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 1>
오랜만에 맞이한 휴일, 느긋하게 기지개를 켜며 얼마 전 은수오빠가 사다 준 전신거울 앞에 섰다. 초췌한
몰골 하나가 어색하게 서있었다. 컨테이너 집에 살 때였다. 그 때 바람이 불어 컨테이너 뚜껑이 날아간 적
이 있었다. 적십자 회원이었던가, 동사무소 사회복지담당 사무원이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뚜껑이 날
아간 집에서 터진 밥솥을 끌어안고서 정신 놓은 나를 보고 운 적이 한 번 있었다. 마치 그 때의 머리처럼
허공에 붕 떠오른 머리 위에 꽂혀있는 분홍색 머리핀이 부끄러웠다. 분홍색 머리핀에 분홍색 잠옷에 분
홍색 슬리퍼까지. 온 몸이 분홍색으로 발려 있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분홍색에 익숙해졌단 말인가. 다 은
수오빠의 공이니라. 씻고 옷을 갈아입고서 1층으로 내려오니 거실은 침묵에 잠겨있었다.
“아무도 없는 건가.”
“으으으은보오오옥~!”
“오빠......”
“응?”
“그건 뭐야.”
“뭐가?”
“허리에 감긴 거.”
“아~!! 맞다~!! 이거 백화점에 세일 하길래 가족들 생각나서 사왔어~ 아빠꺼, 아저씨꺼, 니꺼, 지혁이꺼,
비혁이꺼~ 이렇게! 잘했지~~~~~?”
우리 집에 레이스로 된 허리띠를 착용할 사람이 대체 누가 있어. 나의 굳어진 표정에도 불구하고 은수오
빠는 두 팔을 활짝 벌리고서 핑그르르르 도는 묘기를 선 보여주었다. 그러다 국자에 묻어있던 국물이 나
의 이마에 튀었다. 앗, 뜨거. 날이 갈수록 우리의 기대에 부응하는 미친 모습을 보여주는 은수오빠였다.
“6개 사온거야? 그럼?”
“아니~ 5개!”
“왜 다섯 개야? 식구가 여섯 명인데.”
“어머~ 내가 24살에 어떻게 레이스 허리띠를 착용하고 밖으로 나가니?!”
........아저씨랑 우리 아빠는 무슨 죄야!!!!!
“근데 다들 어디 갔어? 오빠랑 나뿐인 거야?”
“응~ 다들 약수터 갔어. 새해부터는 건강을 찾겠다며 아저씨랑 아빠랑 새벽 일찍 비혁이랑 지혁이 끌고
서 갔어~”
“왜 나랑 오빠는 안 가고?”
“음~ 글쎄? 모르겠는데~ 저래봤자 내일 되면 안할걸? 우리 아빠 매년 새해에만 저래. 새해에만 잠시 해
봤자 말짱 다 도로뇽인데 말이야.”
“도로묵이겠지.”
“둘 다 같은 말이야~”
..........정신이 출국했구나. 우리 오빠.
오빠는 상큼하게 웃어 보이며 쪼르르 부엌으로 들어가 하던 요리를 마저 하고 있었다. 힐끗 부엌 안을 들
여다보니 국자를 들고서 흥얼거리며 요리를 하고 있는 은수오빠의 모습이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남자
가 요리하는 모습이 어울린다고 느낀 건 은수오빠가 처음이었다. 소년 같은 이미지라서 더 그런 걸까. 거
실로 달려가 소파에 몸을 내던졌다. 얼마 후 샌드위치와 우유 두 잔이 테이블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우와!! 맛있겠다!!”
“은복이를 위한 특별한 아침?!”
“오빠 최고!!”
“알고 있어~ 오빠가 이래 뵈도 과탑이란다.”
홀로 연한 갈색 머리카락을 넘기며 에라이스틴 지면 광고처럼 표정관리를 하고 있는 은수오빠를 구경하
며 샌드위치를 꾸역꾸역 입에 집어넣었다.
“천천히 먹어! 은복아! 그렇게 먹다가 죽어!!”
“괘아나......”
이미 18년째 이리 먹어왔지만 잘 살아왔어. 먹지 않으면 죽는다는 생존본능이랄까. 샌드위치와 우유를
다 먹고서 티비를 켜니 시끄러운 음악이 조용하던 거실을 꽉 메웠다. 뭔가 싶어 들여다보니 벽에 걸려있
는 커다란 화면 안에는 비보이들의 무대가 화려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현란한 조명과 그 보다도 더 현란
한 비보이들의 움직임을 멍하게 쳐다보았다. 얼마쯤 보았을까 저게 사람이 맞나 궁금할 정도로 유연한
몸동작과 빠른 리듬에 맞춘 발놀림이 마냥 신기하고 멋져보였다.
“은복이 비 보이 좋아해?”
“응? 아, 열광하지는 않는데 좋아하는 편이야. 내가 예전에 답답할 때 티비를 켰는데 비 보이들 무대를 보
고 나니까 속이 뻥하고 뚫리더라고! 그래서 비보이에 대한 좋은 감정이 있지!”
