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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묵자흑(近墨者黑)
먹을 가까이하면 검어진다는 뜻으로, 나쁜 사람을 가까이하면 그 버릇에 물들기 쉽다는 말이다
近 : 가까울 근(辶/4)
墨 : 먹 묵(土/12)
者 : 놈 자(耂/4)
黑 : 검을 흑(黑/0)
[유사]
근주자적(近朱者赤)
귤화위지(橘化爲枳)
남귤북지(南橘北枳)
마중지봉(麻中之蓬)
봉생마중(蓬生麻中)
일부중휴(一傅衆咻)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
근묵자(近墨者)란 먹물을 가까이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고, 흑(黑)이란 검게 된다는 뜻이다. 즉, 이 말은 나쁜 사람을 가까이 하면 그 행실이 물들기 쉽다는 말로, 늘 가까이 하는 사람에 따라 영향을 받아서 변하므로 조심해야 한다는 뜻이다.
훌륭한 스승을 만나면 스승의 행실을 보고 배움으로써 자연스럽게 스승을 닮게 되고, 나쁜 무리와 어울리면 보고 듣는 것이 언제나 그릇된 것뿐이어서 자신도 모르게 그릇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는 것을 일깨운 고사성어이다.
중국 서진(西晉) 때의 문신, 학자인 부현(傅玄)의 태자소부잠(太子少傅箴)에 나온다. “무릇 쇠와 나무는 일정한 형상이 없어 겉틀에 따라 모나게도 되고 둥글게도 된다. 또 틀을 잡아 주는 도지개가 있어 도지개에 따라 습관과 성질이 길러진다. 이런 까닭으로 주사(朱砂)를 가까이 하면 붉게 되고, 먹을 가까이 하면 검게 된다(故近朱者赤 近墨者黑) 소리가 조화로우면 울림이 맑고, 형태가 곧으면 그림자 역시 곧다.”
주변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한 한자성어로는 귤화위지(橘化爲枳), 남귤북지(南橘北枳),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마중지봉(麻中之蓬), 봉생마중(蓬生麻中), 일부중휴(一傅衆咻), 한 사람의 스승이 가르치는데, 옆에서 많은 사람들이 떠들어대니, 아무리 열심히 가르치더라도 성과가 없다는 뜻으로, 환경의 영향을 받아 하는 일이 성과가 없거나, 공부를 하는데 여기저기서 간섭만 하는 등 학습 환경이 좋지 않음(맹자) 등이 있다.
근주자적(近朱者赤)하고 근묵자흑(近墨者黑)이란 말이 있다. -孔子
지초(芝草) 와 난초(蘭草)는 매우 향기로운 식물이다. 그러나 아무리 향기로운 식물이 있는 방이라도 그 안에 오래 살게 되면 모르는 사이에 동화(同化) 되어 그 짙은 향기를 모르게 된다.그것과 마찬가지로 착한 사람과 오래 함께 있게 되면 모르는 사이에 동화되어 나도 그 사람 처럼 착한 사람이 된다.
간 저린 생선은 그 냄새가 극히 나쁘다. 그러나 저린 생선 가게에 오래 있게 되면 그 냄새에 동화되어 냄새를 모르게 된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착하지 않은 사람과 함께 오래 있게 되면 저도 모르는 사이에 감염되어 나도 그와 같이 나쁜 사람으로 변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함께 있을 사람을 신중하게 선택해야 된다.
네덜란드에서는 품종이 떨어지는 장미를 품종이 우수한 장미옆에 심어 품종을 개량한다고 한다. 품종이 나쁜 장미는 자기수정이 되지 않도록 꽃밥을 품종이 좋은 꽃쪽으로 기울여서 수정을 하게 해 드디어 우수한 품종으로 바꾸어 간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새나 동물의 색깔이나 모양을 개량하기 위해서 기발한 방법을 쓰곤 했다. 예컨대 흰 새를 만들기 위해서 쥐색 새를 하얀 방, 하얀 새장 속에 놓고 하얀 옷을 입은 사육사가 출입을 하면 드디어 흰 새가 된다는 것이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필라델피아 거리에 가로등을 세우고 싶었다. 그는 다른 사람을 설득하지 않고 자기 집 앞에 멋진 등을 달았다. 그리고 매일 저녁때가 되면 유리를 정성껏 닦고 불을 켰다. 얼마 되지 않아 다른 사람들도 집 앞을 밝히기 시작했다. 온 도시가 등을 달게 되었고 사람들은 가로등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원래 먹을 가까이 하면 먹이 묻기 쉬워 검게 된다는 근묵자흑(近墨者黑)이나 붉은 것을 가까이 하면 붉게 된다는 근주자적(近朱者赤)이라는 말은 주위의 나쁜 영향을 받기 쉬우니 경계하라는 뜻이지만 주위의 좋은 이웃이나 좋은 솔선수범(率先垂範)을 보면 좋은 영향도 받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법구비유경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부처님께서 어느 날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다가 헌 종이조각 하나가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제자에게 물었습니다. “저 종이는 무엇을 하던 종이냐?”
제자는 종이를 살펴본 후 “이 종이는 아마 향을 쌌던 것으로 보입니다. 향긋한 향내가 납니다.”
얼마쯤 더 걸어가다 보니 이번엔 새끼줄이 하나 떨어져 있었습니다. 부처님이 또 제자에게 물었습니다. “네, 이것은 아마 생선을 묶었던 새끼줄인가 봅니다. 비린내가 몹시 납니다.”
