택하지 않고 '천희'라는 어휘를 선택한 것과 같은 이유다.
'난'은 어떤 여성인가? 여기서도 앞의 '통영'에서 나왔던 '소라, 김'처럼 그녀가 자신에게 어떤 이미지로 다가왔는지를 묘사해보여주고 있다. 일단 그녀가 어떤 사람인가하면 '난초'의 이미지이고, 명정(밝은 우물)골에 산다고 한다. 명정골은 어떤 곳인데? 일단 산을 넘어야한다. '난초'의 이미지와 함께 뭔가 쉬운여자는 아니라는 뜻이다. 뭔가를 숨기고 신비함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음침하거나 목석같은 여자? 아니 그렇진 않고 동백같은 빠알감을 가진 여자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푸르른 감로 같은 여자이기도 하다. 이성적이면서도 달콤한 물 같은 여자. 그 여자는 백석에게는 창조의 원천을 샘솟게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성적이고 달콤함만 있는가? 샘터에 오구작작(어린 아이들이 떠드는 모양)물을 긷는 처녀들 가운데 그이가 있을 것도 같다는데에서 이 여자는 아이와 같은 천진난만함도 가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백석의 상사병은 답이 없는 상태임을 알 수 있다...아주 갓갓녀이셔. 그 분은. 갓나는 고당의 갓갓기도한 갓갓녀.
그런데 그 이는 동백꽃 피는 철에는 타 지역으로 시집을 갈 것 같다고 한다. 그래서 '처녀들이 모두 어장주에게 시집가고 싶어하는 곳'이라는 말을 하다가 '난'의 이야기로 홀린 듯이 넘어온 것이다. 여기서 동백꽃 피는 철이란 단순히 물리적 시기를 말하는 것 이라기 보단 여성이 피어나는 시기로 봐야 할 것이다. 애초에는 마산 객주집의 '어린' 딸로서 만났으니까. 그래서 '오구작작' 물을 긷는 처녀들 가운데 그이가 있을 것도 같다고 한 것은 그녀에 대한 맹목적인 그리움을 표현하면서도(이 부분이 공감이 가지 않는가? 사랑에 빠지면 온 세상이 다 그 사람 같다) 백석이 생각하기엔 '나한테는 아직도 애 같은데 시집을 간단 말인가'라는 한탄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 다음에 백석의 고향인 평안도에서 온 것 같은 여성에게 물어본다. 여성이 꽃피는 시기가 언제냐고. 이 먼 타향까지 와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그냥 평안도에서 온 것 같다는 이유만으로 누구에게 덜컥 물어보고 싶은 백석의 심정을 보여준다. 이 내용을 한 연 안에 넣은 것은 백석이 반쯤 맛이 가있는 상태라는 것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홀린 듯이 다른 이야기로 넘어간다는 것은 그 다른 이야기에 사로잡혀있음, 그런데 그 다른 이야기가 뭔가 일이 잘 풀리지는 않았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녯 장수 모신 낡은 사당이란 이순신을 모신 충렬사를 뜻한다. 그 사당의 차가운 돌층계에 백석은 주저앉았다. 충성을 다하고도 임금에게 버림받은 이순신의 심정과 백석 자신을 동일시하는 느낌이 있다. 결국 울듯울듯한 상태가 되어버린다. 한산도의 뱃사공은 어떤 상태를 뜻할까. 한려수도는 섬이 첩첩섬중이다. 도대체 물길을 알수도 없고, 섬 뒤에 또 섬이고...출구없는 미로에 빠져버린 느낌, 무언가를 찾으려 찾으려 죽어라 노를 저어도 계속 섬만 나오는, 그 무언가를 손에 잡을 수 없는 심리적 상태가 아닐까.
그런데 백석이 앞에서는 신나게 해산물도 먹고 배도 뿡뿡하다가 시집 이야기가 생각나서 결국 고조되어 울먹이게 된 것일까. 이 시의 끝까지 읽어보고 다시 앞을 읽어보면 사실, 시인은 이미 시의 시작부터 울고 있었다. 구마산의 선창에선 좋아하는 사람이 울면서 내리고 있었고, 바람맛도 물맛도 짭짤했으며, 새벽에는 북이 쾅쾅 '울고' 밤에는 배가 뿡뿡 '울고' 있었다. 그래서 자다가도 울면서 일어나 바다로 가버리고 싶었던 것이다. 아마 이 시를 쓸때에 이미 그 여인은 혼삿날이 정해졌을 것이라 추측해볼 수 있다.
'녕'은 이엉이나 짚으로 틀어서 지네 모양으로 엮은 지붕의 방언이라 한다. 초가지붕인것인데, 게다가 이 지붕이 낮은 집이라고 한다. 결코 부유하지는 않다. 앞의 시 '통영'에서 그 객주집의 마루는 거칠어서 잘 다듬어지지도 않았음도 생각해보라. 지붕도 낮고 담도 낮아서 마당밖에 높은 것이 없는 집. 그래서 처녀들이 대부분 어장주에게 시집을 가고 싶어 한다는 말에 '난'이 생각난 것이다. 그렇다면 이 '난'의 현재 심정은 어떠할까. 열나흘달을 업고 손방아만 찧고 있다. 아마 14개월 후에 혼삿날이 잡힌 것 같다. 그 여인은 손방아만 찧고 있다. 별로 여인은 맘에 내켜하는 혼인이 아닌 분위기이다. 뭔가 잊고 싶을 때, 마음이 혼란하고 번잡할때 그를 잊기 위해서 반복적인 행위에 몰두하는 경우가 있다.