“그렇구나~ 자, 그런 은복이를 위해서 우리 쇼핑이나 갈까?”
은수오빠는 자리에서 일어나 앞치마에 손을 슥슥 닦으며 나를 향해 싱긋 웃어 보였다. 다들 연초라고 죽
어라 약수터로 뛰어가고 있을 텐데 우리만 쇼핑을 가도 될까. 잠시 고민하는 표정으로 은수오빠를 올려
다보았더니 나의 생각정도는 가뿐하게 읽었다는 듯 동글동글한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은복이가 좋아하는 파란색 티셔츠 사줄게~”
“우와!!!!!!!! 가자!!!!!!!!!!!!!”
드디어 내가 분홍색에서 해방될 수 있는 것인가!!! 은수오빠의 파격 제안에 따라 얼른 옷을 갈아입고 집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아저씨의 차에 올라탔다. 새해가 되어서 나는 어느새 19살이 되었고 은수오빠는
24살이 되었으나 우리는 달라진 게 없었다. 달라진 걸 굳이 따져야한다면 우리 아빠가 아저씨에게 한 달
에 십만 원씩 꼬박꼬박 집세를 주고 있다는 것 정도였다. 사실 같이 살게 되었을 때만 해도 끊임없이 고민
했지만 나를 대하는 정씨네 가족들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고 나는 어느새 그들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기 시
작했다. 고개를 돌려 나의 옆자리에 앉아있는 은수오빠를 쳐다보았다. 내겐 너무나도 고맙고 천사 같은
사람이었다. 늘.... 그 말을 못해서 미안할 뿐이지만.
“왜? 은복? 나한테 할 말 있어???”
“응? 아, 그게........”
“뭔데. 뭔데. 해봐. 은복이가 나에게 할 말이 있다니, 이거 경사인걸?”
“누가 들으면 오해해. 그러니까 고....... 음, 고........”
“응. 응. 말해봐.”
그렇게 두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서 날 바라보면 부담스럽잖아. 은수오빠를 피해 조금씩 뒤로 물러서
다 어느새 나의 뒤통수는 창문에 닿아있었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다시 입술을 열었다. 그리고...........
“고마.........”
“도착했습니다.”
나의 말을 싹둑 잘라먹는 기사 아저씨를 슬쩍 노려보았다. 은수오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고등어? 고릴
라? 고추장? 응? 뭐지?’ 라고 홀로 중얼거리더니 자동차에서 내려 백화점으로 들어갔다. 나도 길게 한숨
을 내쉬며 차마 고맙다고 뱉지 못한 말을 꿀꺽 삼키고 함께 백화점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은수오빠는
마치 이 날을 기다린 사람처럼 쇼핑의 황제가 되어 이것 저것 쇼핑하고 나섰다.
“은복아, 저거 어때? 너 저거 사줄까?”
“아니. 괜찮아. 오빠. 밑에 오천 원짜리 파란색 티셔츠 있더라. 그거 사가.... 오빠????”
“이걸로 주세요~”
역시 나의 의사는 묵살한 은수오빠는 어느새 매장 안으로 들어가 분홍색 원피스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저 사람은 분홍색만 보면 환장을 한다. 얼른 매장 안으로 들어가 은수오빠를 끌고 밖으로 나왔다.
“오빠, 분홍색 옷만해도 지금 내 옷장에 몇 벌인 줄 알아??”
“음....... 내가 어제도 사고 이틀 전에도 샀고, 또 일주일 전에도 샀으니까.... 그러니까.... 그게 몇 벌이냐
면.......”
진지한 계산을 요구한 것도 아닌 데 은수오빠는 자신의 머리를 감싸쥐며 나에게 몇 벌의 분홍색 옷을 사
주었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서둘러 손을 내저으며 은수오빠에게 말했다.
“옷장에 분홍색이라면 미어터질 지경이야. 제발 나는 파란색 티셔츠만 있으면 돼.”
“아니야~ 아직 부족해~”
“옷장 공간 부족해. 오빠.”
“아~ 옷장 공간이 부족한 거였어??”
“응!! 응!!”
드디어 말이 통하려나..............
“그럼 옷장 하나 사러 갈래????”
........저 사람이 근데.
한참을 실랑이를 벌이던 나와 은수오빠는 은수오빠 옷 몇 벌과 내 시계 하나와 분홍색 티셔츠와 흰색 목
도리를 사고서 백화점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한숨을 작은 입술 사이로 폭폭 내쉬며 쇼핑을 얼마 하지 못
했다고 괴로워하는 은수오빠였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은수오빠를 달래 줘야했다. 왜 은수오빠를 달
래 줘야하는 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오후 1시쯤 느즈막하게 들어갔다가 백화점 건물 하나를 샅샅이 구경 다 하고 밖으로 나오니 어느새 오후
7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얼마나 오래 있었단 말인가. 거기서 점심 먹고 구경하고 간식 사먹고 다시
쇼핑했으니 말 다 한 셈이었다. 백화점 밖으로 나서자마자 귀를 찢는 음악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백화
점 옆에 세워진 가설무대 위로 오색의 조명이 쏟아졌고 그 속에서는 티비에서나 봐왔던 비 보이들이 리
듬에 맞춰 온 몸으로 춤을 추고 있었다.