이런 대답에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모든 것은 본래 정결한 것이었으나 인연에 따라서 죄를 짓기도 하고 복을 짓기도 한다. 현명한 사람을 가까이 하면 덕이 높아지고, 어리석고 우매한 자를 벗하면 근심과 죄가 늘어난다. 마치 저 종이나 새끼줄처럼 향을 가까이 하면 향내음이 배어나고, 생선을 가까이 하면 생선 비린내가 나는 것과 같아 차츰차츰 물들어가면서도 자신은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말한다면 먹을 가까이 하면 자신도 모르게 검어진다는 근묵자흑(近墨者黑)이란 고사성어로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무엇을 가까이 하느냐에 따라 사람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접근의 원리이기도 합니다.
🔘 사자소학(四字小學) 中에서
近墨者黑(근묵자흑)
먹을 가까이 하는 사람은 검어지고
近朱者赤(근주자적)
주사(朱砂)를 가까이하는 사람은 붉게 되니
居必擇隣(고필택린)
거처할 때엔 반드시 이웃을 가리고
就必有德(취필유덕)
나아갈 때엔 반드시 덕있는 사람에게 가라.
🔘 사기(史記) 中에서
水隨方圓之器 人依善惡之友(수수방원지기 인의선악지우)
물은 모나고 둥근 그릇에 따라 달라지고 사람은 착하고 악한 친구에 의해 달라진다
從遊邪人 予亦自邪(종유사인 여역자사)
사악한 친구를 따라 놀면 나 또한 사악해진다
蓬生麻中 不扶自直(봉생마중 부부자직)
(꾸불꾸불한) 쑥도 (곧은) 삼 가운데에서 자라면 돕지 않아도 저절로 곧아지고,
白沙在泥 與之皆黑(백사재니 여지개흑)
흰 모래도 진흙 가운데에 있으면 그와 더불어 모두 검어진다
근묵자흑(近墨者黑)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영향을 미치는 외부 요인 중의하나가 환경인 것 같습니다. ‘소학(小學)’에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먹을 가까이 하면 검어진다는 뜻으로, 나쁜 사람과 가까이 하면 나쁜 버릇에 물들게 됨을 이르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착한 사람과 좋은 환경을 만나면 악인도 선인으로 바뀔 수 있다는 얘기가 아닌지요?
蓬生麻中 不扶自直 白沙在泥 不染自汚
(봉생마중 불부자직 백사재니 불염자오)
近墨者黑 近朱者赤 居必擇隣 就必有德
(근묵자흑 근주자적 거필택린 취필유덕)
마 밭에 난 쑥은 세워주지 않아도 곧게 서고/ 하안 모래도 진흙과 만나면 물들이지 않아도 더러워지니/ 먹을 다루는 손은 검어지고 주사를 만지면 빨개지는 법/ 거주를 정할 땐 반드시 이웃을 살펴보고 정하고/ 덕 있는 사람들 있는 곳으로 가라.
그만큼 환경이 중요하다는 얘기입니다. 워싱턴 주의 시애틀에 있는 미 해군교도소의 두 교도관이 유치장 하나를 분홍색으로 칠했다고 합니다. 방의 색깔이 정신건강에 상관이 있을 거라는 가설을 세운 것이지요. 그래서 감방을 푸른색, 핑크색, 노란색… 등 여러 색깔로 칠하고 그 감방의 죄수들의 심리적 특색을 관찰하였습니다.
그 후 7개월 동안 선임준위(先任准尉) 진 베이커와 교도소장 론 밀러는 성나고 흥분한 상태였던 새로 온 수감자들이 분홍색 방에 들어간 후 15분만 지나면 이내 조용해지는 것을 목격한 것입니다. 교도관들의 보고에 따르면 새로 온 수감자들은 보통 매우 공격적이었으나 7개월의 실험 기간 그들은 단 한 건의 폭력 사건도 일으키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에 영향을 받은 미국 전역의 다른 교도소에서도 특별 유치장의 벽을 풍선껌 색으로 칠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작은 군(郡)의 구치소에서도 난폭한 술주정뱅이들을 분홍색 유치장에 밀어 넣기 시작했지요. 이 색채는 그때부터 ‘주정뱅이 유치장의 분홍색(Drunk Tank Pink)’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께서는 산에 올라야 절이 있고 부처가 있다고 생각 하시는지요? 아닙니다. 부처는 절에 없습니다. 부처는 세상에 내려가야만 천지에 널려있는 것입니다. 내 주위 가난한 이웃이 부처고 병들어 누워있는 자가 바로 부처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많은 부처를 보지도 못하고, 어찌 사람이 만든 누런 불상에만 허리가 아프도록 절만 하는지요?
천당과 지옥도 마찬 가지입니다.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닙니다. 천당은 살아있는 지금 여기가 천당이고 또한 지옥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 마음이 바로 천당이고 지옥이라는 얘기입니다. 내가 살면서 즐겁고 행복하면 여기가 천당이고, 살면서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하면 거기가 지옥인 것이지요.
그러니까 우리가 부처고, 우리가 관세음보살입니다. 그러니까 죽어서 천당 가려고 하지 말고 사는 동안 천당에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처라는 걸 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부처답게 살아야 합니다. 이 이치를 깨치면 부처요 미혹(迷惑)하면 중생입니다 중생과 부처의 차이는 별것이 아닙니다. 중생은 이 세상의 모든 만들어진 유위법(有爲法)을 다 부질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거기에 집착하고 싸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는 이 세상의 모든 만들어진 유위의 법을 꿈이요 환상이요 물거품이요 그림자와 같고 또한 아침 이슬 같으며 번갯불과 같은 것이라고 알고, 거기에 집착하지도 않고 싸우지도 않습니다. 육조(六祖) 혜능대사(慧能大師)는 이러한 이치를 깨달으면 부처요, 미혹해서 알지 못하면 중생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무릇 부처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우리 환경부터 고쳐야 하는 것입니다. 저 미국 씨애틀의 교도소처럼 온통 우리 환경을 핑크빛으로 칠하는 것입니다. 그 부처님이 되는 여섯 가지 길이 있습니다.
