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소쌍용아파트에 살 때 우리는 덕소성당으로 교적을 옮겼다.둔촌 성당에서 세례와 견진성사를 받고
레지오<창조주의 어머니>에 입단하여 조그마한 신앙의 씨앗을 키워갔으나,신당동 삼성아파트로 이사가서
신당동 성당으로 교적을 옮긴 후 딱 한번 신장성당에 미사보러 갔다.
그런데 너무 쌀쌀하고 정이 붙지 않아 냉담아닌 냉담을 했다.
그러다가 덕소 성당으로 교적을 옮긴 후 쌍용아파트 교우들과는 너무 재미있는 신앙생활을 했다.
구역장인 채희용 요셉과 데오도라 자매,代子인 이범림 요한,나에게 골프를 가르쳐 주신
황극성 형제와 마리아 자매,큰 알베르토 형제와 작은 알베르토 형제 그리고 고대 후배인
골프 싱글의 베도로 형제등 10여명의 가족들과는 더 없이 발고 활기에 넘친 친교와 신앙생활을 했다.
1년이 지나서 나는 좀더 좋은 투자가치가 있는 곳을 물색하던 중 건대 컨설팅 Cre42기 동기인
강남규 사장에게 조언을 구하자 하남시의 에코타운을 추천해주어 3단지 48평을 매입하고
융아들 내외에게는 에코타운옆 17평짜리 한국아파트를 전세 7천만원에 얻어 비슷한 시기에 하남으로 이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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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시 신장동 에코타운 아파트로 이사온 나는 곧 신장 성당으로 교적을 옮겼다.
그렇지만 누구한 사람우리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아파트 이곳저곳에 "하남으로 이사온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플랜카드만 보일뿐.
나중에 보니,지역장인 김재협 요셉 형제께서 自費로 플랜카드를 만들어서 혼자 애쓰고 있었다.
그런데 입주한지 4-5개월 지나도록 구역모임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이에 김광남 프라치스코 하비에르 주임신부님께서 엄명하여 당시 재무담당 사목위원이던
고성용 쎄베로씨에게 첫 구역 모임을 갖게 되었다.
구역 모임이 있던 날 나와 아내 윤선희 수산나는 그 모임에 술한잔 하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가게 되었다.
식사와 술을 거나하게 한 다음 주임 신부님께서"회장선출에 대한 안건"을 꺼내시면서
참석한 30여명에게 회장을 추천하라고 하셨다.
형제 자매님들은 서로 앞.옆을 살피더니 나를 형제회장으로 추천했다.
이어서 곧 찬반 의견을 묻더니.무조건 박수로 결정했다.그래서 나. 유스티노는 어쩔 수 없이 회장에 선임되었다.
카톨릭 모임의 봉사직 간부가 대체로 위와 같이 싱겁게 결정되었다.
그래서,나는 비록 갑자기 선임되었지만 평소 생각했던 여러가지 문제와
앞으로의 운영 방향에 대해 의견을 피력했다.
그러자.참석한 모든 이들은 박수와 환호로 화답했고 기분이 좋아지신 김 광남 신부는
"오늘 유스티노 형제님을 회장으로 선출하지 않았으면 큰 일 날 뻔했다"고 격려했다.
이렇게 해서 나는 팔자에 없는 하남 신장 성당의 형제회장이 되었다.
곧 부회장, 총무 그리고 지역이 넓다보니 제2총무까지 결정했다.
어떻든 우리는 즐거웠다.낮에는 주피터 회사일로 또는 해외 출장으로, 골프로 바빴고
성당봉사는 바쁘기는 했지만 매일 하는 일은 아니였기 때문에 별 어려움은 없었다.
성당 형제.자매들은 초기신자들의 모습으로 신앙에 불타 있었다.
그런데 2005년 2월 24일 태국 여행 하루 앞서 현금 8억원에 사둔 암사동 롯데캐슬 아파트(44평)가 완공되어
우리 부부가 2009년 9월에 먼저 이사오고 아들 부부내외는 같은 단지내의 26평소형으로
뒤따라 이사오면서 하남에서의 신앙생활은 끝났다.
나는 다시 암사동 성당으로 교적을 옮기고 레지오에도 입단했다.
이곳에서는 아예 간부직은 맡지 않았고 아내 수산나만이 여성 구역장을 맡아 신앙생활을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