꿈을 꾼 적이 있었다. 내가 비 보이들의 무대를 실제로 보는 꿈. 조명 아래에서 폭발하는 열정을 온 몸으
로 표현하고 있는 비 보이들의 무대를 나의 눈으로 지켜보는 그런 꿈. 마치 그 때의 꿈처럼 나는 실제로
비 보이들의 공연을 보고 서 있었다.
“오빠......... 우리 저 무대 좀 보고 가도 돼?”
넋이 나간 채로 말하고는 은수오빠의 대답도 듣지 않은 채 비 보이들의 무대가 있는 곳 가까이로 다가섰
다. 폭발하는 음악, 폭발하는 에너지, 폭발하는 응원소리. 그 모든 것들이 다 한데 뭉쳐져서 이 세상을 폭
발시킬 것 같은 힘이 느껴졌다. 내가 다가가서 그 것을 모두 느낄 때쯤에는 어느새 한 무대가 끝난 후였
다.
“은복아!”
인파를 뚫고서 부랴부랴 나를 따라 들어온 은수오빠가 나의 이름을 불렀다.
“응?”
“그렇게 혼자 파다닥 날아가면 오빠가 널 쫓아가기 위해 푸드득 날아야하잖아!”
“아하 - 미안.”
은수오빠는 나의 짧은 사과에 작은 손으로 나의 머리카락을 부비적거렸다. 그리고 나의 옆에 자리를 잡
고 설 때쯤 무대에서 내려오던 사람들 중 한 사람이 우리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
다. 그러다 잠시 물을 마시러 내려온 비 보이들이 모두 고개를 돌려 우리 쪽을 쳐다보았고 그 중 가장 눈
을 크게 뜬 사내 하나가 검지 손가락으로 정확히 나와 은수 오빠 쪽을 가리켰다. 그리고 냅다 소리질렀다.
“정은수!!!!!!!!!!!!!!!!!!!!!!!!!!!!!!!!!”
티비에서나 봐온 비 보이들이, 이번 백화점 15주년 가설무대에서 아까까지만 해도 춤추고 있던 비 보이
들이 어째서 은수 오빠의 이름을 냅다 부르는 것일까. 고개를 돌려보니 은수오빠는 자신의 머리를 긁적
거리며 난처하다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평상시처럼 씩 웃어보였다.
“여어~ 안녕?”
“정은수, 이 개자식!! 연락도 안하고!!”
“뭐?? 정은수??”
“은수?? 그 은수?? 그 정은수??”
정은수라는 이름이 일파만파 퍼지더니 이내 비 보이 무대에 섰던 사람들이 죄다 관중석 쪽으로 나오기
시작하더니 나와 은수오빠를 빙 감싸기 시작했다.
“야, 우선 안으로 들어와.”
비 보이들은 관중석 사람들이 모두 힐끔대자 이제야 나와 은수오빠를 데리고 무대 뒤로 들어갔다. 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이 사람들이 왜 은수오빠랑 알고 지내는 거야!!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지점, 은수오빠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비 보이들과 인사를 주고받았다.
“정은수, 그런데 여긴 누구?”
“아~ 내 여동생.”
은수오빠의 소개에 얼떨결에 비 보이들과 고개 숙여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나에게 굽신 인사를 하던 짧
은 머리의 사내는 은수오빠를 향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너 여동생 있었냐? 남동생 둘 아니었냐?”
“이번에 새로 생겼어.”
“뭐? 그게 뭔 말이야?”
“나중에 말해줄게~”
은수오빠는 손을 휘휘 내저으며 싱긋 웃어보였다. 대체 저 단란한 풍경은 뭐란말인가. 비 보이들과 한차
례 인사를 다 주고받은 은수오빠는 가장 친해 보이는 세 사람이랑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너 춤 그만두고 뭐하냐? 요즘은 괜찮은 거냐?”
“재미있게 잘 살고 있어~”
“전설의 정은수가 사라져서 다들 얼마나 침울 했었는 줄 아냐?”
“내가 한 전설했지~ 아하하하하하하하하.”
“아직도 미친 조증은 고치질 못한 거냐?”
“세상은 밝게 살라고 만들어진 곳인걸. 아하하하하하하.”
정말 지독하게도 단란한 광경이라 하겠다. 잠시 비 보이들이 모여서 무언가 의논을 할 때쯤 은수오빠는
쪼르르 나에게 달려왔다.
“오빠! 오빠 예전에 비 보이였어?? 설마??”
“아~ 어쩌다보니~ 응. 오빠가 말 안 해줬었나? 오빠 예전에 전설의 정은수로 이름 날렸었어~ 하하~”
“우와!! 진짜?? 왜 말 안 한거야!!”
“말할 시기를 놓쳤네~ 하하하하하.”