첫째, 스스로 타락 심을 내지 않고 꾸준히 향상해가는 것입니다. 대개 사람들은 성불제중의 서원을 세우고도 작심삼일입니다. 하고 또 하고 될 때 까지 하는 것입니다. 이를 일러 ‘지성여불(至誠如佛)’이라 하지요.
둘째, 견실한 신심(信心)을 가져 부동할 신근(信根)을 확립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순풍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태풍도 불어오는 것이지요.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전쟁터에 나선 장수처럼 바위 같은 필승의 신념을 가지는 것입니다.
셋째, 도덕 가진 이를 친근 공경하고 숭배 신봉하며 정진하는 것입니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 했습니다. 불보살과 마음을 합하고 닮아 가노라면 나도 불보살이 되는 것입니다. 그 불보살을 따라 대 정진(大精進)하는 것이지요!
넷째, 나만 못한 근기(根機)를 나 이상이 되도록 인도하는 것입니다. 부처를 이룬 다음에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도 부처를 향하여 적공하면서 중생도 함께 이끄는 것입니다. 이를 ‘자미도(自未度) 선도타(先度他)’라고 합니다.
다섯째, 공부와 사업에 대하여 부족한 생각으로 적공하는 것입니다. 진리의 세계에 만족이란 없습니다. 배가 부르면 나태해집니다. 배가 고파야 분발하게 되는 것이지요. 적공(積功) 적공 대 적공하는 것입니다.
여섯째, 모든 수용(受用)에 만족하고 이웃에 보시하기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보시(布施) 보다 더 큰 공덕은 없습니다. 언제나 대우에 대해 만족하고 내가 가진 것을 부족한 이웃과 나누는 것입니다. 주는 것이 바로 부처의 행인 것이지요.
어떻습니까? 이대로만 하면 부처를 이루는 데 지장이 없겠지요? 세상의 모든 부처님이 이 여섯 가지 길을 걸어오셨습니다. 근묵자흑입니다. 우리 불보살과 어울려 불보살의 인격을 이루어 극락에 안주해야 하지 않을까요!
근묵자흑(近墨者黑)의 교훈 1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사람이 어울리는 주변에 따라 영향을 받고, 그 주변과 비슷하게 바뀔 수 있음을 뜻한다. '묵(墨)'이라는 말을 글씨 쓰는 먹으로 해석해 긍정적으로 보면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을 가까이 하면 자연스레 그런 사람을 닮아 잘 배운 사람이 된다는 의미로 풀이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검은 것, 나쁜 것으로 해석하게 되면 나쁜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다 잘못된 인생으로 나아가게 된다는 부정적인 의미가 된다.
이렇게 보면 '근묵자흑'이라는 말 자체에는 특별히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뜻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단지 ‘묵’이 어떻게 해석되는가에 따라 그 의미가 결정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근묵자흑’은 ‘묵’이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그저 사람은 살아가는 환경의 영향을 받아 그것에 어울리게 변하는 경향이 있다는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말을 있는 그대로 풀이하면 좋은 것, 좋은 사람은 가까이 하고, 나쁜 것, 잘못된 사람들과는 거리를 두라는 뜻이 된다.
우리 시조 중에는 ‘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 마라… 맑은 물에 깨끗이 씻은 몸을 더럽힐까 하노라’라는 작품이 있다. 정몽주의 어머니가 지었다는 이 시조는 백로와 같은 아들 정몽주가 성내는 까마귀들처럼 나쁜 무리들과 어울리지 말기를 경계하는 노래라 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석하면 ‘까마귀 싸우는 골’은 근묵자흑의 ‘묵’이 지니는 부정적 의미와 관련지을 수 있다. 여기서의 ‘묵’은 깨끗한 흰 색과 대비되는 검은 것, 나쁜 것이다. 그래서 이 노래는 묵과 같은 까마귀 무리들과 어울리지 말라는 경계로 풀이할 수 있다. 이 말들이 특히 강조해 가르치고자 하는 것은 나쁜 데 가까이 가지 말고, 좋지 않은 무리와 어울리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뒤집어 생각해 보면 오히려 새롭게 깨달을 수 있는 교훈이 있다. 그것은 나 자신이 스스로 '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 마라'에서의 까마귀와 같이 나쁜 무리가 되지는 말 것이되 '근묵자흑'의 '묵'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것이다.
'묵'과 같은 존재는 까마귀처럼 근처에 가지 말아야 할 좋지 않은 것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묵'이 지닌 긍정적인 힘은 다른 사람들을 자신과 비슷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데 있다. '묵'은 자신의 영향력으로 주변을 전염,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긍정적 영향력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건을 ‘심청전’의 심봉사 눈뜨는 대목에서 찾을 수 있다. 심봉사가 눈을 뜨는 장면을 보면 심봉사가 죽은 줄 알았던 심청이를 만나자 눈을 번쩍 뜨고, 이 바람에 장안에 있는 많은 봉사들이 같이 눈을 떴다고 한다.
눈을 얼마나 시원하게 뜨는지 그 소리가 여기저기서 ‘쩍쩍’ 났다고 서술하고 있다. 봉사 잔치한다고 얼결에 모인 장님들이 심봉사 덕에 눈을 떴으니 그 얼마나 행복했겠는가? 결국 심봉사는 '근묵자흑'의 '묵'처럼 주변을 '흑'으로 물들일 수 있는 영향력을 행사한 주체였던 것이다.
