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년 멕시코월드컵 이후 한 번도 월드컵 본선에 오르지 못했고 무섭게 발전해가는 이탈리아와 스페인,프랑스 등 주변국들의 기세에 눌려 경제만큼이나 축구도 ‘유럽의 빈국’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난해 유로 2000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비록 4강에서 네덜란드에 져 아쉬움을 남겼지만 당시 이들은 세계축구계에 칼날 같은 짜릿한 맛을 남겼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2002 월드컵 유럽 예선 E조에서도 네덜란드와 키프로스,북아일랜드,에스토니아를 모두 제치고 단독선두를 달리고 있다.
90년대 포르투갈 축구계에 드리워진 잿빛의 우울함이 어떻게 단시간에 장밋빛으로 변하게 됐을까. 많은 사람들은 이 코페르니쿠스적인 변화의 원인을 해외파에서 찾는다.
포르투갈 최대 축구전문지인 ‘아 볼라(A Bola)’의 조르지 실바 기자는 “한때는 해외로 선수들을 모두 팔아 국내리그가 형편없이 전락했다는 비난도 많았다”며 “하지만 이젠 피구(레알 마드리드),누노 고메스,루이 코스타(이상 피오렌티나),콘세이상(라치오) 등 해외 무대에서 치열한 생존을 뚫고 살아남은 거물급 선수들이 포르투갈 대표팀의 색깔을 완전히 바꾸었다”고 밝혔다.
현재 6년째 축구전문기자로 종사하고 있는 그는 “90년대 세계최강의 미드필드진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트라이커가 없어 계속 바닥을 헤매던 포르투갈은 누노 고메스,브르노 바스토스(보르도) 등 공격라인에 무서운 영파워들이 등장하면서 날개를 달았다”며 “21세기 초는 포르투갈이 세계축구를 움직일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실제로 올해 700명의 축구인을 대상으로 실시된 유로 TV의 2002년 월드컵 우승후보 여론조사에서도 포르투갈은 프랑스와 네덜란드에 이어 3위를 차지,4위에 머무른 브라질보다 전력이 앞서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와 함께 축구계에 ‘진정한 어른’이 존재하는 전통도 포르투갈인들에게 ‘언젠가 옛 영광을 재현할 것’이란 굳은 믿음을 갖게 했다. 진정한 어른은 에우세비오. 포르투갈인들에게 ‘킹’으로 통하는 그는 66년 영국 월드컵에서 득점왕을 차지하는 등 60년대 세계축구계를 풍미하며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모잠비크 귀화인인 그는 현재 58세로 생존해 있지만 평생 몸담았던 벤피카 구장 정면에 동상이 세워지고 죽을 때까지 구단으로부터 월 3,000달러(약 390만원)를 지급받는 것은 물론 벤츠로부터 5년마다 신차를 제공받는 등 극진한 대접을 받고 있다.
무게중심이 잡힌 틀에서 해외파들이 축구역량을 만개,마치 탄탄한 구조물을 보는 듯한 연상을 일으키는 포르투갈 축구. 21세기는 바로 그들의 것이다.