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124 주일낮설교 / 충만교회 민창근 목사
행 13:4,5,13 /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42)
(♡ 04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로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05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 13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 오늘 말씀
성령님은 안디옥 교회에서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 선교를 위한 일에 나서라고 말씀하셨고, 바나바와 사울은 순종하고 감사하며 1차 선교여행을 떠나게 되었는데, 제일 먼저 실루기아로 내려갔다.
1. 실루기아에서
안디옥은 내륙에 있는 도시이기 때문에 실루기아를 외항(外港)으로 삼아야 했다.
실루기아(셀류케이아, 뜻: 흰빛)는 안디옥 서쪽 약 26km 정도의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이 도시는 B.C.300년경 셀류시드(Seleucid) 왕조의 첫 왕 셀류쿠스(Seleucus) 1세 니카토르(Nicator)에 의해 개항된 도시로, 당시 시리아 지역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항구도시였다.
거대한 헬라제국을 건설한 알렉산더 대왕이 33세의 젊은 나이로 죽고, 그의 제국은 휘하 장군 4명에 의해 분할되었는데, 중동지역을 장악한 사람이 셀류쿠스 니카토로였다.
그는 자신의 이름으로 셀류쿠스 왕조를 세운 뒤, 지중해 연안에 대대적인 큰 항구를 건설했다. 지중해 연안 강대국들과의 교역을 통해 나라를 부를 축적하고, 나아가 국가방어를 위한 요새로 활용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그는 그 항구에 셀류케이아란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이름인 셀류쿠스의 형용사 형태로서, '셀류쿠스에게 속한 것' 또는 '셀류쿠스의 것'이란 의미이다.
그로부터 300여 년 후에 중동지역은 로마제국의 영토가 되었다. 그 땅의 주인이 된 로마제국은 셀류케이아 항의 입지적 중요성을 확인하고, 대대적인 확장공사를 벌여 더 큰 항구로 만들었다. 항구 자체가 거대한 부동의 요새였다. 그리고 로마제국 황제의 직속관할 하에 두는 자유항으로 지정했다. 말하자면 제왕의 항구로 시작된 셀류케이아가 황제의 항구로 격상된 셈이었다. 그래서 셀류케이아는 번영의 대명사요, 부동의 요새요, 거대함의 상징이었다.
물론 지금은 옛터만 남아 있고, 두 돌기둥이 있다고 전해지는데, 하나는 바울의 기둥, 하나는 바나바의 기둥이라 한다.
- 궁금한 것은 바나바와 사울이 왜 이 중요한 도시 실루기아에서 복음 전했다는 이야기가 없는가 하는 것이다. 이런 대도시에서 복음을 전하면 큰 영향력이 생겼을텐데...
그것은 이미 안디옥 교회를 통하여 이 지역에도 복음이 전해졌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넘어간다.
(롬 15:20)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이것이 사울(바울 사도)의 선교전략이다. 그래서 넘어간 것으로 말씀드리는 것이다.
사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그의 사명은 터를 닦아놓아(고전 3:10) 다른 사람이 그 위에 자신을 건축하도록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이렇게 하는 것을 사울은 영예로운 일로 여겼고, 이 일을 사랑했으며, 또한 최선을 다해 열정적 노력을 기울였다.
- 중요한 것은 넘어 가든 머물던 ...어디를 가든지 사명의식이 있어야 한다.
오늘 우리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한국교회의 처음은 선교사들이 들어와 학교와 병원을 세우고, 개인의 변화를 위해 회개운동을 일으키고, 나라를 위해 기도하며, 경제적 위기를 위해 국채보상운동을 하고, 정치적 위기를 위해 3.1운동을 일으켜 나라를 위해 싸웠다.
지금도 우리는 개인의 변화와 교회 성장뿐만 아니라, 올바른 역사와 사회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사회와 나라를 위해 기도하며 건강한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믿음의 선배들이 쌓아놓은 좋은 터 위에 더욱 귀한 역사를 만들어가도록 해야 한다.