“우와!!! 오빠 춤추는 모습 보고 싶어!!”
“춤 추는 모습 보고 싶어?? 정말?? 그럼 오빠 앞에서 분홍색 원피스 입고 토끼 머리띠 끼고서 예쁘게 은
수 오빠라고 불러줄래??”
.......그건 좀.
이 사람 로리타인가........
하지만 정말로 은수오빠가 춤추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어떤 모습일까. 상상이 되질 않았다. 잠시 고민하
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에이, 까짓 것 한 번 해주지 뭐. 은수오빠는 두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다랗게 뜨
더니 박수를 치며 소리쳤다.
“정말?? 정말?? 약속했다!!!”
“응! 대신 오빠도 춤 춰야해!!!”
“당연하지!!! 언제 출까? 집에 가서 출까나~”
“와와~ 기대! 기대!”
은수오빠는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이렇게 곱고 귀여운 은수오빠가 비 보이를 했었다
니, 거기다가 사람들이 알아주는 비 보이였다니. 놀라서 턱이 빠질 지경이었다. 눈썹이 치켜 올라가고 떡
벌어진 턱을 다물지 못한 채 멍청하게 서있을 무렵, 비 보이의 한 사람이 다가와 은수오빠의 어깨를 감싸
며 말했다.
“간만에 한 판 하실래?”
“야, 이지원! 정은수는.......!!”
누군가가 이지원이라는 사내를 서둘러 말렸다. 그러나 은수오빠는 손을 허공에 휘저으며 말했다.
“아니~ 한 판 하자~ 오랜만에 땀 좀 흘려 보실까나~”
“정은수, 너........”
“I'm OK~”
은수오빠의 어깨에 팔을 두른 사내의 말을 막은 사내의 표정은 미묘해졌다. 은수오빠를 향한 시선이 무
엇을 뜻하는 지 읽을 수 없었다. 불안함? 긴장? 뭐지? 저 표정은? 그러나 은수오빠는 못 본 것인지 못 본
척 하는 것인지 스트레칭을 하며 주변 사람들과 사사로운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웃고 있었다.
“은복이 보려면 나가서 기다려야지??”
“아, 응! 파이팅!!”
무대 뒤에서 나와 관중석에 서는 데 심장이 쿵쾅거리고 설레였다. 내 곁에 있던 사람이 비 보이였다니. 거
기다가 은수오빠라니!! 은수오빠가 비 보이 춤을 추면 어색할 것 같은 건 왜 인지. 잠시 기다리니 다시 쿵
쾅거리는 리듬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이내 하나, 둘 무대를 채우기 시작했다.
“자~ 다시 한 판 놀아볼까요오~?????? 리스타트~~~~~~!!!!!!”
어디선가 나오는 멘트에 백화점을 지나던 사람들의 시선이 머물고 발길이 머물렀다. 그리고 무대에 서서
히 모습을 드러내는 비 보이들의 틈에는 내겐 너무나도 낯익은 은수 오빠의 모습이 보였다. 평상시 정신
을 흘리듯이 웃던 표정이 자신감에 가득 찬 웃음을 짓고 있었다.
빰, 빠빰하며 리듬이 이어지는 듯 엉키고 신경을 긁는 노래에서 비 보이들은 자신감 있게, 그리고 멋지게
춤을 추고 있었다.
무대가 빛이 나고 있었다. 은수오빠의 웃음에서, 움직임에서. 단 한 번도 은수오빠가 비 보이였을 거라고
는, 비 보이의 춤을 출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무대를 장악하는 폭발적인 에너지를 가지고 있을 거라
고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저렇게 빛이 나고 있었다. 마치 무대와 한 몸이었던 것처럼, 비 보이의 본
래 멤버인 것처럼 환희에 젖어 있었다.
“감사합니다!!”
순간이 영원하다고 느끼는 것처럼 몰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무대는 모두 끝이 났다. 짧은 머리의 사내는
마이크를 쥐더니 아아 하고 마이크 테스트를 하더니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아, 안녕하세요! SO COOL입니다! 오늘 무대에는 특별히 예전 멤버가 와서 무대를 특별하게 꾸며봤습
니다! 예전에 했던 무대인데 아주 오랜만에 해보니까 어색하네요! 그래도 괜찮았죠?
“네!!!!!!”
-히히. 감사합니다. 그럼 내일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9분짜리 무대가 끝나버렸다. 비 보이 중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지만 내게는 가장 멋진 사람이었
다. 은수오빠는 비 보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무대 밑으로 내려오길래 얼린 은수오빠의 곁으로 달
려갔다.
“오빠!!!!! 오늘 정말 최고!!!!!!”
“............”
“.......어? 오빠, 왜.... 이래?”
“쉿. 가자.”
은수오빠는 나의 입을 막더니 굳은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고 섰다. 그때 마침 은수오빠의 옷을 챙겨 누군
가가 나왔다. 아까 은수오빠의 무대를 막았던 그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상당히 걱정스런 표정으로 은수
오빠를 쳐다보았다.