우리가 새롭게 생각해 볼 것은 주변의 영향을 받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영향력 있는 주체가 되어야 하겠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근묵자흑'의 의미이다. '근묵자흑'에서 우리는 우리의 행위가 다른 사람을 물들이고, 변화시켜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맞이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깨달음을 얻게 된다.
우리는 '묵'과 같은 존재, 그러면서도 까마귀가 아닌 심봉사처럼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존재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근묵자흑(近墨者黑)의 교훈 2
법구경은 인도의 법구스님이 중생들이 살아가는데 좋은 지침이 될 시구들을 모아 엮은 경전이다. 진리의 말씀인 부처님의 경지를 설파하고 있으며 실생활과 밀접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 사람들이 접근하기 편안한 경전이기도 하다.
법구경에 이런 이야기가 전해오는데 새겨 들어볼만 하다. 부처님이 어느 날 바라문족들이 살고 있는 마을에 들르게 됐다. 바라문들에게 설법을 하고 난 뒤 부처님은 길을 떠나게 되었는데 바라문들이 함께 가기를 청해 그들과 같이 길에 올랐다.
부처님과 바라문들이 길을 가는 도중에 길 위에 어떤 종이가 떨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부처님이 그 종이를 집어오라고 일렀다. 한 바라문이 종이를 집어오니 부처님이 물었다. "그 종이가 어디에 쓰였던 것이냐?" 바라문이 대답하기를, "이것은 필시 향을 쌌던 종이임에 분명합니다." "그것을 어찌 알았느냐?" 하고 부처님이 재차 물었다. "아직도 향내가 나는 것을 보고 알 수 있었습니다."
다시 길을 가는데 이번에는 새끼줄이 떨어져 있었다. 부처님은 그 새끼줄도 집어오라고 일렀다. "이것은 어디에 쓰였었는지 알 수 있겠느냐?" 부처님이 또 바라문에게 물었다. 바라문은 "이 새끼줄은 생선을 묶는데 쓰였던 것입니다" 하고 대답을 했다. "그건 또 어떻게 알 수 있었느냐?" 하자 바라문은 "아직도 비린내가 많이 나는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고 답했다.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인연은 이렇게 중요한 것이다. 사물은 본래 깨끗한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인연을 만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죄지을 인연을 만나면 죄를 짓게 되고 복 받을 인연을 만나면 복을 받을 일을 하게 된다."
부처님의 말씀은 계속 이어졌다. "마음이 어질고 사리에 밝은 사람과 함께 하면 진리를 추구하는 마음이 커지고 어리석고 사리에 어두운 사람과 가까이 하면 재앙을 받을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저 종이와 새끼줄처럼 향을 가까이 하면 향기롭게 되고 생선을 싸게 되면 비린내가 나게 되는 것이다. 조금씩 물들면 몸에 배어들게 되는데 사람들은 스스로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부처님의 말씀과 비슷한 것으로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는 말이 있다. '검은 것을 가까이 하면 자신도 모르게 검어진다'는 뜻이다. 이는 사람이 자신의 주위환경에 따라 변하게 된다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사람들 중에는 좋지 않은 사주를 갖고 태어나는 사람들이 있다. 상담을 와서 사주를 보고는 자신의 사주 탓을 하기도 한다. 사주가 나빠서 자신의 인생이 되는 일이 없다고 말하곤 한다. 그런데 좋지 않은 사주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사주 탓을 하면서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탄을 하고 한숨을 몰아쉬고 자기 인생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 버린다. 상담을 할 때 절대 그렇지 않다고 알려주고 또 알려주지만 일부 사람들은 그 말을 듣지 않는다. 사주가 나빠서 안 된다면서 되는 대로 살아가는 어리석은 짓을 하는 것이다. 술에 취해서 시간을 버리고 어떤 시도도 하지 않는다. 그런 상태로 긴 시간을 살아간다 결국에는 부처님 말씀대로 비린내 나는 새끼줄이 되어 버린다.
사주가 안 좋은 사람들이 물론 있다. 그러나 사주가 안 좋다고 모든 사람이 꼬인 인생을 사는 것은 아니다. 그 중에서도 풍요로운 삶을 사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 어떤 인연을 만들어내느냐에 따라 향 싼 종이처럼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사는 건 자신의 노력과 태도에 달려있지 사주에만 달려있지 않다. 인생은 스스로 일궈 나가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근묵자흑(近墨者黑)은 어떻게 해야 하나
근묵자흑(近墨者黑)이란 먹을 가까이 하는 자는 검어진다라는 의미다. 사자소학에 나오는 구절이기도 하다.
숯을 건네며 맨손에 검정을 묻히지 말고 받으라고 한다면 받을 수 있을까? 더구나 주는 자와 받는 자의 관계에서 주는 자가 강압적일 때 받는 내 손이 검어지지 않고 받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일 수밖에 없다.
매일 언론에 회자되는 이야기들은 맑고 깨끗한 사람들의 이야기보다 속도, 겉도 검은자들의 이야기가 많다. 우리사회가 좋은 사람들과 나쁜 사람들이 반반이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내가 만나는 사람 중 한 사람은 좋은 사람이요, 다른 한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면 나는 어떻게 될까? 좋은 것은 으레이 그런 것이거니 한다. 이미 자신의 영육에 합일되어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쁜 것은 어이해야 하나? 이미 양의 탈을 쓴 늑대가 되어 나를 먹이로 이용하려고 접근하는 그를 무방비 상태에서 어떻게 맞이해야 하나?
