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Ⅲ-63]묻혀 있는 체리암(滯離巖) 글자 이야기
<가족이든 손님이든 먼 길 떠나는 사람을 보내며, 작별이 어려워 한 걸음 또 한 걸음, 들어가시라, 안녕히 가시라, 권하면서도 차마 헤어지지 못한 채 오 리 길을 소맷자락 부여잡는 마음으로 함께 따르다가, 이만큼 와서는 어쩔 수 없이 여정(餘情)을 아무리며 아쉽게 손 놓는 자리>인 그곳 큰 바위에 ‘체리암’(滯離巖)이라고 새긴 큰 글자가 있다고, 최명희(1947-1998)는 대하예술소설 『혼불』에 기록했다. 머무를 체(滯), 떠날 리(離)의 체리암이라? 얼마나 헤어지기가 섭섭했으면 손을 놓는 것을 머뭇머뭇했을까? 오수에서 남원으로 가는 길목 어디쯤에 있다는 그 바위와 글자를 찾은 것은 2023년 9월 추석무렵이었다.
농로를 내면서 하필이면 그 글자가 묻혀버리는 바람에 뜻있는 분들의 안타까움이 있었는데, 30여년만에 햇빛을 봤다는 세 글자 체리암. 작가는 음각의 글씨를 또 이렇게 전했다. <전아하면서도 호방하다. 글자에서 나즉한 숨결이 느껴진다. 마음이 스며 있는 글씨여서 그리하리라> <창로(蒼鷺) 해오라기 흰 날개 눈부신 오수천 푸른 물은, 강언덕 쓰다듬는 갈대풀 서걱이는 소리에다 제 마음을 부비어 남기면서, 간다, 간다……. 몸을 풀어 길을 열며 흐르는데, 더 못 가는 바위는 여기 홀로 남아서 강물의 뒷모습을 애오라지 아득히 배웅한다.> <오돌도돌한 바위면에 고여 있던 저 먼 윗대조 할아버지의 온후한 체온이 육화되어 묻어난다. 바위는 할아버지 몸이었다. 이 한갓진 물가의 외따른 길모퉁이, 그대로 더 나아가면 서울로 가는 소롯길 하나 휘엇하게 벋은 언덕 아래, 이만큼에서 이제 그만 작별하자. 섭섭한 마음을 여미며 헤어지는 자리를 정하고, 그 바위에 ‘滯離巖’이라고 새겨넣는 저 문자향(文字香)의 은근 지극함이라니.>
그때, 절반도 더 묻혀 있어, 겨우 세 글자의 윗부분만 봤을 뿐인데도 숨이 막혔다. 유명짜한 문화재는 아니지만, 명작-명품소설인 『혼불』의 무대가 아닌가. 그곳을 아무 생각없이 이렇게 묻힌 채 방치한다는 것은 말이 아니었다. 엊그제 다시 가보니, 이제 글자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어 예전 사진만 여러 번 들여다봤다. 한심한 일이다. 길을 넓히든지 하여 하루속히 복원하지 않으면 ‘무식 임실(任實)’‘무식 오수(獒樹)’라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작가의 글 구절구절을 소리내어 읽어보시라. 옛 사람들의 여정(餘情)의 여운(餘韻)이 밀려오지 않은가. 아니라면 감성(感性)이 둔해도 너무 둔한 사람이리라.
어제 쓴 졸문 ‘상사화’ 이야기의 ‘상사’(相思. 서로 그리워함)나 ‘거이불리’(去而不離. 떠났으나 떠나지 않음)같은 우리 문학의 정서(情緖)와 맞아떨어지는 듯한 ‘체리’라는 단어가 얼마나 아름답고 시적인 빛나는 표현인가? 어느 때 누가 썼을까? 1, 2백년전이 아닌, 조선 영조때의 <남원부지도>에도 그 이름이 쓰여있다고 했으니, 마치 옛사람의 풍류를 보는 듯 유장(悠長)하기까지 하지 않은가.
그래서 드리는 말씀이다. 관계자들이여. 체리암, 세 글자를 지상으로 드러내시라. 연륜으로, 땅에 묻혀 있어 퇴색해진 붉은 글씨(서단. 書丹)에 최고급 주사(朱砂)칠을 하여 그 이름을 빛내주시라. 하여, 우리로 하여금, 그 <문자향의 은근 지극>한 맛을 흠향하게 해주시라. 눈으로 감상하는 것도 흠향(歆饗)일지니, 어찌 먹는 것만이 흠향일쏘냐. 체리암 바위 위에 덜렁 자리잡은 ‘바람으로 샤워를 한다’는 뜻의 정자 <풍욕정>(風浴亭) 또한 얼마나 그윽한 이름인가? 가보시라. 바닥을 통째로 시멘트로 떡칠을 해놓으셨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1920년대 전라선(全羅線) 철도를 개설하면서 체리암 글자가 써진 바위가 폭파당할까 염려한 인근(신계리)의 유지(이환우)께서 지었다는 정자의 이름도 어쩌면 그리 체리암과 격이 어울린단 말인가. 그런 정자의 바닥을 콘크리트로 복원해 놓았다는 것이 정말로 부끄럽지 않은가. 아무리 문화과 문학을 모른다해도, 럴수, 럴수, 이럴 수는 없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덧붙임 1: 이 나라 옛 비문을 1천개도 더 읽고 해독한 금석문학자 손환일 박사가 체리암 이야기를 듣고 최근 다녀가면서 분개(?)한 이유도 나와 같아 매우 반가웠다. 나는 세 글자 윗부분이라도 3년 전에 봤지만, 그분은 완전히 덮여 있어 글자의 흔적조차 보지 못하고, 30여년만에 햇빛을 본 사진을 봤을 뿐인데도 서체(예서)도 너무 훌륭하고 이런 큰 글씨에 귀한 주사칠(어필에 주로 사용)을 한 것도 드물다며, 임실과 오수의 자랑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오랜 세월 아주 친한 친구를 일컬어 '체리우'( 滯離友)라는 조어를 써도 좋겠다고도 했다. 만나면 반갑고 헤어지려면 못내 아쉬운 체리우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인생 잘 산 것이 아닐까.
덧붙임 2: 마지못해 세워놓은 듯한 현재의 초라한 안내판을 업그레이드하시라. 작가가 1995년 미국 대학에서 특강을 하면서 『혼불』에 단 한 글자도 예사로 쓰지 않았다고 고백했듯이, 안내판에 체리암 관련한 작가의 표현들을 살리면 더욱 눈에 띄지 않을까. 예를 들면 ‘이 바위는 우리 할아버지들의 몸이다’‘이 정자에 앉아 잠시라도 바람으로 샤워하는 여유를 가져보시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랬으면 원이 없겠다. 하하.
덧붙임 3: 남원 사매면 <혼불문학관> 입구의 큰 바위에 새겨진 작가의 어록이 사라진 것같아 아쉽고 안타까웠는데, 작가의 어록도 한번 음미해 보자. “웬일인지 나는 원고를 쓸 때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그것은 얼마나 어리석고도 간절한 일이랴. 날렵한 끌이나 기능 좋은 쇠붙이를 가지지 못한 나는, 그저 온마음을 사무치게 갈아서 손 끝에 모으고, 생애를 기울여 한 마디 한 마디, 파나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