이에 얽힌 실제 스토리는 백석에게 있어서는 다소 끔찍한 것이었다고 한다(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49652) 그런데 이 링크한 글과 내 생각은 조금 달라서 일단 링크한 글의 일부를 옮겨본다.
(전략)
처음 백석이 난을 만난 건 1935년. 당시 시인이자 조선일보 기자였던 백석은 절친한 친구의 결혼식 축하모임에서 같은 신문사 동료인 신현중의 소개로 당시 서울의 이화고교 학생이던 통영 여자 난(본명 박경련)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백석은 스물넷, 난은 열여덟 꽃다운 나이였다.
(중략)
난은 신현중 누나의 제자였던 터라 신현중과 잘 아는 사이였다. 백석은 내친김에 신현중과 함께 친구의 통영 신행길을 따라나섰다. 사랑하게 된 여인의 고향과 집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때 쓴 시가 1935년 12월 <조광(朝光)>에 발표된 <통영>이다.
(중략)
이후 두 번 더 통영을 찾아가지만 운명의 장난인지 서로 엇갈려 못 만나게 되고 백석은 상실감속에 충렬사 계단에 주저앉아 두번째 시 <통영2>를 남기게 된다. 이 두번째 '통영' 시는 백석이 통영을 다녀왔다는 증거처럼 자신이 근무하던 조선일보를 통해 발표를 했다. 서울에서 그 공개구혼 같은 시를 읽었던 통영여자 '난'은 얼마나 가슴이 뛰었을까.
1936년 12월 마침내 백석은 친구 신현중과 함께 또다시 통영을 방문해 난의 어머니에게 난과 혼인할 뜻이 있음을 전한다. 난의 어머니 서씨는 서울에 사는 오빠 서상호를 만나 난의 혼사문제를 상의하고 백석에 대해 알아봐 줄 것을 청한다. 당시 난은 외삼촌 서상호의 집에서 돌봄을 받으며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서상호는 아끼는 고향 후배 신현중에게 백석에 대해 묻는다. 그때 신현중은 숨겨주어야 할 친구 백석의 비밀을 발설하고 만다. 그것은 백석의 어머니가 기생 출신이라는 소문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때문에 백석과 난의 혼사는 깨져버린다. 대신 그 자리에서 신현중은 서상호에게 자신이 난과 혼인할 뜻이 있음을 밝히고 단번에 승낙을 받는다. 1937년 4월 7일 신현중과 난은 혼인을 한다.
(후략)
나는 링크한 글을 쓴 이 사람의 생각과는 다르게 '통영2'를 백석이 썼던 1936년 1월에 '난'이란 사람은 이미 혼삿날이 잡혀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로부터 14개월후인 1937년 4월에 '난'은 실제로 혼인을 하기 때문이다. '통영2'에서 열나흘달을 업고 손방아만 찧는다는 표현이 나오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백석이 이미 잡혀있었던 혼삿날에 끼어들기를 하고, 거기에 여자의 마음도 흔들리자 친구가 백석의 비밀을 발설해버린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물론 이것이 사실이 아닐수도 있다. '통영2'에서 백석이 불안해하는 장면들은 사랑할때 흔히 나타나는, 그 사람이 곧 어디로 사라져버릴 것같은 근거없고 막연한 불안감을 나타낸 것으로 볼 여지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감정도 충분히 공감간다. 누군가를 너무나 좋아하게 됐을 때 그 사람이 어디로 증발해버릴 것 같은 불안감을 느껴본 적 없는가? 첫번째 '통영'시에서 아무리 미화했어도 결국 소라와 김은 수동적이고 외부의 환경에 매우 종속적인 존재들이다. 실제 결혼도 '난' 본인의 의사보다는 다분히 집안의 결정에 의해서 성사되었다. 백석은 이미 '난'과 처음만난 그때부터 무언가 불안하고 이뤄지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을 가졌는지도 모르고 이 감정이 점점 커져서 '통영2'에까지 이르러서는 별 근거도 없는데 냅다 울것같은 감정까지 갔는지도 모른다.
백석은 사상을 따라 월북했다기 보단 광복 후 단지 고향으로 돌아간 것 뿐이었다. 북한 내에서는 제대로 된 문학활동을 거의 하지 못했고, 사상이 아닌 문학성으로 문학작품을 평가해야한다고 주장하다가 숙청당해서 하방당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통영'을 쓰던 이때, 만약에 백석이 그 여자와 결혼했다면 백석의 인생과 작품세계는 달라졌을까.
북한에서 백석의 사진. 미소년은 어디에ㅠ
그런데 '고흐의 보리밭같은 머리스타일'은 은근히 보존되었다. 백석도 DNA가 달랐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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