사람을 만나는 일이 즐거움이 아니고 하나의 공포다. 내내 연락을 끊고 살던 사람이 친절한 목소리로 접근해 오면 축의금이거나 부의금을 전달해야 한다. 전자 매체를 통해 접근해 오는 것들은 대부분 삶의 유익한 정보를 가장한 내 주머니 속의 돈을 축내려는 행위다. 공짜라고 떠 벌리는 자의 속셈은 사기성이 있다고 봐야 한다. 그 공짜가 낚시 미끼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많다. 급기야는 보이스피싱이라는 기상천외의 단어가 우리를 공포속으로 몰아 넣었다.
구 소련을 투어하는 중 국경을 넘는 버스를 정차시킨 관계요원이 사증(여권)을 대조하면서 노인을 일으켜 세웠다. 노인의 키를 실측했다. 사증에는 170센치인데 실측하니 167센치라고 했다. 노인에게 하차를 지시하고 나서 사증에 나와 있는 노인의 키와 실측한 노인의 키가 다르니 노인을 남겨 두고 버스는 출발하라는 것이었다. 사진과 실물은 분명하게 동일인 임에도 막무가내였다. 안내요원이 내려가서 무엇인가를 전달해 주고 나서 노인은 다시 버스에 올랐다.
관광객을 봉으로 삼고 뒷돈을 받고 헤헤거릴 그 모습을 상상하며 버스안 관광객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것을 말리거나 처벌해야 할 제도가 없는 나라였을까. 대한민국의 과거 교통단속 경찰관 3년을 지내면서 집 한 채 장만하지 못하면 병신이라는 이야기가 회자되었음을 기억해 냈다. 세상은 “그 나물에 그 밥이로구나”라는 생각으로 기분이 씁쓸했던 생각이 났다.
세상이 똥물 일수록 나 하나라도 맑은 물이 되어 자꾸만 똥물속에 부어 넣으면 맑아 질 수 있을까. 검은자들 속에서 자신만 깨끗하면 되는 일일까? 내가 살아 낼 수 있을까? 세상은 까만 숯인데…
자라나는 청소년들, 맑고 깨끗한 유년들, 세상에 나와 걸음마를 통하여 걸음을 배우는 아기들에게 우리는 숯이 되면 안된다. 그들을 오염시키는 오염원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늘도 돈 때문에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는 처참한 일이 어디에서 일어나고 있는것이나 아닌지. 명품딱지 붙은 가짜 가방을 든 여인의 허영이 세상을 주름 잡고, 호텔 고급 요리인 삭스핀이 가짜인 세상에서 숨쉬고 있는 산소마져도 믿을 수가 없다. 바로 내 자신의 글이 위선일 수도 있다.
근묵자흑이 주는 경구의 의미는 “추한곳에는 가지도 말고 추한사람과는 무엇이든 함께 하지 말라”이다. 콧구멍이 세 개인 곳에서는 두 개인 사람이 이상이다. 두 개가 정상인 세상을 만들자.
행복의 삼단논법
오래전에 시카고 대학의 심리학자인 존 카시오포 교수와 또 다른 학자 두 분이 아주 재미있는 이론을 펼쳤다. 그들이 연구를 통해 소개한 것은 ‘행복하고 싶다면, 행복한 사람 옆으로 가라’는 내용이었다. 행복도 질병처럼 전염되는 것이라는 게 이유다. 이 내용은 이미 소셜네트워크 등을 통해 널리 알려진 것이지만 곰곰 생각해보니 새삼 마음에 와 닿는 말이었다.
이론의 명제(命題)는 우리의 ‘행복’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건 무엇일까였다. 서울대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의 말을 빌리면, 답은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이었다. 누가 옆에 있느냐에 따라서 사람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옛말 가운데 근묵자흑(近墨者黑, 까만데 있으면 까맣게) 또는 근주자적(近朱者赤, 붉은 것 옆에 있으면 너도 붉게 된다)이나,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의 가르침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
재미있는 것은 ‘내 친구가 행복하게 되면 내가 행복해질 가능성이 약 15% 증가하고, 내 친구의 친구가 행복하게 되면 내가 행복해질 가능성이 약 10% 증가한다. 또 내 친구의 친구의 친구가 행복하게 되면 내가 행복해질 가능성이 약 6% 증가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네 단계쯤 지나야 비로소 주변의 영향력이 희석된다고 한다.
반면, ‘전혀 행복을 못 느끼는 부류’들도 꽤 많이 눈에 띄는데, 이를 샘플조사로 분석하면 이유는 간단했다. 주변에 매사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그만큼 주변에 누가 있느냐에 따라 세상 패턴이 달라진다는 얘기였다.
지금 우리는 ‘연결’의 시대에 살고 있다. 초고속 인터넷망 덕에 지구 반대편 사람과도 쉽게 연결될 수 있다. 하지만 연결되어 있다고 믿을 뿐 사실은 접촉에 불과한 것도 많다.
그러면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일까? 결국 내가 행복한 사람 옆에 있는 것이다. 좋은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을 늘리는 것만큼 효과적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내가 긍정적이고 행복하면 내 친구가 행복해질 것이고, 내 친구의 친구가 또 행복해질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주변 사람들이 행복하면 나에게도 좋지만, 아울러 내가 그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행복을 전염시키는 매개체가 될 수도 있다. 내가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은 나한테 좋은 것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좋은 일이 된다는 삼단논법이 가능하다. 매사 행복은 마음먹기에 따라서, 또는 어떤 이웃과 함께하느냐에 따라서 얻거나 잃을 것이다.