(예) 소방관들의 활약을 다룬 드라마나 영화 - 위기에 처한 사람을 구하는 일 감동적인 일이다. 교회와 교인들이 자신만 생각하며 살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위한 삶을 사는 모습이 보여져야 한다.
2. 구브로에서
실루기아에서 배를 타고 바나바의 고향인 구브로 섬(오늘의 키프러스 Cyprus 섬)으로 갔는데, 안디옥 교회에는 구브로 출신의 사람들이 있었다(11:20). 이들 때문에 안디옥교회가 세워진 것이기에, 안디옥 교회에서 선교를 시작할 때 제일 먼저 그들의 고향에 복음을 전하려는 것은 사랑의 마음 때문이다.
1) 살라미에서
구브로 섬에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은 살라미이다.
살라미(Salamis, 뜻 : 좁은 곳)는 구브로 섬 동쪽 끝에 위치한 항구도시인데, 구브로 섬의 수도로 상업도시이다. 헤롯왕이 이곳에서 구리를 채광했기 때문에 유대인이 이곳에 많이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B.C.58년부터 로마의 지배를 받으며 지중해를 통한 해상 무역으로 인해 상업도시로 커갔는데, 전설에 의하면 바나바가 이곳에서 전도하다가 유대인의 폭동으로 순교했다고 전해지고 있고, A.D.116년 트라야누스(Trajanus) 황제에 의해 파괴되었다.
바나바와 사울은 살라미의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였다. 유대인들은 10명이 모이면 회당을 세워 신앙을 지키는 일을 하였는데, 이곳에서도 그런 회당이 운영되었다.
바나바와 사울은 이방인들의 사도로 전도 여행을 떠났지만 전도의 효과를 위해 처음에는 주로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에서 시작되었다. 유대인들이 변화할 수 있다면 그것을 발판으로 선교의 빠른 성장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북한 선교하려면 탈북자를 발판으로 삼아야 하고, 이슬람을 선교하려면 터어키를 발판으로 삼아야 하고, 동남아를 선교하려면 베트남을 발판으로 삼아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 등을 선교해야 한다고 한다.
개인 선교의 발판이 되는 것은 ‘작은 자 하나에게 주는 냉수 한 그릇’(마 10:42)이라는 사랑의 나눔으로부터일 것이다. 누군가에게 시원한 냉수 한 그릇 대접하는 맘으로 섬기면 감동도 일어나고, 나아가 선교도 일어나기 쉽게 된다.
누군가에게 사랑의 말을 하고, 사랑의 편지를 쓰며, 사랑의 나눔과 대접을 하라. 그것이 선교의 기초이다.
2) 요한을 수행원으로 세움.
선교에는 일하는 사람들이 필요하고, 마가 요한은 이 귀중한 선교 사역에 함께 참여하였다.
여행을 가도 미리 미리 알아보고 챙기는 총무 일을 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일을 진행할 때는 옆에서 도와주는 도우미가 필요하다.
마가 요한은 여러 가지 일들을 도우며, 세례 베풀 때 보좌도 할 수 있고, 경비를 관리하며, 선교에 필요한 부분들을 도울 수 있는 역할을 맡았다.
- 마가복음의 저자인 ‘마가’는 유대식 이름은 요한(뜻 : 여호와의 사랑하는 자, 히브리어 발음으로는 요하난, 혹은 요나)이고, 마가는 로마식 이름(로마의 아주 흔한 이름인 마커스, 마카베오, 마르코)으로 ‘망치’라는 뜻이다.