“괜찮냐. 너..? 정말..?”
“괜찮아. 하하. 이 정도쯤이야.”
“.............”
“이 옷은 조만간 줄테니까 연락하면 와라.”
“그래. 알았다. 정말 괜찮은 거지?”
“당연하지. 하하하하하. 가봐라!”
“그래. 연락해라. 꼭! 저번처럼 한 달 만에 연락하지 말고!!”
“그래. 하하하~”
은수오빠는 서둘러 친구를 웃으면서 보내더니 이내 손을 덜덜 떨기 시작했다. 친구와 함께 있을 때 참았
던 고통을 한 번에 토해내는 모습이었다. 갑자기 무서워졌다. 이런 은수 오빠의 모습은 처음이라서. 덜컥
겁이 났다. 은수 오빠가 잘못 되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오.. 오빠???”
“괜찮아....... 후우. 집에 가자. 기사 아저씨 불러줄래? 은복아?”
“오빠.... 지금 기사 아저씨가 문제가 아닌 거 같은데? 왜 땀을 흘려? 표정은 왜 이래? 대체 무슨 일이야?
왜 그래? 춤 추다가 다리라도 삐었어??”
“아마..... 그런 거 같아. 다리가 삔 거 같아.”
“그럼 병원을 가야지!! 표정관리도 못할 만큼 단단히 삐었으면 병원을 가야지!! 오빠!!”
“아니야. 집에 가서 쉬면.. 돼. 괜찮아. 정말...... 괜찮........ 으윽!! 윽!!”
“오빠!! 오빠!!!!”
은수오빠는 바닥에 주저앉더니 자신의 다리에 손도 대지 못한 체 이를 꽉 물고 눈을 꽉 감았다. 한 눈에
봐도 고통스러워하는 표정이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놀란 표정으
로 우리를 스치는 사람들만 보일 뿐, 누구도 우리를 도와줄 생각이 없어보였다. 마치 아빠가 야반도주하
고 나서 빈 집에 홀로 남은 것처럼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마침 휴대폰이 울려 쳐다보니 「비혁니마」가 액
정에 떠올랐다.
“여보세요!! 비혁아!! 비혁아!! 은수오빠가 아파!! 어쩌지? 어떻게 해야하지???”
-쿨럭, 갑자기 뭔 소리야?? 어디야?? 거기??
“몰라.. 여기.. 여기는 시내에 있는 내리백화점 앞!! 어쩌지??”
고통에 아랫입술을 깨물고 신음 외에는 한 마디도 못 내뱉는 은수오빠의 손을 잡고서 비혁이에게 사정하
기 시작했다. 비혁이는 횡설수설하는 말을 겨우 알아듣더니 가겠다는 말을 하고서 전화를 끊었다. 은수
오빠의 머리를 쓸어넘겨주고 손을 잡아주며 김기사 아저씨에게 전화하려고 휴대폰을 열 때였다.
“이봐, 괜찮지 않잖아.”
고개를 들어보니 아까 은수오빠의 옷을 가져다준 남자가 은수오빠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울먹거리
며 주저앉아있는 나를 힐금 보더니 이내 은수오빠 곁에 주저앉더니 등을 내밀었다.
“그만 울고 업는 거 좀 도와줘. 정은수 여동생아.”
“아, 네.. 네!”
눈물을 손등으로 대충 훔쳐내고 은수오빠를 겨우 남자의 등에 업었다.
“자, 차가 있는 대로 안내해. 병원가야하니까.”
“네.. 네!”
기사 아저씨가 있는 곳으로 앞서 걸어갔다. 은수오빠가 업혀오자 기겁한 김 기사 아저씨는 담배를 얼른
끄더니 나와 은수오빠와 그 남자가 셋이서 탄 걸 확인하자마자 병원으로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에효, 병신 정은수 새끼.”
“크으윽.”
은수오빠는 친구 욕에도 뭐라 대답하지 못하고 홀로 아파서 끙끙댔다. 은수오빠의 친구 도움으로 응급실
에 들어간 지 얼마 있지 않아 나의 연락을 받고서 지혁이와 비혁이가 한걸음에 뛰어왔다.
“정은수는??!”
매일 욕하고 서로 티격태격해도 형제는 형제였는데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둘은 동시에 정은수의 안부를
물어왔다. ‘괜찮은 거 같아-’라는 나의 힘 빠진 대답에 한 시름 놓은 표정이었다. 우리 셋은 응급실에 들어
가 진통제를 맞고서 잠에 든 은수오빠를 내려다보았다.
“거기 정비혁, 정지혁?”
비혁이와 지혁이를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니 은수오빠의 친구가 물에 젖은 손을 대충 털며 응급실 안으
로 들어서고 있었다.
“수한이 형!!”
은수오빠한테는 정은수라던 지혁이가 저 사람한테는 형이란다. 아예 비혁이는 대답도 안 하고 손 인사
를 나누고 앉아있었다. 역시 호칭에는 자유로운 사람들이었다. 수한이라고 불린 사람은 가볍게 미소로
대답하고는 은수오빠의 곁에 섰다.