어느 연구에서 남성과 여성을 마주 앉게 하고 2분 동안 서로의 눈을 바라보게 하는 실험을 했다. 그 짧은 시간의 눈 맞춤만으로도 피실험자들은 서로에 대한 깊은 연결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것은 영혼의 현을 울리는, 혼자이면서 혼자가 아님을 느끼게 하는 본질적인 접촉이기 때문이다. 그중에는 일 년 뒤 결혼한 커플도 있다고 한다.
우리 시대의 문제는 쉼 없는 접촉에도 불구 진정한 연결은 잃어버리는 데 있다.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단순한 연결이 서로의 삶을 지탱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봄의 문턱에 들어서며 우리들의 행복도 익은 실과처럼 튼실해졌으면 좋겠다. 늘 서로 돕고 웃음이 끊어지지 않는 사회, 그런 이웃들이 함께하는 계절이 되었으면 한다.
▶️ 近(가까울 근, 어조사 기)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책받침(辶=辵; 쉬엄쉬엄 가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斤(근)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斤(근)은 나무를 베는 도끼로 일부를 잘라내다, 구분 짓는 일을 뜻한다. 물건의 주위를 구분하는 일에서 그 주위, 가깝다, 가까이, 가까워진다는 뜻을 나타낸다. ❷회의문자로 近자는 '가깝다'나 '비슷하다', '근처'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近자는 辶(쉬엄쉬엄 갈 착)자와 斤(도끼 근)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斤자는 '도끼를 그린 것이다. 여기에 辶자가 결합한 近자는 길을 나누듯이 거리를 줄인다는 뜻을 표현하고 있다. 다만 지금의 近자는 거리의 짧음 뿐만 아니라 사람 관계에서의 친분이나 시간의 가까움을 뜻하기도 한다. 그래서 近(근, 기)은 셈을 나타내는 말 뒤에 붙어서 그 아래의 말이 나타내는 수량(數量)이나 시간(時間) 따위에 거의 가까움을 나타내는 말로 ①가깝다 ②닮다, 비슷하다 ③천박하다, 생각이 얕다 ④가까이하다, 친하게 지내다 ⑤사랑하다, 총애하다 ⑥알다 ⑦근처(近處) ⑧곁, 가까운 곳 ⑨가까이 지내는 사람 ⑩근친(近親), 일가(一家), 집안, 친척(親戚) ⑪요사이, 요즘 ⑫가까이, 가까운 데서 그리고 ⓐ어조사(語助辭)(기)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멀 원(遠)이다. 용례로는 가까운 곳을 근처(近處), 육지에 가까운 바다를 근해(近海), 가까운 데 것은 잘 보아도 먼 데 것은 잘못 보는 눈을 근시(近視), 가까운 곳을 근방(近方), 물체를 똑똑하게 볼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점을 근점(近點), 가까운 요즈음이나 요사이를 근래(近來), 요사이나 요즈음을 근자(近者), 가까이 닿음이나 아주 가까움을 근접(近接), 가까운 지난날의 세상을 근세(近世), 도시에 가까운 주변을 근교(近郊), 최근의 형편을 근황(近況), 아주 비슷함이나 거의 같음을 근사(近似), 촌수가 가까운 일가를 근친(近親), 장소나 위치가 가장 가까움을 최근(最近), 거리 상으로 가까운 이웃을 인근(隣近), 가까이 닿음을 접근(接近), 곁의 가까운 곳이나 가까이 친한 사람을 측근(側近), 어떠한 곳을 중심으로 하여 그에 가까운 곳을 부근(附近), 멀고 가까움을 원근(遠近), 정분이 친하고 가까움을 친근(親近), 흔히 보고 들을 수 있을 만큼 알기 쉽고 실생활에 가까움을 비근(卑近), 먹을 가까이하면 검어진다는 뜻으로 나쁜 사람을 가까이하면 그 버릇에 물들기 쉽다는 말을 이르는 말을 근묵자흑(近墨者黑), 붉은빛에 가까이 하면 반드시 붉게 된다는 뜻으로 주위 환경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르는 말을 근주자적(近朱者赤), 부근에 있는 사람들이 즐거워하고 먼 곳의 사람들이 흠모하여 모여든다는 뜻으로 덕이 널리 미침을 이르는 말을 근열원래(近悅遠來), 가까운 곳에서 불이 나 손해는 입지 않았으나 근심을 끼쳐 미안하다는 인사를 일컫는 말을 근화사례(近火謝禮), 가까운 곳에서는 근심하고 먼 곳에서는 염려함을 이르는 말을 근우원려(近憂遠慮), 촌수가 가까운 일가끼리 간음하는 일을 일컫는 말을 근친상간(近親相姦), 먼 데 있는 물은 가까운 데의 불을 끄는 데는 쓸모가 없다는 뜻으로 무슨 일이든 멀리 있는 것은 급할 때에 소용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원수근화(遠水近火), 먼 나라와 친하고 가까운 나라를 쳐서 점차로 영토를 넓힘으로 중국 전국시대에 범저가 진왕에게 진언한 외교 정책을 일컫는 말을 원교근공(遠交近攻),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말을 이르는 말을 법원권근(法遠拳近), 말은 알아듣기 쉬우나 내용은 깊고 오묘함을 일컫는 말을 언근지원(言近旨遠) 등에 쓰인다.
