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맛집] 춘천 맛집, 배고픔 견딘 식재료 귀한 향토음식으로
배고픔 견딘 식재료 귀한 향토음식으로 메밀 재료 냉면ㆍ막국수 , 닭갈비
토종 음식으로 전국적 유명세
빈곤한 시절 혹은 흉년에는 일상적인 식사가 힘들다. 평소 먹기 힘든 것들도 먹어야 한다. 배고픔을 이기는 대표적인 식재료가 바로 메밀이다.
조선 왕조 내내 메밀은 구황식물(救荒植物)이었다. 흉년이 예상되면 조정에서는 구황경차관(救荒敬差官)을 해당지역으로 내려 보낸다. 경차관은 그 지역 상황을 살펴보고 조정에 보고 혹은 현지에서 해결하는 임시직책이다. 3∼5품관이었으니 계급도 높다. 구황경차관은 흉년이나 해당 지역의 양곡 부족 등을 살펴보는 직책이다. 구황경차관이 지방에 파견되면 가장 먼저 살펴보는 품목이 바로 메밀이었다. 메밀을 수확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조선시대 반가에서도 메밀을 사용했다. 메밀은 국수의 재료였고 한편으로는 전을 부칠 때 사용하는 곡물이었다. 그러나 반가에서는 일상적으로 메밀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가난한 사람들, 깊은 산골의 넉넉지 못한 살림살이에는 메밀이 필수적이고 일상적이었을 것이다.
메밀에서 검고 거친 겉껍질을 벗겨내면 ‘녹쌀’이 나온다. 이 녹쌀의 겉을 한 번 더 벗기면 거의 흰색에 가까운 메밀쌀이 나온다. 메밀쌀을 곱게 갈고 적당량의 전분을 넣어서 만든 국수가 바로 냉면이다. 조선시대에 이미 평양, 해주 등에서 냉면이 유행했던 것은 평야지대인 북한 일부 지역에서는 곱게 간 메밀쌀을 사용했다는 뜻이다.
강원도 산간지역에서는 곱게 간 메밀쌀 대신 메밀을 통째로 사용해서 막국수를 만들었다. 깊은 산속에서 고운 메밀쌀 가루를 만드는 것은 힘들다. 대부분 메밀을 통째로 갈아서 거친 국수를 만들었다. 메밀 막국수 한 그릇을 먹고 나면 치아 사이에 까맣게 메밀껍질이 끼었다고 한다, 1960년대 무렵 시장 통이나 국도변 큰길가에 메밀 막국수가 선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그 무렵까지도 강원도 깊은 산골에는 전기가 닿지 않았음을 이야기한다. 전기와 전기를 사용하는 방앗간이 가까운 곳에 없으니 여전히 예전 방식으로 껍질 채 막국수를 만들어 먹었음을 의미한다.
닭도 마찬가지다. 1950, 60년대 춘천에서 닭갈비가 시작됐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닭갈비가 이때 시작된 것은 아니다. 단지 상업적으로 닭갈비가 이 무렵 시장터에 나왔다는 뜻이다. 닭고기, 닭요리가 유명한 곳은 대부분 곡물이 귀한 내륙지방이거나 깊은 산골이다. 물산이 풍부하지 못하고 먹고 살기 힘든 곳들이다. 바닷가는 거친 그물으로나마 생선을 잡는 일이 가능하다. 농토가 넉넉한 곳은 아무래도 물산이 풍부하다. 깊은 산속, 내륙지방에서는 이도 저도 먹을 것이 마땅치 않다. 쇠고기나 돼지는 귀하다. 조선시대 쇠고기는 금육(禁肉)일 정도로 귀했고 한반도에서 돼지는 잘 자라지 않았다. 그나마 개고기를 상식(常識)했으나 조선 말기부터 일부 사람들은 개고기를 피했다. 개고기로 만들었던 개장국은 일제강점기에 쇠고기를 이용하는 육개장이나 해장국으로 바뀐다.
그나마 일반 서민들이 편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은 닭고기다. 산속의 비탈에서도 자라고 낮에는 풀 씨앗이나 지렁이 등을 잡아먹는다. 곡물이 그리 많이 들지 않고 평소에도 달걀을 생산하는 귀한 단백질 공급원이다.
지금은 강원도의 특산물이 된 메밀, 감자, 옥수수, 닭고기 요리 등은 먹고 싶어서 먹었던 음식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했던 음식, 식재료들이다. 슬픈 음식이 오늘날 귀한 향토음식이 된 셈이다.
서울과 춘천 사이 전철이 연결되고 나이 드신 어르신들의 춘천 나들이가 편해졌다. 교통비가 들지 않으니 편하게 춘천 가서 막국수 먹고 닭갈비에 소주 한잔 기울이고 당일 서울로 돌아온다. 춘천은 어느새 닭갈비와 막국수의 고장이 됐다.
춘천의 오래된 막국수 집으로는 흔히 세 집을 손꼽는다. ‘샘밭막국수’ ‘유포리막국수’ ‘산골막국수’다. 이중 ‘산골막국수’는 서울로 이전 지금은 서울 을지로 4가에서 ‘춘천산골막국수’로 영업을 잇고 있다.
‘샘밭막국수’는 말하자면 토종 브랜드인 셈이다. 음식도 토종이다. 간이 강한 동치미 국물을 육수로 사용한다. 소양호 가는 길에 있고 너른 실내에서 편하게 막국수 한 그릇 먹을 수 있는 구조다.
‘유포리막국수’는 약간 도회풍의 냄새가 난다. 세련된 국수, 세련된 육수 스타일이다. 마찬가지로 동치미 육수 위주로 국물을 내놓고 비벼서 혹은 물에 말아서 먹을 수 있는 구조다.
한때 여기저기 100% 메밀 면이 대세였지만 여전히 40∼70% 정도의 메밀 면을 내놓는다. ‘부안막국수’도 권할 만한 집이다. ‘유포리막국수’나 ‘샘밭막국수’와는 달리 시내에 자리한다. 깔끔한 막국수 맛이 일품이다.
‘원조숯불닭갈비’는 간판이 ‘원조숯불닭불고기’로 표기되어 있다. 춘천 중앙초등학교 부근에 있다. 큰길을 건너면 바로 유명한 ‘명동 닭갈비 골목’이다. 오래된 노포로 명동 닭갈비와는 얼마쯤은 다른 음식을 낸다. 닭고기와 더불어 닭 내장 등을 구워 먹을 수 있다. 반드시 숯불을 사용하고 직화로 닭고기와 내장 등을 굽는다. 식객들은 “직화를 이기는 맛은 없다”고 입을 모은다. 확실히 숯불과 석쇠에 굽는 것은 기름을 두른 철판에 굽는 닭고기와는 다르다.
‘참나무숯불닭갈비’는 불 위에 돌을 얹고 그 돌을 달궈서 고기를 굽는 방식이다. 여름에도 좋지만 겨울에는 바깥에서 화톳불을 피워놓고 고구마를 굽는 재미도 있다.
주간한국 / 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dasani87@naver.com |
첫댓글 모두들 한 바퀴 돌아 보고 싶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