“내가 이 녀석 춤춘다고 할 때부터 불안하다고 했다. 후우. 말리지 못한 내 죄지.”
“뭐?? 정은수가 춤을 췄다고?????”
한숨처럼 흘린 수한이라는 사람의 말에 비혁이가 노발대발하고 나섰다. 지혁이도 안경을 벗더니 자신의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오늘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춤을 추겠다고 하더라고.”
“아주 무릎이 닳아 없어지길 바래라. 정은수.”
비혁이는 자고 있는 은수오빠를 향해 걱정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잔소리를 해댔다. 옆에 잠자코 있던 지
혁이가 힐끔 고개를 돌려 수한이라는 사람에게 말했다.
“춤추면 안 된다는 걸 제일 잘 아는 사람이 왜 춤을 춘거야. 후우.”
수한이라는 사람은 씁쓸한 표정을 짓더니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여튼 지금 다음 무대 있어서 가봐야겠다. 정은수 깨는 대로 나한테 바로 전화하라고 해라.”
“그래. 잘 가. 형. 수고했어. 오늘. 미안하고.”
“정지혁, 니가 왜? 하여간에 나중에 너랑 정비혁도 따로 한 번 보자.”
“그래. 잘 가.”
나와는 목 인사를 하고서 수한이라는 사람은 병원 밖으로 빠져 나갔다. 응급실이 침묵에 잠겼다. 잠에 든
은수오빠를 내려다보는 나와 지혁이와 비혁이는 아무 말도 없었다. 그러다 한참 만에 침묵을 깬 건 나였
다.
“은수오빠..... 춤....... 추면 안.... 되는 거였어?”
“어. 절대로.”
조심스런 나의 물음에 칼같이 돌아오는 비혁이의 대답이었다.
“왜?”
“무릎 십자 인대 파열이거든. 그래서 군대도 면제 받은 거잖아. 정은수가 말 안 해?”
“.......응. 몰랐어.”
비혁이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얼굴을 큰 손으로 쓰다듬더니 긴장이 풀린 얼굴로 허
공을 쳐다보았다. 응급실에 있는 보조 의자를 빼서 걸터앉은 비혁이는 지혁이를 보지도 않고 물었다.
“정은수 이야기 한다.”
“이미 다 해놓고, 이제 와서 무슨 동의를 구해? 해.”
비혁이는 쓴 것을 삼킨 것처럼 씁쓸해진 표정으로 정은수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잠시 닫고 있던 입
술을 한참 후에야 열었다.
“정은수 이야기는 정은수가 하는 게 좋지만, 그냥 내가 한다. 정은수가 언제 말 할 지도 모르고, 말을 한다
고 해도 두서없이 아무렇게나 말할 거니까.”
“..............”
“정은수......... 비 보이 댄서였어. 어릴 때부터 춤 쪽으로 타고 난데다가 춤을 좋아하기도 해서 비 보이 쪽
에 14살 때부터 춤을 췄어. 아까 봤던 수한이 형이 정은수랑 같이 춤 시작한 사람이야. 비 보이 쪽으로는
세계적으로 이름이 난 사람이지. 분명 정은수도 무릎만 다치지 않았어도........”
비혁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지혁이의 표정도 동시에 어두워졌다. 둘의 처연한 표정을 보는 나 역시도
누군가가 숨통을 조은 듯 답답해졌다.
“무릎을 다치는 바람에 춤을 그만둬야했어. 정은수가 19살 되던 해였을거야. 내가 14살이었으니까. 아까
말한 대로 무릎십자인대 파열이지. 평상시 잘 관리하면 상관없는데 격하게 움직이거나 무리하면 곧바로
무릎이 아파. 정은수는 무릎 두 쪽 다 십자인대파열이 되었고. 그래서.........”
“...............”
“춤을 관뒀어.”
“.................”
“정은수가 물건 때려 부수는 것도, 일주일 동안 말 안하는 것도, 우는 것도, 누구랑 싸우는 것도, 그 때 다
처음 봤거든. 그거 생각하면, 젠장. 지금도 간 떨려. 그러고 한 삼 개월을 화내고 울고 폭발하다가 삼 개월
은 다 포기한 사람처럼 밥도 안 먹고 죽은 듯이 살더라.”
은수오빠가 물건을 때려 부수다니, 일주일 동안 말을 안 하다니........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는 말들을 비
혁이는 담담하게 내뱉고 있었다. 지금 내가 듣는 말들이 사실일까. 그늘 하나 없이 밝기만 한 은수오빠에
게 정말로 있었던 일일까. 마치 이 모든 것이 꿈인 것처럼 막연해지기 시작했다. 비혁이는 자신의 입가를
매만지다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춤 관두고 반 년 만에....... 집에 들어갔는데....... 정은수가 요리를 하고 있더라. 딱 반 년만에 나
한테 정신 차리고 했던 말이 그거였어. 나 아직도 기억해. ‘비혁아, 나 밥했는데 먹어볼래?’라더라. 그 후
로 정은수 요리 시작하더라.”