▶️ 墨(먹 묵, 교활할 미)은 ❶회의문자로 土(토)와 黑(흑)의 합자(合字)이다. 黑(흑)은 아궁이에 생기는 그을음이 본뜻으로 그을음을 흙에 섞어 휘저어 만든 것의 뜻으로 쓰인다. ❷회의문자로 墨자는 '먹'이나 '그을음', '먹줄'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墨자는 黑(검을 흑)자와 土(흙 토)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黑자는 아궁이를 그린 것으로 '검다'라는 뜻이 있다. 먹은 소나무를 태운 그을음을 모아 아교풀에 개어 압착하는 형식으로 만들어진다. 그래서 아궁이를 그린 黑자에 土자를 결합한 墨자는 검게 태운 재를 흙처럼 딱딱하게 굳힌 것이라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墨(묵, 미)은 (1)묵서가(墨西哥) (2)자자(刺字) (3)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먹 ②형벌(刑罰)의 종류 ③그을음 ④먹줄(나무나 돌에 곧은 줄을 긋는데 쓰는 도구) ⑤다섯 자 ⑥점괘(占卦: 점을 쳐서 나오는 괘), 귀갑(龜甲)의 균열상 ⑦척도의 이름 ⑧묵자(墨子)의 학파(學派), 묵가(墨家)의 줄인 말 ⑨잠잠하다 ⑩가만히 있다 ⑪말이 없다 ⑫검다, 검어지다 ⑬사리에 어둡다 ⑭더러워지다, 불결하다 그리고 ⓐ교활하다(미)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죄인의 이마나 팔뚝에 먹줄로 죄명을 써 넣던 형벌을 묵형(墨刑), 먹물로 그린 그림을 묵화(墨畫),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을 묵객(墨客), 먹과 붓으로 먹을 칠해서 쓰는 붓을 묵필(墨筆), 먹을 공물로 바치는 계를 묵계(墨契), 먹물로 쓴 글씨나 먹물로 글씨를 씀을 묵서(墨書), 책 속에 글자가 빈 곳에 검게 인쇄된 것을 묵격(墨格), 백성의 재물을 탐내어 억지로 빼앗는 관리를 묵리(墨吏), 붓 자국 곧 필적을 묵흔(墨痕), 검게 칠한 수레를 묵거(墨車), 먹처럼 새까만 빛을 묵광(墨光), 먹줄을 치는 데 쓰이는 나무 그릇을 묵두(墨斗), 먹물로 살 속에 글씨나 그림을 새겨 넣음을 입묵(入墨), 칼로 이마에 입묵하던 형벌을 도묵(刀墨), 종이와 먹을 지묵(紙墨), 붓과 먹을 필묵(筆墨), 진하지 아니한 먹물 또는 먹빛을 담묵(淡墨), 살에다 먹물을 넣어 죄인임을 나타내는 형벌을 자묵(刺墨), 채색을 뭉친 조각으로 그림을 그릴 때에 먹처럼 갈아서 쓰는 채묵(彩墨), 짙은 먹물을 농묵(濃墨), 재목을 다듬을 때 먹으로 치수를 매기는 일을 결묵(結墨), 만든 지가 오래된 먹을 고묵(古墨), 묵적의 지킴이라는 뜻으로 성의 수비가 굳세고 튼튼함을 이르는 말을 묵적지수(墨翟之守), 묵자가 실을 보고 울었다는 뜻으로 사람은 습관이나 환경에 따라 그 성품이 착해지기도 악해지기도 함을 이르는 말을 묵자비염(墨子悲染), 흰 실에 검은 물이 들면 다시 희지 못함을 슬퍼함 즉 사람도 매사를 조심하여야 함을 이르는 말을 묵비사염(墨悲絲染), 먹을 가까이하면 검어진다는 뜻으로 나쁜 사람을 가까이하면 그 버릇에 물들기 쉽다는 말을 근묵자흑(近墨者黑) 등에 쓰인다.
▶️ 者(놈 자)는 ❶회의문자이나 상형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者(자), 者(자)는 동자(同字)이다. 원래의 자형(字形)은 耂(로)와 白(백)의 합자(合字)이다. 나이 드신 어른(老)이 아랫 사람에게 낮추어 말한다(白)는 뜻을 합(合)하여 말하는 대상을 가리켜 사람, 놈을 뜻한다. 또는 불 위에 장작을 잔뜩 쌓고 태우는 모양을 본뜬 글자이다. ❷회의문자로 者자는 ‘놈’이나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者자는 耂(늙을 노)자와 白(흰 백)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者자는 耂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노인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者자의 갑골문을 보면 이파리가 뻗은 나무줄기 아래로 口(입 구)자가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사탕수수에서 떨어지는 달콤한 즙을 받아먹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사탕수수’를 뜻했었다. 후에 者자는 ‘놈’과 같은 추상적인 대상을 지칭하는 뜻으로 가차(假借)되면서 본래의 의미는 더는 쓰이지 않고 있다. 그래서 者(자)는 (1)어떤 명사(名詞) 아래에 붙여, 어느 방면의 일이나 지식에 능통하여 무엇을 전문적으로 하거나 또는 무엇을 하는 사람임을 뜻하는 말 (2)사람을 가리켜 말할 때, 좀 얕잡아 이르는 말로서, 사람 또는 놈 이란 뜻을 나타내는 말 등의 뜻으로 ①놈, 사람 ②것 ③곳, 장소(場所) ④허락하는 소리 ⑤여러, 무리(모여서 뭉친 한 동아리) ⑥이 ⑦~면(접속사) ⑧~와 같다 ⑨기재하다, 적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병을 앓는 사람을 환자(患者), 신문이나 잡지 따위에 글을 쓰거나 엮어 짜냄을 업으로 삼는 사람을 기자(記者), 학문에 능통한 사람이나 연구하는 사람을 학자(學者), 책을 지은 사람을 저자(著者), 살림이 넉넉하고 재산이 많은 사람을 부자(富者), 힘이나 기능이 약한 사람이나 생물 또는 집단을 약자(弱者), 그 사업을 직접 경영하는 사람을 업자(業者), 달리는 사람을 주자(走者), 어떤 종교를 신앙하는 사람을 신자(信者), 어떤 일에 관계되는 사람을 관계자(關係者), 물자를 소비하는 사람을 소비자(消費者), 근로에 의한 소득으로 생활하는 사람을 근로자(勤勞者), 해를 입은 사람을 피해자(被害者), 노동력을 제공하고 얻은 임금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을 노동자(勞動者), 희생을 당한 사람을 희생자(犧牲者), 부부의 한 쪽에서 본 다른 쪽을 배우자(配偶者), 그 일에 직접 관계가 있는 사람을 당사자(當事者), 권리를 가진 자 특히 선거권을 가진 자를 유권자(有權者), 만나면 언젠가는 헤어지게 되어 있다는 회자정리(會者定離), 일을 맺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는 결자해지(結者解之), 먹을 가까이 하면 검어진다는 근묵자흑(近墨者黑), 붉은빛에 가까이 하면 반드시 붉게 된다는 근주자적(近朱者赤) 등에 쓰인다.