마가 요한의 부친에 대한 기록은 전혀 남아있지 않다. 그리고 마가의 출신지도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바나바와 마찬가지로 구브로 섬 출신으로서 부친이 돌아가신 후 예루살렘으로 이주하여 성장한 것으로 보인다. 유대 본토가 아니라 외지 출신으로서 예루살렘에 정착해 살았다는 것은, 신앙심이 특출했음을 의미했다. 즉 마가는 어렸을 때부터 믿음이 독실한 어머니의 가르침을 받아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며 자랐을 것이다.
마가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는 상당한 재산가로, 한꺼번에 어른 120명 이상이 들어가는 다락방이 있는 저택을 예루살렘에 갖고 있었다. 그래서 예루살렘의 마리아는 처음으로 교회가 세워질 때 자신의 집을 제공함으로써 위대한 교회의 출발이 가능하게 했다.
구브로 섬 출신의 자산가인 레위인 바나바는 마가 요한의 인척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개역성경에서는 마가가 바나바의 생질(조카- 삼촌 관계)이라고 번역되어 있으나(골 4:10) 대부분의 권위있는 성경에서는 마가 요한과 바나바의 관계를 ‘사촌’으로 번역하고 있다. 하여튼 레위족 출신의 바나바와 마가가 인척관계였다는 것은 마가에게 신앙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마가 요한의 이름이 성경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행12:12)인데, 베드로가 헤롯에게 잡혀가 처형당하기 전날 밤 천사의 도움으로 탈출한 후 찾아간 곳이 바로 마가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이었다. 그런데 성경은 바로 이곳을 ‘교회’라고 말하고 있다.(행12:5)
마가 요한은 아직 어렸지만 예수님을 직접 목격했던 인물이며, 그의 어머니 마리아는 일찍이 복음을 받아들여 예수님과 그 제자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던 인물임을 알 수 있다.
마가는 믿음이 돈독한 어머니, 유대인으로서의 철저한 신앙교육, 예수님과의 만남, 자기 집에서 열렸던 은혜로운 기도회와 예배들, 사도들과의 어울림, 유복한 가정환경 등 좋은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어느새 성인이 된 마가 요한은 안디옥 교회의 선교사역에 함께 동참하게 되었다.
그러나 13절을 보면, 요한이 선교하다 말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버렸다고 하였다.
배를 타고 터키 중심의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로 갈 때 초여름이라 더위가 극성을 부리고, 전염병이 유행하고, 터어키 중앙고원에는 지형이 험하고 황량하여 산적 떼의 출몰이 잦았는데, 이 같은 산적떼 얘기가 사방에 퍼져 있었다.
마가 요한은 이런 위험성 앞에 자신이 없었다. 인생의 쓴 맛을 느끼기에는 경험도 적고 감당하기엔 불안감이 너무 컸다. 또 한 가지 추정해볼 수 있는 불만은 안디옥교회에서는 주도권이 바나바에게 있었는데, 선교를 나와서 가면 갈수록 사울의 선교주도권이 커지면서 이런 일에 대한 불만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여하튼 이런 과정에서 마가 요한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마가는 이름이 망치의 뜻을 갖고 있지만, 마가는 선교의 초반부에는 망치 같은 강함이 없었던 것이다.
- 강해져야 한다.
좋은 것만 경험하다보면 약해진다.
식탁 앞에 앉아만 있는 사람은 설거지하고, 쓰레기 치우는 일이 힘든 줄을 모르고, 손에 더러움을 묻히는 일을 어려워한다.
사무실에만 있는 사람은 야외와 지방으로 다니는 일의 불편함, 그리고 여유를 잘 모른다.
익숙한 환경에서 운동하는 사람은 실제 시합의 긴장과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환경에서의 경기를 감당하기 어렵다.
위험, 불안감을 이겨낼 수 있는 자신감, 다양한 경험을 통한 능력을 길러야 큰일도 하게 된다.
마가 요한 같은 인생과 신앙의 유약함을 벗어나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성장해야 한다.
(예) 불 앞에 담대한 소방관, 테러 앞에 담대한 진압부대, 전쟁 앞에 담대한 병사...처럼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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