언젠가, 그 언젠가..... 은수오빠가 내게 말했었다. 금식을 일주일간 하다가 밥을 먹었는데 너무 맛있었다
고. 그 후로 요리를 하게 되었다고. 그때는 너무나도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기에 그 것이 은수오빠의 인생
에서 너무나도 큰 부분을 담고 있는 이야기가 연관된 이야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처럼 저렇게 요리하면서 사는 거고.”
“은수 형한테 춤은 아킬레스의 건이야. 건드려서는 안 될 약점 같은 거.”
비혁이의 말이 마치자마자 이어진 지혁이의 말이 팍하고 양심에 찔려왔다.
내가 비보이를 좋아하지만 않았더라면,
내가 비 보이를 보러 가자고 하지만 않았더라면,
아니 최소한 오빠에게 비보이 춤을 추라고 하지만 않았더라면.
그랬더라면 은수오빠가 다시 한 번 아플 일은 없었을 텐데. 과거의 흔적에 의해 다시 한 번 아파할 일도,
주저앉을 일도, 고통스러워할 일도...... 그 무엇도 없었을 텐데. 나는 지금 은수오빠에게 무슨 짓을 한 건
가.
“왜? 표정이 왜 그렇게 굳은 거냐?”
비혁이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비혁이의 걱정스러운 표정과, 은수오빠의 잠자는
표정이 나를 향해 질책하는 것만 같아 결국 입을 벌려 실토해야만 했다.
“아........ 그게....... 그러니까...... 나는 은수오빠가 춤을 추면 안 되는 지도 모르고 그냥 은수오빠가 춤추
는 모습이 보고 싶어서...... 춤을 춰달라고 부탁을....... 했거든.”
“니가 시켰다고?”
“시켰다기 보다는..... 부탁을 했지. 이런 줄 몰랐거든.”
“..............”
“정말..... 이런 줄 몰라서. 그래서...... 그러니까.......... 미안.”
나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입을 꾹 다물었다.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그때였다. 비혁이의 따스한 손이 내
게 닿은 것은. 고개를 들어보니 비혁이는 연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괜찮아. 정은수는 알면서 춤 췄을 거야. 니가 미안해하면 정은수는 춤춘 걸 후회하게 될 거야. 정은수 일
어나면 멋졌다고 말해. 그게......... 정은수가 더 좋아할 일이니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비혁이는 피식 웃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은복아. 나랑 지혁이랑 집에 잠시만 다녀올게. 보다시피 몰골이라서.”
지혁이와 비혁이를 번갈아 훑어보았다. 정신이 없어서 몰랐는데 얘네들 왜 이렇게 몰골이지? 옷에 묻은
먼지는 무엇이며 애들 얼굴에 가득한 피로는 무엇이란 말인가. 약수터를 다녀오랬더니 태릉에 다녀왔나?
“너희 얼굴이............?”
나의 말이 마치기도 전에 정비혁은 허리춤에 손을 올리더니 눈썹을 치켜올리며 씩씩대기 시작했다. 대
체 무슨 일을 당했길래........?!
“아, 말도 마라. 생각만 해도 열 받는다.”
“누나, 그게 아빠랑 누나네 아버님이랑 길을 잘못 잡아서 약수터 반대 방향으로 올라가서 산 두 개 넘고
금방 내려왔어.”
“씨밤, 나는 내가 약수터 파러 가는 줄 알았다!! 길도 없는 산에서 약수터는 무슨. 젠장!”
“장난쳐..? 나는 산삼 캐러 가는 줄 알았어. 새해에는 심마니로 직종이 바뀌는 건가 했어.”
둘의 불만이 치솟고 있었다. 결국 넷은 약수터 반대 방향으로 빠져서 무려 산을 두 개나 넘은 후에야 겨
우 집에 올 수 있었다는 것인가. 대체 새해부터 왜 그런 고통을 사서 하는 거지? 둘은 한참이나 화를 내더
니 집으로 돌아갔고 나만이 남아 은수오빠의 옆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은수오빠 참 많이 아팠겠다. 미안
한 마음에 은수오빠의 손을 잡아주었다. 한시간쯤 지났을까, 은수오빠가 천천히 눈을 떴다.
“아~아~ 윽.”
무릎에서부터 진통이 올라오는 지 아랫입술을 질근 깨무는 은수오빠가 보였다. 미안함을 가득담은 시선
으로 은수오빠를 쳐다보며 입술을 열었다.
“오빠, 무대 너무 멋졌어. 잘 봤어. 오빠가 제일 빛나더라.”
“정말?? 역시!! 나는 전설의 정은수라니까?? 아하하하하~”
“그래. 오빠가 최고였어~! 오빠가 추는 춤 다 기억해놨으니까 이제 무리해서 춤추지 않아도 돼~ 알았
지?”
“응? 잠결에 언뜻 비혁이랑 지혁이 목소리를 들은 거 같은데 왔다 갔어?”
“응.”