▶️ 黑(검을 흑)은 ❶회의문자로 黒(흑)은 통자(通字)이다. 불(火)을 피워 창이 검게 그을린다는 뜻이 합(合)하여 검다를 뜻한다. ❷상형문자로 黑자는 '검다'나 '꺼멓게 되다', '나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黑자는 아궁이를 그린 것이다. 黑자의 금문을 보면 火(불 화)자 위로 연기가 빠져나가는 굴뚝이 그려져 있었다. 불을 지피는 용도인 아궁이는 주위가 꺼멓게 거슬리게 된다. 그래서 黑자는 '검다'나 '꺼멓게 되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白(흰 백)자가 순수함을 상징한다면 黑자는 그 반대의 개념을 갖고 있다. 그래서 黑자는 '검다'라는 뜻 외에도 '나쁘다'나 '악독하다', '횡령하다'와 같은 부정적인 뜻을 전달하기도 한다. 그래서 黑(흑)은 (1)흑색(黑色) (2)흑지 등의 뜻으로 ①검다 ②거메지다, 거멓게 되다 ③사리에 어둡다 ④나쁘다, 악독하다 ⑤고약하다, 사악하다 ⑥모함하다 ⑦횡령하다, 착복하다 ⑧검은빛 ⑨흑색 ⑩저녁, 밤 ⑪은밀한 ⑫보이지 않는 ⑬비밀의, 비공개적인 ⑭돼지 ⑮양(羊: 솟과의 동물) 따위의 뜻이 있다. 뜻을 가진 한자는 검을 려(黎),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흰 백(白)이다. 용례로는 검은빛과 흰빛을 흑백(黑白), 검은 빛의 글자나 먹으로 쓴 글자를 흑자(黑字), 분필로 글씨를 쓰게 만든 칠을 한 널조각을 흑판(黑板), 흑색 인종의 준말을 흑인(黑人), 검은 빛을 흑색(黑色), 털빛이 검은 소를 흑우(黑牛), 검은 빛깔의 돌을 흑석(黑石),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음흉한 내막을 흑막(黑幕), 몹시 껌껌하고 어두움을 흑암(黑暗), 캄캄한 밤을 흑야(黑夜), 검은 팥을 흑두(黑豆), 껍질 빛깔이 검은 콩을 흑태(黑太), 부정한 욕심이 많고 음흉한 마음을 흑심(黑心), 캄캄함으로 문물이나 도덕 등이 타락된 상태를 암흑(暗黑), 옻칠처럼 검음을 칠흑(漆黑), 순수한 검은빛을 순흑(純黑), 맑음과 흐림 또는 옳고 그름을 백흑(白黑), 캄캄하게 어두움을 혼흑(昏黑), 해가 져 어둑어둑 함을 훈흑(曛黑), 눈썹을 그리는 먹을 대흑(黛黑), 빛깔이 거무틱틱함을 초흑(焦黑), 몸이 파리하고 살빛이 검음을 이흑(羸黑), 터무니없이 또는 출처를 밝히지 않고 비밀리에 하는 선전을 일컫는 말을 흑색선전(黑色宣傳), 머리가 검은 재상이라는 뜻으로 젊은 재상을 이르는 말을 흑두재상(黑頭宰相), 모든 문제를 흑이 아니면 백 선이 아니면 악이라는 방식의 두 가지로만 구분하려는 논리를 일컫는 말을 흑백논리(黑白論理), 검은 것과 흰 것이 뒤섞여 나눌 수 없음 일컫는 말을 흑백불분(黑白不分), 흑풍이 몹시 부는 가운데 쏟아지는 소낙비를 일컫는 말을 흑풍백우(黑風白雨),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뜻으로 1970년대 말부터 덩샤오핑이 취한 중국의 경제정책을 일컫는 말을 흑묘백묘(黑猫白猫),먹을 가까이하면 검어진다는 뜻으로 나쁜 사람을 가까이하면 그 버릇에 물들기 쉽다는 말을 근묵자흑(近墨者黑), 하얗게 센 머리털에 검은 머리털이 다시 난다는 뜻으로 다시 젊어짐을 이르는 말을 백발환흑(白髮還黑), 분을 희게 바르고 먹으로 눈썹을 까맣게 화장한다는 뜻으로 미인의 얼굴을 이르는 말을 분백대흑(粉白黛黑), 밝은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를 드러내지 않고 대우의 덕을 지키는 일을 일컫는 말을 지백수흑(知白守黑)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