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지금 우리는 어디에 서있는가. 경제는 어렵고 정치권에 대한 신뢰는 바닥권이라고 한다. 심각한 실업문제를 비롯해서 수많은 사회적 이슈들이 불거지고 있다. 그렇다면 장래는 비관적인가. 이제까지 우리의 행적이 보잘 것 없는 것이었다면 앞으로도 희망이 없을지 모른다.
광복 60년이 되는 올해는 동양적 관점에서 한 순환주기가 매듭지어지는 시점이다. 두세대를 지나는 60년 동안 우리에게는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우리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전쟁이 있었고 그 폐허 위에서 우여 곡절을 겪으면서 오늘까지 왔다. 온갖 어려움을 헤쳐 나가면서, 60년 전에는 결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사회를 건설했다.
여기에서 그동안 지나온 길과 성과가 어느 정도인가 한번 냉철하게 판단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 대부분은 광복 직후의 상황에 대한 직접 경험이나 기억이 없다. 그래서 광복과 현재의 중간점이며, 상당수의 사람들에게 기억이 남아 있는 30년 전(1975년)을 준거 기준으로 삼아 지금 얼마나 달라졌는지 살펴보자.
<산업화와 민주화 동시에 이룩한 저력>
광복 이후 1975년까지 우리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적이 없다. 양정모 선수가 한국 최초의 금메달을 딴 것이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였다. 작년의 아테네 올림픽에서 따 낸 9개의 금메달은 30년 사이에 스포츠에서 우리 위상이 얼마나 높아 졌나를 보여주는 징표이다.
1975년 당시 젊은이들 대부분은 바둑을 두었다. 그러면서 일본 바둑에 비해 우리 수준은 훨씬 못 미친다고 여기고 있었다. 이 때문에 1980년에 조치훈이 일본의 명인위에 오르고 금의환향하자, 정부는 훈장을 수여했고 사람들은 내 일 같이 기뻐하였다. 80년대 후반 응창치배 세계대회가 만들어 졌을 때, 한국은 조훈현 기사 한사람만 초청을 받았다. 그리고 그가 우승했을 때 모두 다 기적 같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바둑 세계대회는 한국이 휩쓸고 있다. 한번 쯤 일본이나 중국에 타이틀을 양보해야 그 나라들의 원망을 벗어날 것 아니냐고 할 정도가 되었다.
젊은이들이 장발 때문에 파출소에 붙들려 가서 머리 가운데에 ‘고속도로’를 내야만 했던 때가 1975년이다. 미니스커트가 무릎 위 10센티를 넘으면 즉심에 넘어 가던 시절이다. 대중가요는 가사가 ‘이상’하면 금지곡으로 묶이곤 했다. 지금 머리를 염색했다고 감히 ‘풍기 문란’ 운운할 정부 당국자나 언론이 있을 수 있는가. 세계 영화제에서 수상작이 나오는 것을 신기하게 여기지 않는 오늘이다.
1975년 겨울은 추웠다. 동아일보가 정권에 밉보여 백지 광고 사태가 벌어진 것이 바로 그해이다. 김대중 납치 사건이 벌어진 것은 1973년이니 우리 정치 수준을 보여 준 창피의 극치이다. 육영수 여사가 불의의 변을 당한 것은 1974년이고 월남이 1975년에 패망하면서 안보에 대한 불안감도 고조되었다. 인혁당 사건 조작으로 8명을 사형에 처한 것이 1976년으로 유신 독재의 정점에서 일어난 일이다. 지금, 신문이 정권을 심하게 비판한다고 광고주에 압력을 넣는 일을 상상할 수 있는가. 정치인이 기관에 끌려가 애꿎게 고문당하는 일은 가정법으로도 불가능한 일이다. 무서운 국가보안법도 존폐의 기로에 서 있을 만큼 정치 환경과 지형이 변했다.
1975년 우리 수출액은 51억 달러였고 주요 수출품은 섬유, 신발 등이었다. 일인당 GNP는 600달러에 접근하는 정도였다. 2004년 수출고는 2542억 달러에 흑자만 298억 달러이다. 핸드폰, 가전제품, 자동차, 선박, 철강 등 기술과 자본이 밑받침이 된 것들이 수출의 주종을 이룬다.
<치밀하고 합리적인 미래전략 세워야>
위에 열거한 사항들은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사실들로 구성되어 있다. 지나 온 수십년을 염두에 두고 이들이 가지는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보자. 우리가 놀라운 일을 해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있는가. 물론 위의 예들은 30년 전에 비해 나아진 부분이 강조된 대비이다. 그러나 현재의 성취는 한국 사회 전반에 걸친 역량향상 없이는 이룩될 수 없었을 것들이다. 외국에 가면 한국의 눈부신 발전을 칭찬하고 부러워하는 평가를 수도 없이 경험한다. 당연하다. 30년 전에 우리와 비교되던 나라 대부분은 아직 그 위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결코 우리의 현 상태가 완벽하거나 만족스럽다고 주장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이만큼 했으니 자족하고 안주하자는 것도 아니다. 온갖 희생을 무릅쓰면서 열심히 한 결과로 이룬 바를 있는 그대로 인식, 인정하자는 것이다. 자부심을 가질 것은 가져야 한다.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자기만족이나 자기 비하적 태도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 만일 현재의 상황을 자랑하는 데에만 머무른다면 우리의 역동성은 위축되고 외부의 도전에 맞서는 과감한 자세는 사라질 것이다. 사실을 가감없이 인지할 때, 앞으로 해야 될 것들을 보다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시간과 노력, 자원을 투입할 데를 제대로 찾아내고, 눈을 부릅뜬 채 치밀하게 일들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지난 30년 동안 이룬 만큼 앞으로 30년 동안 우리는 또 할 수 있다. 그 잠재력은 세계로부터 인정받았다. 당장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혜를 모으고 진지하게 방법을 모색하면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자칫 옆길, 갓길로 빠질 때가 있을지 모르나 그와 같은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말자. 지금까지 우리가 유지해온 모멘텀의 무서운 기세를 인정하고 일을 도모하자. 새로운 30년을 향해서 말이다. 30년 뒤 우리가 强中國의 위치를 확고히 했을 때, 누군가가 2005년보다 몇 단계 업그레이드된 한국 사회에 대한 글을 쓰게 되기를 대망한다.
글쓴이 / 송하중
· 경희대 행정대학원장
· 美 하버드대 대학원 정책학 박사
· 중앙공무원교육원 겸임교수
· 저 서 <행정개혁의 신화와 논리>
<행정학의 주요이론>
<새천년의 한국정치와 행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