“걔들이 그럼 내 이야기 다~ 했겠네? 옛날 이야기까지 싹 다~”
“..............”
은수오빠의 눈치를 봤다. 기분 나쁜 걸까. 은수오빠는 얼굴을 찌푸리더니 입술을 길게 내빼며 말했다.
“그런 건 내가 이야기 해줘야하는 건데, 쳇- 내가 얼마나 전설적이었나부터 낱낱이 짚어줘야 하는 거라
고!”
아픔은 어제의 일이었다는 것처럼 이내 밝은 모습으로 나의 앞에서 투정부리는 은수오빠의 모습을 보니
고마울 뿐이었다. 자신의 침대 시트를 탕탕 쳐대며 투덜거리는 모습이 영락없는 5살짜리 꼬맹이 같았다.
이런 사람이 무대 위에서 그렇게 카리스마를 내뿜다니. 춤을 너무 어릴 때부터 격렬한 걸 추면서 시간을
보내면 키가 크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 것 같다. 은수오빠도 그래서 나와 눈높이가 같아진 건
가. 잠시 딴 생각으로 빠져있을 때쯤 은수오빠는 길게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뭐~ 집에 비디오 있으니까 보여줄게~ 보면 반하지 말고~ 비혁이한테 얻어맞으니까 아하하하~ 날 때리
면 일주일간 용돈 압수지만~ 아하하하하~”
나는 은수오빠를 바라보았다. 정말로 괜찮은 건지, 아니면 내 앞에서 괜찮은 척 하는 것인지 도무지 분간
할 수 없었다.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오빠, 많이 힘들면..... 내 앞에서 그렇게 밝은 척 하지 않아도 돼.”
“응?? 무슨 소리야??”
“상처 난 곳을 아무렇게나 숨기면 덧 나. 그러니까 아프거나 힘들면 그냥 그걸 그대로 표출하는 게 더 좋
을 지도 몰라. 그러니까 내 말은 오빠가 오늘 춤 춘 거 때문에 많이 힘들면 감추지 말고..... 그냥 표시를
내도 괜찮다고.”
조심스런 나의 말에 은수오빠는 잠시 고개를 갸웃대다가 빙긋 웃어보였다. 그러더니 나의 머리 위에 작
은 손을 올리며 말했다.
“나는 정말 괜찮은데??”
“응.......??”
괜찮다니? 괜찮다고??
조금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은수오빠를 올려다보았다. 은수오빠는 평온한 표정으로 침대 위에 앉아
서 의자에 앉아있는 나를 내려다보았다.
“오빠는 괜찮아. 상처라고 생각하지 않아~ 오늘 은복이 때문에 아주 오랜만에 심장 터질 만큼 춤춰서 행
복했고!! 또 나는 내일이면 요리를 해야겠지! 현실로 돌아올 시간이 된 거지! 하지만 난 현실이 좋아! 행복
해! 지금 요리하는 게 너무 좋아~ 요리하고 요리한 음식을 나눠먹는 다는 게 좋아~ 요리도 춤만큼 좋아
~”
“................”
오빠의 밝은 모습을 바라보며 나도 그 모습을 따라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폐인으로 접어들 수 있
는 위기를 다른 희망으로 이겨낸 은수오빠를 쳐다보았다.
“오빠, 대단해........ 늘 보면서 많이 고맙고 많이 미안하고 또 많은 걸 배워.”
처음으로 은수오빠에게 건넨 진실한 감사의 인사였다. 은수오빠는 나를 향해 씩 웃어보였다. 작은 얼굴
에 드리운 하얀 미소에 나도 따라 미소 지어졌다.
“나라면 아마 그렇게 하지 못했을 거야. 가장 좋아하는 일을 잃고는..... 아마 제대로 생활할 수 없었을 거
야.”
은수오빠는 나의 말에 싱긋 웃었다. 그리고 은수오빠가 했던 말을 잊을 수 없다. 나를 향해 짓던 미소와.
그 시간을. 은수오빠는 내게 삶은 긍정적이게 살아야한다는 걸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나에게 가르쳐주었
다. 내 인생에서 다시는 잊을 수 없는 그 말을.
“삶이 하나라고 좋아하는 일이 꼭 하나라는 법은 없어~ 세상은 넓고 하고 싶은 일은 무궁무진하니까~ 내
가 할 수 있는 수천가지의 일 중에 춤, 그 단 하나를 잃었을 뿐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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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은 지금 A4용지 11장을 읽으셨습니다.
저는 이거 쓴다고(..) 지금 7시부터 앉아서 ㅠㅠ
무려 4시간 48분만에 가뿐하게 완성햇습니다 ㅠㅠ
물론 머리아파서 중간에 20분은 쉬었습니다만은 ;ㅅ;
재미있게 읽으셨죠? 그거면 됩니다 ^^
카페 게시글
로맨스 소설 1.
[ 번외 ]
기묘한 담보사 번외
어둠속양초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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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2.29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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꺄울 너무 멋있어요~!!!은수 옵파가 갑자기 카리스마를 가진 멋쟁이처럼 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